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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아래에서의 존엄

(명혜통신원 할빈 보도) 2차 세계대전 수용소를 말하게 되면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여위다 못해 뼈만 앙상하고 눈빛이 어둡고, 온 얼굴에 비통함을 담은 유태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모두 머리를 삭발하고, 똑같이 줄무늬가 있는 옷 ㅡ 죄수복을 입었다. 그곳에서는 줄무늬가 마귀의 옷감으로 되었고, 그것은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 죄수들의 치욕의 상징과 특수신분의 기호였으며,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든 존엄과 희망을 박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을 짓밟고 인성을 말살한 그 한 단락의 역사가 지나감에 따라 줄무늬는 다시는 선량하고 무고한 자의 굴욕적인 상징으로 되지 않은 듯 하다. 하지만 오늘 중공체제하에서의 높은 담장 안에서 줄무늬는 또 다시 인류의 존엄을 더럽히는데 이용되고, 역사에 발생했던 일체가 또 다시 지금 바로 재연되고 있다. 며칠간, 명혜망에는 대경 감옥에 불법 수감된 무고한 파룬궁 수련자들이 죄수복 입기를 거절한 이유로 박해당한 대량의 사실들이 오르고 있다.

대경감옥의 부 감옥장 이유룡 (李維龍)은 직권을 남용하여 여러 번 단식과 물매를 들이대는 수단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여 이미 여러 명의 대법제자가 박해로 치사 당했다. 근래 그는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가 더욱 창궐하여 2009년 7월 8일 그가 부 감옥장으로 임명된 후 각 감옥구에 명령을 내렸는바, 파룬궁 수련생이 죄수복을 입지 않을 경우 밥을 주지 않았으며 이미 여러 명의 대법제자가 죄수복 입기를 거부하여 물매를 맞았다.

7월11일, 계시 대법제자 구학지 (邱學志)가 굶주림으로 혼미가 와서 병원에 가 응급처치를 받게 되었다. 7월12일, 대법제자 양공희(楊功喜)가 악인 몽둥이에 맞아 온 몸에 상처인데 밖에 버려져 군중이 구경하게 하였다. 13일, 죄수복을 입지 않은 4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혹독한 매를 맞았다. 14일엔 대법제자 장흥업이 매를 맞아 갈비뼈가 부러졌고, 수쇠와 족쇠를 채운 채로 뙤약볕에 있게 하여 장흥업은 거의 질식할 정도였다. 악경들은 여러 번 대법제자의 옷을 태워 버렸거나 모든 옷에 ‘범’자를 찍었다. 대법제자들은 침대 시트를 쓰고 있을지언정 죄수복을 입지 않는 것을 견지 하였다. 지금 연속 끊임없이 구타하고 음식을 주지 않아 그 안에 있는 대법제자들은 아주 위급한 상태에 있다.

뉴튼은 말하였다. “나는 천체 운행 궤도를 계산할 수 있지만 인성의 광적인 것은 계산할 방법이 없다.” 만약 인성이 사라질 정도로 광적이라면 그건 짐승이다. 들은 바에 따르면 음식을 주지 않는 박해 수단을 적극 실시했던 이유룡은 기본적으로 감옥에 들어온 사람이면 곧바로 때린다고 하는데 이미 몇 백 명에 달하며, 매 번 사람을 때리고 난 후이면 변태적으로 크게 웃어댄다고 한다. 이같이 미친 병태는 사실 바로 중공 체제하에 길들여진, 야만적이고, 잔혹하며 공포적인 잔학한 성질이다.

이러한 죄악에 직면하여, 파룬궁 수련자들은 최소한의 생존권리 ㅡ 밥 먹는 권리마저 박탈당한 정황에서도 의연히 죄수복을 입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억지로 강요한 죄와 벌에 대한 부정이며, 그것은 인성 존엄에 대한 수호이다. 대경감옥에 수감된 손전빈(孫殿斌)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범인이 아닌데 어찌 범인의 표지를 승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이 한 마디 소박한 말은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있다.

오늘 중공의 높은 담장 안의 죄행은 바로 인류 문명에 대한 교살이고, 또한 생명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나 어떠한 죄악이든 모두 바른 믿음의 역량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생명위험에 직면한 최저선의 박해가운데서 대법제자는 의연히 무사무원(無私無怨)하게 세인의 양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역사의 이 시각에 많은 대법제자의 친구들이 나와서 공개적으로 국제 사회에 중공 감옥의 악행을 공소하고 강권에게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걸어 나와 박해를 제지할 것이며, 아울러 전민 반박해의 정의의 흐름으로 회합될 것이라고 믿는다.

2009년 09월 4일

제 126기 창상역정판(滄桑歷程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