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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후의 상봉(사진)

글 / 허핑

[명혜망 2008년 8월 5일] 2008년 3월 말부터 4월 초순경, 신운예술단 유럽순회공연 기간 동안 북유럽의 관중들은 한동안 유쾌하고도 잊을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사람들은 정통적인 중화 전통 문화를 음미하게 되었을 뿐더러 신운예술가들의 풍채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 또한 이에 따른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발생하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환갑에 이른 한 중국 노인과 신운예술단 프로그램 사회자 린리싼이 6년 후에 다시 만난 이야기이다.


6년 후에 다시 만나다 – 신운예술단 프로그램 사회자 린리싼과 중국 노인 왕민춘

린리싼은 젊은 미국 사람이다. 그는 유창한 중문으로 공연내용을 알려주었는데, 재미 있고도 유머가 있었다. 그는 현장에서 지혜를 발휘하면서 현지의 언어를 흥미롭게 운용하여 현장 관중들과 매우 잘 흡인되어 북유럽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놓았다.

신운예술단의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롬 서커스(Cirkus) 극장에서의 첫 공연을 관람하는 관중석에는 한 중국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큰 막이 막 올라간 그 시각부터 그칠줄 모르고 박수를 쳤다. 뿐만 아니라 이 노인은 줄곧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눈도 깜빡하지 않고 무대를 바라보면서 한 시각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후 그녀는 만회 스태프에게 부탁하여 한사코 사회자 린리싼을 만나고자 하였다.

이 노인은 누구인가? 그녀는 왜 린리싼을 한사코 만나려 하는가? 그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여기에는 한 단락 사연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 대법을 얻어 기쁘기 그지 없었지만, 박해를 피하여 고향을 떠나다

그녀는 왕민춘(王敏春)이라 부른다. 금년에 이미 64세이고, 중국 요녕성의 한 자그마한 현에서 왔으며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살고 있다. 왕민춘과 그녀의 남편 강림중(姜林中)은 모두 파룬궁(또는 파룬따파라고도 함) 수련생이다. 그들이 어떻게 수련에로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말하자면, 여기에는 또 한 단락의 이야기가 있다. 늙은 두 사람은 모두 문화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근면하고 소박했으며 마음씨도 착했다. 강 어른은 전기공인데, 성격이 활발하고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했으며 성격이 강직하고 시원시원했다. 왕민춘은 총명하고 재간이 많을 뿐더러 요리를 아주 잘한다. 중국에 있을 때,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성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꾸려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온 집은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무릎 아래 딸 둘과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모두 이미 가정을 꾸렸고 사업이 있었다. 비록 그리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어도 근심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강 어른은 여러 해 동안 고혈압, 심장병을 앓고 있었고, 왕민춘도 엄중한 오십견에 걸리고 다리도 아파 일단 병이 재발하기만 하면 고통스럽기 그지 없었다.

1998년 가을, 날마다 바삐 보내던 강어른에게 드디어 한가한 날이 있게 되어 목단강에 살고 있는, (이젠 년세가 높고 줄곧 허약한데다 병이 많은) 숙부와 숙모를 뵈러 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고생끝에 삼촌집에 당도하였을 때 즉시 눈앞의 광경에 놀라서 멍해졌다! 이미 80고개를 넘어선 삼촌은 얼굴이 불깃불깃한 것이 정신면모가 모두 바뀌었고, 줄곧 병에 이글어져 있었던 숙모 역시 그러하여 몇 년 전의 병에 허덕이던 노인 모습과는 완전히 판이한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는 아주 놀랍고도 신기하게 느꼈고, 그래서 그는 자꾸만 물었다. “삼촌네는 무슨 영단묘약을 드셨길래 변화가 이렇게도 커요?”

삼촌은 웃으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바로 왔구나. 그렇잖아도 우리가 널 찾아가려고 했다. 조급해하지 말아! 너에게 자세히 알려 줄테니. 네가 이 일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너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기전, 우리 다섯 아들을 불러놓고 이런 말씀을 하셨단다. ‘우리 강씨 집안은 대대로 모두 부처를 믿고 있다는 것을 너희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모두 진정한 고덕대법(高德大法)을 얻지 못했다. 정말 유감스럽구나! 너희들은 명심해라! 멀지 않은 장래에 고인 한 분이 하세하여 사람을 구도할 것이다. 그건 한 부의 고덕대법인데 너희들은 꼭 방법을 대어 그것을 얻도록 하라! 이 고인은 성이 이씨이다.'” 강 어른은 조용히 들으면서 생각을 더듬었다. 그의 어렴풋한 기억에는, 집의 세상을 뜬 어른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았다. 삼촌이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지금 네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알려준 그 고덕대법을 내가 이미 찾았다! 바로 이홍지 사부님께서 지금 파룬따파를 세상에 널리 전하고 있다. 나와 네 아주머니가 연마한 후 모든 병이 모두 나았다! 너무도 신기하다!”

