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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 경험을 쌓고 나날이 성숙해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지 이미 20여 년이 됐습니다. 1999년 7월 20일에 중공 악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후 국내 상황은 매우 심각했고 중생은 중공 악당의 세뇌에 깊이 중독돼 있었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이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주변에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제가 알리는 진상을 들었습니다.

진상을 전하며 나날이 이성적이고 성숙해지다

저는 당(黨) 문화의 영향으로 쟁투심을 제거하지 않은 데다 진상을 알리는 방식이 직설적이고 이성적이 아니었기에 일부 친척과 친구들은 사당(邪黨)의 비방선전의 영향으로 여전히 파룬따파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에게 제가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파룬궁(法輪功)을 말한다고 너무 ‘빠져’ 있으니 저를 단속하라고 했습니다. 제 가까운 친척이 관리였는데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남편을 부추기며 “형수님께 파룬궁을 말하지 못하게 하세요. 시간이 지나면 친척과 관직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성격이 직설적인 남편은 소문만 듣고 사실로 여겼습니다. 그것 때문에 남편은 저를 많이 때리고 욕했습니다.

삼퇴(중공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의 거센 물결로 정법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진상을 제대로 똑똑히 알릴 수 있느냐는 수련자 자신의 심성 제고와 당(黨) 문화 제거 정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때 이미 많은 수련생이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9평 공산당, 이하 9평)을 읽어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고 심지어 ‘9평’ 중의 단락을 중점적으로 깊이 연구하며 외웠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중생을 구할 수 없게 방해하는 사악한 중공의 껍질을 더 잘 벗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저만의 경험에 따라 행했습니다. 저는 항상 전에도 사람들과 사귈 때 대인 관계를 잘 처리했고 장사에 재물운이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총명한 재주’ 덕분이라고 여겼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일을 처리할 때 상대방이 듣기 좋아하는 ‘키워드’를 말하는데 상대방 비위에 맞춰 목적을 달성하려 했습니다. 이 수법은 과거 제 인생에서 언제나 효과가 있어서 저에게 교활하고 농간을 부리며 고생을 두려워하는 악습과 관념을 키워줬습니다. 그래서 ‘9평’은 녹음만 한 번 듣고 몇 가지 키워드를 기억하고는 또 관례대로 자신만만하게 진상을 알리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일부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었고 고학력자나 사당(邪黨) 체제 내 관리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중공 악당의 역대 운동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어느 왕조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나요?” “당신이 말한 것은 무슨 근거가 있나요?”라며 반문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 ‘9평’에는 아주 상세히 논술했지만 저는 게으름을 피워 대충만 봤습니다. 구체적인 연도, 사건, 중공 악당이 이런 운동을 한 최종 목적마저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물음에 막혔습니다. 상대방은 제가 말문이 막히자 삼퇴는커녕 손사래를 치며 “예전에는 당신들 단체가 박해받는다고 하면 그래도 동정했는데 지금 당신들이 탈당 이런 일을 하면 인정할 수 없어요. 앞으로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라고 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일이 저지당한 후 저도 한동안 괴로웠습니다. 왜냐하면, 장사하면서 사당 체제 내 사람을 많이 알게 됐고 이 부분 사람을 상대로 진상을 알리는 것은 제가 조만간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만담 당(黨) 문화’ 등 진상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제게 했던 질문들은 모두 다른 개념을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회를 봐서 그들에게 ‘9평’이나 진상 특간 간행물을 선물하면서 자신이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 부족했던 이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다른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는 경험을 결합해 자신에게 적합한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다시 이런 고학력자나 사당 관리들과 접촉할 때 마음이 떨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건에서 뛰쳐나와 그들의 심리 활동을 높은 곳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관찰한 결과 지식인과 체제 내 사람들이 진상을 들은 후의 반응은 주로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착실하게 일하는 유형입니다. 이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실력으로 올라갔고 어떤 사람은 능력이 뛰어나 사당에 포섭돼 체제 안으로 들어가 겉치레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 근거를 중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그들은 진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당 편에 서서 진지하게 당신과 변론할 수 있지만 ‘9평’에서 일리와 근거 있는 사실을 접한 후 마음가짐은 곧 바뀌어 진심으로 중공 사당 조직을 탈퇴합니다.

