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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전면적인 박해를 제지하려 했던 노력

글 / 허위안춘(何遠村)

【밍후이왕 2010년 4월 16일】 1999년 ‘4.25’는 만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청원을 한 사건이다. 이것은 정부에 파룬궁을 알리고 파룬궁 수련자가 어떤 사람이고 도대체 뭘 하려는 사람들인지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4.25’사건은 탄압 당할 원인이 아니며 전면적인 박해를 제지하려 한 것으로서 일부 파룬궁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청원을 하러 간 규모가 비교적 큰 노력이었다.

‘4.25’에 대하여 중공은 선전매체를 통하여 중요한 문제를 감추었다. 바로 파룬궁 수련생이 무엇 때문에 청원하러 갔는지를 덮어 감추었다.

‘4.25’사건에서 파룬궁 수련생은 신방반(信訪辦, 역주 – 민원실) [출처] 공산사령(共産邪靈)은 중국사람을 죄악의 심연 속으로 끌어넣었다 |작성자 don0860

관리와 대화할 때 세 가지 요구를 제출했다. 1) 이틀 전에 붙잡힌 톈진(天津) 파룬궁 수련생을 석방할 것. 2) 파룬궁에 공정하고 합법적인 수련환경을 줄 것. 3) 파룬궁 서적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하여 출판될 것을 허락할 것.

이 세 가지 요구에서 보듯이 ‘4.25’사건 전부터 이미 파룬궁의 수련환경은 구체적인 기관, 예를 들면 중공 선전부, 공안부에 의해 교란을 크게 받았다. 파룬궁에 대한 탄압의 서막이 이미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만일 파룬궁 수련생들이 일어서서 수련환경을 수호하지 않는다면 사태의 발전은 더욱 신속히 악화되어 갈 뿐이었다.

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청원 갔는데 많다고 할 수 있는가? 그때 파룬궁 수련생의 숫자는 수천만에 달했다. 너도 나도 간다면 만 명은 쉬운 숫자이다. 만일 조직하여 움직였다면 아마 몇 십만, 몇 백만 심지어 더욱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청원하러 갔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주류사회 민중들의 요구가 있었다면 이번의 사악한 박해는 정말로 발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생은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파룬궁 수련은 완전히 자원적이기 때문이다. 연공을 하고 안하고는 자유이며 가입할 필요가 없고 명부가 없으며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다. 지금껏 그 무슨 엄밀한 조직이 없었다.

파룬궁 수련생의 상당 부분은 문화대혁명을 거쳤다. 많은 사람은 퇴직했고 젊은이라면 ‘6.4’학생운동을 보아왔다. 폭정의 풍우 속에서 걸어온 한 군체라 할 수 있으며 그들은 공산당과 교섭하는 후과가 어떠한지는 너무나 똑똑히 알고 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원인으로 그들이 걸어 나올 수 있었을까?

이치는 아주 간단하다. 파룬궁 수련생은 수련을 통하여 내심으로부터 좋은 사람이 되려 했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다. 많은 수련생은 오직 좋은 사람이 되려 했으니 당연히 정치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렇게 소박한 마음가짐이었고 이로써 파룬궁 수련생들은 몇 십 년 간 공산당 및 그 정치운동에 길들여진 공포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당당하게 베이징에 청원하러 갈 수 있었다. 또한 당국에 그들에게 하나의 수련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사태의 진일보의 악화를 제지하려 했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중공독재통치의 사회에서 특히 장쩌민 일당의 소인배들이 집권하고 있는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는 환경을 요구하는 것도 일종 사치스러움이었다.

오늘날 중국사회의 바탕에서 믿음과 성실은 위기에 처해있다. 십여 년간 중국사회의 도덕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국민의 다수는 돈을 버는 것을 신앙으로 여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여 가져온 결과이다. 신앙은 민감한 화제로 됐고 표면으로 볼 때 절의 행사와 향을 피우고 부처님을 배알하는 것이 아주 개방적이고 유행으로 된 것 같으나 그것은 완전히 종교의 본질을 변이시켰다.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를 제지하고 국민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주며 진선인(眞善忍)을 신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야말로 민족의 출로이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16일
문장분류: 수련자 평론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4/16/2216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