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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5년 11월, 파룬궁 수련생인 제 아내가 장쩌민을 고소한 이유로 직장에서 시 국가안전부 경찰에 강제로 납치됐습니다.

그들은 또 특수경찰 장갑차 두 대에 기관총을 든 특수경찰을 출동시켜 저와 열 살인 제 아들을 포위했습니다. 아이는 겁에 질려 저를 붙잡고 바들바들 떨었습니다. 우리는 특수경찰과 2시간 넘게 대치했습니다. 경찰은 강제로 우리 집에 침입하려고 저에게 위층에 올라가 문을 열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저항하며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제가 장쩌민을 고소했습니다. 아내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때 저는 아래층에 있었는데 주변 주민들이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장쩌민이 우리를 어떻게 잔혹하게 박해했는지에 대해 큰 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강제로 제 몸에서 열쇠를 찾아내 불법적으로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들은 사부님의 법상, 컴퓨터, 프린터, USB 등 많은 개인 소지품을 압수했습니다. 아내는 구치소에 수감 됐습니다.

저는 아내의 결백을 변호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려 했으나 의로운 변호사가 없을까 걱정하던 중 수련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련생은 당시 대법제자를 변호해준 아주 유명한 변호사가 있는데 인터넷에서 찾아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아주 순조롭게 그 변호사와 연락이 됐으나 아쉽게도 그 변호사는 처리해야 할 안건이 있어서 다른 변호사를 추천해줬습니다. 이 변호사도 당시 중국에서 유명했고 우리와 같은 사건을 자주 맡았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변호사가 대법제자들을 변호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악인들은 제가 이렇게 빨리 변호사를 선임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 제 아내를 신속히 기소하려 했습니다. 제가 선임한 변호사가 현지에 도착해 안건 서류를 열람하려 하자 판사도 놀라면서 여러 구실을 대면서 서류를 열람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변호사가 서류를 열람하지 못하게 하면 고소하겠다고 해서 결국 서류를 성공적으로 열람했습니다.

재판이 열리는 날, 악인들은 마치 큰 적을 앞에 둔 것 같았습니다. 법원 주변에는 여러 대의 경찰차가 불빛을 번쩍이며 순찰했습니다. 법정에는 장인(수련생)과 저만 들어갈 수 있었고 모두 ‘610’ 인원과 지역사회 인원, 국가보안경찰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선량한 경찰이 변호사의 변호를 듣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경찰이 많이 올수록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정에서 변호사의 근거 있고 이치 있는 변론에 검사는 놀라서 두 손을 떨었고 사람들은 쥐 죽은 듯 조용히 변호사의 변호를 듣고 있었습니다.

장인은 변호사의 힘 있는 변호에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셨습니다. 조용한 법정에서 박수 소리는 유난히 컸습니다. ‘610’ 두목이 황급히 “그를 쫓아내”라고 명령했습니다. 3~4초 후에야 사복 경찰이 반응하고 일어나 예닐곱 명의 사복 경찰이 장인에게 달려들어 80세에 가까운 장인을 끌고 나갔습니다. 악인들은 한 번의 박수 소리에도 이렇게 공포에 떨었습니다.

제 아내도 판사와 검사에게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지금은 판사와 검사의 안건 처리에 대해 종신 책임을 요구합니다. 공정하게 판결하기를 바랍니다. 또 검사에게 묻겠습니다. 검사는 저를 죽어도 감옥에서 못 나오게 하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멸시와 따돌림을 당하게 하겠다고 말했는데 검사로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검사는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갑자기 목소리가 죽어갔습니다. 법정경찰이 화가 나서 달려들어 제 아내가 들고 있는 변호 서류를 빼앗아 바닥에 종이가 흩어졌습니다. 재판은 황급히 끝났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경찰들은 법원을 나서면서 변호사가 변호를 잘해 견식을 넓혔다고 했고, 검사가 겁에 질려 손까지 떨더라고 비웃었으며 장쩌민까지 놀렸습니다. ‘610’의 위압에 겁먹은 판사는 여전히 법을 어기고 제 아내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감옥에 수감 된 3년 반 동안 감옥 주재 검사장, 감옥 관리국, 성 공안청 등 부서에 감옥 악인들이 어떻게 제 아내를 박해하며, 제가 아내에게 보낸 제 편지를 압류하고, 아내와 면회를 못 하게 하는 것 등에 대해 편지를 써서 등기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우리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의해 이 편지들은 결국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아내가 투옥된 3년 반 동안 저와 딸은 두 번밖에 면회를 못 했습니다. 3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드디어 흘러갔습니다. 아내가 출소하던 날, 저는 딸과 함께 아내를 맞으러 일찍 감옥 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호적이 있는 현지의 ‘법제 사무실’ 경찰들이 사법국 인원 두 명과 함께 직접 경찰차를 몰고 와 아내를 그곳 세뇌반으로 납치해 계속 박해하려 했습니다.

