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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정정당당하게 법을 실증하다

글/ 광둥(廣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지 22년이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지옥에서 건져내 깨끗이 씻어 파룬따파를 전수해 주시고 저의 오래된 기억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또한, 저를 지켜보시며 가지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새로운 생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주신 무한한 자비는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저 이 한 생명으로는 영원히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제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오직 사부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뿐입니다!

10여 년간 꾸준히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제가 대법 수련에 들어간 지 1년도 안 돼 장쩌민(江澤民)은 수중의 권력과 사당(邪黨)을 이용해 파룬따파와 대법제자에 대한 전례 없는 가혹한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중국의 수천수만의 대법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실증하는 수련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몇 년간 저는 주로 전단을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고, 진상 소책자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진상을 알렸고, 나중에는 방화벽을 넘는 소프트웨어, 진상 CD,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 등 진상 자료도 추가되었습니다.

호신부와 진상 현수막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는 모두 제가 저녁에 집에서 잘 만들어 놓고, 다음 날 점심때 직장 근처에서 배포하거나, 저녁 퇴근길에 차를 타지 않고 길을 따라가거나 모퉁이를 돌면서 배포가 안 된 곳에 배포했습니다. 주말에는 버스를 타고 먼 곳에 가서 배포했습니다. 그때 저는 파룬궁(法輪功)의 진상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 사당의 선전에 속지 않게 더 많이 배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 남편은 대법을 수련하지 않지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기에, 저를 차에 태우고 더 먼 곳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일상을 반복하며 우리가 사는 도시 모든 곳에 거의 다 배포했습니다. 그 후 주말이면 그는 차를 몰고 저를 더 먼 시골 마을, 소도시로 데려가 배포하게 했습니다. 때로는 좀 더 먼 도시로 가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데, 당일에 돌아오지 못하면 현지에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호흡이 아주 잘 맞았는데 이렇게 벌써 10여 년을 했습니다. 주말의 대부분을 이렇게 보냈습니다.

그때 그 사악한 환경 속에서 긴장하고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힘들고 고단함보다는 따뜻하고 행복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만큼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번 나가면, 차가 아무리 막히던 곳도 우리 차가 도착하면 매우 원활해져 남편은 심지어 라디오 방송국에서 교통 상황을 잘못 알린 것이 아닌가 하며 의심했습니다. 저는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마련해 주시고, 보호해 주셔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이 많아지자 그도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나갈 때마다 우리는 오솔길로 갔는데, 길을 물어볼 때 도와준 사람들에게 진상 CD를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시골 마을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한 집 앞에서 어떤 여자가 제게 인사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방금 보내준 CD가 너무 재미있어서 지금 보고 있어요!” 그제야 마을 어귀에서 길을 물었을 때 그녀에게 선물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벌써 보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우리가 진상 자료를 다 배포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오솔길에서 나오면 바로 큰길과 연결되어 있었고 큰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속도로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마을에서 일찍 나오면 넓은 벌판에서 해가 서서히 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일몰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때 저는 특별히 사부님의 가지와 격려에 감사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은 항상 가장 좋은 것이었습니다!

일하는 가운데 법을 실증하다

박해가 처음 시작됐을 때는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당시 출간된 모든 대법 서적을 한 번 읽고 사부님과 대법의 위대함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법을 끝까지 수련할 것이며, 내심으로부터 외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정당당하게 행해야 비로소 이 위대한 법에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저에게 커다란 에너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강한 정념이 생겼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나는 당당하게 대법을 실증하겠다.’ 저는 대법 제자로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대법의 위대함과 대법이 바르다는 것을 실증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럼 제 신변에서부터, 저 자신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때 사악한 압력이 너무 커 작업 환경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그 이상한 눈빛과 무심코 한 말에 상처를 받고,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한번은 회사의 다급한 사무로 인해 주말에 직원 모두가 외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저만 부르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야근을 안 하면 진상을 알릴 시간이 더 많아져 매우 기뻐했습니다(회사에서 초과 근무를 하면 임금의 두 배를 지불한다). 하지만 저는 그때 전에 없던 심한 따돌림을 느꼈습니다.