두 번째 부류는 뛰어난 인간관계로 권세에 빌붙어 이익을 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진상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무골호인의 자세로 시종 웃으면서 당신의 관점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에게 삼퇴 여부를 물었을 때 그는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준 느낌은 마치 망치로 고무공을 치듯이 아무리 힘을 써도 부드럽게 튕겨 나갑니다.

세 번째 부류는 일반적으로 사당 체제하의 기득권자들입니다. 그들은 지도자에게 뇌물을 주어 프로젝트를 도급받아 돈을 벌 수 있었고 혹은 체제 내에서 부정한 수입이 있습니다. 사당의 부패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늘 ‘누구의 것을 먹었으면 누구를 지키는’ 심리 상태를 고집하면서 진상을 듣기만 하면 앞날을 깊이 헤아려 당신을 즉시 거부합니다.

제 남편의 한 동창생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의 혼합체입니다. 정법위 이인자로서 ‘나쁜 셋째 아들’로 불릴 정도로 영리하고 교활했습니다. 그가 현지에서 파룬궁 박해를 직접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그에게 진상을 알려 그의 범죄를 저지해 더는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생각이 다른 공간에서 그를 조종하는 사악한 영체를 건드렸는지 우리가 같이 만나는 자리마다 그는 저를 일부러 피했고 심지어 순간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아예 직접 전화를 걸어 일을 처리해 달라는 핑계로 만났습니다. 제가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 그는 웃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가 아직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현지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해 응보를 받은 실례로 그에게 선과 악에는 응보가 따른다는 것은 천리(天理)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대법제자를 보호하고 박해에 가담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는 듣고도 아무런 대답 없이 자신이 이와 유사한 내용의 해외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만 말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가 수술하러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3일 전부터 발정념을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병문안하러 갔을 때 그가 관직과 악당을 두려워하는 것을 고려해 저는 현장 사람들과 한참 인사말을 나누고는 그들을 떠나게 했습니다. 저는 다시 그에게 진상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번에 그를 크게 건드렸는데 교활하게 안면치레하던 태도가 아니라 눈시울이 붉어지며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저를 위한다는 것을 잘 알아요. 사실 당신이 지난번에 저에게 선과 악에는 응보가 따른다고 말씀하신 후 저는 매우 충격을 받았어요. 그 후 위에서 다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 수단과 정책을 실행할 때 저는 모두 제지했습니다. 현지에 자료 배포에 유명한 노인이 있었는데 저는 지금까지 그를 건드린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 아랫사람이 자료를 배포하는 노인을 납치하고 제게 어떻게 처리하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여든이 넘은 노인이니 집으로 돌려보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다 한 후 진심으로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그가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저는 사부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나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체제 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상대방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우리의 말은 이미 그에게 충격을 줬으며 그가 면전에서 직접 태도를 밝히지 않은 것은 단지 그가 삼퇴한 일을 우리가 비밀로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우리와의 접촉이 그에게 연루되지 않을까 하는 것을 고려할 뿐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장쩌민(江澤民) 소송장’을 읽어주다

대법제자들은 2015년 최고법원과 최고검찰원에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를 고소했습니다. 저는 법원과 검찰원이 이미 제 고소장을 받은 것을 확인한 후에 대법제자가 장쩌민을 고소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주고 우리 고소장을 주위 사람들에게 읽어주자고 딸과 상의했습니다. 이것은 사악을 폭로해 사실에 대한 바른 이해를 확실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상을 모르는 중생이 대법제자가 알리는 진상을 믿고 따라서 삼퇴하면 구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을 내린 후 저는 딸과 함께 고소장을 갖고 한 집 한 집 친척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우리 둘은 단도직입적으로 최고법원과 최고검찰원에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를 고소했고 그곳에서 모두 접수했다고 알려줬습니다. 이 소식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는데 장쩌민 집단은 이미 궁지에 몰렸고 파룬궁은 큰 억울함을 당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속에 고소장을 들고 한 자 한 자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우리의 피눈물이 담긴 고소를 듣고 이미 진상을 똑똑히 알게 된 사람 대부분은 우리에 대해 매우 탄복했고, 진상을 모르는 자는 천둥과 벼락을 맞은 것처럼 깊은 생각에 잠겼으며, 어떤 사람은 듣고 공포에 질려 반쯤 듣고 집안으로 숨어들어 나오지도 못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마치 자신도 고소당한 듯 온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진상을 알리고 고소장을 낭독하면서 남편 쪽 친척과 친구들은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여러 사람이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표명했습니다. 남편이 제가 더 박해를 받을까 봐 두려워 폭행으로 제 수련을 막았다고 하자 그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며 우리의 처지에 깊은 동정을 표했습니다. 이후 남편은 이들 앞에서 시장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남편이 다시 제 수련을 원망할 때면 맞장구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도덕이 고상한 아내를 뒀다고 칭찬하면서 아내를 잘 대해주라고 일깨워줬습니다.

