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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을 겪으며 무조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신성(新生)

[밍후이왕] 2016년 나는 납치된 날 밤에 구치소에 이송당했다. 구치소에서 나는 순번을 말하지 않고, 응대하지 않았으며, 죄수 조끼를 입지 않았고, 연공을 못 하게 하자 단식하면서 항의했다. 단식 7일째 되는 날, 오전 구치소장이 왔는데 한동안 교섭을 통해 내가 죄수 조끼를 입지 않고 연공을 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1. 각종 기회에 진상을 알리며 중생을 구하다

어디서나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는 것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다. 매일 감방에서 나는 여러 방면으로 사람들에게 ‘천안문 분신자살’ 진상, ‘4.25’ 평화청원, 사당(邪黨)의 유래 및 사당이 중화민족과 신전문화(神傳文化)에 대한 파괴 등 대법이 왜 박해당하는지 알렸다. 대법이 주신 지혜로 세인들의 머릿속에 주입된 사당의 거짓말과 세뇌를 제거하면서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원, 공청단원, 소선대 조직을 탈퇴)하면 평안을 보장할 수 있다고 권했다.

4개월이 지난 2017년 설 즈음, 감금 시간이 오래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났다. 새로 부임한 1번과 2번 감방장은 모두 진상을 알고 삼퇴한 사람이어서 감방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직접 앞에 불러 놓고 공산당원, 공청단원, 소선대에 가입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만약 공청단원과 소선대에 가입했었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탈퇴했으니 탈퇴하라고 말하면 새로 들어온 사람은 연거푸 “예, 예, 예!”라고 답했다. 그다음 내가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삼퇴는 무엇이고 왜 삼퇴해야만 평안을 보장할 수 있는지 자세히 알렸다. 만약 아무것도 가입한 적이 없는 사람이 들어오면 그들은 직접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게 가르쳤다.

각성한 사람들이 세상을 놀라게 했던 모습이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3월 중순 어느 날, 오전 10시에 바람 쐴 때 다른 사람들은 예전과 같이 줄지어 주변을 먼저 걷다가 달렸고 나는 습관적으로 담 모퉁이에서 햇볕을 쬈다. 몇 바퀴 돌다가 1번 감방장이 문득 내게 “만약 당신도 우리와 함께 달리면 우리 모두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염할 것입니다”라고 말해서 나는 좋다고 하면서 함께 달렸다. 반 바퀴를 돌자 1번 감방장이 “하나둘”이라고 말하자 모두 함께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하오!’를 여러 번 외쳤다. 옆 감방에서 달리던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쳤다. 양쪽에서 함성이 멎자 약속이나 한 듯 다 함께 즐겁게 웃었고 웃음소리가 천지에 울렸다.

법정에서 나와 한 수련생은 대법과 자신을 위해 정정당당하게 변호했다. “진선인(真·善·忍)은 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사람들에게 덕을 중시하고 선을 지향하며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므로 잘못이 없습니다! 파룬궁(法輪功)은 수련생의 병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제거해주는데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파룬따파는 인류의 도덕과 정신문명이 동시에 향상되게 했는데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파룬궁은 현재 이미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고 전 세계 사람들이 옹호하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유독 중국공산당(이하 중공)만 박해하고 있는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3시간 넘게 진행된 법정 심문에서 변호사 두 분도 이치가 타당하고 신랄하게 신앙자에 대한 탄압, 즉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양형의 법적 근거와 조항은 모두 잘못됐고 억지스러우며 부적절한 것으로 ‘특권’을 이용해 헌법과 법을 어기는 국가적 범죄라고 지적했다. 변호사가 협조해줘서 파룬궁을 모독하고 수련생과 나를 박해하려던 악인은 반박당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판결문을 받은 나는 9일간 30페이지에 달하는 항소장을 써서 중급법원에 제출해 항소했다. 나는 감방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소장 원고를 사람들에게 읽어줬고 감옥 통로에 있는 사람들이 보길 원하면 모두 보여 주면서 파룬궁에 대한 사악한 박해를 이해하길 바랐으며 진상을 본 인연 있는 사람들이 구원되길 바랐다. 감옥 통로에서 항소장을 봤던 사람들은 모두 지식수준이 높게 잘 썼다고 하면서 틀림없이 대학생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내 모든 지혜는 파룬따파에서 온 것이다.

