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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있게 양보하는 풍모

[밍후이왕] 최근 밍후이왕에서는 리훙쯔 선생님의 설법반에 참가한 한 수련생의 회억 문장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문장에서 리훙쯔 선생님이 청두(成都)에서 파룬궁학습반을 연 정황을 이야기했다. 중간에는 이런 한 단락이 있었다.

“청두에서 학습반을 여는 기간에 첫 시작부터 결속되는 날까지 매일 모두 신수련생이 학습반에 참가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뒤에 앉고 또 자신의 집에서 가져온 각종 꽃과 샘물을 강연대 앞에 놓았다(기타 공법은 ‘접신식[接信息]’이라고 부름). 그들은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점차적으로 앞으로 이동했다. 사부님의 설법을 교란할까 봐 구이양(貴陽)의 수련생이 그들을 제지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자비하시어 구이양의 수련생을 불러 그만두게 하고 그들이 앞으로 와서 앉게 했다. 처음에 대법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사부님의 설법반을 신청하지 않고 단지 와서 구경하려 했다. 첫 강의가 끝난 후 원래 신청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모두 신청을 했고 정식적으로 학습반에 참가했다. 사부님의 설법을 열심히 들으면서 그들은 모두 원래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어 진정으로 사람을 구도하시며 그들이 상상하던 것처럼 무슨 접신식 병치료 등등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가 이야기한 이 장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파룬궁의 학습반 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사물을 만났을 때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가게 되고 이 한 점을 매우 진실하게 기록했는데 확실히 이러하다.

대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리훙쯔 선생님께서 전수하신 법리가 진정한 불법이고 또한 천년이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됐다. 이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친한 친척과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여 리 선생님의 설법반에 참가하게 하는 동시에 그들은 쩐싼런(眞善忍)에 대해 더 깊은 이해가 있게 됐다. 眞善忍을 이야기한다면 아직 파룬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자리를 다툴 수 없고 좋은 자리가 있다고 해도 다른 인연 있는 사람에게 양보하는데 안 그러면 무슨 선(善)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까지도 남들과 자리를 다툰다면 또 무슨 참을 인(忍)이 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리훙쯔 선생님께서 그 당시 설법하던 학습반에서 늘 나타나던 상황이다. 처음에 모두들 앞으로 밀면서 좋은 자리를 찾으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너도나도 좋은 자리를 새로 온 사람들에게 양보한다.

물론 수련이 심도 있게 들어가면서 파룬궁수련생의 수련이 성숙되면서 예의있게 양보하는 풍모도 더욱 사람을 감동시켰다. 해외에 거주하는 어느 한 파룬궁수련생은 그 당시 대륙에서 사부님을 따라 곳곳을 다니면서 법을 들었는데 그녀는 ‘사부님을 따라 만리길’이란 글을 썼다. 이 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때 지린대학의 밍팡궁에서 학습반을 열었다. 외지에서 온 수련생이 많아서 선생님은 오전 9∼11시,저녁 7∼9시까지 하루에 두 번씩 강의했다. 오전 표는 일찍이 구입했는데 저녁 표는 살 방법이 없었다. 첫날 방과 후 숙소에 돌아와 있으니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우리는 강의를 들으려 온 것이다. 선생님이 저녁에 강의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숙소에 있자니 속이 정말 답답했다. 이튿날 강의가 끝난 다음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강당 밖의 풀밭에서 저녁 강의시간이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 모두 문 입구에 서서 표를 물리는 것을 사서 들어가기를 원했다. 시간은 일분 일초 지나갔다. 우리는 무척 조바심 나게 기다렸다. 문뜩 한 수련생이 누가 표를 구하느냐고 했다. 나는 얼른 표를 받고 그에게 돈을 주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강당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고 할 무렵 익숙한 노 수련생이 멀리서 달려오면서 외쳤다. “당신을 찾느라고 여기 저기를 뛰어다녔어요.” 나는 생각했다. ‘아이고, 이 표를 내가 쓸 수 없겠구나.’ 짐작대로 그는 칭하이(靑海)에서 한 수련생이 왔는데 처음으로 강의를 들었지만 표준어(普通話)을 잘 몰라 한번 더 들으려고 하니 나의 표를 양보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칭하이에서 제일 처음으로 참가했다고 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표를 주고 자리를 떠나 또다시 큰 문 입구에 가서 서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들어갔고 강의는 시작 된지 오래 됐다. 우리 표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문 입구에 서 있었다. 이 때 강당의 관리자가 강당 정문을 닫았다. 작은 문으로 드문드문 사람들이 드나든다. 우리는 모두 그 작은 문으로 몰려갔다. 작은 문과 멀지 않은 곳에 한 젊은이가 서 있다. 방금도 나는 그곳에 묵묵히 서 있는 그를 보았었다. 내가 그의 옆을 지날 때 그는 갑자기 표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멍해 있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표를 주고 나는 손에 움켜쥐고 있던 그 칭하이 사람이 준 돈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또 표가 있게 됐다! 옆에서 부러워하는 눈길을 보고 나는 미안한 감을 느끼고 옆에 있는 늘 학습반을 따라 다니는 정저우(鄭州)의 한 젊은이를 보고 들어가라고 했다. 그는 이것은 ‘당신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니 당신이 들어가세요’라고 했다. 그때 밍팡궁 지하실에서는 무도를 했는데 무도 표를 사 가지고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강당으로 가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으나 누구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 톈진(天津)의 한 젊은이는 우리가 이런 속임수를 써서 들어가서 강의를 듣는다 하여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들어가서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강당 문을 지키는 사람이 수련생들의 간절하고 끈질긴 모양을 보고 감동해 문을 열어 모든 사람들을 들여보냈다고 했다.”

