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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의 사례: 음란한 행위를 거부해 복을 받다

글/ 경주(輕舟)

[밍후이왕] 만악(萬惡)의 으뜸은 음란함이라는 옛말이 있다. 음란한 생각이 일면 온갖 악한 생각이 함께 일어나고, 각종 죄업이 여기에서 생겨나며, 각종 선한 염원은 이로 인해 소멸된다. 문창제군(文昌帝君: 도교의 신-역주)도 말했다. “하늘의 도는 음란한 자에게 재앙을 내리니 그 응보가 대단히 신속하다.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너무나 무지한 것이다. 만약 품행을 단속하지 않으면 곧 재앙이 당도한다.”

현대사회는 물욕이 넘치고 색정이 범람해 이미 후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색으로 권력을 잃고, 명예를 더럽히며, 몸을 망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으니 안타깝다.

공자는 말했다. “젊어서는 혈기가 정연하지 못해 경계해야 할 것은 색이니라.” 공자는 소년 시기의 남녀에게 신체 양생에 주의할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이때의 신체는 마치 초목에서 막 싹이 트듯 자라기 시작하고, 벌레들이 동면하는 것과 같다. 만약 초목의 새싹을 꺾는다면 초목은 곧 시들 것이고, 벌레가 동면하고 있을 때 벌레가 잠든 곳을 파헤친다면 벌레는 죽어버릴 것이다.

중국 옛사람들은 모두 곁눈질도 하지 않고 예의로 대하며, 남녀 간의 일에 특히 엄격했다. 심지어 생각조차도 큰 잘못이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친다고 여겼다. 아래는 음란함을 경계해 복을 받은 몇 가지 이야기다.

혜검(慧劍)으로 정사(情絲)를 자르다

송인종(宋仁宗) 조정(趙禎)은 송나라 제4대 황제였다. 그는 42년간 재위해 송나라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황제였고, 천성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어질고 너그러웠다. 간관(諫官: 천자의 잘못을 간하는 벼슬) 왕소(王素)가 인종에게 여색을 가까이하지 말 것을 간언하자 인종이 말했다. “며칠 전 왕덕용(王德用)이 출중한 미녀를 나에게 바쳐 지금 궁중에 있소. 짐도 아주 마음에 드니 경은 그녀를 머무르게 해 주시오.”

왕소가 말했다. “신의 오늘 간언은 바로 폐하께서 여색에 현혹되실까 두려워 드리는 것이옵니다.”

인종이 듣고 난색을 표하면서도 태감에게 명했다. “왕덕용이 보내온 여인들에게 각자 3백 관의 돈을 주어 즉시 궁을 떠나게 하고, 일이 끝나면 아뢰도록 하라.” 말을 마치고도 그는 아쉬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왕소가 말했다. “폐하께서 신의 간언을 옳다고 여기시더라도 이렇게 빨리 처리하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여인이 이미 궁에 와 있으니 그래도 잠시 후에 보내심이 타당할 줄로 아뢰옵니다.”

인종이 말했다. “짐이 비록 황제지만, 평민과 똑같이 감정에 약하오. 그녀들을 오래 머무르게 하면 정이 깊어져 보낼 수 없을 것이오.”

사람들은 이렇게 칭찬했다. “사람이 어질어 인의(仁義)의 도리가 있고, 고생을 참는다. 인종이 욕망을 참고 아랫사람이 본받아 태평성세를 이루니 인(仁)을 그의 호(號)로 삼는다.”

색(色)을 경계하고 선(善)을 권하다

적인걸(狄仁傑)은 병주(並州) 태원(太原) 사람으로 당나라 재상이었다. 적인걸이 젊었을 때 얼굴은 옥과 같았고, 용모가 수려했으며, 기골이 장대했다. 과거 시험을 위해 상경하던 중에 여관에 투숙해 깊은 밤 등불 아래서 책을 읽는데, 갑자기 젊은 부인이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원래 여관 주인의 며느리였는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었다. 그녀는 낮에 준수하고 비범해 보이는 적인걸을 보고는 저녁에 불을 빌린다는 핑계로 적인걸에게 와서 욕정을 채우려 했다. 적인걸이 그녀의 뜻을 알고는 오히려 다정하게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아름다워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을 보니 노스님의 말씀이 기억나는구려.”

젊은 부인은 호기심이 일어 무슨 말이었는지 물었다. 적인걸은 이렇게 그녀를 타일렀다. “상경하기 전에 절에서 기거하며 공부를 했는데, 절의 노스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주의하라고 하셨소. ‘너는 용모가 당당하니 장래에 반드시 높은 지위에 오를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잘 기억해야 하느니라. 절대 색을 탐하지 말고 음행을 저지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앞길이 남김없이 망가질 것이다.’ 노스님의 가르침을 나는 줄곧 마음에 새겼소. 당신이 스스로 정성을 다하여 절개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매우 기특한 일이니, 한순간의 충동으로 당신의 절개를 더럽히지 마시오. 하물며 당신은 위로 연로한 시어머니가 계시고 아래로 어린 아들이 있어 모두 당신의 보살핌이 필요하오. 옛날 부인들의 절개를 지키는 미덕은 세인의 칭송을 받고 있소.”