나는 채혈과 건강검진을 거절하면서 사악의 강제적인 폭행과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을 감옥에 납치한 것에 항의하며 두 번째로 단식했다. 단식 5일째 오후 2시에 경찰이 나와 다른 대법제자 2명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감옥으로 납치했다. 감옥 정문 입구에서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협조하지 않으며 사악의 모든 박해를 부정했다. 40~50분간 대치했고 감옥에서 특수경찰 2명이 나오더니 나를 강제로 끌어 내려 감옥으로 들어갔다.

경찰 2명과 죄수 여러 명이 나를 감방에 끌고 가서는 옷과 신발을 벗겨내고 죄수복을 입히며 슬리퍼를 신겨서 관리과로 끌고 가서 사진을 찍으려 했다. 내가 협조하지 않고 사진도 찍지 않자 경찰은 죄수들에게 날 양쪽에서 붙잡게 했고 한 죄수가 내 이름이 적혀진 피켓을 들고 내가 머리를 숙여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사진을 겨우 찍었다. 나를 감방에 다시 끌어다 두 손을 침대 프레임을 잡게 하고 수갑을 채웠다. 경찰은 내가 5일째 단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자)에게 말했다. “아침에 이미 콧구멍을 통해 음식을 주입했으니 너희들이 잘 감시하면서 일이 있으면 수시로 보고해.”

감옥장과 부감옥장은 내가 이전에 옥살이한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때 나에 대한 박해에 가담했던 경찰과 승진해 감옥을 떠난 다른 경찰을 찾아 나에 대한 상황을 자세하게 점검했다. 그들은 전 부감옥장에게서 내 상황을 들었다.

2004년에 내가 처음 불법적으로 형을 선고받았고 이 감옥에서 다른 감옥에 이전될 때 그 부감옥장은 관리과장을 담당했다. 나를 박해하고 ‘전향’시키기 위해 구금실에 가두면서 죄수 14명을 바오자로 지정했다. 그 구금실에는 철제 조끼, 맞춤형 사인상(死人床) 등 형구가 있었다. 나는 이 특별 구금실에 1년 10개월 감금됐다. 그들은 나에게 철제 조끼를 입히고 끈으로 두 다리를 한 달 넘게 동여맸으며 사인상에 5번이나 올렸는데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17~18일간 올렸다. 나는 당시 10개월 넘게 해를 보지 못했다.

내 몸이 박해당해 매우 허약해지자 그들은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5개월 후 다시 그 감옥으로 데려갔다. 죄수 8명이 나를 차에서 들어 감방에 가서 옷을 벗기고 머리를 깎고 죄수복을 입히고는 침대에 내려놨다. 내가 죄수복을 벗어 버리자 경찰은 죄수들에게 다시 입히라고 했다. 내가 죄수복을 또 벗어 버리자 경찰은 죄수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가 문을 나서기 전에 죄수 8명이 우르르 달려들어 주먹과 발길질을 해 내가 더는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때렸다.

몇 시간 뒤 나는 구금실에 끌려가 바닥에 버려졌고 4인 1조로 나를 둘러앉았다. 다음날 삼륜차로 날 의무실로 끌고 가서 전신 엑스레이를 10여 장 찍은 후 다시 구금실에 데려가서 사인상에 묶었다. 2개월 넘게 단식으로 항의하자 구금실 담당 죄수는 경찰에게 내가 죽을까 봐 더는 감금하지 못하니 감방에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사인상에 묶인 그대로 감방에 돌아와 보름 넘게 누워있다가 추석이 지나 날씨가 추워지자 사인상에서 풀려나 침대에서 잠잤다. 한 달이 지나서 나는 단식을 중단했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집에 가는 날까지 3년간 버텼다.

