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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우울증 환자가 다시 살아나다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수련 과정을 써내어 대법을 실증하고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관념에 가로막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수련생의 격려로 오늘 드디어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2005년 정월에 법을 얻었고 그해 저는 마흔 살이었습니다. 그날 아래층에 사는 이웃집 언니가 일이 있어서 우리 집에 왔습니다. 언니는 매일 출근하느라 바빴고 우리는 평소에 거의 왕래하지 않다가 가끔 마주치면 인사만 나누는 사이입니다. 그날 언니는 우리 집에 와서 제게 파룬궁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하게 제게 몇 마디만 하고 TV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유언비어를 만들어 파룬궁을 먹칠하는 것이니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TV에서 말한 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TV에서 전국적으로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보도했는데 만약 나쁘다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수련하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TV에서 말한 것을 듣지 않았다면 ‘파룬궁’이라는 세 글자도 몰랐을 겁니다. 어떤 때는 거리를 걷다가 저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하늘에 ‘누가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모르니 언젠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파룬궁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봐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파룬궁 진상 자료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수련의 기연이 왔는지 사부님께서는 아래층에 사는 언니가 제게 파룬궁이 어찌 된 일인지 알려주도록 보내주셨습니다. 언니는 “우리 집에 파룬궁 책이 있는데 보고 싶어요?”라고 물어보자 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언니는 제게 책을 보내줬습니다.

그때 저는 출근하느라 매우 바빴고 시간이 있으면 좀 보았습니다. 한두 번 읽어보고 무슨 뜻인지 알게 됐습니다. 언니는 더는 저를 찾지 않았고 저도 미안해서 언니를 찾지 못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위아래층에 살고 있지만 낯설어서 줄곧 서로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함부로 언니를 찾아가지 못했는데 언니는 함부로 방해받아도 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석 달 남짓 지났을 때 남편이 제게 자신의 직장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다며 인품이 매우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뻐하며 “당신은 그에게 시간이 있으면 우리 집에 와서 내게 파룬궁 일을 이야기하게 해줘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가 출근하느라 매우 바빠서 올 시간이 없고 또 우리 집과 그의 집은 매우 멀어서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그 동료가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자세히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선을 향하고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 가르치는 불가(佛家)의 수련 공법입니다.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거짓입니다.” 또 매우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에게서 저는 대법과 대법 사부님은 결백하시며 사악한 공산당이 파룬궁을 먹칠하며 대법제자를 박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저는 매우 놀라웠습니다! 한 집권당이 어떻게 이렇게 비천하고 후안무치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도덕이 고상한 선량한 국민을 비열하게 대할 수 있을까?

이런 유언비어는 제가 대법을 수련하겠다는 결심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그 동료는 아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자주 와서 제게 연공을 가르쳤고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틀어서 우리에게 보여줬습니다. 모두 밤에 시간을 내어 왔고 매우 늦게서야 돌아갔습니다.

저는 소파에 앉아서 사부님의 설법을 제2강까지 들을 무렵부터 온몸에 오한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옷을 적게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부터 열이 났습니다. 그날 그 동료가 와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매일 한 강의씩 보고 가장 좋게는 연속해서 다 보고 지체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동료에게 어젯밤에 제2강을 듣고 온몸이 오한이 났고 오늘 또 열이 나서 해열제 두 알을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것이니 약을 먹으면 병을 다시 눌러 들어가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 신체의 나쁜 것을 청리해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단번에 깨닫고 더는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또 설사도 하고 구토했는데 물을 마셔도 다 토했습니다. 신체가 허약해져 거의 출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제게 그것을 병으로 여기지 말라며 반드시 매일 출근해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만약 집에 누워 있으면 그것을 병으로 여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변함없이 출근했고 직장에 도착해서도 끊임없이 화장실을 오갔습니다. 보름 후 저는 귀에 연공 음악이 들렸습니다. 집에서든 출근해서든 모두 들을 수 있게 됐는데 처음에는 환각인 줄 알았습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매일 매우 즐거웠고 수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이번 생에 이렇게 좋은 대법을 얻은 것은 얼마나 행복인가요! 법을 얻은 지 오래지 않아 저도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면서 중생을 구했습니다. 퇴근을 얼마나 늦게 하던지 저는 모두 가서 했습니다. 많을 때 남편은 저와 함께 나가서 배포했습니다. 아래층 언니는 제게 자료를 보내줬지만, 시간이 없어서 저와 함께 법공부를 하고 교류하지 못했습니다. 가끔 제가 퇴근하지 못했지만, 아래층 언니는 우리 집에 자료 또는 ‘밍후이 주간’을 놓고 갔으며 우리는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비록 법을 얻었지만,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하지 않았고 연공을 하지 못했으며 소중함도 몰랐습니다. 계속 혼자 수련하는 상태에 있던 저는 거의 속인과 혼동하다시피 했습니다.

