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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거나 나쁜 “호신부”에 대하여

[명혜망 2008년 5월 8일] (명혜기자 쉐리, 우스징 취재 보도) 중국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호신부는 생소한 것이 아니다. 옥으로 다듬은 검동수리이든 끈으로 엮은 수공예품이든, 걸고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호신부는 언제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중국 고서에 이르기를 매 하나의 물건마다에 모두 그의 생명과 영성이 있다고 했다. 가령 정말로 이렇다면 그럼 몸에 달고 다니는 호신부나 집에 오랫동안 모아놓은 일부 물건, 심지어 서적, 기념품같은 것들이 사람에 대한 영향이 좋은지 나쁜지를 어떻게 구분하겠는가? 이 문제에 관하여 명혜기자는 파룬궁 수련생 취정(曲峥)박사를 취재하여 과학적인 각도로부터 주위 환경중의 일부 물건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 말해주기를 요청하였다.

기자 : 취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 몇 년 동안 중국대륙에는 일종의 현상이 갈수록 흔하게 보이는데 바로 어떤 사람, 특히 어떤 택시 기사들이 자기의 평안을 보우하기 위하여, 혹은 좋은 운을 바라서 일부 불교나 도교중의 초상화나 조각상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혹은 중공 당괴의 초상을 차에 달거나, 중공의 책을 보배처럼 집에 놓아두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취정 : 이런 현상은 고금중외에 줄곧 모두 있었습니다. 중국 고대의 많은 사람들은 불상, 보살상을 옥에다 새겨 몸에 지니고 다녔고 서방에서도 성모마리아 상이나 예수의 상을 목걸이로 만들어 몸에 걸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사회에 나타난 중공 당괴 모택동의 상을 호신부로 하는 이런 것은 중국 고대와 서방에서 신불의 상을 호신부로 하는 것과는 매우 크게 다릅니다. 그러므로 만약 작용이 있다고 말한다면 일으키는 작용도 반드시 같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 : 그렇다면 도대체 호신부가 작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이런 일종의 생각에서 나온 것 같은데 바로 중국 속담, “하늘에는 예상치 못할 풍운(風雲)이 있고, 사람에게는 조석의 화복(禍福)이 있다.” 라는 것으로서 바로 “있는 일이라고 믿을지언정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도 이러한 호신부를 걸었을 것인데, 그럼 그것은 일종의 심리작용일까요? 아니면 확실하게 무엇인가를 개변할 수 있는것일까요?

취정 : 이건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는가를 보아야 하며, 또한 어떠한 호신부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본인에게 신앙이 있어 그가 호신부를 건 것은 신불이 보우해줄 것을 바라서이며, 그는 선에는 선한 보답, 악에는 악한 보답이 있다는 것을 믿고, 오직 자신이 선을 행해야만 비로소 복을 얻을 수 있고, 비로소 신불이 그를 보우해 준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부 사람들은 본인이 신과 부처를 신앙하지 않으면서도 평안을 바라고, 혹은 어떤 사람은 자신이 벼슬하고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믿으면 영험하고 믿지 않으면 영험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다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정한 도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금 제기한 첫 번째 사람을 예를 들어 말한다면, 그는 자신이 선을 행하면 복을 얻을 수 있으며, 신과 부처는 그를 보우해줄 것이란 사실을 믿습니다. 그가 친히 시험한다면 곧 몸소 겪은 체험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실천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것이 영험한지 안한지도 모를 것입니다.

기자 : 당신의 이것은 이론상으로부터 말씀한 것입니다.그렇다면 사람의 의념이 확실히 주변환경을 영향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과학적인 실험은 없습니까? 우리는 많은 때에 주변환경이 자신의 기분에 영향 준다는 것을 느끼군 하지만 자기 본인의 의념이 주변 사람 혹은 물건에 대해 일으키는 작용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취정 : 여기에서 나는 먼저 한 가지 실험을 소개하려 합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들었을 것입니다. 바로 일본에 과학가 쟝번성(江本胜) 박사가 있었는데, 그는 일련의 물 결정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는 일부 문자를 물컵 위에 붙여놓은 다음, 이 물로 결정시험(结晶试验)을 하였는데 이런 문자에는 어떤 것은 “악마”라고 썼고, 어떤 것은 “선량”, “감사”, “사랑” 등등이라고 써 놓습니다. 그는 또 부동한 이름을 붙여 놓았지요. 이를테면 “히틀러” 혹은 “악마” 등 나쁜 글자를 붙인 물은 거의 결정을 이룰 수 없었고 결정 모양도 갈라지고 깨여져 아주 보기 흉했어요. 그러나 “선량”, “사랑”과 같은 글자를 붙인 물은 아주 아름다운 결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이런 실험을 아주 많이 하였고, 다른 과학자도 이런 현상을 연구하였습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아주 큰 계발을 주었습니다. 바로 부동한 인명, 부동한 문자, 부동한 정보, 부동한 의념은 모두 물질에 대해 부동한 작용을 산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체의 70%는 물입니다. 가령 당신이 오늘 “히틀러”라고 쓴 호신부를 걸었다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당신 몸의 분자 결구에는 꼭 아주 큰 변화가 발생할 것입니다.