그때 발생했던 박해와 반박해의 겨룸에 관한 모든 상황에 대해 이 부감옥장은 나보다 더 잘 기억하고 있었고 감옥 관리 회의에서 이런 사실을 모두 이야기했다. 이 사람은 이미 응보를 받아 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장과 부감옥장은 내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대법에 대한 반석같이 확고한 신념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내게서 ‘정치 자본’을 얻으려던 시도를 버리고 태도와 말투가 많이 누그러졌다. 그래서 내게 식사를 권하면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몸조심하라고 말했다.

나는 순번을 말하지 않고, 응대하지 않았으며, 쪼그려 앉지 않고, 일하지 않았으며, 서명하지 않고, 사무실에 들어갈 때 보고 하지 않았으며, 아침저녁으로 붉은 깃발에 맹세하지 않았다. 일하러 나갈 때 사당(邪黨)이 좋다고 외치지 않았고 소방 훈련이든 방폭 훈련이든 어떤 관리가 와서 쇼를 하든 사악의 모든 명령과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다. 아침 7시에 일하러 나가서 밤 9시에 감방에 돌아올 때까지 식사와 화장실 가는 것 외의 모든 시간에 작업장 창가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대법을 외우거나 발정념을 했다.

하루하루를 되풀이하며 경찰과 죄수들이 날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나도 처음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을 때도 이렇게 걸어왔다. 다만 작업장 환경이 다를 뿐 이번처럼 뚜렷하고 두드러지지 않았다.

6월에 이르러 감옥에서 특별사면 통지를 공지해 감옥장과 대대장이 말했다. “우리 감구에 당신 한 사람만 특별사면 조건에 해당해 감옥에서 무엇인가 쓰면 일찍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하니 여기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말했다. “저는 집에 돌아가길 갈망하고 여긴 수련인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닙니다. 제가 전에 군에서 국가를 수호할 때 아무런 조건을 내 걸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당신들이 국가의 변경을 수호한 공신들을 위해 많은 조건부 특별사면을 했지만 저는 어떤 조건도 동의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경찰과 이야기할 때 나는 비굴하지 않고 거만하지도 않은 말투로 대했고 매일 출석을 부를 때 사악의 명령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특별사면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정신과 기백으로 이전에 사악을 도와 대법제자를 박해했던 죄수를 포함한 모든 죄수가 마음속으로부터 파룬궁에 대해 탄복하게 했다. 그들의 신임을 얻어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권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바오자가 진상을 이해하자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나중에 감구를 재편할 때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각종 기회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면서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했다.

2. 사악의 박해를 정념으로 부정하다

나는 양팔로 침대 프레임을 껴안고 수갑을 차고 작은 의자에 24시간 앉아 있었고, 사흘에 한 번 콧구멍을 통해 음식물을 주입 당했다. 단식 17일째 헛구역질이 나고 메스꺼웠는데 점점 심해져서 나는 단식을 중단하고 식사했다.

단식을 중단하자 두 다리와 발이 부어 슬리퍼도 신을 수 없었다.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갈 때 몸을 일으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 자세를 유지했다. 매일 대법을 외우거나 발정념을 하면서 1분 1초를 보냈다.

3개월이 지나서 죄수가 바닥에 골판지를 깔고 이부자리를 폈고 양손에 차던 수갑을 침대 프레임에 하나 고정하고 한 손만 채웠다. 첫날에는 반듯이 누워 잤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말아서 가져가고 원상복구를 했다. 또 한 달이 지나자 골판지가 침대용 널판자로 바뀌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자 작은 의자 네 개로 널판자를 지탱하고 한 손에 수갑을 차고 잠자다가 낮에는 두 손을 가슴 앞에 채우는 것으로 바꿨다. 반년 후에 나는 큰 감방으로 옮겨져 아래쪽 침대에서 잤는데 좌우와 위엔 모두 바오자가 있었다.

