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고향 견문: ‘진풍(真瘋)’

글/ 옌스(言實)

[밍후이왕] 아버지의 양어머니를 나는 양할머니라 불렀다. 양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아직 어렸고, 미소 짓는 할머니였던 것만 기억하고 있다. 다음은 우리 할머니가 양할머니에 대해 내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그대로 적은 것이다.

할머니가 들려주신 양할머니 이야기

“네 양할머니(아버지의 양어머니)를 나는 친정 항렬에 따라 형님이라고 부르지만, 내 어머니(아버지의 외할머니)보다도 몇 살이 더 많았다.

그 형님네는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시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형님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겉으로 보이는 옷은 잘 챙겨 입혔지만, 음식은 잘해주지 않았다. 형님의 시아버지는 1년 내내 채소밭에서 바빴고, 매일 집에 돌아가기 전에 집에서 식구들이 밥을 다 먹었다고 생각되면 그때야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는 동안 노인은 점점 더 야위어갔다. 사람들은 노인에게 왜 뼈만 남았냐고 물었다. 노인은 미소 지으며 “늙어서 마르는 건 돈으로도 막지 못해”라고 말했다. 아들이 노인에게 어디 불편한지 물어도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결혼한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한창 추울 때는 신부가 친정에 가서 한동안 머무는 농촌 풍속에 따라 나는 친정에 갔다. 방에 앉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원숭이를 데리고 재주부리는 사람이 온 것 같다고 하셨다. 문 앞에 결혼 대련을 보고 돈 달라고 온 것 같으니 안 좋은 말 나오기 전에 빨리 잔돈을 줘서 보내라고 하셨다.

빨간 봉투에서 잔돈을 꺼내는데 한 무리 사람이 웃고 떠들며 들어왔다. 나중에 보니 네 양할머니(이때 아직은 양할머니가 아니었음)와 구경꾼들이었다. 그때 나는 갓 결혼해서 아이가 없었고, 이후에 그녀가 네 아버지의 양어머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부엌으로 걸어가더니 마치 자기 집인 양, 그릇을 꺼내 항아리에서 찬물을 떠서 마셨다. 따라온 아이들은 웃으며 큰소리로 숫자를 셌다.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나는 어머니와 함께 주방에 들어가 봤다. 양할머니가 추운 날 찬물을 반 그릇이나 마신 것을 보고 우리는 충격받았다! 그녀는 물을 다 마신 후 그릇을 씻어 놓고, 어머니에게 절하면서 입으로 중얼거렸다. “숙모님, 숙모님의 물이 제 마음을 깨끗이 씻어줘서 감사합니다. 제가 시아버님께 몹쓸 짓을 해서 하늘의 신이 저를 벌했습니다. 신은 제게 마을 모든 집의 찬물을 마시고 마음을 맑게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면 일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저는 무릎 꿇고 있겠습니다.”

어머니가 겁에 질려 벌벌 떨며 감히 말하지 못하자 네 양할머니는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같이 온 아이들이 소리쳤다. “어서 용서한다고 말씀하시면 일어나요! 집마다 가서 이렇게 했어요. 동네 반 이상을 돌았어요!” 나는 황급히 “용서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생이 말하면 안 돼요. 숙모님이 말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얼른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빨리 일어나세요!”라고 말하니 그녀는 절을 한 번 하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다른 집에 가서 찬물을 마시고 마음을 깨끗이 씻고 절해야 한다며 가버렸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맨발이고 머리도 옛날 양식으로 빗었으며, 거친 흰색 바지와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걸 보았다. 그때는 엄동설한이었다. 어른과 아이 모두 밖으로 세 겹, 안으로 세 겹씩 입었는데 그녀만 홑겹 옷을 입고 집마다 다니며 찬물을 마시고 있었다. 어머니가 서둘러 솜옷을 가져다 걸쳐주니 그녀는 뿌리치면서 큰소리로 필요 없다고 말했다. 신이 자기에게 천벌을 내려 따뜻하게 입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뒤따라온 사람들이 알려줬는데, 가족이 그녀를 병원에 보내려 해도 남자 몇이서도 잡지를 못 해 이렇게 내버려 두고 있다고 했다.

그날 그녀는 맨발에 홑옷으로 온 마을을 다니며 한 집도 빠지지 않고 가서 찬물을 반 그릇씩 마시며 절을 했다. 그녀가 마지막 집에서 나왔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그녀는 거리에서 외쳤다. “요리하러 집에 갈 시간이네요. 오늘은 아버님을 위해 칼국수를 만들고 달걀 두 개를 같이 삶을 거예요.”

구경꾼들은 그녀가 집에 가자마자 손을 씻고 면을 반죽해 국수를 만들었고, 삶을 때 달걀 2개를 넣었으며, 면이 다 되자 두 손으로 시아버지께 갖다 드렸다고 소문을 전했다.