기자 : 보아하니 이름 자체는 우리가 보는 표면상의 몇 개의 획에 그치는 것이 아니군요. 이 이름이 대표한 일부 정보도 사람에 대하여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정 : 우리는 오늘 중국 대륙의 일부 사람들이 “모택동” 초상을 달고 다니거나 보존하고 있는데 대해 말하고자 하는데, 그럼 그것은 사람에 대해 어떤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가. 우리는 모택동과 중공이 모두 무슨 짓을 했는가를 봅시다. 우리는 먼저 반혁명 진압, 3반, 5반, 문화대혁명, 6.4로부터 파룬궁 박해에 이르기까지 거의 8천 만에 달하는 중국인들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했고, 그들이 진 피빚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데 대해선 말하지 말고 다만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박해만 말해 봅시다. 우리는 오늘 중국사회 도덕이 아주 심하게 무너진 것을 보았지요. 기억력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입니다. 몇 십 년 전의 중국 사회는 오늘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오늘 전반 사회 도덕은 아주 심하게 미끄러져 내려갔는데 근본원인이라면 전반 전통문화의 근기, 사회 문화의 근기가 파괴당했기 때문이며 이 역시 중공의 통치로 인해 조성된 것입니다. 특히 문화대혁명과 신앙에 대한 박해, 근년에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포함해서입니다.

여러 각도로부터 말한다면 중공과 중공 당괴는 서로 정보가 연계되어 있는데 모두 폭력, 거짓말, 사악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사람은 그것들과 멀리 해야 하지 그것들을 호신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긍정적으로 자신에게 좋지 못한 정보를 주게될 것입니다.

기자 : 여기까지 말씀하신 김에 또 한 가지가 있는데요. 바로 지금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탈당, 탈단, 탈대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해외의 중문 사이트에 공산당 일체 조직을 탈퇴한다고 성명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안에도 이런 좋지 못한 정보를 멀리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지 않습니까?

취정 : 입당하든, 입단하든 아니면 입대하든 당초에 맹세할 때에 누구나 모두 그를 위해 일생을 분투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맹세는 아주 강렬한 정보입니다 그러므로 실제상으로는 이미 자신의 생명을 이 사악한 폭력, 거짓말, 공포와 한데 연계 시킨 것으로서 아주 무서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것은, 설령 건강의 각도로부터 말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마땅히 공개적으로 “중공 당, 단, 대에서 탈퇴”한다고 성명해야 합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3퇴” 후 확실히 일신이 가벼워진 감을 느끼는데 무엇 때문인가. 확실히 이 사령, 사악의 정보와 연계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기자 : 그렇다면 현대 과학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더욱이 대륙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받은 것이란 죄다 무신론 교육이기 때문에 아마 어떤 사람은 여전히 당신이 한 말은 도리에 맞긴 하지만 듣기엔 여전히 허황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취정 : 듣기에 허황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이 물건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해서 꼭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정보가 전해지는 과정은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이 공간에서만 꼭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양자역학과 우주학 입자 물리는 모두 우리 이 우주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감수할 수 있는 3위 공간에 1위 시간을 더한 것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위적 시공이 존재한다고 승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더욱 고위적인 시공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더욱 고위적인 시공에서는 정보가 전달될 수 있고,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이는 두뇌가 비교적 개방된 과학자에 대해 말한다면 완전히 모두 가능할 것입니다.

양자역학에는 “양자 분쟁”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두 개의 분쟁 상태에 처한 기본 입자가 있는데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한다면 바로 천성적으로 쌍둥이에 속하는 두 개의 입자를 얼마나 먼 곳에 갈라 놓던지 이 입자가 내보내는 정보, 이를테면 그의 상태가 개변되면 다른 한 입자는 즉시 순간적으로 감수하게 되는데 얼마나 멀리에 떨어져 있던 상관이 없지요. 이는 완전히 관습대로 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는 육안으로 전달 현상을 보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우리 생활과 비교적 아주 가까운 예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쌍둥이 중 하나가 병이 생기거나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게 되면 다른 하나도 즉시 감각할 수 있으며 그가 어떤 곳에 있던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정보 역시 우리의 시간 공간에서 전달 된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간 것이며 다른 공간에서 전달된 것입니다.