당시는 바로 사당(邪黨)이 전국적으로 이른바 ‘범죄와 폭력 척결’ 바람을 일으킬 때였습니다. 그들이 아내를 납치한 그 날, 저는 ‘중앙범죄폭력척결 사무실’에 납치 및 불법 구금 등의 죄명으로 제 아내를 납치한 현지 ‘법제 사무실’을 고발했습니다. 제 고발이 정당하고 이유가 있어 당시 ‘중앙범죄폭력척결 사무실’은 사건을 입건했습니다. 한 달 후 안건은 현지 ‘범죄폭력척결 사무실’로 전달됐고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현지 ‘범죄폭력척결 사무실’은 녹음 전화로 이번 사건을 끝내려 한다고 저에게 전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내가 출소한 그 시각부터 정상적인 일반인인데 무슨 이유로 불법적으로 감금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제가 “제 아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상응한 법률 조항을 제출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알 수 없는 이유로 끌려가 구속됐는데 당신들은 반드시 우리 가족에게 분명히 해명해야 합니다!”라고 하자 이치에서 진 그 경찰은 급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 동안 저는 12389 신고플랫폼에 악인의 불법행위를 고발하고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신고플랫폼과 성 공안청 청장 우편함에 고발 서신을 보냈습니다. 제 아내를 납치한 그 ‘범죄폭력척결 사무실’ 주임은 제가 고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기퇴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한때 제 아내가 전향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세뇌반에 가두겠다”라고 부르짖던 이 주임은 제 아내를 반년 넘게 감금하고 갖은 잔혹한 수단을 다 써서 제 아내를 전향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제 아내는 사부님의 보호 아래 마침내 ‘세뇌반’을 탈출해 호적이 있는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제 아내는 친정에 있으면서도 현지 주민위원회와 파출소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하루에 두 번씩 주민위원회와 파출소에 신고하라고 핍박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우리 지역 파출소에 제 아내의 호적을 저의 지역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는데 여러 구실로 회피했습니다. 저는 이 파출소 소장에게 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한 통 썼습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이 편지를 쓰게 된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 계속 질문했습니다. ‘아내가 빨리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가? 이 기회를 통해 파출소 소장을 구하려 하는가?’ 저는 사흘 동안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서 복수하려거나 증오하는 마음이 담기지 않았는지 반복해서 편지를 수정했습니다. 저는 편지에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몸과 마음에서 나타난 엄청난 변화에 대해 자세히 썼습니다. ‘공장에서 간부 자리를 놓고 경쟁하면서 파룬궁 수련과 간부 자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저는 당서기에게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므로 거짓말할 수 없습니다. 파룬궁은 정말 좋습니다. 저는 눈을 뜨고 헛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또 파룬궁 수련 후 제 몸에 일어난 기적적인 이야기를 썼습니다. ‘저는 위장장애가 심해서 10대 때부터 찬 음식이나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고 체중이 50kg도 안 됐으며 가죽 혁대를 두 번 둘러맬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찬 고구마를 먹고 심한 복통과 혈변을 보았고 기절해 쓰러져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진찰 결과 혈색소가 4g/dl여서 즉시 수혈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위장벽 큰 면적에 궤양이 있고 피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의사는 위 대부분을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당시 제 몸이 너무 허약해 수술할 수 없으니 먼저 요양하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저는 파룬궁을 수련했습니다. 단 한 달간의 연공 끝에 사부님께서는 제게 완벽한 건강한 몸을 주셨습니다. 이후 찬 것, 매운 것, 고구마도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감히 먹어보지 못한 아이스크림과 아이스바도 먹게 됐으며 안색이 붉어지고 몸무게가 70kg까지 늘었습니다. 지난 20년간 저는 약이나 주사를 맞은 적이 없습니다. 질병이 없고 몸이 가볍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장님께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앞에 깊은 구덩이가 있어 아주 위험한데 당신이 모르고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제가 앞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당신에게 알려주면 저는 박해받고, 그렇다고 제가 당신에게 알리지 않으면 당신은 목숨을 잃게 됩니다! 제가 알려야 합니까, 알리지 말아야 합니까? 저는 당신에게 진상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양심이 있고 선량한 사람이라면 당신도 그렇게 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이 위험과 재난에서 멀리할 것을 희망합니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체포돼 형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진상을 알리는 이유를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있다고 하면 바로 당신들의 평안을 바랍니다!’

이 편지에 감동한 소장은 모든 일을 미루고 제 아내의 호적을 처리하기 위해 온 오후를 보냈습니다. 아내와 거의 4년의 별거 끝에 마침내 우리 세 식구는 다시 모이게 됐습니다.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이 과정에 사심 없는 도움을 주신 수련생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허스.

 

원문발표: 2021년 11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1/20/4336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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