​월요일에 출근하자 다들 엘리베이터 안에서 저를 의식하지 않고 외근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밀려나는 게 아니라 저의 의지를 꺾으려는 듯한 그런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동료는 내심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법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데다, 박해가 막 시작되자 너무 힘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 싫어 도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당시 사부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비록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최대한 끌려가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끔 출근 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심성 제고”에 관한 법을 읽으며 정념을 가지하기도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당당함도 확실히 내면에 있는 비겁함을 좀 없앨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겠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안으로 찾으면서, 불편한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제거했습니다. 마음 하나하나를 찾아 하나하나씩 제거했습니다. 저는 맡은 바 업무를 착실히 완수했습니다. 바쁘지 않을 때는 이어폰을 끼고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버림에 따라 자신도 즐거움을 찾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법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아졌습니다. 저는 부닥친 모든 것이 정말 수련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언제부턴가 제가 일하는 환경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저는 회사 지도자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이듬해 설을 쇨 때 회사에서는 저의 급여를 두 배로 올리고, 프로젝트 팀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사실 저는 줄곧 ‘지도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지만, 거절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라는 말씀을 실증한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동료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진상을 다 알렸을 때 동료는 저를 보면서 “만약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파룬궁이 좋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정말 감격했는데, 한 줄기 거대한 에너지가 저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격려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또 한 명의 동료가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TV에서 말하는 거와는 달라요.” 저는 그녀에게 “TV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고 비방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지금 대법제자는 대법의 형상을 대표하고 있으므로, 우리 그 자체가 법을 실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똑바로 행한다면 그 자체가 텔레비전에서 대법을 모독하는 거짓말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 주변의 사람을 구하는 것에 관계되므로 저는 심성을 향상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며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습니다.

제 몸으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체험하고, 반드시 더 바른 믿음으로 행하며 정정당당하게 대법을 실증하려고 했습니다.

가정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박해가 처음 시작됐을 때 남편은 제 수련에 반대한 적이 없었지만, 중공의 온천지를 뒤덮는 먹칠 선전에 그 역시 독해당했습니다. 저는 먼저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우리 가족에게도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지 못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파룬따파가 좋으니 믿으라고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의 경지에서 말하다 보니 처음엔 남편과 항상 논쟁 속에서 끝났습니다. 제가 다시 약간의 법리를 알게 되면 또 그에게 말했는데 또 한바탕 논쟁했습니다. 이런 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저도 끊임없이 안을 향해 찾고 바로잡으면서, 자신의 마음과 방법, 태도 등을 최대한 조절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투는 과정에서 그가 비록 저와 쟁론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이미 듣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제가 향상된 후에 그에게 이야기해 준 것을 그가 또 이해할 수 없으면 우리는 또 논쟁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저의 수련에 따라 달라지고, 또한 계속 부동한 층차의 진상을 들었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의 가정 수련 환경은 박해 전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남편은 또 남들에게 TV에서 말한 그런 것들을 저에게서 본 적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의 선량한 모습과 진상을 더욱 똑똑히 알리는 위력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수련의 길에서 가지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남편은 승용차로 저를 태우고 나가 진상 자료를 배포할 뿐만 아니라, 대법을 실증하는 다른 항목에서 그의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경찰이 우리 집에 전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며칠, 기분이 좋지 않은 저를 본 남편은 항상 저에게 “겁먹을 것 없어. 내가 있잖아”라고 말했는데 정말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경찰이 전화한 후, 파출소 인원이 호적 조사를 구실로 삼거나 주택 관리자로 가장하고 저의 개인 정보를 등록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주민위원회나 지역사회에서 누가 호구 조사나 등기 따위를 하면 보통 남편이 나섰습니다.

한 번은 지역사회 인원이 신분증 등록을 확인하자 남편은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그들이 다시 찾아와 사진도 찍어야 한다고 하자 남편이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당신이 협조하지 않으면 파출소 경찰을 보내겠다”라며 위협했습니다. 남편은 매섭게 화를 내며 “당신들 누가 오든 상관없고,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당신들에게 협조할 의무도 없어!”라고 말하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저도 그들에게 이끌리지 않고 사부님의 말씀대로 무조건 안으로 향해 찾으며 두려움을 떨쳐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바르지 않는 점을 바로잡았습니다. 그 이후로 그들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마음속에는 늘 이런 일념이 떠오릅니다. ‘너희들은 나를 상관할 수 없어!’