2011년 제 몸에 병업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갈수록 더 심각해졌습니다. 온몸의 관절이 다 아팠고 전신은 마치 침에 찔린 듯 괴로웠습니다. 심한 불면증이 동반했고 아랫배 왼쪽에 딱딱한 것이 있었는데 아파서 참기 힘들었습니다. 또 ‘쿵! 쿵!’ 하는 소리가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했고 누울 수 없고 앉을 수 없었습니다. 위장도 매우 괴로워 밥을 잘 먹지 못했으며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몸은 추웠다 더웠다 했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 병원 가서 검사받아 보았지만 아무 병도 검사해내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그저 갱년기 우울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제 상황은 중증 우울증에 속했고 어머니가 그런 병력이 있었던 것도 제 나이 때였습니다. 고통에 시달리던 저는 더는 출근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 화목하던 가정에도 갈등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심성도 지키지 못해서 남편은 자주 절 때리고 욕했으며 부부 관계도 갈수록 긴장되었습니다. 남편은 매일 저 때문에 화가 나서 야단이었고 저와 말하지 않으면 온종일 저를 피했습니다. 가끔은 집에 오지 않고 시댁에 갔습니다. 시댁 식구들도 제게 좋은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신체적인 아픔과 정신적인 고통으로 저는 안색이 시커멓고 말랐으며 다크서클로 무서워 보였습니다. 동료들도 바뀐 제 모습을 보고 거의 모두 다 피했습니다. 저는 매일 고독과 공포에 둘러싸여 정말 하루가 1년 같이 느껴졌습니다. 제 병은 부모님에게도 극심한 고통을 가져다주어 어머니는 매일 ‘이 딸을 구할 수 없을까?’라며 몰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도 자주 살고 싶지 않다는 염두가 올라왔고 심지어 귓가에서 ‘당신은 건물에서 뛰어내려라, 뛰어내리면 해탈할 수 있고 이렇게 고통스러울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은 다른 공간의 구세력의 박해라는 것을 알았기에 스스로 발코니까지 걸어갔을 때 곧 거실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의 주이스(主意識)는 자신에게 ‘절대 이렇게 인간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된다. 나는 아직 대법을 잘 수련해야 한다.’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때는 저를 위로해줄 사람이 절실했습니다! 그 동료와 아내는 제게 연공을 가르쳐준 후 특별한 이유로 더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고 우리도 그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자신이 안정된 마음으로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도록 했습니다. 자주 사부님 법상에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법공부 팀을 찾게 해달라고 청을 드렸습니다. 법공부 팀이 있기를 바랐던 것은 제 소원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발코니에 옷을 걸다가 옷이 아래층 언니네 집 발코니 외벽 옷걸이에 떨어져 걸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내려가서 노크했습니다. 뜻밖에도 언니네 집에 온 다른 한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언니네 집에서 이 수련생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수련생과 제 몸에 나타난 병업상태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수련생은 곧 저를 데리고 다른 수련생 집으로 가서 법공부팀을 찾았습니다. 뜻밖에도 이 법공부 팀은 바로 우리 집 앞 건물에 있었습니다.

제게 소원이 있어 사부님께서는 제가 법공부 팀을 찾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얼마나 기뻤는지 사부님 법상에 절을 올려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자주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를 했고 심성제고도 매우 빨랐습니다. 수련생은 제게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많이 하며 수련을 느슨히 하지 말라고 일깨워줬습니다. 이렇게 저는 법공부 팀에서 법공부를 하는 것 외에도 집으로 돌아와 다그쳐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며 발정념을 하면서 매일 법에 녹아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저는 꿈에 악어 한 마리와 작은 물고기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작은 물고기들을 건져 올렸고 그 악어는 저에 의해 한 상자 속에 담겼습니다. 제가 작은 막대기를 가지고 상자를 한 번 두드리자 악어는 움직였고 두드리지 않으면 악어는 죽은 체했습니다. 수련생은 제게 사부님께서 발정념을 많이 하라고 점화해주시는 것으로 발정념을 하면 악어는 죽고 발정념을 하지 않으면 악어가 살아나며, 제가 아직 악어를 깨끗이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법공부 외에는 발정념을 했습니다. 저는 약도 끊었습니다. 저는 자신은 이미 대법제자라고 생각했고 자신 신체의 병을 병으로 여길 수 없으며 이 고비를 정념으로 돌파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약을 끊은 후 병업가상은 겉으로 보기에 더 심해져 두 눈은 움푹 깊이 패었고 며칠 만에 몸이 많이 야위었습니다. 수련생 언니는 제 이런 모습을 보고 좀 걱정했습니다. 언니는 제게 그래도 약을 먹고 천천히 끊어도 괜찮으니 몸이 감당하지 못하도록 단번에 끊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언니에게 확고하게 “언니, 저는 약을 안 먹어요. 죽어도 안 먹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기뻐하며 “결심이 이렇게 크고 정념이 이처럼 족하니 반드시 문제없을 거야, 죽지도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제 신체가 얼마나 괴롭고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막론하고 모두 사부님을 확고히 믿고 대법을 확고히 믿었습니다. 이렇게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로 서서히 저는 걸어 지나왔습니다. 제 신체에는 매우 큰 변화가 나타났고 어둡던 얼굴에 홍조와 윤기가 돌았으며 신체도 서서히 살이 올랐습니다. 잠도 잘 잤고 오래지 않아 신체는 완전히 정상을 회복했습니다.

어머니는 경건한 기독교 신도입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하고 약을 먹지 않고 신체가 치유된 신비로운 변화와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한 모습을 보시고 대법을 반대하던 것에서 제 대법 수련을 지지하게 됐습니다. 남편과 아이도 이 때문에 대법을 매우 존경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도 웃음꽃이 피었고 부부의 정도 더 화목해졌습니다.

오늘 비할 바 없는 감격한 마음으로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가 없으셨다면 오늘의 건강하고 행복한 저는 없었으며 저에게 오늘날 아름답고 원만한 행복한 가정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집에 법공부 팀이 설립됐습니다. 저와 수련생들은 함께 정진해 세 가지 일을 하면서 회귀(回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2년 2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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