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파룬궁수련자, 4·25 평화청원 기념
[명혜망](토론토 지국) “4월 25일 아침 6시. 저와 가족은 집을 나서 청원사무실로 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그날 저는 그것이 역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반드시 가야 한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펑(馮)이 말했다.
27년 전 그날, 파룬궁수련자인 펑은 그저 부당하게 납치된 수련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1만 명의 평화청원자 중 한 명이 됐다.
1999년 4월 25일 1만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자가 베이징 청원사무실에 모여 정부가 자유롭고 교란받지 않는 연공 환경을 보장해주기를 희망했다. 행인 통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인도 한쪽에 서거나 앉았고 현수막도 없었으며 큰 소리로 떠들지도 않았고 끝날 때 조용히 떠났다. 이것이 바로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던 역사상 최대 규모의 ‘4·25 파룬궁 평화청원’ 사건이다.
2026년 4월 25일 캐나다 토론토 파룬궁수련자들이 중국영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1999년 ‘4·25’를 직접 겪은 파룬궁수련자 두 명이 집회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 1시 수련자들은 블루어 거리를 걸으며 여러 현수막을 세워 지나가는 행인과 차량에 진상을 전했다. 27년 동안 파룬궁수련자들은 자유로운 수련 환경을 쟁취하고 박해 중단을 호소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4·25’ 직접 겪은 사람 “자발적이고 규율이 있는 1만 명의 청원”
1995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펑은 수련 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편안함, 즐거움, 순수함을 체험했다. 톈진의 잡지 ‘청소년과학기술박람’에 터무니없는 유언비어 기사가 실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일부 톈진 수련자들이 관련 기관에 가서 상황을 반영했으나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납치됐다. 40여 명의 수련자가 부당하게 감금된 상황에서 펑의 세 식구는 베이징으로 가서 상황을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펑은 회상하며 말했다.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중난하이 서쪽 담장에 기대어 한 줄로 서서 인도를 내어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책을 보고, 어떤 사람은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그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전체 분위기가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습니다. 온 사람은 학생도 있었고 간부도 있었으며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도 있었고 80, 90세 노인도 있었습니다. 제가 대열을 따라 한 바퀴 돌아봤는데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 있었고 베이하이 대교에 올라 멀리 바라보았지만 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또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떠들지 않았고 누구도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으며 모든 대문과 모든 행인이 지나가는 곳은 자발적으로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밤 10시경 (파룬궁) 연구회 사람이 수련자들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을 총리가 모두 동의했다며 모두 돌아가 달라고 했습니다.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하나둘 흩어졌습니다. 바닥은 깨끗했고 붐비지도 않았으며 혼란도 없었습니다.”
당시 납치됐던 수련자들이 풀려났지만 불과 3개월 뒤 중국공산당(중공)은 또다시 반인륜적인 파룬궁수련자 대규모 납치 및 박해를 가했다.
당시 톈진 파룬궁수련자, 캐나다 정부에 중공의 박해 제지 호소
톈진 교육대학이 파룬궁을 비방하는 글을 게재한 것에 직면해, 펑슈민(馮秀敏)과 다른 몇몇 톈진의 파룬궁수련자들은 함께 관련 기관에 가서 글의 사실과 다른 점을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는 펑슈민은 집회에서 그들이 받았던 대우를 다시 설명했다.
그녀는 회상하며 말했다. “여러 대의 군용 트럭이 와서 우리를 많이 잡아갔고 군경이 전기몽둥이를 들고 사람을 때렸습니다. 많은 수련자가 머리가 깨져 피를 많이 흘렸고 팔이 탈구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시 정부에 가서 상황을 반영하려 하자 시 정부 직원은 이 일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으니 당신들은 내일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라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펑슈민과 몇몇 수련자들은 4월 25일에 베이징에 왔고 길을 물었을 때 경찰이 직접 중난하이로 안내해 주었다. 이때 이미 만여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중난하이 담장 아래와 주변 거리에 서 있었고 그들은 모두 그곳에서 조용히 상황을 반영하러 들어간 수련자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펑슈민은 말했다. “우리가 이미 자유롭게 연공하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것을 안 후 모두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결국 중공은 오히려 말을 바꾸어 3개월 후인 7월 20일에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러 번 납치됐고 두 차례 강제노동을 당했으며 공직에서도 해고됐습니다.”
펑슈민은 또 말했다. “출국해 캐나다에 온 후 저는 신앙 자유가 생겼고 조용히 수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중공은 여전히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고 현재는 해외까지 뻗어나가 심지어 이곳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을 세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캐나다인과 정부가 모두 중공이 현재 아직도 계속해서 잔혹하게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중공의 사악함을 똑똑히 인식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박해가 즉각 중단되기를 희망하는 시민
토론토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토비아스는 현수막의 내용을 보았고 수련자가 건넨 진상 자료를 자세히 읽었다. 그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처음 들어본다고 밝히며 말했다. “듣자 하니 이것은 매우 평화로운 공법이며 타인을 대할 때 진실하고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공법이 중국에서는 오히려 박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밝혔다. “파룬궁은 중국에서 허용돼야 합니다. 박해는 옳지 않으며 그들은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시민 라즈는 수련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파룬궁수련자가 중국에서 박해받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됐고, 또한 중공이 캐나다 영토 내에서 초국가적 탄압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라즈는 파룬궁수련자가 조용히 요구를 표현하는 것은 존중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라며 말했다. “저는 그들(파룬궁수련자)을 존중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았고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에게 알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는 중공의 박해는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캐나다 정부가 중공의 초국가적 탄압을 금지하기를 희망했다.
알렉산드라는 자발적으로 파룬궁수련자에게 말을 걸며 자신은 작년에 이미 수련자들의 진상 알리기 행사를 보았다고 밝혔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여러분이 매우 굳건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비 오는 날에도 여전히 함께 서서 여러분의 신앙을 위해 항쟁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저는 중국인들이 매우 강인하다고 생각하고 여러분을 사랑하며 오늘은 비가 그치기를 바랍니다.”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홍콩에서 12년 동안 거주하고 생활했다고 언급했다. 그녀는 홍콩의 학교에서 파룬궁에 관한 소식을 들었지만 선생님들은 너무 많이 이야기하기 불편해했다고 한다. 그녀는 말했다. “제가 스스로 검색하고 연구해서 박해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됐고 저는 이것이 슬픈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저는 상황이 좋아지기를 바라고 중국인들이 자유롭게 생활하며 자신의 신앙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정부가 어떠한 아름다운 신앙도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7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4/27/50919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4/27/50919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