저와 남편은 상의하지 않았어도 묵묵히 호흡을 맞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대법의 요구대로 행하면 신기하고 아름답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시시각각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더 확고히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언젠가 저와 한 수련생이 대법을 비방하는 현수막을 제거하러 가려고 남편에게 운전을 부탁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경비원에게 발각돼 경찰에 신고당했습니다. 그때 남편이 사람들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저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보았는데, 저는 그의 지지에서 온 그런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파출소로 끌려간 후, 사부님께서 제게 덮개를 씌워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저의 사람 마음과 잡념이 모두 억제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여기는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다. 사부님께서 이번의 박해를 승인하지 않음으로 나도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에 제 마음에는 정념뿐이었습니다.

저는 묵묵히 사부님께 ‘사부님, 제자가 잘하지 못했기에 사부님께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상을 알렸던 가족, 친구, 동료들은 모두 대법의 아름다움을 믿었기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박해받음으로써 그들을 망쳐서는 안 됩니다. 제가 닦지 못한 곳은 법에서 바로잡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의 박해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자를 관할할 수 없습니다. 제자는 여기에 있을 수 없으며, 있어야 할 곳도 아닙니다. 사부님, 제자를 내보내 주십시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일념에 의지해, 한 시간 동안 정사(正邪) 대전을 치른 뒤 정정당당하게 파출소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나왔을 때 한눈에 남편을 보았는데, 그는 경찰차를 따라와 우리를 구하려고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본 그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나왔어?”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구해 주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감수였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남편은 저를 나무라거나 원망하거나 앞으로 어떻게 주의하라고 말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그는 저에게 어떠한 압박도 주지 않았습니다. 반면 그는 제가 앞으로 두려움을 느낄까 봐 걱정하며 줄곧 “괜찮아, 그 일은 끝났다고 장담할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남편의 입을 빌려 저를 점화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는 남편의 바른 일면, 남편으로서의 책임감, 진상을 분명히 안 한 생명이 대법과 대법 제자에 대해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휴대전화로 진상을 알리다

저는 2013년부터 휴대전화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에게 직접 삼퇴를 권유하는 항목에 참여했습니다. 그때 저는 교차적으로 하는 동시에 다른 일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삼퇴를 직접 권유할 수 있는 이 좋은 항목의 역할을 잘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5년 휴대전화로 진상을 알리는 것이 사람을 구하는 저의 주요 항목이 되었습니다. 제가 정념을 굳히자 사부님께서 제게 능력을 주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매달 20여 명을 권유해 탈퇴시키기 시작해, 전화카드를 쉽게 살 수 있을 때는 120명에서 200명 정도까지 권유해 탈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2017년에 카드를 봉하는 일이 생겼지만, 저는 그 표면 현상에 이끌린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마주치는 것, 보는 것, 듣는 모든 것에 제가 닦아야 할 것이 있기에 안으로 향해 찾으며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2015년, 2016년은 전화카드가 너무 싸서 많은 수련생이 참여했습니다. 전화카드를 사준 수련생이 충전하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알려주어 당시 다 쓴 카드는 버렸습니다. 2016년 말에 갑자기 카드를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안을 향해 찾아보니,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제가 자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 카드를 사준 수련생에게 엄청난 압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2017년 초, 수련생이 저에게 네 장의 전화카드를 사주어 저는 이 카드를 가지고 매일 7~10시간씩 2018년 12월 말까지 계속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로 저는 꼬박 24개월간 진상 전화를 걸었습니다. 휴대전화 두 대로 매달 90명에서 150여 명을 권유해 탈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막 열의가 충만했을 때, 제게 남은 네 장의 전화카드도 전화를 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2년 동안 순조롭게 전화를 거는 과정에 안일함, 환희심, 자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에 부딪히면 조급해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지에 있는 언니(수련생)에게 저의 상황을 말하며 전화카드를 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언니는 “여기도 없어. 우선 푹 쉬면서 자신을 잘 조정해 봐”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공부를 대량으로 하며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람을 구한다는 핑계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집착하며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는 이기적인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했든 잘못했든 간에 반드시 모두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저의 사명이기에 반드시 해야 합니다.

