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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정(名利情)을 없애고 더욱 많은 중생을 구하다

글/ 중국 장쑤(江蘇)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 글은 수련생들과 교류하려고 써낸 20여 년간 수련 과정과 체득이다.

나는 1996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다. 그해 여름, 어느 날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데 넘어져 동료가 날 병원에 데려갔다. 진단 결과 척추파열 골절이라며 의사는 입원하라고 했으나 나는 동의하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와 며칠 쉬면 된다고 했다.

그때는 아내가 이미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었으므로 나보고 대법 진상 자료를 보라고 했고 만약 인연이 되면 사부님께서 관할해 주실 거라고 했다. 대법제자의 수련체득 몇 편을 봤는데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쳐주는 좋은 공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내에게 ‘전법륜’을 하나 사달라고 했다. 아내는 지금 책의 공급이 부족해 살 수 없다며 ‘파룬궁’이란 책을 사줬다.

나는 단숨에 이 책을 다 봤다. 다 본 후 온몸이 뜨겁고 넘어져 다쳤던 다리 통증이 완화됐다. 이전에 다른 기공을 배운 적이 있지만 이런 느낌이 있어 본 적은 없어 아주 기뻤다. 그리하여 아내에게 이 공법을 배우겠다고 했다.

며칠 후 아내는 ‘전법륜’ 한 권을 사 왔다. 매일 한 강씩 보는 동시에 아내에게 다섯 가지 공법을 배웠다. 일주일 후 넘어져 다쳤던 곳이 아프지 않자 걸어봤다. 비록 조금 아프지만 뼈는 부러지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큰 소리로 “다 나았어. 뼈가 부러지지 않았어!”라고 말하면서 대담하고 씩씩하게 걸었다. 이렇게 정식으로 파룬따파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집에서 20여 일 휴식했다. 직장 동료가 날 보러왔다가 내가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았어요? 골절은 100일은 걸려야 한다는데요!”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알려줬고 모두 파룬궁 덕분이라고 했다. 그들은 웃으며 “이 파룬궁은 정말로 신기하네요! 출근하면 가르쳐줘요. 우리도 배우게요”라고 했다.

한 달 후 출근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동료들은 몰려와 파룬궁에 관한 일들을 물어봤고 파룬궁이 어떤지 물었다. 이것은 법을 선전할 기회이므로 나는 아주 기뻤다. 우리 사무실에 모두 6명이 있는데 3명이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연공한 지 얼마 안 되어 위하수, 담낭염, 담결석, 척추염 등 질환이 치료하지 않았는데도 다 나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생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 발생하든 대법제자로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게 됐다.

1. 장모님을 어머니처럼 대하다

장모님은 시골 사람이고 딸 셋과 아들 하나가 있는데 아내가 맏이다. 둘째 딸과 막내딸은 시골에 살고 있다. 장모님은 85세 때 넘어지셨는데 어깨와 팔을 다치셨고 병원에서는 분쇄성 골절이라고 했다. 연세도 많아 수술하기도 어려운 상태고 시골은 의료보험 비율도 낮고 병원비도 비싸 집에서 요양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장모님이 둘째 딸 집에서 한 달 계신 후 둘째 딸 부부는 나이가 많아 장모님을 돌보기 힘들어 아들이 장모님을 돌봐주길 바랐다. 남동생은 누나들을 불러와 장모님 돌보는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

평소 모두 다 장모님께 효도했지만, 이번엔 장모님이 스스로 생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치료비도 많이 써야 했기에 의논할 때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이때 둘째 딸의 아들이 말했다. “저희 부모님도 연세가 많고 몸도 좋지 않은데 힘들어 병이 생기면 누가 책임질 건가요?” 조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불만을 털어놓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이때 나는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며 어머니가 위독할 때 효도하지 못해 평생 유감으로 남은 것이 생각났다. 1960년에 군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려 했는데 졸업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상관은 휴가를 주지 않았다. 군대 기율은 절대적으로 사당 기율에 복종하는 것이고 살아서는 당의 사람이 되고 죽어서는 당의 귀신이 되는 것이었다. 집으로 가지 못하게 하면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결국,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다.