10여 년의 시련을 통해 저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상을 알릴 수 있었고 언어도 점점 더 순수하고 능숙해졌으며 알리는 범위도 매우 넓어졌습니다. 생활 속에서 만난 사람부터 관혼상제 때 만난 하객까지 기회가 되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최선을 다해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삼퇴에 동의하면 진상 소책자와 대법 진상 호신부(護身符)를 줬습니다. 시간이 촉박해 자세한 설명을 할 겨를이 없으면 인터넷 차단을 우회에 해외 진상 사이트를 찾아보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는 과정이 사실은 다른 공간에서 정사대전(正邪大戰)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순정하고 자비로 사람을 구하려는 정념만 갖고 있으면 사부님께서 한 갈래 넓은 길을 개척해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친척들이 잇따라 법을 얻다

최근 몇 년간 사부님의 정법노정이 빨라지면서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배치해주셔서 가족들이 여러 방법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수련했었는데 ‘7.20’ 이후 수련하지 않았던 사람도 다시 대법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새언니는 법을 얻은 지 두 달도 안 돼 중공 악당의 대법에 대한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단체 법공부 환경을 잃었기에 그녀는 점점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 그녀의 오른발에 악성 종양이 생겼는데 혈관종이 발 전체에 퍼졌습니다. 의사는 수술을 세 번 해야 하지만 완쾌될지는 모른다며 다리 절제를 권했습니다. 저와 큰언니(수련생)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묵념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녀는 들은 후 매일 외웠습니다.

수술대 위에서 그녀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계속 묵념하고 있었습니다. 수술 후 같은 병실에 사지가 절단된 사람은 아파서 연신 소리를 지르며 매우 고통스러워했으나 그녀만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간호하던 큰오빠는 호기심에 남들은 아프다고 소리치는데 당신은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묻자 그녀는 줄곧 ‘파룬따파하오’를 외우고 있으니 아예 아프지 않다고 했습니다.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후 새언니는 우리의 권유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매일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하니 사람이 원기가 충만하고 얼굴에 혈색이 돌았습니다. 친척들이 병문안을 오자 큰오빠는 기뻐하며 “이 공법은 정말 신기해요! 한겨울에 저도 추위를 느끼는데 아내는 집 안에서 반소매 옷을 입고도 대수롭지 않아 해요. 예전엔 성격이 괴팍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큰오빠가 직접 대법의 신기함을 본 이것은 그가 훗날 대법을 얻을 수 있게 기초를 다져놨습니다.

몇 달 뒤 저는 차를 몰고 50km 정도 떨어진 큰오빠 집으로 가서 새언니의 수련 상황을 알아보는 김에 연공 동작도 교정해줬습니다. 제가 첫 번째 공법 ‘찐허우펀썬(金猴分身)’[1] 동작을 할 때 큰오빠가 마침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제 손가락 끝이 그의 명치를 찔렀고 그는 강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나중에 그가 이런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자 저는 즉시 그에게 연공을 건의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한 후 바로 배워 연공했습니다.

