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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서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다

글/ 중국 산둥(山東)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20여 년 이래,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사존의 보호로 오늘날까지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수련한 이래의 심득 체득을 써내어 사존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들과 나누려 합니다.

2001년 1월 19일, 우리 일가족 세 식구가 베이징으로 호법하러 청원을 갔다가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불법 수감됐습니다. 두 달 후, 세뇌반으로 보내져 3개월 동안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직장에서는 저의 부과장 직무를 해임하고 매월 제게 320위안(약 6만 원)의 생활비를 줬습니다. 저의 직장은 ‘610’에 의해 1만 위안(약 190만 원) 벌금이 매겨졌고 다 매겨질 때까지 또 매월 생활비에서 제가 베이징에 가서 호법한 비용을 공제했습니다. 그때, 아내(수련생)는 직장으로부터 불법으로 공직을 박탈당해 집안살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2002년 ‘610’ 관계자가 직장에 와서 저를 납치했으나 슬기롭게 빠져나와 이로부터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습니다. 2002년 9월, 저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를 당해 불법으로 납치된 후 8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자아를 내려놓고 새로운 국면을 개척

2008년 말, 저는 감옥에서 구사일생 끝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7년 동안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녀서 가정의 삶은 형편이 매우 어려웠으며 아무런 생계 원천이 없었습니다. 가정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2009년 초에 저는 기존 직장으로 돌아가 임시공이 되었습니다.

당시 직장에서는 책임자에서 노동자가 되기까지 중공 사당의 유언비어와 선전에 물들어 대법에 대한 오해가 매우 깊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직장에 출근했을 때 압력이 매우 심한 것을 느꼈습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저는 자신의 책임이 막중하며 어떻게 법을 실증하여 이 한 편의 중생을 구하는가 하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다는 것을 깊이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수련자로서 일체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대법(大法)을 널리 알리고, 대법(大法)은 바른 것이며 진정한 과학으로서 설교와 유심(唯心)이 아님을 실증하는 것은 매 수련자 자신의 책임이다.”[1]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과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당신들이 그렇게도 좋아졌는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바로 그는 인류에 아직도 좋은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을 믿지 않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해서 그들에게 한번 보여주자!!!”[2]

사존의 법은 제게 큰 자신감과 힘을 줬고 저는 곧 사부님의 법에 따라 했으며 대법이 제게 부여해준 지혜로 국면을 돌려세워 대법을 실증하여 이 한 편의 중생을 구했습니다.

저는 비관하지 않았고, 주눅 들지 않았으며, 자신의 마음 상태를 바로 놓고 자투리 시간도 다그쳐 법공부를 하여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고 자아를 내려놓으며 사람과의 득실과 영예 그리고 치욕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표준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과 일을 대했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원래 업무 핵심 책임자였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사악한 박해로 업무에서 멀어진 데다 요즘 설비와 기술발전이 매우 빨라서 요구를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제가 부딪힌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을 하면서 배웠고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지런히 연구했습니다. 저는 2년 남짓한 시간을 들여 모든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설비의 성능을 장악했습니다. 전력 설비의 2차 설치 사용 측면에서 저는 독자적으로 어느 한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그로부터 2차 시공 측면의 업무는 전부 제가 맡았으며 반장과 동료들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저는 업무에서 엄숙하고 진지하며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공한 설비는 송전할 때 문제가 나타난 적이 없었고 전부 한 번에 송전을 성공시켜 책임자와 동료들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시공에서 저는 곳곳에서 타인을 위해 생각하고 남이 조급해하는 것을 나도 조급해하며 자신이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늘 싱글벙글하며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평소 직장의 다른 부서에서 전기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자가 시키는 한 저는 모두 조건 없이 가서 처리했으며 직장의 유지보수 자원봉사자가 됐습니다. 동료들 가정의 전기에 문제가 생겨서 저를 찾아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저는 시간 내어 그들을 도와 수리해주었습니다. 이 역시 책임자와 직원들의 높은 신뢰와 호평을 받았습니다. 직장의 모든 사람이 저에 대한 견해가 점차 모두 바뀌었습니다.

이 무렵, 저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직장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 탈퇴)’를 권유했습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3]라는 사부님의 가지로 노력을 통해 우리 직장 동료들의 삼퇴 비율은 90% 이상에 달했습니다.

남이 조급해하는 것을 나도 조급해하며 용감하게 중책을 떠맡다

2014년 8월, 작업반에서 35kV 변전소를 설치하는 힘든 임무를 받았습니다. 설치부터 전원 공급까지 20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전의 공정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의 설치는 최소 40여 일의 시간이 걸려야 완성됩니다. 이 공정은 ‘정부 행위’로 업무를 모르는 정부 관계자의 결정에 따라야 하며 되돌릴 여지는 없었습니다.