오늘 이 장면을 보고 마음이 언짢았다. 장모님은 이 집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평생 고생하셨는데 넘어져 다친 80세 노인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아내를 한쪽으로 불러 내 생각을 말했다. “우리는 대법을 수련하고 사부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셨으므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해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1]라고 하셨지요. 이전에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 하지 못했으니 이번에 장모님께 효도하고 노인을 봉양하고 임종을 지키려 하니 당신이 우리 둘을 대표해 우리 의견을 말해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내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내는 격동해 동생들에게 “우리가 엄마를 시내 요양병원으로 보낼게요. 그리고 비용의 절반은 우리가 감당할게요”라고 했다. 모두 동의했다.

그때 요양병원의 한 달 비용은 2700위안(한화 50만 원)이었고 아내의 매달 퇴직연금은 2700~2800위안이었다. 장모님이 비교적 좋은 요양병원에서 만년을 보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모님이 요양병원에 있는 기간에 우리는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수련 체득을 말해드렸다. 장모님은 우리가 건강하고 정신이 맑은 것을 보고 ‘파룬따파하오’를 믿었고 스스로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셨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얼마 안 되어 어깨와 다리의 통증이 없어져 장모님은 아주 기뻐하셨다. 이 기간에 자녀들은 늘 맛있는 음식을 들고 보러 갔다. 특히 내 자녀들은 매주 외할머니를 보러 갔고 샤워하는 것도 도와드렸다. 우리가 효도를 잘해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장모님은 “너희들이 많은 돈을 썼다. 집도 팔고. 나한테 너무 잘 해줬다. 오늘 너희들 덕분에 여기 있을 수 있었다, 아니면……”라고 하더니 우셨다.

“이것은 장모님의 복이고 대법 사부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영원히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하시고요.”

며칠 후 장모님은 아주 편안하게 주무시면서 돌아가셨다.

장모님은 만년에 행복하고 만족스러워하셨다. 편안하게 가시자 내 마음도 위안이 됐다. 이때 어머니가 생각났고, 퇴직금이 없는 노인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년을 편안하게 보내시길 바란다.

우리가 장모님을 요양병원에 보낸 선한 행동은 고향마을 사람들의 미담이 됐다. “그 노인은 자식들이 효자라 요양병원에 보내 96세까지 사셨다. 이는 그분의 복이야!”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장모님의 자녀들이 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알고 늘 ‘파룬따파하오’을 성심으로 염하며 모두 ‘삼퇴’하여 복을 받았다는 것을 모른다.

2. 이혼한 며느리와 사돈집을 잘 대해주다

1996년 9월 16일 우리 집에 손자가 태어났다.

며느리는 출산 휴가가 끝난 후 출근했기에 손자는 아내가 키웠다. 당시 법공부 팀이 우리 집에 있었다. 우리가 법공부할 때 손자를 큰 침대에 눕히면 얼마 안 돼서 바로 잠이 들었고 깨지도 울지도 않았다. 1살쯤 됐을 때 우리가 법공부하고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들으면 아이는 혼자서 침대에서 놀았다. 발을 차거나 눈을 크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거나 했다. 수련생들은 아이가 귀엽고 말을 잘 듣는 아기라고 했다. 나중에 그도 우리와 함께 법공부하고 있으므로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4살 때 손자의 천목이 열렸는데 파룬 도형을 보고 우리에게 파룬이 왼쪽으로 돌고 파룬이 오른쪽으로 돈다고 했다.

2004년에 며느리는 갑자기 아들에게 이혼하자고 했다. 이유는 우리 아들이 그녀에게 정신적 폭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아들은 그녀와 함께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기 싫어했고 함께 밖에 나가서 놀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커플로 다니는데 자기만 혼자라서 외롭다고 했다. 우리가 여러 번 설득했지만, 며느리는 단호하게 이혼하겠다고 했고 이혼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에서는 손자를 아들에게 맡기고 집과 가정 수입을 반반으로 나눴다.

사실 집은 우리가 아들에게 사준 것인데 법원에서는 공동자산이라고 판결했다. 판결 후 법원 규정에 따르면 10일 이내에 여자가 가져야 할 돈을 남자가 전부 줘야 했다. 그렇지만 아들은 그녀에게 줄 돈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의 동료였는데 우리를 찾아와 딸이 집을 사려 하니 하루빨리 돈을 달라고 했다.