큰오빠는 특별히 사흘간 휴가를 얻어 사부님의 광저우설법 비디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봤습니다. 이 3일간 큰오빠는 점심 휴식이나 세 끼 식사를 빼고는 모두 열심히 사부님 설법을 보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사부님 말씀에 마음이 끌릴 때면 저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대법은 고덕대법(高德大法)이야!” 큰오빠가 이번에 진정으로 법을 배우려 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1년 후 은퇴한 큰오빠는 새언니를 데리고 시내로 와서 살게 됐습니다. 잇따라 다섯째 여동생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가족 법공부 팀을 꾸렸는데 법을 얻은 친지들이 집에 모여 단체로 법공부를 하면서 서로 토론하고 연구하며 교류했습니다.

어느 날 사촌 오빠가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사촌 내외가 저에게서 파룬궁(法輪功)을 배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촌 올케언니는 박해가 시작되기 전에 대법을 수련했었습니다.

큰언니(수련생)와 저는 먼저 친척 중에서 아직 법을 얻으려 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있다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그들과 함께 ‘전법륜’을 한 번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같은 또래 친척들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서 잠깐 머물렀을 때 잠시나마 법을 얻었던 손아래 친척도 우리 계획안에 있었습니다. 교류 후 어떤 손아래 친척은 일이 바빠 잠시 몸을 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퇴근 후 사부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려고 사부님 설법이 담긴 플레이어를 보내줬습니다.

법을 배우기로 한 친척들에게 저와 큰언니는 가능한 한 함께 법공부를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이 친척들이 사는 곳은 비교적 분산돼 있었는데 어떤 집은 시내에 있고 어떤 집은 멀리 시골 마을에 있었습니다.

큰언니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오전 청소뿐 아니라 고용주의 하루 세끼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항상 점심 후 가장 빠른 속도로 버스를 타곤 했습니다. 법공부를 한 후에 큰언니가 고용주에게 저녁을 차려 주는 것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다시 서둘러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졸리고 피곤하면 우리는 차에서 잠깐 졸았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 우리 둘은 늘 시간을 어기지 않고 친척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법공부를 해나갔습니다. 친척들은 모두 진심으로 “아니! 날이 더운데 점심도 쉬지 못하고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너희들은 정말 대단해!”라고 말했습니다. 감탄하고 나서 법공부를 할 때 그들은 특히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며 이 얻기 힘든 기회와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며칠 전 한 생일잔치에서 큰아버지네 둘째 언니가 사부님 설법과 ‘사부님의 은혜를 회억하다’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둘째 언니 곁에 사촌 올케언니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년 전에 제가 올케언니에게 사부님 설법이 들어 있는 플레이어를 주었던 것이 생각나 둘째 언니에게 플레이어를 먼저 들려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뜻밖에도 올케언니가 “안 돼. 그 플레이어는 내가 매일 듣고 있어”라며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올케언니가 저를 거부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수련이란 올케언니에게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요즘 아들 집을 마련해주느라 바쁘기에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할 거라고 여겼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올케언니는 이제는 대법을 떠날 수 없게 됐습니다!

제가 1997년에 법을 얻은 후부터 우리 친척은 연이어 10명이 법을 얻어 수련하고 있습니다. 막내 남동생을 제외하고 자매 7명과 어머니까지 모두 ‘전법륜’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수련에 들어서지 않았지만 마침 우리가 법공부할 때 만나면 그들도 동참했고 또한 대법 표준으로 우리를 가늠하며 우리 수련에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집안 40여 명 중 대다수가 대법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알고 있고 의학적 기적도 두 건이나 나왔습니다. 정말 무한한 법광(法光)이 3대에 빛을 뿌리며 불은(佛恩)이 다시 중생을 부르고 있습니다!

씬탕런TV 설치에서 심성을 제고하다

제 남편은 성질 급한 사람입니다. 중공 사당의 거짓말을 믿고 줄곧 제 수련을 반대하며 심지어 저와 대판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그는 씬탕런TV를 보면서 진상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처럼 제가 수련하는 것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세인들 앞에서 중공의 악행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면서 대법 진상을 알리는 저를 돕고 있습니다.

한 번은 수련생들이 작은 범위에서 교류할 때 제가 남편이 씬탕런을 보고 달라진 점을 말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잇달아 씬탕런TV를 대중에게 보급해야 한다고 제시했습니다. 만약 한 가정이 씬탕런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진상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가장 친한 가족 모두를 살릴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해외 견문과 진상이 담긴 정보가 가족들 사이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저는 제 돈으로 인연이 닿는 사람에게 무료로 씬탕런TV 수신기를 설치해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먼저 가까운 가족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성 후에는 먼 친척과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까지 설치 명단을 나열했습니다. 이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이미 20~30년간 연락을 끊은 사람입니다.