가족들은 그녀가 여전히 요리를 재빠르게 하는 걸 보며 더는 걱정하지 않고 모두 식사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음식을 먹었다. 이는 자기가 예전에 시아버님께 남은 음식을 드시게 한 잘못을 갚는 거라고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그녀는 또 집을 뛰쳐나갔다. 날이 어두워져 가족들이 걱정돼서 따라 나가니 그녀는 문 안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겨울밤은 어둡고 추웠다. 구경꾼들은 호기심이 사라져 집에 밥 먹으러 가고 그녀를 따라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음날 이웃들은 그녀가 건초 더미에서 잔 흔적을 발견했다. 며칠 후, 사람들은 그녀가 밤에 실컷 돌아다니다가 건초 더미에서 잠잔다는 걸 알게 됐다. 양할머니는 해가 뜨자마자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 마당 청소도 하고 요리도 했는데, 일을 매우 잘했다.

농촌은 겨울에 소, 양, 돼지를 훔치는 도둑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밤에 흰옷을 입고 거리를 다녔기 때문에 도둑이 감히 마을로 들어오지 못했다.

봄이 되자 농사일이 시작됐다. 네 양할머니는 인분을 퍼 나르고 괭이로 땅을 팠다. 더러운 일은 하지 않던 그녀가 서둘러 일하며 자기 집 일이건 남의 집 일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일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는데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할 일이 없으면 그녀는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한여름의 땡볕과 한겨울의 눈보라 속에서도, 날씨가 나쁠수록 더 밖으로 뛰쳐나갔다. 길에 돌이나 벽돌 조각이 있으면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 치웠다. 거지가 오면 집에 가서 마른 음식을 가져와서 먹으라고 줬고, 달라는 대로 줬다.

이 정도로 그친다면 매우 미쳤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은 그보다 더 심했다. 그녀는 겨울에 발이 얼어 갈라져도 신발도 신지 않고 눈길에서 걸어 다니며 두 줄의 핏자국을 남겨놓았다. 바람 불고 눈이 오는 날, 돌처럼 얼어붙은 길가의 당나귀 똥을 주워 먹었는데, 아무도 빼앗지 못했다. 먹으면서 “완자 튀김, 고소해!”라고 말했다. 다른 집의 문밖에 매어 놓은 노새가 오줌을 싸는 모습을 보고는 달려가서 손으로 받아 마셨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가엾게 여겨 감히 노새나 말을 밖에 묶어두지 못했다.

가족은 마음이 괴롭고 슬퍼서 그녀가 외출하지 못하도록 방에 가두었다. 하지만 자물쇠를 어떻게 열었는지 문을 잠근 사람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는 이미 문밖에 서 있었다. 두꺼운 밧줄로도 묶어 놓을 수 없었으며 쇠사슬도 무용지물이었다. 명절에 좋은 음식이 많아 그녀에게 닭 다리를 하나 주면 바로 옆집 개에게 줬다.

그녀가 이렇게 미쳤지만, 가끔 말할 때 보면 바보가 아니었다. 설날에는 똑바로 앉아 두 아들이 절하기를 기다렸다가 아들이 절을 마치면 자기가 예전에 했던 것 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녀는 매일 그 흰 바지와 흰 블라우스를 입었다. 아무도 그녀가 씻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항상 흰색이었고 더러운 자국이 전혀 없었다. 일하지 않고 매일 집에 앉아 있으면 옷이 더러워지지 않아도 별로 이상하지 않지만, 그녀는 온갖 더러운 일을 다 했다.

그렇게 꼬박 3년을 미쳤다. 3년 전 미치기 시작했던 바로 그날 오후가 되자, 그녀는 단번에 나았다. 가족들이 보니 그녀는 설거지를 끝내고도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았다. 물을 끓여 씻고 예전의 옷으로 갈아입고는 양말과 신발을 신었다. 또 혼자 머리를 자르고 빗질도 원래 하던 대로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미친 짓을 하지 않으니, 노인네가 누린 복도 끝나서 또 남은 음식을 먹게 되겠네” 하고 수군댔다. 그러나 그녀는 시아버지를 자기가 미쳤을 때처럼 잘 대해 드렸다. 시아버지께 효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다.

어떤 눈치 없는 사람이 그녀에게 “예전에 당나귀 똥 갉아먹고 말 오줌 마셨던 것을 기억하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그저 입을 오므리고 웃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누가 이렇게 결점을 들추면 진작에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네 아버지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병에 걸려 나는 너무나 두려웠다. 시아버지(너의 할아버지)가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를 불러 병을 보였는데, 의사는 약 처방을 해주지 않고 “아직 젊으니 하나 더 낳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시아버지는 우리 모자를 어머니 집으로 보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전에 미쳤던 바로 그 형님이 오셨다. 그녀는 우리가 말하기도 전에 아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아기에게 저를 양어머니로 받아들이게 하세요.” 그녀가 말하면서 두 손으로 아기의 머리를 잡고 후후후하고 세 번 부니 아기가 울었다. 우리 부부는 이제 아기가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아이의 양어머니를 하라고 얼른 대답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저를 싫어하지 마세요. 저는 이 아이가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을 때까지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아기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아기는 온몸에 땀이 났고, 자고 일어나서는 병이 다 나았다.