그의 딸이 단호히 이혼하고 이혼신청서를 법원에 그렇게 빨리 낸 것도 그녀의 부모와도 아주 큰 관계가 있다. 나와 아내는 그들에게 원망이 생겼다. 아들의 이혼에 관계하고 싶지 않으니 아들에게 말하라고 했다.

그날 법공부를 한 후 나와 아내는 우리가 잘못했다. 속인의 방법으로 이 일을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틀이 지난 후 며느리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딸이 살 곳이 없으니 우리 집에서 살다가 집을 산 후 나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이 전화에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혼도 해놓고 어찌 돌아와 사는가? 우리는 이 일을 아들에게 알렸다.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왜 자기 부모 집에 있지 않은지 물었더니 더욱 이해되지 않는 대답을 들었다. 이혼한 자식을 자기 집에서 살게 하면 불길하고 다른 사람이 깔본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또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는데 외손자를 보고 싶다고 했다. 부모의 이혼 때문에 손자도 나가서 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숙제도 하기 싫어하고 저녁이면 엄마를 찾았다. 그래서 며느리 부모에 대한 원망이 생기고 손자를 동정하는 마음이 생겼다. 아이의 건강과 앞날도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법공부를 반나절 한 후 속인의 갈등에 빠져 자신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2]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 설법을 배우고 마음이 확 트였다.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이혼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을 대하겠다고 결정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손자를 보고 싶으면 언제든 와도 되고, 손자가 엄마가 보고 싶다면 공부에 영향 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언제든 엄마를 만나도 된다고 했다. 법원에서 판결 내린 돈은 아들이 돈이 없으므로 우리가 줬다. 서로 오해를 풀기 위해 우리는 설날마다 그들에게 전화했고 손자 생일에 우리는 손자의 엄마를 불러 함께 생일을 축하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몸이 좋지 않으면 우리가 가서 문안했다.

우리가 진심으로 열정적으로 그들은 잘 대하자 그들은 감동했고 그들도 크게 변했다. 심지어 설에 그들의 초대를 받고 그들 집에 놀러 간 적도 있다. 손자 엄마의 표현도 달라졌다. 해마다 설날, 선물을 들고 우리를 보러 와 여전히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감동했다. 그녀와 관계가 원만해졌다.

손자에 대해 말해보겠다. 그가 우리 집에서 컸기에 어려서부터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사부님의 ‘홍음’ 중의 시사(詩詞)를 외울 줄 알아 공부도 쉽게 했고 성적도 좋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집에 법공부 팀을 설립했는데 매주 한 번씩 단체 법공부를 했다. 매번 한 강씩 ‘전법륜’을 배웠다. 우리는 매일 ‘전법륜’ 한 강을 배우고, 연공하고, 정각에 발정념하고, 매주 2~3번 나가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다. 손자는 집에서 우리와 함께 법공부를 했다. 5학년부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호신부를 지니고 다녔다.

손자는 어려서부터 대법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중학교 때 그의 담임교사의 몸이 좋지 않았다. 한 번은 담임교사가 병으로 집에서 휴식하고 있는데 그는 할머니에게 담임교사에게 진상 자료를 가져다줄 테니 달라고 했다. 그는 선생님 집으로 찾아가 진상 자료를 주면서 진지하게 “선생님께서는 ‘삼퇴’하셔야 평안해지실 것입니다. 그래야 건강해지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손자의 행동에 담임교사는 감동했다. 그러나 또 아이가 걱정되어 그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아들에게 감동했어요. 어린 나이인데 선생님을 염려하네요. 그런데 아이가 박해를 받을까 봐 걱정이네요. 이후에는 이런 걸 보내지 말라고 하세요.”

우리는 이 일을 알고 잘했다고 손자를 격려해줬다. 동시에 안전에 주의하라고 했다. 아직 어리니 이후에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려면 우리와 함께 하자고 했다.

