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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 진상을 알고 월급을 돌려준 학교 지도자들

글/ 중국 대법 제자 신위롄(가명)

[밍후이왕] 나는 중국 밍후이 웹사이트에서 ‘경찰에게 보낸 편지 사본(상)’라는 기사를 읽고 많은 영감을 받았다. 나는 학교 경영진에게 파룬궁의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 측의 급여 공제에 대해 편지를 쓰기로 했다.

나는 이 편지를 쓰는 데 열흘 걸렸고 편지 사본을 학교 경영진과 상급 학교 경영진에게 각 1부씩 보냈다. 사부님의 가지가 있어 두려움은 없었다. 나는 오직 다른 사람들만 생각했다.

2월 20일, 학교 회계사가 2월부터 시작하여 매월 3000위안을 돌려주겠다고 내게 전화로 알려왔다.

20년 만에 마침내 얼음이 녹았다. 중생들은 내 편지를 읽은 후 깨어났다. 학교 경영진은 ‘선’을 선택했다. 그들은 또한 교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좋은 미래가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위대한 사부님의 절묘한 배치였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다음은 내가 쓴 편지의 일부다.

35개월 밀린 월급에 관하여

교장 선생님과 학교 위원회 관리자들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은퇴한 교사인 신위롄(가명)입니다. 저는 69세입니다. 2000년 7월부터 2003년 5월까지 35개월간 제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법이나 규정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고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급여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제가 왜 진선인(真·善·忍)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여러분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년 넘게 중국공산당의 잔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왜 파룬궁은 여전히 ​​굳건한가?”라는 이 질문에 아니라고 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으신가요?

여러분 진정으로 제 진실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20여 년 전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이후의 제 일상과 삶을 이야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편견 없이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 편지를 씁니다.

1. 이해관계에서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다 

사람은 고급 생명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지만, 도덕적 기준이 있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이것이 사회적 안정의 토대입니다. 도덕적 절제를 버리고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사회와 국가와 국민에게 매우 위험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대하는 방식에서 그 사람의 도덕적 영역을 볼 수 있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진선인(真·善·忍) 원칙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둡니다. 파룬따파의 원리는 수련생의 일상생활 문제를 다루는 지침입니다. 제가 그것을 진정으로 실천할 때 그것이 수련입니다. 제가 수련에서 어떻게 이기심을 포기했는지 두 가지 사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땅 위에 있는 돈

저는 땅에서 10위안이나 20위안을 여러 번 보았지만 절대 줍지 않았습니다. 저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라는 원칙을 이해합니다. 그 돈은 제가 일해서 번 것이 아니니, 줍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날 길에서 10위안 지폐를 보았습니다. 뒤에 있던 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제가 먼저 그것을 주울까 봐 재빨리 자기 발로 밟았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길거리에서 1위안이라도 주우면 좋아했을 것입니다.

옷 맞춤

어느 날 저는 재단사에게 옷을 세 벌 맞췄습니다. 재단사는 230위안을 요구했습니다. 금액은 제게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녀와 흥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치수를 쟀고 저는 계약금을 냈습니다.

며칠 후에 찾으러 갔더니 치마가 내가 원했던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재단사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가격을 깎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돈 문제가 아니라 옷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잘못임을 알고 다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재단사는 항상 너무 바쁘다면서 오랫동안 일을 미루었습니다. 저는 화내지 않았고 그녀를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파룬따파의 가르침은 문제가 생겼을 때 안으로 찾는 데 중점을 둡니다. 저는 그 일에서 제 문제를 찾았습니다. 수련생은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해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내가 가져가지 않는다면 그녀는 80위안을 잃고 손해를 볼 것입니다.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됐어요, 다시 할 필요 없어요. 같은 가격으로 원래 만든 옷을 가져가겠어요.” 그녀는 돈을 깎아주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녀를 탓하지 않고 치마를 가지고 왔습니다.

2. 이웃과의 관계

배관 공사

어느 날 아래층에 사는 이웃이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화장실 물이 새요. 벽 내부의 배관이 파손되었습니다. 밖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남편은 그냥 무시했습니다. 그 이웃이 다시 말하자 남편은 이웃과 다투었습니다. 그는 마작에 바빠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시간도 돈도 들일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웃 사람이 제게 와서 그녀의 집 벽이 젖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사과하고 빨리 수리공을 찾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의 수도관이 새고 그것은 내 잘못이니 그녀가 비용을 부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수리공이 다음날 와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복도 청소