젊은 부인은 적인걸의 말을 듣고 감동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예로써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은인의 큰 덕에 감사드리옵니다. 지금 이후로 반드시 정절을 굳게 지켜 은인의 가르침에 보답하겠사옵니다.” 그녀는 다시 세 번 절하고 헤어졌다.

사람들이 이렇게 칭찬했다. “젊었을 때 색을 경계해 앞길을 망치지 않았다. 인걸에게 만나자 했으나 오히려 선을 권했고 충정으로 수절했다. 스스로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니 스승의 가르침은 소멸되지 않았도다.”

만당(晚唐) 시기 시인 진도(陳陶)는 홍주(洪州, 현재의 장시성 일대)에서 전란을 피했는데, 친한 벗인 엄찬(嚴撰)이 재색을 겸비한 기녀를 데려와 그와 함께 지내게 하려 했다. 진도는 시로써 완곡하게 거절했다. “근래의 시상은 물보다 맑고, 늙어버리면 정분은 옅기가 구름 같구나. 이미 하늘로 올라 문호(門戶)를 얻었는데, 비단 이불이 탁문군(卓文君)을 몹시 부끄럽게 하는구나.”[역주: 탁문군은 한나라 시절 재주와 정조를 갖춘 여성으로, 외도하려던 남편의 마음을 지혜롭게 바로 잡아줌, 여기서는 기녀를 탁문군에 비유해 타이르는 말]

고대인들은 타인의 분수에 맞지 않는 요청을 거절하고 퇴로까지 마련해 주었으니 얼마나 지혜롭고 선량한가!

구애를 거절해 과거에 합격하다

비추(費樞)는 자가 도추(道樞)이며 광도(廣都, 지금의 쓰촨 광안) 사람이다. 그는 송휘종(宋徽宗) 선화(宣和) 2년(1120년)에 동경[東京, 변량(汴梁)으로도 불림]으로 길을 떠났는데, 장안성(長安城, 지금의 시안)에 도달하니 해가 저물어 연지파(燕脂坡) 일대의 한 여관에 투숙했다. 여관 주인인 젊은 여인이 부산을 떨며 비추의 시중을 들었는데, 아주 빈틈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여주인이 와서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고 비추가 놀라서 물었다. “부인은 어째서 이러시오?” 여주인이 해명했다. “제 아버지는 동경 변량 사람이고, 저희 집은 비단을 파는 집으로 모처에 있습니다. 저를 이 집 주인에게 시집보냈는데, 지금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지할 곳이 없어 수치를 무릅쓰고 나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비추가 말했다. “부인 사정은 알겠소. 하지만 나는 경성으로 가야 하오. 그곳에 도착하면 부친을 찾아가 부친께서 사람을 보내 당신을 데려가도록 도와주겠으니 부인은 원망하지 말기를 바라오.” 여인은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경성에 도착한 비추가 그녀의 부친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여인의 부친이 말했다. “며칠 전 밤에 딸의 몸이 상하는 꿈을 꾸었는데, 덕 있는 분을 만나지 못하면 제 딸이 위험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신령께서 선생이 귀인이라 하셨으니 감히 잊을 수 없었습니다.” 노인은 즉시 아들을 보내 딸을 데려왔다. 이듬해 비추는 과거에 급제해 벼슬이 대부에 이르렀고, 파동(巴東) 태수가 됐다.

양희중(楊希仲)은 자가 계달(季達)이고, 촉주(蜀州) 신진(新津) 사람인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성도(成都)의 한 여관에서 지냈다. 여관집 부인이 사모의 뜻을 표했으나, 희중이 정색하며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고향에 있던 그의 아내가 꿈에 이런 말을 들었다. “당신의 남편이 타향에서 홀로 지내는데도 스스로 자제하며 수절할 수 있고,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니 신령이 알고 장원급제로 보답할 것이다.” 아내가 깨어난 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고, 연말에 남편이 돌아온 후에야 사정을 알게 됐다. 이듬해 촉주에서 과거 시험이 있었는데, 희중이 장원급제를 했다.