손자가 우리와 함께 생활했기에 그는 줄곧 파룬따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늘 우리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어 사부님께서 줄곧 그를 격려해주고 관할해주신다고 했다.

손자는 복을 받았다.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입학까지 줄곧 아주 순조로웠다.

3. 가족정에서 걸어 나와 수련의 길을 잘 걷다

2002년 5월 11일 딸이 날 거실로 불러 내 소파에 기대고 앉으라고 하더니 무거운 심정으로 말했다. “아빠, 오늘 누가 안 왔죠?” 나는 한 바퀴 돌아보니 아들이 없는 것을 보고 놀라서 “오빠가 어떻게 됐어?”라고 물었다. “아빠, 오빠는 다시 집으로 오지 못할 거에요.” 딸의 말을 듣고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슬픔을 억지로 참아봤지만, 눈물은 여전히 흘러내렸고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고개를 숙이고 말하지 않고 눈물이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유일한 내 아들로 이제 막 53살인데 대법을 수련한 지 5년이 됐다. 우리는 부자 관계로 더욱이 수련생이며 함께 법공부했다. 밍후이왕 접속은 아들이 가르쳐줬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게 해줬다. 손자가 대학원을 졸업하면 집 한 채를 더 사주겠다고 했다. 매주 와서 우리에게 시장을 봐 주고 청소도 해줬다.

아들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자 아주 괴로웠고 외로워졌다. 아내는 수련을 잘하지 못해 요양병원에서 4년 넘게 살고 있어 내가 자주 그녀를 보러 가야 했다. 딸은 아직 출근하고 있어 지금 집에 나 혼자만 있는데 나도 78세가 됐다. 생각하다가 갑자기 내가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것을 잊고 속인의 가족 정에 빠져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바로잡고 딸에게 “좀 쉬려고 한다. 방으로 들어갈 테니 오빠 일은 너희들이 의논해 처리해라”라고 했다.

방으로 들어오자 사부님께서는 침착하게 이성을 찾고 본질상에서 문제를 보라고 말씀해주고 계신 것 같았다. 사부님의 법도 끊임없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으로, 아무리 큰 고통으로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고,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여 올라오게 할 수 있다.”[3]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중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 담담히 여길 수 있는지 없는지 본다.”[4]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慈悲(츠뻬이)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4] “생사를 내려놓는다면 당신은 바로 신(神)이며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은 바로 사람이다.”[5]라고 알려주셨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법공부하자 마음이 밝아져 그렇게 괴롭지 않았고 정신상태도 좋아졌다. 고비를 대면하고 어떻게 해야 할 줄 알았다. 아들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가족들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했다.(2002년 5월 9일 점심을 먹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음) 그의 수련에 누락이 있고 집착심이 있어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내 원인도 있다. 2019년부터 우리는 함께 법공부하고 서로 교류하는 시간도 적어졌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몇 번 말해줬지만, 그는 개변하지 않았다.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엄숙하게 말해야 했는데 그렇게 해내지 못했다. 또 다른 원인은 아들이 대법 수련에 들어선 후 지나치게 아들에게 의지한 것이다. 그는 대법을 배워 심근염도 나았고 정신적 상태도 크게 변했다. 내가 뭘 시키면 다 들어줬기에 집 안팎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겨 그는 항상 바빠 대법을 첫 자리에 놓지 못했다. 나의 의존심, 과시심, 쟁투심, 명리심이 그를 해쳤다. 또 사부님 설법이 생각났다. “당신이 수련인이 되었기 때문에 당신이 비로소 만나는 것이고, 당신이 수련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무릇 정면적인 반응이든 부면적인 반응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열렬한 박수)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수련하고 있는 이 길에서, 당신의 제고를 위해 준비한 것이기 때문이다.”[6] “수련인은 세간의 모든 일체를 집착하지 않는다.”[7]

내 머리는 맑아지고 정념이 갈수록 족해졌다. 아들이 갑작스럽게 떠났지만, 대법을 수련했기에 꼭 좋은 곳에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세상의 표면에서 볼 때, 죽는 것은 영원히 만날 수 없지만, 사실은 잠시의 이별일 뿐이다. 이번 일을 통해 빨리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고 정념을 증가시켰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시고 있고 위대한 파룬따파가 날 구하고 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다면 넘지 못할 고비가 없다는 것을 오늘 절실히 체득했다.