바꿔 말한다면 호신부도 그렇고 경건한 신념도 그렇습니다. 혹시 강렬한 염원을 내보낼 때, 맹세한다면 우리 이 공간에서 우리 이 육안으로 감수할 수 있는 공간을 당신은 볼 수 없지만 사실 그것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며, 그는 다른 공간에서 작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기자 : 진실한 예가 없습니까?

취정 : 나는 정면적인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진실한 이야기로서 귀주성의 한 탄광에서 탄부들이 석탄을 파내고 있는데 천반이 갑자기 조각 나면서 무너져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때 이 명곤이라 부르는 노동자는 다행히도 난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그의 친구가 그에게 3퇴를 권유하였는데, 그는 중공의 당,단,대에서 탈퇴하였고 그런 다음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라는 이 파룬따파의 호신부를 몸에 갖고 다녔습니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당시 그는 거대한 소리를 들었고 눈앞에서 흰 빛이 정수리를 스쳐 지나갔는데 그가 아직 무슨 영문인지 알기도 전에 반장과 다른 한 사람의 머리위에 8톤 되는 바위돌이 떨어져 깔렸습니다. 후에 구급을 했으나 반장은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만 팔에 조그마한 경상을 입어 몇 곳 기워 맸을 뿐이었습니다. 후에 그는 대법제자를 찾아가 말하였어요. 자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싶네. 자네가 나에게 진상을 알려준 것이 정말로 영험했네. 대난에 죽지 않았으니 파룬따파 사부님이 나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네. 정말 감사하네. 이러한 일은 아직도 아주 많습니다.

기자 :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모모가 파룬궁을 박해하였지만 그는 중공으로부터 많은 상금을 받았는데 보건대 그는 아주 잘 사는 것 같다고 합니다?

취정 : 물론 어떤 사람은 한 때 벼슬을 하고 돈을 벌었다고 여길 것이지만 그것은 눈앞의 것일 뿐 장원한 관점으로 본다면 나중에는 모두 좋은 결과가 없을 것입니다. 또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대련 장하시 광명산로 파출소의 쑨 쉐청이라는 한 경찰은 1999년 이후 줄곧 중공을 도와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였고, 파룬궁 수련생을 붙잡아선 불법 판결하고, 노동교양소로 가도록 판결하였으며, 벌금하고 가택수색을 하였습니다. 대법제자가 그를 찾아가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면 그는 곧이 듣지 않으면서 3퇴가 다 뭐냐, 나는 탈퇴하지 않는다, 나는 공산당을 따르기로 이미 결정하였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2008년 1월 25일 그는 돌연 뇌동맥 혈관이 파열되면서 갑자기 죽어 버렸으며 그가 죽을 때 손발을 움직일 수 없어 극도로 고통스로워 했습니다. 50여 살 되는 사람이 이렇게 죽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예가 하나 뿐이라면 우리도 이건 우연한 일이라고, 사람에겐 생로병사가 있기 마련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비슷한 예들이 너무도 많아 전국 각지에 모두 있으며, 어떤 고장에는 심지어 절반 이상이 파룬궁을 박해한 사람들로서 보응을 받아 중병을 얻었거나 심지어 사망, 폭사하였던 것입니다.

일시적인 벼슬과 돈을 위해, 짧다란 이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건다는 것은 그야말로 너무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따르는가, 어떤 가치관인가, 이는 모두 자신의 절실한 이익과 밀접히 연관되는 것입니다. 파룬궁 수련생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주어 그들이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기를 바라는데 사실은 모두 이런 사람들 자신과 그들 가정의 생명을 위해서이지요.

기자 : 이러한 사람이 중공을 따르는 것은 생명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방금 제기한 그 탄광노동자의 예에서 그에게는 왜 그런 행운이 있었을 까요? 당신은 어떻게 보십니까?

취정 :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대륙에 지금 한창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가 발생하고 있고, 매체는 파룬궁에 대한 모욕으로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같이 특수한 환경에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마음속으로 선념을 간직하였다면, 이런 사람은 당년에 유태인을 도와준 쉰들러와도 같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쉰들러리스트”라는 이 영화를 보았을 것입니다. 파쇼가 유태인을 박해할 때 쉰들러는 갖은 방법을 다하여 유태인을 구출하였습니다. 그럼 그가 내보낸 것은 하나의 지극히 선량한 정보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다는 데로부터 말하자면 파룬궁 수련생을 선하게 대해주었거나 파룽궁에 대해, “ 진, 선, 신”에 대해 선념을 품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가 선한 보답을 받게 되는 것도 역시 도리에 맞는 일일 것입니다.

문장발표 : 2008년 5월 8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5/8/1780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