나중에 네 아버지가 공부하러 도시로 갔다가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시골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자주 비판 모임에 나오라고 해서 네 아버지는 계속 나의 어머니(아버지의 외할머니) 집에 숨어 있어야 했다.

어느 날 밤, 너의 양할머니가 집에 와서 네 아버지에게 당부했다. “3일 후에 어떤 사람이 사원을 부술 텐데, 절대 가지 마라!” 네 아버지가 거기 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때 절을 부순 사람들은 집에 돌아간 다음 모두 머리가 아파 벽에 부딪혔고, 앞장서서 이끌던 지도자는 어디선가 달려온 미친개에게 물려 열흘도 안 돼 죽어버렸다.

네 양할머니는 사원을 부수고 사람을 잡아 거리에 끌고 다니는 일에 손자 손녀들이 가담하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정부에서는 대학 입학시험을 허용했고, 그녀의 손자 손녀들은 모두 도시에 입학했다.

그해 6월 2일, 관례에 따라 그해의 새 밀로 만든 만두로 네 양할머니를 대접해야 했다.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양할머니에게 인사하러 갔다. 그때 너는 너무 장난꾸러기라서 데리고 가지 않고 할머니에게 봐달라고 부탁했다. 네 부모가 도착하니 너의 양할머니가 “양손자를 데리고 오거라. 양손자가 오지 않으면 이 집에 들어오지 마라”라고 말해, 네 아버지가 다시 돌아와서 너를 안고 갔다.”

이상은 우리 할머니가 직접 들려주신 이야기다.

내가 기억하는 양할머니의 모습

그날 나는 진흙탕에서 놀고 있다가 아버지에게 불려가 집에 가서 손과 얼굴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부모님이 나를 자전거에 태워 누구네 집으로 데리고 갔다. 내가 문을 열자 한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양할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할머니는 아주 달콤한 복숭아를 주셨고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복이 많다”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날 점심에 양할머니는 물만두 한 그릇을 드셨다. 어머니가 “연세가 있으셔도 식사를 잘하시고 건강하시면 됩니다”라고 공손하게 말씀드렸다. 그 집 며느리도 “몇 개 더 드세요. 호박·야채 만두라 소화가 잘됩니다”라고 말했다. 양할머니는 배부르다며 더 먹지 않겠다고 하셨다.

집에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양할머니가 그날 정오에 만두를 드시고 난 뒤 식사를 중단하고 매 끼니를 끊인 물 한 공기만 마신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래서 나의 부모님과 할머니는 또 나를 데리고 양할머니를 뵈러 갔다. 그날 양할머니는 마당의 포도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가, 우리가 온 것을 보고 일어서서 우리를 맞이하셨다.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는 지난번에 뵈었을 때랑 차이가 없었고 얼굴에도 살이 빠지지 않았다. 점심 식사하기 전, 양할머니는 우리에게 이제 들어가야겠다고 부채를 흔들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양할머니의 모습이다.

할머니는 양할머니의 걸음걸이가 빠르다고 하셨다. 추석에는 손자 내외들이 아이들과 함께 명절을 맞아 집에 왔고, 도시에 있는 손녀 가족들도 찾아왔다. 8월 15일 밤, 양할머니는 마당에 앉아 가족들이 수박 먹는 것을 지켜보셨다. 주무시기 전에는 증손자들을 한 명씩 다 안아보셨다.

이튿날 아침, 의사인 손자며느리가 할머니가 일어나셨는지 방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방 안에 개어 놓은 이불에 기댄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손자며느리가 “할머니, 잠드셨어요?”라고 말하며 앞으로 걸어가 보고서야 노인이 이미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아버지의 양어머니, 즉 나의 양할머니를 나는 잊을 수 없다. 대학 다닐 때 도서관에 가서 여러 번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다. 한 사람이 아무런 전조 없이 정신이 이상하다가 또 아무런 전조 없이 스스로 치유되는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러나 아무런 설명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의 내용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속 시원히 알게 됐다!

나는 양할머니가 ‘진풍’의 한 사례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양할머니 이야기는 현지에서 기담으로 전해지지만, 그때는 정보 전파 방식이 낙후해서 언론에서도 보도한 적이 없었다. 설령 유사한 전설을 들어도 믿는 사람이 몇 사람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런 분을 직접 만났다는 것과 또 내가 늘 의아해하던 문제에 대한 답을 파룬따파(法輪大法)에서 찾은 것은 정말로 행운이다. 물론 불법(佛法)은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지 일반인에게 의문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사 만물은 모두 불법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박대정심(博大精深)과 원용불패(圓容不敗)의 체현일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얕은 깨달음이니 약간의 참고로 삼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7월 25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5/4233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