색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 수명이 늘고 자손이 급제하다

송(宋)나라 가우(嘉佑) 연대(1056~1063년)에 황정국(黃靖國)이 의주(儀州) 판관으로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세상을 떠났다. 저승에서 명관(冥官)이 물었다. “의주에서 있었던 좋은 일을 그대는 아는가?” 말을 마치고는 장부를 가져와 황정국에게 보여줬다. 일인즉, 의원인 섭종지(聶從志)가 모년 모월 화정(華亭)의 어느 집에 왕진을 갔는데, 환자의 아내가 그에게 잠자리를 요구했고 그가 필사적으로 거절한 것이었다. 명관이 다시 황정국을 강가로 데려가니 저승 감옥의 관리가 부인 한 사람을 잡고 칼로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어 씻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승려가 말했다. “이 사람은 동관(同官)에 있는 모 씨의 부인으로, 섭종지와 정을 통하려 했으나 섭종지가 허락하지 않고 색을 보고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니 훌륭한 인물이라 할 수 있소. 그 사람의 수명은 60에 그치게 되어 있었지만, 이번에 음덕을 쌓아 12년을 늘리고, 세세로 자손 한 사람에게 벼슬을 줄 것이오. 부인의 수명이 줄어든 만큼 섭종지에게 주는 것이고, 여인의 장과 위를 씻어 음란함을 제거하는 것이오.”

황정국이 되살아난 후, 섭종지에게 이야기를 하자 섭종지가 말했다. “이 일은 내 아내도 모르는데 뜻밖에 저승의 책에는 이미 기록이 됐군.” 나중에 섭종지는 과연 장수했고, 자손이 2대에 걸쳐 급제했다.

세간의 일은 이미 천지의 신령과 저승의 명관이 문서에 기록해놓았다. 옛말이 있다. “구함 없이 정도를 걸으면 하늘이 사람의 상태를 알고, 구함이 없어 심오해도 신은 사람의 모습을 본다. 사람의 마음속 말을 귀신이 들으며, 나쁜 짓이 가득하면 지옥이 사람의 혼을 거둔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 하늘로부터 귀한 아들을 얻다

비릉(毗陵)에 전(錢)씨 성을 가진 노인이 있었는데, 늘 착한 일을 했지만 아들이 없었다. 마을에 유(喻)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렸다가 관아에 잡혀가자 부인이 전 노인에게 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노인은 달라는 대로 주면서 차용증도 쓰지 않고 상대방을 구해줬다.

이후에 유 씨 부부가 딸을 데리고 와서 감사의 예를 올렸다. 전 노인의 아내가 보니 그의 딸이 매우 아름다워 첩으로 삼고 싶었고, 유 씨 부부도 동의했다. 그러자 전 노인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곤란을 이용하는 것은 어질지 않은 처사요. 내가 급히 상대방을 구제한 것은 선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지금 댁의 딸을 얻으려 하면 불의가 되오. 나는 차라리 아들이 없을지언정 이렇게 하고 싶지 않소.”

유 씨 부부가 듣고는 크게 감동해 전 노인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물러갔다. 그날 저녁 노인 아내의 꿈에 천신이 나타나 말했다. “당신의 남편이 사람을 구하는 착한 일을 했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도 여인을 탐하지 않아 음덕이 매우 중하니 너에게 아이를 내리겠다.” 이듬해에 부인이 과연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천사(天賜)로 지었다. 천사는 열여덟 살에 과거에 참가해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고 후에 어사가 됐다.

현대판 유하혜(柳下惠)

인터넷에 전해진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대학생은 집이 가난한 데다 외모가 평범했고, 성적도 보통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됐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그를 보러 왔다가 적극적으로 구애했는데, 그는 오히려 자신을 단속하며 혼전 성행위를 거절했다. 그때 이후로 여자친구는 그와 헤어졌다. 나중에 이 대학생은 선전(深圳)의 유명한 텔레비전 방송국에 취직했는데, 아주 우수한 사람이 온갖 방법을 써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으나 그는 그렇게 좋은 자리를 얻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여러 방면에서 모두 그렇게 우수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아주 순탄한 길을 걸었으니 많은 사람이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

옛말에 ‘색을 보고도 탐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큰 음덕을 쌓고 큰 복을 받는다’고 했다. 문외한은 구경하고 전문가는 비결을 찾는다. 수련인들은 이 대학생이 여자친구와 함께 선을 넘지 않아 신령으로부터 복을 받았고, 이렇게 좋은 운으로 표현된 것임을 안다.

사마광(司馬光: 북송의 학자-역주)은 가훈 속에 이런 말을 썼다. “돈을 모아 자손에게 물려줘도 자손이 반드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책을 모아 자손에게 물려줘도 자손이 반드시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남몰래 덕을 쌓아 자손만대를 위한 계책으로 삼음만 못하다.”

(역주: 유하혜는 춘추시대의 현자로, 노숙 중에 어느 한 여인이 얼어 죽을까 봐 자기 옷으로 감싸주고 따뜻하게 안아주었지만 어떠한 음심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

 

원문발표: 2020년 10월 23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23/4141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