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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문화】 멸불(滅佛)정책으로 보응을 받은 북주(北周) 무제(武帝)

글/육문(陸文)

【명혜망 2006년 12월 1일】

중국 남북조 시기 북주(北周)의 무제(武帝)였던 우문옹(宇文邕 543-578)은 재위 시절 불교의 전파와 신앙을 금지한 적이 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사후에 곧장 지옥에 떨어졌고 판관에게 불려가 각종 모진 형벌을 받았다. 그는 생전에 북방의 맞수였던 북제(北齊)를 멸망시켜 수(隋)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주었다.

수 왕조에 들어와 수문제 개황(開皇) 11년(서기 598년)에 주문창(趙文昌)이란 사람이 갑자기 사망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심장과 머리에 온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조문창의 원신(元神)은 지옥에 가서 북주 무제인 우문옹을 만났다. 우문옹은 몸에 3중의 칼을 뒤집어 쓰고 아주 침통한 표정으로 고통스럽게 말했다. “그대는 아직 나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조문창이 대답했다. “저는 예전에 당신의 호위관으로 있으면서 밤낮 옆에서 모신 적이 있는데 제가 어찌 몰라보겠습니까?”

그러자 무제가 말했다. “그대는 예전에 나의 신하였고 또 잠시 이곳에 왔다 얼마 후면 다시 (이승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돌아가면 나를 대신해서 수문제에게 꼭 전해주게. ‘나는 생전에 저질렀던 각종 잘못들을 모두 빨리 상환할 수 있었지만 오직 불법(佛法)을 멸절시킨 이 죄만은 너무나 무거워서 다 갚지 못하고 아직까지 사면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수문제가 나를 위해 약간의 공덕을 쌓게 하여 내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조문창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이때 그의 시야에 거대한 똥구덩이 속에 한 사람이 잠겨 있는 것이 보였다. 조문창이 옆에서 그를 데려가는 사람에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길 “그는 진(秦)나라 대장군 백기(白起)인데 아직까지 죄를 다 갚지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조문창은 다시 살아났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북주 무제의 상황과 그의 요청을 적어 수문제에게 상주(上奏)했다. 수문제는 명령을 내려 천하 백성들에게 한 푼씩 돈을 걷게 하여 북주 무제를 위한 공덕을 쌓게 했으며 또 승려를 불러 『금강반야경』을 읽게 했다. 아울러 천하의 승려들에게 3일 동안 재를 치르며 공양을 올렸다. 또 사관(史官)에게 명해 이 일을 역사책에 기록하게 했는데 이런 내용들이 『법원주림(法苑珠林)』에 나온다.

여기서 수문제가 북주 무제의 죄업을 줄여주기 위해 백성들에게 돈을 내게 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여부는 논하지 않더라도 북주의 무제가 불법(佛法)을 파괴한 죄로 오랫동안 지옥에서 죄를 받았다는 것은 진실한 사실이다. 또 수문제가 불법을 공경하고 독실하게 믿었다는 것도 진실이다. 조문창이 지옥에서 보고 들은 것 역시 진실이다. 왜냐하면 수문제가 일찍이 사람을 시켜 이 사건을 수사(隋史)에 기록했고 실제로 문자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주 무제가 불법을 파괴한 멸불(滅佛) 정책 때문에 지옥에서 죄업을 치른 것이 진실한 사실이라면 그럼 오늘날의 중공은 집권 이래 문화대혁명에서 파룬궁 박해에 이르기까지 불도신(佛道神)을 비방하고 불도신(佛道神)에 대한 중국인들의 정념(正念)과 정신(正信)을 탄압해왔으니 그 죄가 실로 막대할 것이다.

사실 중공 사당의 죄업을 말하자면 산보다도 훨씬 크며 인류의 모든 사악을 집대성한다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오늘날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는 것(天滅中共)은 당연한 이치이다. 거꾸로 말해서 만약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지 않는다면 그럼 그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는 도리가 아주 분명해질 것이라고 본다.

◇ 참고자료 : 우문옹(宇文邕, 543년 ~ 578년)은 중국 남북조 시대 북주(北周)의 세 번째 황제(재위:560년 ~ 578년)로, 묘호는 고조(高祖)이며, 시호가 무제(武帝)이다.

서기 560년, 명제(明帝)를 시해한 우문호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다. 나중에 우문호를 제거하고 572년 친정을 시작했다. 무제는 당시 거대한 권력, 재산,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도교와 불교를 탄압해 재산을 몰수했고, 사찰의 승려와 도관의 도사들을 강제로 징병했다.

북주 무제의 멸불(滅佛)정책은 중국 역사상 존재했던 4차례 ‘삼무일종의 폐불’ 중에서 2번째에 해당한다. 무제는 575년 북방의 맞수였던 북제(北齊)를 공격해 577년 북제를 멸망시킨 뒤 북방을 통일했다. 남쪽에 있던 진(陳)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던 중 578년 병사했다.

문장발표 : 2006년 12월 1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2/1/14314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