거주자 대부분이 건물 복도 청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 앞의 공간만 청소했습니다. 저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에는 매일 지나치는 복도와 계단을 청소했습니다. 건물의 복도와 계단까지 모두 청소했습니다. 그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은 1층에서 6층까지 복도와 계단을 청소했습니다. 특히 설 연휴 이후 복도와 계단은 폭죽 잔해와 먼지로 가득 찼습니다. 6층부터 1층까지 층별 청소를 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우리 맞은편 아파트에 세입자가 들어왔습니다. 세입자는 쓰레기를 4층 계단 통에 놓아두기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쓰레기를 조금씩 버렸습니다. 작년에 그들은 화장실을 교체했습니다. 시멘트와 모래 자루가 계단 통에 남아있었습니다. 3분의 1만 사용했고 자루는 각각 100kg였습니다.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습니다. 집주인도 일꾼들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그것들을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화를 내며 제게 도를 넘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혼자서 차근차근 자루를 하나씩 내려다 놨습니다. 저는 거의 70세가 되었지만,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때문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3. 다른 사람을 돕다

거리에서

어느 날 저는 사람들이 전기 요금을 내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가판대를 지나쳤습니다. 한 남자가 만두를 먹다가 갑자기 땅에 쓰러졌습니다. 저는 그에게 달려가 그가 일어나도록 도우려 했지만, 그는 눈을 감고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저는 그를 구하기 위해 제가 아는 방법을 썼습니다. 저는 그의 상체를 일으키며 그의 귓가에 말했습니다. “선생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세요.” 저는 그에게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가 점차 깨어나 눈을 떴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그를 깨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제가 그에게 9자 진언을 외우는 동안 그는 깨어났습니다. 나중에 구급차가 와서 그를 태워갔습니다.

또 한번은 지역 병원을 지나갈 때 땅바닥에 누워 있는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가 병으로 쓰러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은 그 남자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를 일으켜 무릎으로 지탱했습니다. 그의 귀 가까이에 대고 중얼거렸습니다. “선생님 저를 따라하세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그러면 괜찮아질 겁니다.” 저는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그는 일어났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찾을 수 없어 당황했습니다. 휴대폰은 2미터 떨어져 있었고 제가 집어다 줬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생으로서 저는 그를 못 본 척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버스에서

저는 버스에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아픈 사람들,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어느 날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이 버스에 탔는데 저는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내 주변의 젊은이들은 모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데 할머니인 제가 자리를 양보하니, 서 있는 승객이 제게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성격도 좋고 옷도 잘 입었네요. 아주 건강해 보여요. 젊었을 때 예뻤을 것 같아요.” 저는 마스크를 하고 있었고 그녀는 제 얼굴을 볼 수 없었으므로 그녀가 제 친절한 행동을 칭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친절은 가장 아름답고 수련을 통해 달성됩니다.

4.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람들을 잘 대하다 

좋은 파트너

저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명성과 사익을 추구했으며 학부모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학부모가 저를 소중한 사람으로 대해 주기를 바랐고 그들이 좋은 선물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동료들과 있을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저는 근본적으로 변했습니다. 파룬따파는 수련생들에게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투지 말고 열심히 일할 것을 요구합니다.

은퇴하기 전 마지막 3년 동안 왕 선생님(가명)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녀는 젊은 교장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었고 집에서는 꽤 바빴습니다. 저는 그녀를 도왔습니다. 매일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사무실 청소를 하고 물을 끓였습니다. 학생들에게 교실을 청소하고 방과 후에 숙제를 모으도록 안내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 했습니다. 학교 경영진이 저를 다른 직책으로 옮기고자 했을 때 왕 선생님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제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교장을 하지 않겠다고 경영진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그녀와 함께 일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잘 지냈습니다.

학생을 자신의 아이처럼

저는 성적이 안 좋은 장난꾸러기 학생들을 참지 못하고 체벌을 해서 상처를 주곤 했습니다. 그들은 반항아가 되어 공부하기 싫어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저는 학생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선해질 수 있도록 이성적으로 교육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학생들이 문제가 있긴 했지만, 제가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안으로 찾고 학생들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저는 파룬따파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반성하고 고쳤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좋아졌습니다. 자비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제가 자비로울 때 학생들은 제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들은 편안해지고 더 많은 지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쉽게 좋은 가치를 받아들이고 현명해졌습니다.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즉시 조용해졌습니다. 제 말을 잘 들어주었고, 매 학기 기말고사와 종합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제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노력한 만큼 명예가 찾아왔습니다.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정직한 가치관을 갖고 좋은 성적을 내는 모습을 보며 매우 고마워했습니다. 고맙다고 선물을 보냈는데 다 거절했습니다. 제 월급이 보상이며 학생들을 잘 교육하는 것은 제 의무라고 학부모에게 말했습니다. 가끔 선물을 거절할 수 없을 때는 학생들에게 비슷한 가격대의 선물을 줬습니다. 그 부모님은 요즘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 드물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저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누군가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약 18년 전 반에서 가장 나쁜 학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결혼했고, 관리자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가 여전히 초등학교 교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이며 불가 상승 수련 대법입니다. 고대 승려들은 사찰에서 수련해야 했으므로 집을 떠나 사찰에서 수련했습니다. 그러나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사회 속에서 수련합니다. 파룬따파 수련생을 친절하게 대하면 복을 받고 안전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칠 층 석탑을 쌓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위롄(가명)

 

원문발표: 2022년 3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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