이 문장을 나는 여러 번 읽어보았고 매번 읽을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대법제자의 불법에 대해 진심으로 우러러 향하는 모습에 눈물을 금할 수 없으며 동시에 어떠한 감춤 없이 예의 있게 양보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어느 누가 리훙쯔선생님의 설법을 직접 듣고 싶지 않겠는가? 티켓을 양보한 사람을 포함해 그들은 필경 노수련생이고 이미 선생님의 설법을 들었다. 선생님의 설법을 들을 기회가 없거나 그다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타지 수련생, 그들이 비로소 진정으로 들을 필요가 있었다.

불법이 널리 전해지고 사람마음이 자연스럽게 바로 잡혔다. 만년이 지나가도 만나기 힘든 대법을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리를 마다하고 리훙쯔 선생님을 따라 곳곳을 다니며 설법을 들었던가. 수천 명이 함께 모여서 설법을 들으면 비좁은가? 아니다. 진수자의 예의 있는 양보의 풍모는 이미 그들이 구성한 수련 분위기에서 형성됐다. 그들이 서로 돕고 예의 있게 양보함은 정말로 불법이 세상에 전해질 때 사람마음이 선을 향하는 진실한 상황이다. 우리는 작가가 이야기한 파룬궁이 중국에서 마지막 학습반을 개최한 성황을 보도록 하자. 진정한 수련인이 체현해낸 고상한 풍모를 보도록 하자.

“몇 달 후 12월 21일에 광저우에서 제5기 학습반이 열렸다. 이것은 중국에서 마지막 한 차례였다. 그때는 이미 파룬궁이 아주 넓게 전파됐고 또 아주 빨리 전파됐다. 거기에다 몇 달 동안 학습반을 꾸리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은 손꼽으며 학습반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렸다. 또 마지막 기라고 하니 동북, 신장 등 전국 각지에서 모두 찾아 왔으며 도를 얻기 위한 이 생명 중의 가장 큰 일에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아주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어떤 이들은 너무 일찍 와서 호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강의 기간의 생활비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식사비를 2위안씩 썼다. 광저우에서는 2위안을 가지고는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베이징 수련생들은 자기 돈을 내놓아 매 사람에게 100위안씩 나눠주었다. 동북의 한 여성은 회사가 생산을 중지해 수입이 없기에 채소를 팔아 번 돈으로 강의 들으려 왔으며 얼마 되지 안는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도왔다. 또 이불 짐을 둘러메고 여행의 괴로움을 맞보면서 동냥하다시피 학습반에 온 형제도 있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광저우 제5기 학습반에 5천 여명이 참가했다는데 아마도 더욱 많을 것이다. 광둥성 기공 협회에서는 일찍이 표를 다 팔았다. 내 표는 광저우에 있는 친척에게 부탁해 10월에 산 것이다. 이후에 온 수련생들은 표를 살 수 없었다. 첫날 강의 시간이 아직 멀었는데 체육관 앞 광장에는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500여명이 표가 없다고 했는데 체육관 직원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사람을 초과할 수 없으며 통로에는 사람이 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일부 수련생들은 신 수련생들에게 표를 양보했다. 표를 교환할 때 쌍방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을 머금었고 곁에 있는 사람들도 격동의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강의가 시작됐다. 표가 없는 수련생들은 체육관 문 앞 광장에서 계속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포기할 줄 모르는 노력은 체육관 직원을 감동시켰다. 그들은 전례를 타파하고 옆 칸 문을 열고 동시에 녹화하는 텔레비전을 연결해 밖에 있는 모든 수련생들이 들어 와서 강의를 듣게 했다.”

이는 파룬궁이 중국에서 마지막으로 학습반을 열 때 나타난 성황이다. 이때 파룬궁은 중국에서 전해진 지 겨우 2년 넘었다. 2년이란 시간은 짧지만 이 2년 동안 직접 불법을 들은 사람은 너무나 소중해 보인다. 이는 생명의 영원한 기대이고 이는 전반 우주의 모든 생명들이 모두 경탄하고 감탄하는 일이다. 그들은 얻었으며 똑같이 불법의 아름다움을 그들의 몸에서 체현했다.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 있게 양보하는 풍모는 그렇게도 순정하게 수련인 몸에서 진실하게 체현됐다.

문장완성: 2010년 07월02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7/3/22639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