사촌 오빠, 사촌 언니는 이미 60~70대 노인이고 어떤 친척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수소문해 농촌에 있는 그들 집에 선물을 들고 찾아가 방문했습니다. 친척이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은 그들의 자손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이용해 집마다 진상을 알리고 소책자와 대법 진상 호신부를 선물했습니다. 진실의 세계를 보여드리기 위해 씬탕런TV를 설치할 수 있는 가정에는 제가 공짜로 설치해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가 터지자 저는 그들에게 씬탕런TV는 사람에게 전염병의 진실한 상황을 자세히 잘 알려주기에 잘 보면 이번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 수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선량한 친척들은 제가 설치하는 것을 기쁘게 동의하고 스스로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저는 당연히 사양했습니다. 안전상 우려를 하던 친척도 저의 끈질긴 설득으로 씬탕런을 보는 재미도 알게 되어 결국 모두 설치에 동의했습니다. 물론 잘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지(加持) 하에 순리대로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처음 태도에 상관없이 보면 차츰 정신이 맑아지고, 나중에는 제 남편처럼 대법 진상을 똑똑히 알고 전통으로 돌아가는 좋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설치 과정에서 저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닦아 버렸습니다. 큰형부는 제 남편과 마찬가지로 한때 악당의 거짓말 속임수의 피해자였습니다. 그는 아내가 법에서 몸과 마음이 혜택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늘 큰언니를 때리고 욕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그의 집에 안테나를 설치하려고 할 때 사상적으로 받은 교란이었습니다. 후천적 관념과 사상 업력이 제 머릿속에 씬탕런을 설치하는 것은 큰언니 집에 폐를 끼칠 수 있고 만약 큰형부가 이 일로 다시 큰언니를 때리면 어떻게 할까? 등을 주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억누를 수 없고 배제할 수 없어서 저는 오전 내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설치를 담당한 기술 수련생이 오전 내내 신호 전파를 조절하지 못했는데 춥고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위성 안테나 하나를 설치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저는 기술 수련생에게 “이렇게 힘들고 신호도 없는데 오늘은 그만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생은 말하려다 멈췄는데 저의 강압적인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둘이 잘 모르는 사이여서인지 설치 중단에 동의했습니다.

다음날 수련생은 다시 2시간 넘게 반복적으로 튜닝했지만, 신호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 조바심이 났습니다. “이 집은 일단 놔두고 조정하지 말아요. 다른 집에 가보는 건 어때요?” 그런데 창틀에 기대앉아 있던 기술 수련생은 이번에는 꼼짝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저와 다른 수련생에게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TV 안테나를 설치하고 있으면 다른 공간에선 정사(正邪) 간의 큰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한 수련생은 모두 정념을 갖고 중생구도를 가로막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하는 정념을 내보내야 합니다. 속인의 생각과 일상적인 잡담을 하지 말고 이 항목을 정념으로 가지(加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제 사상업이 바로 “그저 위성 안테나를 설치하는 게 아닌가요? 뭘 그렇게 따지나요!”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제 명백한 일면은 알고 있습니다. 이 수련생은 이미 10여 년간 씬탕런TV 수신기를 설치했기에 분명 이 방면의 수련 경험이 있기에 수련생이 한 말은 법의 힘을 보였습니다.

