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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지도교수, “자네는 매우 행운이라네”

[밍후이왕](중국 투고) 학술계의 권위자라고 불리는 그 박사 지도교수는 하이타오(海涛)에게 다섯 글자의 메시지를 보내 왔다. 하이타오가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의미였다. 하이타오는 이 지도교수의 마지막 해에 모집된 학생이었다.

하이타오는 평온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또래들이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겪었다. 부모님은 파룬궁수련자이다. 하이타오는 다혈질에 화를 잘 내는 아버지가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자애로운 아버지, 사려 깊은 남편으로 변한 모습을 목격하고서 대법 수련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부모님을 따라 가부좌를 배우기 시작해 오래 버틸 수 있었으며, 얼마 되지 않아 어려서부터 감기에 쉽게 걸리던 몸이 건장해졌다.

하지만 그 해 어느 무더운 중학교 여름방학 때, 평화로운 생활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아버지는 공안과 직장 관계자에게 여러 차례 불법으로 잡혀갔고, 어머니 역시 직장 관계자에게 여러 차례 ‘담화’협박을 받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 시절, 파룬궁수련자 가정의 일원으로서 하이타오 역시 비바람 세례를 견뎌야 했다.

진상을 알리기 위해 하이타오 집에는 파룬궁 진상자료가 늘 있었고, 하이타오는 이 자료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한번은 자료를 끝까지 보지 못해서 학교에 가지고 가 저녁에 기숙사로 돌아가 계속 보다가 뜻밖에 선생님께 들켜서 압수당했다.

박해가 극심하던 그 시절 중국 땅에서는 이미 많은 일이 일어났다. 파룬궁을 배우고 있는 아이가 퇴학당하고 학위시험에서 배제당했으며, 졸업하지 못하게 하는 등, 이 외에도 동문 사이에서도 차별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그날 밤 발생한 그 일은 고1학생의 입장에서는 ‘처벌’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듯한 공포가 정신을 붕괴시키기에 충분했다.

잠깐의 공황 상태에 빠졌던 하이타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생각했다. ‘이 자료는 대법제자가 생명으로 바꿔 온 것이니 내 손에서 버려지게 할 수 없다! 나는 반드시 그것을 되찾을 것이다!’ 그 확고한 일념을 품고, 하이타오는 다음날 직접 선생님을 찾아갔다. 둘은 한 시간 이상 대화를 했는데, 다른 사람은 대화 내용을 알 길이 없었지만, 이 아이의 진실됨과 성실함, 그리고 확고한 신념은 충분히 검증됐다. 선생님은 정말로 진상자료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그때부터 갑자기 하이타오의 성적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전에는 반에서 최하위였지만 아주 빨리 상위 10등 안에 들었다. 인과응보와 선악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은 그의 향상을 ‘우연의 일치’라고 돌렸지만, 훗날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로워진 이 아이의 인생의 길은 그들도 설명할 수 없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 하이타오의 품행과 능력에 반한 몇몇 여학생이 고백을 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에게 대법제자들은 세파에 같이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원시험을 준비하느라 공부로 바빴는데, 그 와중에도 법공부 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대법이 자신을 지도하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힘든 학습 속에서 청성한 두뇌와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연히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 석사과정 대학원에 합격했다.

하이타오는 3년 뒤에 모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로 했으나 그가 선택한 지도교수는 상당히 어려운 교수였다. 그 전공분야에서 지도교수는 권위 있는 학자로서 수강생들에게 높은 성적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백그라운드와 인맥 관계가 없으면 합격이 불가능했다.

하이타오는 자신이 대법에서 얻은 지혜를 믿었다. 어머니가 그에게 준 대법제자들의 심득체험을 본 바로는 법을 얻은 많은 아이들이 대법 속에서 혜택을 받았고 학습 성적이 좋아졌으며, 그 자신도 경험한 체험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대법을 수련하지는 않지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9자진언을 자주 염해서 바른 에너지장을 증강시켜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하이타오는 대법 속에서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1]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노력은 하되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았다.

베이징에 오신 어머니는 아들의 합격 여부를 떠나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도교수에게 대법진상을 알리기 위해 특산물 상자 두 개 밑에 진상자료를 넣어 두 지도교수에게 한 상자씩 선물로 주었다.

1차 시험이 끝나면 면접이 진행되는데, 1차 합격자 16명 중 6명이 면접에서 탈락한다. 하이타오의 필기시험 성적은 썩 뛰어나지 않았다. 처음 몇몇 면접 응시자는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끝났지만, 하이타오의 차례가 되었을 때는 그 박사과정 지도교수들이 일부러 그의 허점을 찾아내려는 듯 17개의 질문을 했다. 눈앞의 수많은 엄숙한 교수들 앞에서 하이타오의 심태는 평온했다. 사후에 그는 많은 질문에 대해 전문지식이 별로 없었지만, 왠지 지혜가 샘솟았고 모든 질문에 유창하게 제대로 답했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박사 졸업 후 순조롭게 대도시의 정부 부서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졸업하자마자 부국장급의 대우와 고액의 정착비까지 받았다. 당 체제에서 입당은 거의 필수 코스이나 하이타오는 자신의 승진을 위해 양심을 팔지 않았으며, 바른 믿음을 박해하는 사악한 당에 입당하지 않고 민주당파에 가입해 정치적인 심사를 대처했다. 하이타오의 지도교수는 이런 좋은 품성의 학생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며 선량하고 열정적이며 겸손하다고 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도중’

 

원문발표: 2021년 2월 15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15/4201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