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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문화】 뇌물 받고 무고한 사람을 죽여 자손에게 화가 미치다

【명혜망 2007년 2월 1일】 청나라 때 강음(江阴) 지역에 유생(俞生)이란 서생이 있었다. 그는 건륭 말년에 향시(鄕試 지방에서 치러지는 예비과거)에 참가했지만 아직 첫날 시험이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수험도구를 챙겨 떠날 준비를 했다. 옆방에 있던 고시생이 그가 고시 답안을 제출하지 않은 것을 알고는 이상하게 여기면서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유생은 아주 침통하고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의 부친은 평생 관리로 지냈는데 나중에 퇴직한 후에 집에 돌아왔다. 부친은 임종할 무렵 아들 4형제를 부른 후 울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평생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한 적이 없었지만 단지 모(某) 현의 현령으로 있을 때 2천금의 뇌물을 받고 2명의 죄수를 억울하게 죽인 적이 있다. 어제 명부(冥府)에 끌려가 심판을 받았는데 법에 따라 참형에 처해져야 하지만 다행히 조상 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공덕이 있어 한 명의 아들만 남길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5세대 동안 평생 빈천(貧賤)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이미 지옥의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만약 자손들 중에 망령되게 공명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럼 내 죄를 더하는 것이며 아울러 불효한 것이다. 너희 형제들은 모두 선량한 일을 많이 하거라!”

부친은 이 말을 끝내고 곧 사망했다. 나중에 유생의 형제들은 과연 모두 사망했고 오직 그만 살아남았다. 그는 향시에 2차례 참가했지만 매번 답안지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했다. 어제는 삼경에 막 정식 답안을 작성하려 했으나 갑자기 부친이 발을 열고 나타나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너는 덕을 쌓고 공을 세워 하늘의 뜻을 만회할 수 없다. 그럼에도 도리어 내 유언을 위반하고 나로 하여금 도처로 다니게 하면서 죄를 가중시키는구나.” 그리고는 손에 채워진 수갑으로 촛불을 끄고는 벼루를 뒤집어 다시 그의 답안지를 더럽혔다.

유생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향시에 세 번 낙방한 것은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다만 부친께서 죄를 범해 아직도 지옥에서 고통을 받으시는 것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저는 산속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부친의 망령을 구도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고 인과응보가 정말로 허언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방을 쓰던 서생 진부청(陈扶青)이 특별이 이 이야기를 적은 《귀산(归山)》이란 시를 적어 그에게 주었다.

문장발표 : 2007년 2월 1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문사만담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2/1/14762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