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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도덕과 정

생명 전환의 날 (상)
-우예샤여사 인터뷰-

【명혜망2008년4월27일】 (명혜기자 허우 보도)

1999년 4월 15일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개변된 날이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는 우예샤여사는 비록 자신은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하러 갔던 “4.25”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날은 자신의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파룬궁 수련생인 우예사는 중공의 “열사” 후예로 18살에 시골인 천진에서 당원에 가입하여 대채를 따라 배우는 모범생이었고, 중공의 “후계자”로 육성되고 있었다. 그녀는 천진시 원림학교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매 년 “우수교원”과 “3.8붉은기수”로 선발되어 “국가85계획”에서 공헌한 상장을 받았다.

그러나 “4.25” 사건을 맞이하면서 그녀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당과 일체”하기 위한 삶을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인생관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녀는 “4.25”사건 9주년을 맞이한 인터뷰에서 그녀가 걸어온 길과 감동을 흔쾌히 풀어냈다.

(아래의 내용은 인터뷰 녹음을 정리한 것임)

하늘과 땅을 감동시킨 “4.25”

99년 4월 25일 전후, 나는 학교운동회 준비로 바빠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뒤에서야 천진에 사는 김옥금과 김옥평 자매가족이 겪은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었고, 내 인생에도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당시 김씨 가족은 공장을 운영하면서, 두 자매와 김옥금의 자녀가 파룬궁을 수련했다. 김옥금의 남편 조광은 공장을 경영하느라 바빠서 수련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수련하며 곳곳을 다니며 홍법했지만, 집을 잘 정리하고 이웃사람들과도 특별히 사이가 좋았기에 남편은 백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가 없다고 여겨 전혀 반대하지 않았고, 더욱 많은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4월 25일에 천진에 사는 4,50명의 수련생이 체포되어 현지에서 해결할 수 없게 되자, 그의 아내는 중앙정부에 파룬궁진상을 알리려고 북경에 간다고 하자, 남편은 북경까지 차를 태워 주었다.

그곳에 가보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질서정연하여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그 장면은 조광을 놀라게 했다! 그는 60년대에 태어나서 줄곧 그런 투쟁 속에 처해있었기에 아내를 비롯하여 그들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거나, 시위하는 문자를 써서 들거나, 무슨 항의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난생 처음으로 이렇듯 평화롭고 이지적이며 상서로운 모습을, 한 두 명이라면 조용히 할 수 있지만, 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토록 정체적으로 조용할 수 있는 것을 보았고, 돌아올 때는 담배꽁초 하나 남기지 않은 것을 영화에서도 본적이 없고, 생활 속에서도 본적이 없었다. 그런 모습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고 느꼈으며 듣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그의 상상을 초월했기에 그는 단번에 사고의 변화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조광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파룬궁을 배워나갔다. “4.25” 사건을 계기로 그는 파룬궁을 수련하게 된 것이다. 그는 공장 직원이랑 친지와 친구들에게 자신이 본 일들을 이야기했다. 같은 해 7월 20일, 중공은 파룬궁을 전면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는 갓 법을 얻었지만 대법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청원하러 갔다가 그들 부부와 여동생 모두 체포되어 2년 노동교양을 당하여 14세, 11세인 두 자녀만 집에 남겨졌다.

나는 그날 아이들의 부모가 감금된 것을 알고는 선생으로서 걱정스러워 집으로 찾아갔다. 그 당시 아이들이 따돌림 당하는 환경이라 압력이 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금방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한창 부모님이 챙겨주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무 압력도 느끼지 않으며, 아무것도 안 무서워요. 저의 부모님이 도적질 하거나 물건을 빼앗은 적이 없고, 나라와 사회에 해가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우리 부모님은 진실을 알렸을 뿐인데, 이를 못하게 한다면 우리 민족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상상밖의 대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18년 동안 학생을 가르치면서, 줄곧 많은 지식을 가진 학생들도 가르쳐 보았지만 그에게서 정말이지 가장 좋은 수업을 받았다! 한 중학생이 이런 일을 당했어도 놀라지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놀라면서 그에게 “너는 이제 몇 살이니?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어?”라고 물었더니 그는 “저는 수련인 입니다.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진선인’대로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될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따돌림 같은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

나는 이미 수련한지 2년이 넘었지만 26년간 당원의 신분으로 공산당 교육을 여러 해 받았기에 그것들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게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도 “당과 일체가 되도록 유지”해야 한다는 완고한 당성에 이끌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반생을 조종해 온 “당성”이 남학생의 말에 의해 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말에서 당성을 초월한 강대한 힘을 발견했다.