2020년 7월에 담당 경찰이 바뀌었다. 이 경찰은 입만 벌리면 욕하고 손을 들면 때렸는데, 내가 사악을 인정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이를 갈았다. 그는 세 번이나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혹하고 협박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처음엔 날 사무실로 불러들인 후 문밖을 지키고 있는 죄수에게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고 한 후 문을 잠그고 사악한 사람들이 일삼는 술수로 달래고 속이고 으름장을 놓으며 강온 양면책을 함께 썼다. 먼저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곁에 앉아 비대해진 몸으로 내 몸을 비비적거렸다. 간청, 속임수, 협박,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동작 등으로 두 시간 가까이 연기하다가 내가 마음이 차분하고 조용히 있는 것을 보고 독설을 퍼부으며 스스로 마무리했다.

그는 날 사무실로 불러들인 후 말했다. “우리 일은 이제 해결해야 합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어리둥절한 척한다며 파룬궁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모함하면서 사회와 세인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나는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엄숙하게 말했다. “첫째, 저는 그런 사상이 전혀 없고 더욱이 그런 말을 한 적도 없습니다. 둘째, 그 말은 모두 당신 입을 통해 한 것으로 당신의 마음과 사상에서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간단명료한 두 마디 말에 그는 말문이 막혀 한동안 말하지 못했다. 1분 정도 침묵하다가 그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요즘 내 건강이 어떤지 등등 관련 없는 말을 했고 나중에 “먼저 돌아가세요, 설을 쇠고 다시 이야기합시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나를 사무실로 또 부른 후 “설 전에 얘기했던 일을 어떻게 생각했나요!”라고 말했으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잔뜩 찌푸리고 공포적인 얼굴은 1~2분 동안 침묵이 흐른 후 부드럽고 편해졌으며 내 형기가 얼마나 남았는지 묻는 화제로 즉시 바꿨다. 마지막에 그는 감옥에 보고해야 하기에 내가 집에 돌아가기 전에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으니 무엇인가 글로 써달라고 말해서 나는 약속했다. 하지만 나중에 건강에 문제가 생겨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 나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그는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죄를 범하는 사악한 심리를 솔직히 털어놨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 3일 전 그는 다른 대대로 전근했다.

3. 구세력의 빈틈없는 박해

다리의 붓기는 가라앉았지만 나는 여전히 불편했다. 길을 걸을 때 발바닥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매우 힘들었다. 나는 소업이라 생각하고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019년 겨울부터 아침에는 음식을 먹기 싫었고 식욕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한겨울이 지나면서 살이 몇 킬로 빠졌다.

2020년 설 연휴에 우한폐렴이 폭발한 것을 보고 나는 정법이 표면적인 공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환희심, 과시심, 쟁투심, 색심, 안일, 절박하게 집으로 돌아가려는 조바심 등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마음들은 대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면서 모두 청리되고 있었다. 설을 쇠고 나서 일을 시작해서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창가에 앉아 대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했다. 하지만 점점 엉덩이 살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앉으면 뼈나 신경에 앉는 듯해서 소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세를 똑바로 하고 대법을 외우며 발정념을 견지했다.

2021년 몸이 불편한 느낌이 점점 더 심해져서 허리와 사타구니 아래까지 나타났고 두 다리가 너무 뻐근하고 아파서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에 걸치면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꿨다. 이어서 상반신에서 목까지 뭔가 딱딱한 물질이 있는 듯이 느껴졌고 때로는 매우 힘들었지만, 줄곧 소업이나 공이 자란다고 생각했다. 몸이 아무리 괴로워도 매일 발정념을 하면서 세 가지 일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6월이 되자 날씨가 더워지면서 입과 혀 여러 곳에 궤양이 생겨 아파서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깨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발정념을 강화했기에 대법은 외우지 못했다. 보름이 지나자 오장육부도 이상하게 느껴져 매우 수척해졌고 길을 걸을 때 흔들리고 서 있기 어려웠다.