큰언니 집은 15층 건물이었는데 그날 바람이 세게 불어 수련생 얼굴은 창밖의 한기에 빨갛게 얼어 있었습니다. 두 시간 넘게 창틀에 걸터앉아 변함없는 자세로 조급해하지 않고 반복해서 테스트하며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방 안에 앉아 도와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원망까지 겹쳐 저는 순간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과 외재적인 사악한 요소의 교란을 없애고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자신의 사상을 느슨히 하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제 마음을 바로잡은 후 신호가 빠르게 조절됐습니다. 수련생은 자신이 체면을 차리는 마음이 있었고 저도 조바심과 두려움이 있었다고 교류했습니다. 이로써 저는 사람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제대로 하려면 정념이 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심성도 따라야 하고 모두가 정체(整體)를 이뤄야만 비로소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큰언니 집에 씬탕런TV가 설치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은 수신기가 설치된 지 반년도 안 돼 씬탕런 프로그램은 점차 큰언니네의 없어서는 안 될 일부분이 됐습니다. 한차례 큰바람에 수신기가 기울어져 씬탕런 신호를 접수할 수 없게 되자 급해진 큰 형부는 저를 여러 차례 찾아와 수리비를 내겠으니 수리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수리하러 갔을 때 옆에서 게임하던 조카가 “빨리 고쳐주세요. 수리만 되면 저는 온종일 핸드폰을 만지지 않을 거예요. 진상 뉴스를 많이 보면 제 몸에도 좋을 테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설치 과정에서 다른 공간의 요소가 교란하거나 개인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지 않아 몇 가지 에피소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차를 몰고 씬탕런TV를 설치하러 가는 중에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그가 교통경찰에게 음주운전 적발을 당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잡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재검사 후 남편은 무사히 풀려났습니다.

친척들에게 씬탕런 수신기를 설치해 줄 때 집주인이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이 ‘샤오펀훙(小粉紅: 중공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젊은이)’식 입방아를 찧어 저의 쟁투심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난 저는 그와 날카롭게 맞섰습니다. 급기야 수련생의 만류로 마음이 움직여 심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씬탕런을 설치하러 오는 길에서부터 이 집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때 자기 생각을 바로잡지 못했기에 이번 설치에서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 후 매번 수련생들과 호흡을 맞춰 씬탕런TV을 설치하기 전에 저는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착실히 하며 조금도 태만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일사일념을 단속했습니다.

그렇게 정진하던 기간에 저는 꿈을 꿨습니다. 오토바이 앞에 말안장처럼 생긴 자리가 있었는데 제가 안에 앉아 있었고 씬탕런TV를 설치하던 기술 수련생이 오토바이에 저를 태우고 돌진하고 있었습니다. 꿈속의 그 길은 매우 가파르고 거의 수직의 각도였습니다. 저는 오토바이가 나중에 뒤로 젖혀져 넘어질까 봐 매우 두려워 손톱으로 차 속도를 따라 빠르게 땅을 짚었습니다. 그러나 운전하는 수련생의 머릿속은 텅 비어있는 듯 한 점의 두려움도 없었고 그에게는 이것이 바로 길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깨우쳐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이 프로젝트에서 수련을 착실히 한두 수련생은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저의 온갖 두려움과 사람의 각종 관념을 포용해줬습니다. 전체 프로젝트는 다른 공간에서도 우리의 수련 상황과 대응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진전에 따라 저도 두 수련생의 인솔에 심성을 제고 했습니다.

꿈속의 모든 것은 현실과도 대응하고 있었습니다. 그 두 기술 수련생 중 한 분은 2교대 근무였습니다. 어떤 때는 막 야근을 마치자 낮에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며 씬탕런TV를 설치하러 가는데 가는 동안 전혀 휴식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수련생은 한 번은 씬탕런을 설치하기 전날 밤에 5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 진상 소책자를 배포하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자지 못하고 일어나 낮에 씬탕런 설치를 준비했습니다. 시간을 쪼개 법공부를 하기 위해 때때로 설치하는 곳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릴 수 있기에 수련생은 사부님의 ‘홍음(洪吟)’을 갖고 갔습니다. 우리는 차 안에서 함께 암송하거나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습니다.

씬탕런을 널리 보급하면서 저도 씬탕런TV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중생을 구하라고 주신 법기(法器)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TV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사회자와 귀빈의 평론은 우렁차고 호쾌했습니다. 방송 시간대도 중국 국민의 시청 습관에 맞기에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영역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속해서 본다면 대법에 대한 그들의 오해를 씻고 사악한 중공의 본질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하시는 정법의 마지막 이 시간에 용맹정진할 것입니다. 사부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고 인연이 닿는 중생에게 파룬따파 진상을 많이 들려주며 파룬따파에서 제도 받게 하겠습니다.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니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대원만법-2. 동작도해’

(밍후이왕 제1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1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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