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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의 뿌리를 찾다

글/ 프랑스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6년에 파룬따파를 접하자 나는 바로 내가 찾던 것임을 깨닫고 즉시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결혼했고 2020년 9월에 첫 아이를 갖게 됐다.

우리는 대도시의 교외에서 사는데 이곳은 집이 비싸고 길이 막힌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발정념하고 연공하지만 바쁜 일과를 마친 후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려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여하거나 법공부를 하는 시간이 적었다.

아들이 태어난 후로는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적어졌다. 나는 가족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더 큰 집과 좋은 직장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나는 채용 정보와 주택 분양 광고를 항상 지켜봤다. 그동안 몇 번의 면접에서 내 조건과 능력이 고용주의 요구에 맞았고 면접도 잘 봤지만, 합격하지 못해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했다.

아들의 출생으로 좋은 집을 사려던 내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집 마련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초조감이 들었다. 생활고는 내 인내심을 수련하는 방식일 뿐이고 사부님의 배려로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나는 맡은 일에 비해 급여가 낮은 편이지만 관리하는 매장 실적에 따라 보너스를 더 받을 수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나는 열심히 일했고 실적도 매우 좋아 월급의 절반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는데, 사장은 전염병의 영향으로 회사 매출이 떨어져 보너스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장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제시하지 않고 나중에 다시 말하자고 했다.

상처받은 느낌에 나는 화가 났고 사장이 원망스러웠다. 세상에 우연한 일이 없다고 하는데 이익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것임을 알았지만, 생각만 하면 ‘나는 그와 어떻게 한바탕 해볼까.’[1], ‘내가 손해 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공평함을 추구하려는 강렬한 마음에 끌려 나는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장과 어떻게 이야기할지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수련자이기에 이번 일은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지 않는가!’[1] 그 몇 주간 나는 이 문제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이 시련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림 한 폭이 나에게 안으로 찾게 했다

이 기간에 나는 영문 따지웬에 발표된 미국 화가 토머스 콜(Thomas Cole)의 ‘생명의 여정’(The Voyage of Life)이라는 글을 봤다. 어린 시절, 청년, 성년, 노년을 묘사한 그림 네 점도 포함돼 있었다. 나는 이 작품들 배후의 깊은 내포에 감명을 받았고 그중 두 폭의 그림에서 현재 자신의 상태를 보게 됐다.

‘청년’이라는 그림 속에서 한 청년이 작은 배를 힘차게 몰고 있는데, 그곳 하늘에는 거대한 궁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등 뒤 강기슭 위에 있는 신을 등지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그 궁전이 매우 덧없고 허망한 모습으로 보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난 이 청년처럼 아직도 이 허망한 세상에 속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말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1]

그 보너스는 내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니 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사장의 말이 맞다. 전염병으로 인해 일 년 내내 도시를 봉쇄했다가 얼마 전 정상을 회복했으니 회사 사정이 어려운 것은 뻔하다. 나는 일자리가 있는 것만으로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욕심을 부릴 수 있는가? 또한 나는 세상의 작은 이익 때문에 다투면서 나를 향상시킬 기회를 놓치고 있으니 이건 정말 가소로운 일이다. 그림 속 젊은이처럼 나는 법을 어길 수 없다. 나중에 끝없이 뉘우치고 한탄할 것이다.

다시 사장과 만나 나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 “사장님의 결정에 대해 이해합니다. 확실히 회사가 지금 보너스를 줄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의외의 상황에 사장은 놀랐다. 결국 사장은 내 표현에 만족한다면서 월급을 15% 올려주기로 했다.

집착의 뿌리를 캐다

당시 나는 자신이 이번 고비를 잘 넘겼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내가 깨달아야 할 것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문해봤다. 나는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속인 중에서 개인 이익을 많이 얻을수록, 잘살수록 좋다고 여기는데, 대각자들이 볼 때 이 사람은 더욱 좋지 않다.”[1]

내 집착은 아직 거기에 있었다. 탐욕을 버리고 명리(名·利)에 대한 집착을 덜었는지 모르지만 뿌리는 제거하지 못했다.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그 생각의 근원을 자세히 살펴보고 더 깊이 안으로 찾아야 했다.

나를 깨우쳐줬던 그 작품을 다시 보고 싶었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시 그 글을 보러 갔을 때 회원들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회원이 아니다. ‘성년’ 그림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나는 이전에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세부적인 것들을 보았다.

그림 속에서 이미 성년이 된 그 사람은 작은 배를 타고 위험한 파도 속을 향해 가고 있다. 그는 눈앞 하늘에 있는 암흑의 생명에게 빌면서 여전히 밝은 신을 등지고 있었다. 결국, 이 사람은 과거에 범한 잘못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고 엄청난 고난이 닥쳤다.

나는 이전에 그가 빌고 있는 암흑의 생명을 보지 못했다. 다시 이 그림을 보고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법을 다시 읽었다. “나는 그와 어떻게 한바탕해볼까.”[1] 그제야 나는 이것은 ‘사법(邪法)을 연마하다’라는 대목에서 사부님께서 드신 한 가지 사례인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갑자기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했다. 나는 편안함을 바라며 잘살아 보려는 강렬한 집착이 있었을 뿐 아니라 사부님께 불경스러운 길을 가고 있었다. 내 사고방식이 틀린 것이다.

사람의 마음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무릇 속인사회 중에서 당신에게 좋은 점을 얻게 하는 것은 모두 마(魔)이다.”[1]

나는 일찍이 사부님의 안배로 내가 인간 세상에서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매번 채용 면접을 앞두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거나 ‘사부님께서 안배하시니 성공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집을 구하는 데도 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사부님께서 좋은 집을 만나게 해주실 것으로 믿었다. 다른 상황에서도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속인사회의 이점을 가져다주시기를 바랐다. 내가 사부님께 이런 것을 부탁할 때 ‘생명의 여정’ 그림 속에서 어두운 생명에 도움을 청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이것은 사부님에 대한 불경이 아닌가?

자신의 이런 부족한 점을 발견했을 때 나는 매우 부끄러웠다. 내 마음속에 이런 관념이 깊이 박혀 있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표면상에서 일부 것들을 버렸지만, 내심에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속인 것이다. 사부님을 기쁘게 해 드려 좋은 보답을 받을 수 있길 바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원만할 수 있는 수련의 길을 안배하셨다.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고봉에 닿을 수 있는 등산로와 같다. 이 길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실행 가능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

사부님께서 내가 종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 길을 안배하셨다. 가는 도중에 사람의 모든 집착을 버리고 내 업력을 없애야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사부님의 안배이기에 극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구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1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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