7월부터 몸이 몹시 괴롭게 느껴졌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간간이 가쁜 심장 박동에 놀라 잠을 깼고 식은 땀투성이가 됐으며 심장 뛰는 소리가 마치 위층에서 누가 북을 치는 것처럼 들리고 입이 마르고 열이 올랐다.

9월에 이르러 허리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몸에 무언가가 나를 한 데로 묶었는데 느낌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때로는 밧줄이나 집게로 상반신을 꽉 조이는 느낌이 들어 숨쉬기도 힘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두 손도 저렸으며 허리와 사타구니, 다리와 발이 마비될 정도로 감각을 잃었고 발바닥이 매우 두껍게 느껴져 길을 걸으면 넘어져 남에게 조롱당할까 봐 두려웠다. 두통, 어지럼증, 메스꺼움, 구토가 잦아졌다. 두통이 생기면 머리가 아플 때 태양혈(관자놀이)을 꼬집고 책상에 기대어 잤고 흐리멍덩한 상황에서도 발정념을 항상 했다. 마지막 여섯째 날에는 일하러 나가지 않고 쉬면서 자고 싶은 생각이 생겼다.

아침에 출근 종이 울리자 바오자가 나를 부축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층 내려온 후 나는 움직이기 싫어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두가 다 내려간 후 바오자 두 사람이 나를 부축하면서 1층으로 내려가 행렬 뒤에 섰다. 나중에 죄수가 그때 내가 얼굴이 창백하고 핏기가 없으며 누렇게 변했다고 알려줬다. 대대장이 다가와서 날 보더니, 대법을 모독하는 말을 하면서 죄수에게 의무실로 데려가라고 했다.

의무실에 도착하자 나는 온몸이 나른해졌고 검사용 침대에 눕자 잠이 든 것 같았으며 체온을 측정하니 38.8도였고 심전도에서 심장 박동수에 문제가 있다고 나타냈다. 알고 보니 2개월 넘게 줄곧 발열했지만 나는 전혀 발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밤에 잘 때 오장육부가 뜨거워 몸에 아무것도 덮을 수 없었다. 낮에는 두 손이 얼음같이 차가워 뜨거운 물컵으로 손을 녹였다.

링거를 맞고 흐리멍덩한 상황에서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뒀다! 이미 발정념을 거의 할 수 없어 많아야 수십 초 했고 걸을 때는 사람이 부축하거나 벽을 짚어야 움직일 수 있었다. 비록 집에 가는 날짜 5~6일을 앞뒀지만, 몸은 이미 구세력에 박해당해 죽음의 임계점에 이르렀다. 집에 갈 때까지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고 수시로 구세력에 박해당해 죽을 수도 있었다.

경찰들은 내 상황을 보고 모두 책임질까 봐 두려워 위생원에게 며칠 연속 링거를 맞히라고 지시했다. 모르는 사이에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했기에 수액이 몸에 들어가면서 온몸이 부었다. 그때 나는 정념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죽은 후 내 유골을 아버지의 유골과 함께 묻을 생각까지 했다.

아버지는 성실하고 선량하시며 말을 잘하지 못하는 분이셨다. 내가 처음 박해당했을 때 여러 곳으로 나와 다른 대법제자들을 구하러 다니셨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하루 세끼를 준비하셨으며 손자를 돌보고 내 아들을 보살피셨다. 첫 번째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새벽 0시가 금방 지나자 경찰 4명이 내 양손에 수갑을 채우고 감옥 밖으로 들고나와 대문 밖에 대기 중이던 ‘610’ 인원에게 건넸고 사악한 패거리들은 나를 바로 세뇌반에 납치했다. 세뇌반을 떠나는 그 날 이른 아침에 어머니, 외삼촌, 동생이 마중을 나왔다. 어머니의 벌겋게 부은 두 눈을 보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집안에 큰일이 생겼다고 짐작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내가 또 납치돼 박해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너무 많이 받아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구세력이 우리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가는 방식으로 가족 정을 이용해 날 대법에 죄를 짓게 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허튼짓이었고 나는 사악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정념이 생기자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해주셔서 집으로 돌아왔다.