뒤에 들은 말이지만 천진 창구에는 김수란의 큰언니가 “4.25” 때 청원하러 가기 전에 아들의 결혼준비로 새 아파트를 마련했다고 한다. 김씨언니는 나보다 나이가 열 몇 살 많은데, 몇 번이나 반박해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라 이번에 가면 다시는 못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에게 “우리 아파트 문을 잠그지 말고 가자. 만약 돌아오지 못하면 이 집을 수색할 텐데 문을 부수지 않도록 키를 문밖에 두자.”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라 못가도록 말릴까봐 아들과 어머니는 몰래 집을 떠나 북경에 갔다.

자아를 잊은 사심없는 동수의 훌륭한 사적은 나의 마음 깊이 새겨져 지울 수 없었으며 점차 나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되었다.

인생의 전환점

이전에 나는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끄러져 내려온 사람의 표준으로 본 것이었다. 진정으로 대법의 “진선인”의 표준으로 가늠해보니 나의 영혼 깊숙이 숨겨진 사(私)의 더러운 면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이전에 누렸던 휘황과 상장이 도리어 특별히 더러운 것임을 알았다.

당시 천진시장은 중앙 TV에서 “천진에서는 한 명도 체포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전국 인민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구내의 소장 리성(음)도 체포되었는데 나는 감히 나서서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조성의 아들이 “만약 진실도 밝히지 못하게 한다면 이 민족은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고 말했던 것은, 나자신을 포함한 많은 중국인들이 중공의 강압적인 통치로 인해,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이 아주 적으며 매일 가짜 속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나는 예전에 상사들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사람이었다. 나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의 친인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두려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누구도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 공산당이 정권을 수립한 후 정치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내가 직접 보았는데, 이렇듯 여러 해 동안 누가 감히 반항 하겠는가? 6.4운동 때도 거의 매 단위에서 백분의 8,9십 되는 사람 대부분이 거리에 나갔지만, 후에 탄압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자 누구도 감히 참가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가족이 연루될까봐 두려웠고 대세가 기울어지자 모두 후퇴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학생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4.25”는 나의 일체를 개변시키며 나에게 많은 계시를 주었다. 당문화의 질곡에서 벗어나 나로 하여금 진정한 사람이 되도록 했다. 비록 청원하러 간 만 여명에 속하진 못했지만 그것을 계기로 나는 정정당당하게 걸어나와 “진선인”의 진리를 수호할 수 있었다 .

나는 그 당시, 방관하고만 있던 많은 경찰과 수많은 해외 인사들이 크게 감동했으며, 대법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대법수련의 길에 들어섰던 걸로 알고 있다.

나의 여동생이 노동 교양소에 갇혔을 때 여성대장이 여동생에게 탄복하여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사부는 우리네 선조가 못했던 한 가지 일을 해냈다. 당신들도 이전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을 했다.”

후에 나를 “전화”시키려던 대대장이 나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4.25때 당신들은 천병천장들처럼 오더니 해체한다고 하면 순식간에 헤어지고, 군대를 출동시켜도 당신들처럼 그렇게 빠르지 못할 것이다. 규율도 당신들처럼 잘 지키지 못할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있다. 당신들이 좋다는 것을 우리는 다 보았다. 당신은 노당원이다. 당신도 당운동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속이지 않겠다. 역사가 이 한 페이지를 펼칠 때 나도 수련하겠다. “4.25”는 인류역사상 휘황한 한 페이지로 남게 될 것이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문장작성:2008년 04월 27일
원고발표:2008년 04월 27일
문장갱신:2008년 04월 27일04:03:14
원문위치:http://minghui.ca/mh/articles/2008/4/27/1773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