그날 삼촌과 아주머니는 또 그들에게, 그들 주변의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에 관한 많고도 많은 신기하고도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때 강 어른은 갑자기 이번에 목단강에 온 것은 바로 이 고덕대법을 얻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느꼈다. 이튿날 강 어른은 삼촌, 아주머니와 함께 부근의 연공장에 와서 간단하고도 배우기 쉬운 5장 공법을 배웠고, 이홍지 사부님의 모든 설법과 서적을 달라 하여, 이를 들고 보배를 얻은 듯 집으로 돌아 왔다. 집에 돌아온 후 아내와 애들을 불러놓고 숙부와 숙모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진지하게 모두 그들에게 들려 주었다. 가족들은 들은 후 매우 신기하게 느꼈다. 그리하여 온 집이 함께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였다.

연공을 한지 얼마 안되어 강 어른의 혈압이 정상으로 되었고, 아내의 오십견도 나았고 다리도 아프지 않았으며, 두 노인의 몸의 병이 모두 나았다. 강 어른은 날마다 늘 즐거워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대법이 좋다고 말했으며,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함을 말해 주어 이웃에선 누구나 그들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두 양주는 평소에 일을 처리함에 “쩐(眞), 싼(善), 런(忍)” 표준에 따라 하였기에 사람마다 모두 그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 하였으며, 연공, 법공부는 이미 그들 생명중의 없어서는 안될 일부분으로 되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99년 “7.20”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렇게 훌륭한 공법이 도리어 중공의 무리하고도 미친듯한 박해와 탄압을 받을 줄을.

강 어른에게는 현 공안 부문에서 일하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찾아와서 다급히 그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들더러 얼른 집을 떠나 숨으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통지를 받았는데, 이제 곧 사람을 붙잡는다고 했다. 더이상 수련하지 않겠다고 의사표시한 사람 이외에는 다 잡는다고 했다.

거듭되는 심중한 고려를 한 후, 강 어른 부부는 결정을 내렸다. “절대로 수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조상 몇 대가 줄곧 찾아 헤매던 고덕대법을 오늘 우리가 드디어 얻었는데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2001년 4월의 어느날, 천재일우의 파룬따파를 계속 수련하고, 이 참혹한 박해를 피하기 위해 두 노인은 고향을 등지고 낯설은 캄보디아로 가서 유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 곤란한 가운데서도 계속 수련였지만, 중공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왕민춘 부부가 캄보디아에 이르니, 이 고장은 생소하고 말도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사람은 집에서 콩을 갈고, 한 사람은 밖에 나가 콩물을 파는 것으로 생활을 유지해갔다.

캄보디아에서 그들은, 역시 박해를 피하여 중국 호남으로부터 캄보디아에 도망온, 프놈펜 한 중학에서 교편을 잡고 중문을 가르키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 장신의(张新義)와 이국준(李国俊) 부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매일 아침 함께 집이나 부근의 공원에서 연공하였다. 그들은 간고한 생활을 하는 한편, 현지 사람들에게 파룬궁을 소개하고,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진상을 소개 하였다.

2002년 5월, 학교측에서 장신의 부부가 파룬궁 수련을 한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해고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여권 비자 신청도 중공 영사관의 거절을 당했다. 8월 2일, 장신의 부부는 갑자기 프놈펜 경찰에 의해 체포를 당했고, 8월 9일 중국으로 납치 송환되어 장사 제1감옥에 불법(不法)으로 수감되었다.

그후의 1주일 후, 중공의 마수는 또 왕민춘 부부에게 돌려졌다. 하루는 이웃집 사람이 전화하여 절대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알려 주었다. 캄보디아 경찰 몇 명과 두 명의 중국 관원이 그의 집에 와 수색을 하고 금방 떠나갔다는 것이었다.

왕민춘 부부도 자기네가 살고있는 주변에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외출할 때면 미행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도 아무때건 납치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린리싼의 도움으로 두 노인이 위험에서 벗어나다

인연은 우연하게 일치할 때가 있다. 린리싼은 당시에 홍콩에 있었는데, 왕민춘 부부의 형편을 알게 되었고, 아울러 그들에게는 영어도 알고 중국어도 아는 사람이 그들을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길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즉각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로 날아갔다. 아울러 그들을 도와 안전한 지방에 잠시 머무를 수 있게 이전시킨 후 UN에 보호를 신청하는 것도 도와주었다.

모든 것을 타당하게 안배한 후 린리싼은 미국으로 돌아 갔다. 눈 깜빡할 사이에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보면서 노인은 감개무량하기 그지 없었다.

린리싼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아직도 중국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도와주기를 바라면서 말하였다. “당시 내가 캄보디아에 갔을 때는 대학 1학년생이라 중문을 잘 하지 못하였다. 나는 다만 말로서 UN과 소통하여 그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나는 서방사회에는 선량한 인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정의와 선량을 지지하여, 이미 9년째나 지속되고 있는 이 재난을 빨리 종결짓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8월 5일
문장분류 : [해외소식]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8/5/1834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