4. 결정적인 순간에 ‘9자 진언’이 신의 위력을 나타내다

출옥 당일 아침, 나는 바오자의 부축을 받고 세수를 마치고 침대에 돌아와 앉았는데 7시가 되지 않았다. 경찰이 바오자에게 나를 아래층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죄수 3명이 나를 부축하고 경찰 2명이 뒤따르며 1층으로 내려갔다. 나를 폭력적으로 감옥에 납치했던 순찰차가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경찰이 차에 탔고 차는 나를 폭력으로 납치했던 곳에 이르러 멈췄다.

경비실 경찰이 서류를 확인하고 우리 집에서 보내온 옷을 내게 갈아입게 한 후 무장 경찰이 지키는 창구로 걸어갔다. 무장 경찰은 서류를 확인한 후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명찰 사진을 보면서 “당신이 맞아요? 집은 어디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문득 “쩐싼런(真善忍) 세 글자 성언(聖言) 법력(法力)이 무한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진정으로 외면 만겁(萬劫)이 즉시 바뀌네”[1]가 떠올랐다.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말했고 무장 경찰은 거리 주소도 괜찮다고 또 말했다. 나는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평온한 어투와 마음가짐으로 말했고 사상은 잡념이 전혀 없이 순정했다. 내가 ‘9자 진언’을 염하는 그 순간에 내 몸에서 담황색의 빛 에너지가 발사됐는데 매우 부드럽고 매끈하며 평온해 물결이 일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고 동시에 양쪽으로 확장됐으며 ‘션윈(神韻)’ 공연 스크린처럼 아름다웠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서류를 건넸던 경찰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무장 경찰은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당신이 말하지 않으려면 기다리시오!”라고 말하면서 창문을 닫고 떠났다. 경찰은 급히 관리과에 연락해서 몇 분 후 무장 경찰이 “문을 열어 내보내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대문이 천천히 열렸고 나는 또 정념으로 사악한 마굴에서 나왔다.

5. 무조건 안으로 찾으며 수련하다

집에 돌아와서 먼저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큰절을 올렸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항상 보호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제자가 다시 한번 사악한 마굴에서 정념으로 나올 수 있어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고 나서 연공했고 넘어지면 기어 일어나 계속 연마했다. 제1장 공법을 연마할 때부터 땀이 비 오는 듯 흘렀고 제4장 공법을 연마하고 나니 옷이 흠뻑 젖었다. 사부님께서 제자 몸에 주입된 더러운 것을 밖으로 청리해주셨다. 다리와 발은 부어 코끼리 다리와 같이 굵고 빛나고 저렸지만 5가지 공법을 반드시 연마하면서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안배해주신 정법수련의 길을 걸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몸 상황이 극도로 나빠졌다는 것을 매우 분명히 알고 있었고 가족은 모두 알아차리고도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매우 걱정했다. 그날 밤 잘 때 머리가 아프고 발열했고 내장도 발열해 이불을 덮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오셔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이불을 덮어주셨다. 내게 6시에 일어나 발정념을 하라고 하셨고 몸은 철판과 같이 굳어졌지만,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크게 만족했다.