정에서 벗어난 후 온몸이 가벼워져 그날 저녁 푹 잤다. 새벽 3시 45분에 알람이 울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전 세계 수련생과 함께 다섯 가지 공법을 했고 정각에 발정념을 했다. 나의 정념, 선심도 강해졌다.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 세 가지 일이 발생했다. 모두 수련과 관련돼 있고 모두 나에 대한 시험이었다.

첫 번째, 며느리는 아들 명의의 모든 재산을 나눠 갖겠다고 했다. 우리 집의 수입은 주로는 퇴직금이고 가족의 돈은 같이 쓴다. 우리 부부의 수입이 가장 많으나 평소 장부를 쓰지 않았다. 특히 새집을 살 때 부동산소유권은 아들 명의로 되어 있었다. 비록 그녀가 아들과 결혼하기 전에 혼전 재산은 개인재산이라고 합의서를 썼지만, 그 합의서를 찾지 못했다. 이 누락을 이용해 그녀는 아들 명의로 된 재산을 나눠 가졌다.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어 우리는 변호사를 선임했고 법원에서 해결해줬다. 여자 쪽 재산이라면 얼마든지 다 줄 수 있고 그녀와 이익을 다투지 않겠다고 했다. 여자 쪽 계산에 따르면 우리 집에서 200만 위안(한화 3억 6800만 원)을 가져가야 한다고 했고 이 고비는 넘겼다.

두 번째, 마트에서 쇼핑을 마치고 마트 문 앞에서 갑자기 무언가에 걸려 아주 세게 넘어져 다쳤다. 손의 물건도 멀리 튕겨 나갔다. 경비원이 오더니 날 부축하려고 했다. 나는 스스로 일어나려고 시도해봤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경비원은 또 날 부축하려고 했다. “절 건드리지 마세요. 혼자 일어날 거예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묵념하면서 “별일 없어요. 일어날 수 있어요. 당신들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다. 조금 지나 천천히 일어났다. 당시 걸음을 걸을 때 조금 아팠으나 뼈는 괜찮았다. 경비원은 내가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줬고 계산대에서는 박살 난 물건을 환불해 줬다. 천천히 마트에서 걸어 나올 때 경비원은 또 내게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괜찮아요, 파룬궁을 수련해 별일 없을 거예요.” 이 경비원은 웃으며 “좋은 사람을 만났네요. 아니면 오늘 제가 벌금을 내야 해요”라고 했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왼쪽 무릎 이하는 전부 피였고 무릎이 부었다. 이때 수련생이 내게 내가 배포할 진상 자료를 보내줬다. 나는 아픔을 참고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천천히 걸으며 2시간 정도 걸려 배포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발정념 시간이 지났기에 발정념을 보충했다. 비록 세게 넘어졌지만 아주 기뻤다. 구세력은 이런 박해방식으로 날 시험했다. 아들에 대한 정에서 벗어났고 대법에 대한 정념이 있었기에 심성이 제고됐다.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셨고 보호해 주셨으므로 많은 어려움이 해결됐다. 나는 순조롭게 하루를 보냈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87세 나이에 이렇게 세게 넘어졌는데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딸이 걱정할까 봐 이 일을 딸에게 알리지 않았다. 한번은 의사 수련생에게 말해줬다. 그녀의 아들이 옆에서 듣고 “대법은 정말로 좋네요!”라고 했다.

세 번째, 어느 날 오후 누가 문을 두드렸다. 경찰이었다. 이것은 중공 사당의 소위 ‘제로화’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 미리 마음의 준비가 있었다. 이전에 경찰을 증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괴롭히며 수련인을 모욕하기 때문이었다. 2018년에 납치되어 5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으나 집행하지 않는다고 당일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경찰의 불량배 같은 행위는 내게 나쁜 인상을 남겨줬다.