시공 첫날, 직장의 총지배인과 분할 관리 책임자가 함께 시공 현장을 살폈는데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임무를 완성하려면 매우 어려웠으므로 그들은 매우 난처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 행위’로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두 책임자는 반평생을 열심히 일한 반장의 의견을 구했습니다. 반장도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완성하기에는 어려움의 정도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반장은 책임자에게 “일차적인 설비의 설치는 몇 사람을 더 추가해서 야근까지 하면 그런대로 대응할 수 있지만, 이차적인 설비의 시공은 사람을 더 추가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장악한 이런 설치 기술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마 어려울 것입니다. 이 일은 확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반장은 방법이 없어 결국 책임자에게 제게 물어보라고 하면서 어려움을 제게 밀었습니다. 거듭 생각해본 끝에 저는 책임자에게 “솔직히 말씀드리면 작업반에 지금의 인력으로는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인력을 안배하면 전혀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반장과 시공방안과 인력 배치 등의 문제를 논의한 후 숨 가쁘게 착공했습니다. 작업반의 모든 사람은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힘을 한 곳에만 쏟으며 일찍 오고 늦게 갔습니다. 결국 19일째 되던 날 설치를 완성했고 원만하게 임무를 완성했습니다. 직장 책임자는 크게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공사 기간의 10일째 되던 날 1차적으로 전원 공급을 성공시켜 정부 분할 관리 담당자의 신임과 긍정을 받았습니다.

이 임무가 막 끝나자 더 어려운 다른 한 프로젝트의 임무인 35kV 화학 공장의 변전소 설치 임무가 바로 떨어졌습니다. 이번의 설비는 지난번 변전소의 설비보다 2배 이상이었고 공사 기간은 더 짧아져 15일 이내에 반드시 전원 공급 조건을 갖춰야 했습니다!

책임자와 직원이 공사 현장에 가서 보니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어서 모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 행위’여서 논의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 딱 감고 했습니다. 직장에서는 모든 인원과 기계 설비를 동원해 지원해줬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여전히 2차 시공이었습니다. 제가 시공 현장에 가서 보니 설계부서에서는 시공도면마저 제공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시공해야 할까요!? 제가 설계부서에 시공도면을 요구하자 현장 설계자는 없다고 말하면서 시공도면을 그릴 줄도 몰라서 제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화학 공장, 시공사,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가 난처해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와서 우리 반장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반장은 명확하게 그들에게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현장의 모든 책임자가 반장에게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반장은 어쩔 수 없다며 시선을 제게 돌리면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곧이어서 “모두 난처해할 것 없습니다. 관련 도면을 전부 제게 주세요. 제가 직장으로 돌아가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시공 준비 작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한 한 지체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시공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현장 관계자들은 모두 마음을 놓았습니다. 저는 모든 도면을 안고 반나절의 시간이 걸려 모든 작업준비를 마쳐 시공의 정상적인 수행을 보장했습니다.

공사 기간을 보장하기 위해 화학 공장의 책임자와 전면적으로 협력해 식당 관계자들을 안배하여 점심 식사를 시공 현장으로 보내도록 함으로써 시공 시간을 보장했습니다. 직장 시공자는 부지런히 솜씨 좋게 일을 했고 식사를 마치면 휴식도 없이 곧바로 작업에 투입했습니다.

모두 일찍 나왔다가 밤늦게 돌아갔고 야근 시간을 더해가면서 마침내 14일 만에 시공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현장의 각급 책임자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직장 책임자는 더욱 기뻐하며 손뼉을 치면서 축하연을 베풀겠다면서 축하연에는 모든 작업반 관계자들을 모두 초청했습니다. 이것은 직장에서 유사 이래 있어 본 적 없는 대우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각성해 박해를 저지

두 차례의 35kV 변전소 설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직장 책임자와 직원 전체가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견해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고 저의 근무 환경은 갈수록 느슨해졌습니다.

2015년 12월, 우리 지역 수련생이 실명으로 최고 인민 법원과 최고 인민 검찰원에 장쩌민(江澤民)의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고소했습니다. 그중 대부분 수련생은 ‘610’에 의해 불법으로 납치된 후 행정적으로 10일 구류됐습니다. 파출소, 국보대대, ‘610’에서는 각각 한 사람씩 파견하여 직장에 와서 저를 납치하려 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모두 아직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 반장이 따돌렸습니다.

반장은 곧바로 분할 관리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610’등 관계자들이 제게 호의를 품지 않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분할 관리 책임자는 총지배인에게 전화기를 전해줘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두 책임자는 즉시 우리 직장으로 달려와 악인들의 악행을 저지했습니다. 직장 두 책임자의 극진한 보호와 다방면의 소통으로 악인들의 저에 대한 납치 음모는 성사되지 못했고 풀이 죽어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 후 여러 차례 저에 대해 교란을 시도했다가 모두 우리 직장 책임자에 의해 가로막혀 돌아갔습니다. 이 일을 통해 직장 전 직원이 중공의 사악함을 더욱 똑똑히 간파하게 되었고 동료들은 한층 더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행한 것은 사존의 요구와 아직 많은 차이가 납니다. 정법 노정은 이미 끝나가고 있고 저는 수련생 여러분들과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면서 공동으로 정진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우시고 고생스러우신 구도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저의 약간의 미성숙한 수련 체득입니다.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 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실증(證實)’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캐나다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2년 2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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