대법에 어긋나는 내 생각을 아신 어머니는 직접 겪었던 일을 알려주셨다. 어느 날 바닥을 청소하면서 금방 계단 입구를 청소했는데 갑자기 심장 부위가 매우 괴로워 ‘만약 사부님께서 나를 떠나가라고 하신 것이면 갈 것이지만, 만약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면 누구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발정념을 하면서 제거하셨다고 하셨다. 얼마나 강한 정념인가! 그래서 매일 네 번 어머니는 나를 마주하고 앉아 함께 오랫동안 발정념을 하면서 구세력의 박해를 청리하고 제거하는 것을 도와주시면서 연이어 일주일 넘게 발정념을 했다. 내가 연공할 때 몸이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10일째 되는 날 역시 30분짜리 MP3 플레이어로 포륜(抱輪)을 했는데 플레이어가 3회나 멈추는 고장이 발생했다. 어머니와 나는 사부님께서 1시간짜리 포륜을 하라고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이튿날부터 1시간짜리를 연마했다.

나는 병을 제거하기 위해 대법을 수련했고 신체에 나타난 바르지 못한 상황을 오랫동안 소업으로 생각했다. 평소에 발정념을 하면서 구세력과 악당사령(惡黨邪靈)을 제거할 때 내 몸에 존재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발정념을 해 제거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환희심, 과시심, 쟁투심, 색심, 절박하게 집에 돌아가려는 조바심 등 마음을 그때는 생각했지만, 대법의 표준에 따라 엄격하고 착실히 수련하면서 제거하지 못했다. 100% 신사신법해야 한다고 비록 늘 스스로 일깨웠지만, 매일의 주요 시간과 정력을 반박해에 둬서 구세력이 사람 마음의 틈을 파고들어 박해할 수 있는 원인이기도 했다.

1999년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나는 “설령 생명을 잃더라도 전적으로 구세력의 모든 박해를 부정하고 대법에 대한 반석같이 확고한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신념을 지켜왔다. 이는 그때 사악이 온 세상을 뒤덮을 기세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비방하고 모독하며 박해할 때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였다.

그러나 이번 억울한 옥살이를 당하면서 나는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찌 죽음으로 두렵게 하리오?”[2]와 같이 죽어도 괜찮다는 관념을 가졌기에 누락과 사람 마음이 생겼다.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왜 죽어도 괜찮은가? 이것은 구세력의 박해를 이미 인정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정법 노정에서 요구하신 제자들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표준에 부합되지 않았다.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으면서 이 변하지 않은 관념이 구세력이 내 몸에 대한 박해를 초래하게 된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제자는 마침내 구세력이 틈을 파고들어 박해당한 다른 한 가지 집착인 ‘남을 무시하는 마음’을 찾았다. 오래전부터 어머니가 여러 번 일깨워주셨지만 나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제거하지 않았다. 우리는 감옥에서 전향돼 죄수에게 부림을 당하는 수련생을 일깨워도 깨어나지 못했는데 그는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고 이 마음이 특히 강했는데 남을 깔보는 표정은 심지어 박해자보다도 더 강했다.

평소에 수련생과 교류할 때나 다른 신앙인들에게 삼퇴를 권할 때도 이런 마음이 강하게 나타났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줄곧 깨닫지 못했다. 자신을 뽐내고 남을 무시하는 이 마음 때문에 나는 극단적으로 행동하고 동정심이 없었으며 다른 수련생 및 세인들과 겸손하게 소통하지 못했다. 또한 자비심이 생기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이 강한 사람 마음은 구세력이 틈을 파고들어 박해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수련생이 교류하면서 자비롭게 나를 지적했다. “이전에 대법 표준에 따라 엄격하게 수련하지 못했기에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다른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했고, 평소에 수구(修口)를 중시하지 않고 쟁투심이 있습니다. 또한 사오(邪悟)한 사람이 쓴 글을 다른 수련생에게 보여 준 난법(亂法) 행위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틈을 파고들어 박해당한 주요 원인이기도 합니다.”

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당하면서 내가 100% 신사신법하는 제자에서, 출옥 마지막 5~6일 전에는 정념이 없고 목숨을 잃을 뻔한 사람으로 변했는데 교훈은 정말 심각했다. 신사신법해야 하는 수련에서 곤두박질치고 제대로 하지 못한 근원은 안으로 찾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법공부를 많이 착실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법공부를 잘하고 안으로 찾는 것이 법보(法寶)다.