이번에 그를 잘 대하고 꼭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그 경찰을 놓고 말한다면 그는 모르는 것이고 그는 통제당한 것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들에 대한 정을 내려놓은 후 나의 선심, 정념이 이전보다 강해졌기에 경찰이 문을 두드려도 마음이 조용했다. 그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앉은 후 친절하게 그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친구처럼 이야기해봅시다. 핸드폰과 집행 도구를 다 꺼놓으셨나요?”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난 단독입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왔어요. 당신이 나가서 활동하지 않는다면 저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아들이 금방 죽어서 집에 저 혼자만 있어요.” 그러자 그는 즉시 “죄송합니다. 집에 이런 일이 발생한 지 몰랐네요”라고 했다. 그가 젊고 예의 바른 것을 보고 “젊은이가 교양이 있네요”라고 칭찬해줬다. 그도 웃었다. 또 그의 집안 상황도 물어봤다. 그에게는 딸 둘이 있는데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아내는 영어 교사였다. “정말로 복이 많네요. 모두 공무원이고 딸도 2명이나 있네요. 이 복은 어떻게 어디에서 온 건지 알아요? 하늘에서 준 거예요. 잘 아껴야 해요.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알아요?” 그는 “승진하고 부자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고 행복하고 평범하게 지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솔직한 사람이고 이 경찰은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에게 몇 가지 문제를 물어봤다. “금방 지시를 받고 왔다고 들었는데 지시 문서를 봤어요?”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중공사당이 파룬궁을 탄압한다는 정식문서를 봤어요?” 그는 또 고개를 흔들었다. “‘전법륜’을 본 적이 있어요?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한다는 말을 알아요?” 그는 책은 들어봤지만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 소위 ‘톈안먼 분신자살’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요?” 그는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파룬따파의 기본적인 진상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아는 것을 그에게 알려줬다.

“착한 젊은이가 속았네요. 파룬궁은 합법적이고 헌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공안부 어느 문서에서도 파룬궁은 위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핸드폰으로 2000년 중공국무원공통자(2000) 39호 문서를 한번 검색해봐요. 공안부에서 인정한 14가지 사교 중에 파룬궁은 없어요. 2011년 3월 1일 ‘국가신문출판사총서 제50호령’은 1999년에 파룬궁 서적에 대한 금지령을 폐지했고 2014년 6월 1일 중공 ‘법제만보(法制晚報)’에서는 공안부 (2000) 39호 문서에 대한 통지를 다시 설명했는데 파룬궁은 X교가 아니라고 주장했어요.”

“파룬궁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쳐주는 대법 정도(正道)입니다. 오늘 파룬궁 수련생이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람을 구하고 있는 것이고 큰 재난에서 목숨을 지키고 안전하게 하기 위한 거예요. 오늘 당신들이 법을 집행한다는 명의로 왔는데 완전히 불법이고 법을 알고도 법을 위반하는 거예요. 중국공산당이 ‘공무원법’, ‘경찰법’에서 명확하게 종신책임제라고 밝혔어요. 파룬궁이 누명을 벗는 날에는 당신들은 다 희생양이 되는 것이고 누구도 도망칠 수 없어요. 오로지 ‘삼퇴’하고 사당을 멀리해야만 평안을 보장할 수 있어요. ‘천멸중공(天滅中共)’은 하늘의 뜻이에요. 지금 그것을 소멸하고 있는 중이고요.” “태명이나 가명, 혹은 실명으로 탈퇴해도 괜찮아요. 본인에게 중공 사당 조직에서 가서 탈퇴하라는 것이 아니고 신을 향해 탈퇴하는 것이고 당신의 안전을 위한 거예요. 복안(福安), 행복하고 평안하다는 뜻으로 당신이 가입했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하는 것이 어때요?” 그는 웃으며 시계를 보더니 이미 3시 30분이 됐고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가 문 앞까지 갔을 때 내가 “탈퇴하는 것이 좋지 않아요?”라고 하자 그는 “네, 좋아요!”라고 했다.

이 일은 6개월이 넘었고 파출소 경찰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수련의 길에서 그 어떤 교란과 방해, 고생이든 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꼭 시간을 소중히 아끼고 노력해서 법공부를 잘하고 착실히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수련을 성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2] 리훙쯔 사부님의 시사(詩詞):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8-2008년 뉴욕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법회 설법-뉴욕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원문발표: 2021년 10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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