며칠 지나서 언니가 전화카드를 샀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언니가 카드 사러 갔더니 카드 파는 사람이 마음대로 고르라고 했습니다. 당시 언니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고 우리가 가서 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사부님께 말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세 가지 일을 잘해야 비로소 제거할 수 있고, 비로소 각종 당문화(黨文化) 속의 사상과 두려운 마음을 포함해 개변할 수 있다.”[2]

중공 바이러스 전염병이 확산된 초기, 공포에 질려 집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얻게 되자 그들 마음에 큰 위안을 받았다는 것을 저는 전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늘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도 사부님께서 주신 능력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매일 법공부, 연공과 발정념을 열심히 하고 난 뒤 나머지 시간에는 모두 사람을 구하는 전화를 걸었습니다. 가장 위급했던 초기에 밤 10시 30분까지 전화를 했는데, 많은 사람이 들었습니다. 2020년 2월부터 8월까지 한 달 평균 150명 정도가 삼퇴를 했고, 삼퇴하지 않은 사람도 진상을 묵묵히 끝까지 다 들었습니다.

2020년 7월쯤 전화카드 한 장이 문제가 생겼을 때 저는 이끌리지 않겠다는 핑계로 안으로 찾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8월 말에 전화카드 두 장이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제야 안으로 찾아보니 아직도 저는 진상 전화가 순조롭게 걸린다며, 힘든 것도 있지만 원활한 생활에 습관 되어 수련 상태가 다시 안일해지고 자만심이 생겨 자아를 자양(滋養)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똑바로 찾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오늘 카드 한 장이 봉쇄되고 며칠 지나 또 카드 하나가 봉쇄되는 상황이 나타나자, 마음이 움직이면서 긴장되고 두렵고 자책하며 소극적인 심태가 나타나는 등 여러 가지 부정확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매일 그 시간대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춰야 했습니다. 이때 저는 이 습관이 이미 집착으로 된 것을 발견했는데, 제가 내려놓으려 할 때 너무 괴로워 내려놓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첫 번째 카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지 않았고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문제가 생기자 또 조급한 마음으로 기어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것은 또 다른 부정확한 상태에 빠져든 것입니다. 사악은 기회를 틈타 나쁜 생각을 강요하며 저를 막다른 골목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며칠간 저는 매우 괴로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사악이 한 일체는 모두 당신들이 아직 내려놓지 못한 집착과 두려워하는 마음에 손을 쓴 것이다. 당신들은 불(佛)·도(道)·신(神)을 향해 걸어가는 미래의 각자(覺者)들로서 세간의 득실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시각 당신들이 만약 원만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악한 것이 더는 최후의 틈을 탈 방법이 없다.”[3]

그때 저는 죽기 살기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신 수련생처럼 새 출발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막다른 골목에서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시 안으로 계속 찾아 들어갔습니다. 속인이 느슨해지는 것을 보았을 때는 자신에게 비추어 보았습니다. ‘나도 느긋한 마음이 있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수련하면서 줄곧 세 가지 일을 평온하게 하는 것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악한 박해가 광기를 부릴 때도, 사악이 어떻게 떠들어대더라도 듣지도 보지도 않았고 이끌리지도 않았다. 수련과 상관없는 것은 보지 않고 사부님의 말씀만 들었었다.’

안으로 향해 찾는 고통을 겪는 가운데, 사부님께서는 고치려 하는 저의 마음을 보시고 제가 포륜(抱輪)을 할 때 점화해 주셨습니다. 저는 떠들썩한 ‘멸공(滅共) 연극’에 이끌려 바깥세상에 정신을 팔며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고는 흥미진진해서 사람의 관념,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면 바로 사람이 아닌가? 그 순간, 저는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궁창에서 배를 뒤집은 저는 일찍이 자만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진작부터 저는 안개가 아무리 짙어도 반드시 안개를 헤치고 사부님을 우러러보고 사부님을 바싹 따라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바깥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저 자신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하시는 그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저는 항상 잘해야 하며 잘해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우지만, 여전히 잘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내심에는 사부님께 대한 죄송스러움이 있고, 사부님의 은혜에 대한 무한한 감사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자신을 잘 수련해 바로잡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으로 삼겠습니다.

저는 계속 안으로 찾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집착을 버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자신을 잘 수련해 마지막 집착을 버리고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될 수 있고 사부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제 생명의 큰 영광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13년 미국 서부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밍후이왕 제1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1년 1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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