6. 함께 정진하며 사전(史前)의 서약을 실행하다

감옥 대문을 나서는 마지막 찰나에 순정하고 평온하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이 9자 진언을 염한 순간에 대법이 나를 생사의 고비를 넘게 해주셨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제자에게 또 한 번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 나를 구해주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감사드린다!

넘어져 아파서 깨어났고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법에 대한 반석같이 확고한 마음은 대법제자의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뿌리다. 100% 신사신법하는 것은 대법제자가 정진하면서 태만을 부리지 않는 초석이다. 정념정행하고 세인을 구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사명과 책임이다.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는 새로운 우주 생명의 경지와 표준이다. 무조건 안으로 찾으면서 수련하는 것은 대법제자가 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걸을 수 있는 보장이다. 일사일념(一絲一念) 및 아무런 누락이 없이 대법에 동화하고 서약을 실행해야만 원만할 수 있다. 제자는 꼭 수련을 처음처럼하고 열심히 법공부를 하며 정진하면서 착실히 수련할 것이다. 중생을 구하고 사명을 실행하면서 자비심을 수련해내고 사부님의 정법노정에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사존께서 자비롭게 제도해주신 은혜를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23년간 박해당하면서 항상 지지와 배려해주신 아버지, 어머니, 형제, 며느리, 아이들, 친척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다! 걱정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지지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고생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여러분은 나 때문에 사악의 교란, 공갈, 충격과 두려움 등 박해를 당하셨고 모든 감당과 고생으로 인해 장래 여러분은 복을 누리시게 될 것이다.

13년간 옥살이 박해당하면서 내가 어디에 있든 어머니는 온 가족에게 배려와 관심을 주셨다. 구치소에 있을 때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주말 ‘면회 일’만 되면 감방에 있는 모든 사람은 내게 “어머니의 온정이 오겠네요”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가져오신 치킨, 꽈배기 등을 받고 나서 매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내게서 ‘어머니가 보내온 온정’을 받으면서 사람마다 진지하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말했다. 구치소에서 진상을 알게 돼 구원된 생명에 대해 어머니의 한 몫이 있다.

변호사를 초빙하고 공안, 국내안정보위국, 법원, 검찰 등 어디를 방문하든지 바르고 굳센 기개에 정념정행하며 정정당당하게 대법을 실증하고 수호해서 사악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어머니는 인민대표대회·정협·민원실·사법청·감옥관리국·감옥 등 여러 곳을 방문하셨다. 강한 정념으로 진상을 알리면서 반박해를 하셨고 근처에서 발정념을 하며 나와 다른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덜어주셨다. 어머니가 도와주셔서 내가 두 번이나 정념으로 마굴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게 이끄신 것, 베이징에 대법을 수호하러 가게 비용을 대주신 것, 가족에게 진상을 알린 것, 온 가족이 변호사를 초빙해 대법과 나를 위해 정의를 호소한 것, 정념으로 가택수색하러 온 사악을 쫓아내고 대법을 수호한 것, 사당의 모든 부서에서 진상을 알리며 나를 구원한 이 모든 게 어머니가 하신 일이다. 어머니는 그동안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해주셔서 사당의 여러 부서의 괴롭힘과 공갈을 직접 마주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셨다. 대법을 실증하고 반박해하고 중생을 구하면서 정정당당하게 대법을 실증하는, 어머니에게 적합한 수련의 길을 걸으셨다.

동행해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금생에 어머니와 함께 인연이 있어 대법을 기쁘게 얻었고 한 가족이 된 것은 나의 복이며 나는 이 성스러운 인연을 소중히 할 것이다! 향후 수련하면서 서로 협력하고 더 정진하면서 함께 인간 세상에 올 때의 숙원을 이룩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4-대련(對聯)’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

 

원문발표: 2022년 2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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