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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경기 카운트다운에도 불구하고 중공의 박해는 여전히 계속(사진)

[명혜망 2007년 8월11일] 파룬따파 소식 센터에서 8월7일 보도한 것에 따르면, 20여 명의 대륙 파룬궁 수련생들이 올 6월에 박해로 치사한 것이 실증되었다. 근래에 또 수련생들이 살해되었던 것이다. 지금 중공은 세계평화를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올림픽 운동의 명의를 빌어 더 엄중하게 사악한 박해를 실시하고 있다.

중공과 장씨집단이 1999년 7.20에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이래 적어도 3천 62명의 대륙 파룬궁수련생들이 박해당하여 치사한 안건이 이미 실증되었다. 대량적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치사당한 안건과 산체로 장기를 적출당하여 폭리를 얻고 시체를 소각하여 흔적을 없앤 안건은 중공이 박해진상을 엄밀히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목전에 여전히 엄폐되어 있다.

적지 않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중공이 최근 실시한 은밀한 박해 중에 치사되었다. 이런 안건은 진일보 실증되고 있고 중공은 2008년 북경올림픽 운동의 명의하에 더 심하게 멸족성적인 박해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외부 보도에 의하면 일찍이 2005년 중공 공안 부부장 류징(刘京)은 올림픽 운동의 개막전에 파룬궁을 소멸하라는 지시를 받고 전국 공안부문에 명령을 내려 이 행동 계획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금년 2007년 3월 중공 공안부장 저우융캉(周永康)이 전국에 새롭게 엄격히 파룬궁을 타격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잇따라 대륙일부 지방에서 대규모로 연속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하여 박해를 가중하는 악성 사건이 발생했다.

* 6년 감옥살이, 길림성 동풍현 교사 위봉거(魏凤举)가 박해로 치사

길림성 동풍현 제4중학교 교사인 대법제자 위봉거는 세번이나 불법(不法) 노동교양 처벌을 받아 노동교양소에 갇혔고, 박해를 받은 시간은 모두 6년이 되었다. 신체는 매우 여위고 약하고 공작능력을 상실하여 2007년 4월13일 집으로 왔다. 석달동안 그의 신체는 회복되지 못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생활은 자립하지 못했다. 7월12일 오후 4시15분,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나이 47세였다.

불법(不法)으로 박해받는 기간 동안 위봉거는 여러가지 혹형을 받았다. 몇 개의 전기방망이로 동시에 지져 입까지 변형되었다. 노동교양소의 사악한 환경에서 6년동안의 박해를 받아 몸은 매우 허약했던 것이다. 마지막 노동교양 기간, 대략 2007년 설 전후로 하여 한번은 양쪽손에 보온물병을 들었는데 몸이 너무나 허약하여 땅에 주저앉았다. 그때부터 배가 아프고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병을 진찰받으려고 하니 노동교양소에는 의사가 없었고 그후에도 병을 봐주지 않았다. 집에 온후에도 여전히 몸이 갈수록 여위고 밥을 먹지 못하는 정황이 갈수록 엄중해졌으며 오줌 색깔도 붉었다.

헤이쭈이쯔(黑嘴子) 노동교양소 제1대대에서는 대법수련자들에게 매일 17시간 내지 20시간의 초고강도 노동을 시키는데 매일 밤잠을 한 두시간밖에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게 한다. 악경은 매음자, 마약흡입자, 형사 범죄자들을 시켜 하루 내내 윤번으로 적발하고 감독하게 하는데 파룬궁 수련생은 서로 말도 못하게 하고 겨울에는 얼음이 섞인 물로 몸을 씻으라고 한다. 한번은 제1대대의 모든 대장과 관교(管教)관리과를 대상으로 사진을 찍는 성이 양씨와 랜(连)씨인 과장등이 1대대의 수련생들을 줄 세워놓고 전기방망으로 매수련생마다 지졌는데, 악경은 위봉거의 심장부위를 지졌다.

2007년 4월13일 집에 돌아온후 몸은 시종 회복하지 못하고 빈곤한 생활에 자립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70세의 부친이 옆에서 돌보고 있었다. 부친은 자기의 딸이 이렇게 박해받아 길을 걸어도 몸이 흔들거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는데, 집에 돌아온 지 3개월 만에 세상을떠나 백발의 부친이 검은 머리의 딸을 먼저 보내게 된 것이다.

* 원 길림시 가죽공장 단위서기 왕민리(王敏丽)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

왕민리, 여, 43세 원 길림시 가죽공장의 단위서기. 1996년 2월16일 법륜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99년 7월 박해가 시작된 후 그녀는 세인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한 이유로 핍박을 받아 정처없이 유랑하였고 몇 번이나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참혹한 고문을 받았다. 2003년 6월21일, 연합국 검찰 전원은 왕민리를 위해 긴급히 구원을 호소한 적이 있다.

2007년 3월15일 오후 1시 전후, 왕민리는 또 길림시 창이(昌邑)분국 국보대대 더우싱쩌(都兴泽)를 위수로 몰려온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후에는 길림시 웰산로 사냥개 훈련기지에 갇혀 참혹한 혹형과 매를 맞았다. 왕민리의 한쪽 다리는 경찰이 방망으로 때려 뼈가 부러졌다. 경찰은 왕민리의 입을 테이프로 봉하고 그녀의 코에 겨자가루 기름을 넣었다. 왕민리는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경찰은 또 미친듯이 한병의 겨자가루 기름을 왕민리의 눈에 부어 바로 한쪽 눈이 실명되게 했다.

왕민리가 체포된 후 가족들은 공안부문을 찾아가 물었으나 답변은, 판결도 하지 않고 사람도 놓아주지 않는다. 올림픽 경기가 끝나야 사람을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07년 6월19일 오후 2시쯤 왕민리는 박해로 생명이 위험하여 병원으로 가던 도중에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는데, 나이는 43세였다.

* 하북장가구 푸구이쥐(付桂菊), 심한 음식물 주입 고문으로 치사

푸구이쥐는 하북 장가구 대법제자이다.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몇번이나 불법(不法)으로 감금당하고 강제로 세뇌당했다. 악당(惡黨)은 옆집 사람을 시켜 장기간 감시하게 했다. 2002년 10월16일 교서분국 형사 경찰대 대장 우젠궈(武建国) 등이 푸구이쥐의 아이를 학교에서 형사경찰대로 끌고 갔다. 불법(不法)으로 어린이의 책가방을 뒤져 집 열쇠를 찾아내어 명덕남 판사처 멍앤핑(孟燕萍), 탕리핑(唐丽萍) 두 사람과 같이 푸구이쥐의 집문을 열고 집을 뒤졌다.

2007년 5월12일 저녁 장가구 교서 국보대대 중썬린(钟森林) 등과 장가구 신화거리 파출소와 명덕 파출소는 대량의 경찰차를 동원하여 12명의 대법제자를 체포했는데, 그중 대다수는 노인들이었다. 푸구이쥐는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하고 생명이 위험에 달하여 집으로 돌려 보내어졌다.

6월 4일 교서 공안분국과 명덕 파출소 경찰은 금방 집으로 돌아와 몸도 회복하지 못한 푸구이쥐, 친외링(秦月玲)을 또 한번 집에서 강제로 체포하여 장가구 13리 간수소로 보내 계속 고문하고 친외링 집의 컴퓨터 등을 빼앗아갔다.

6월14일을 전후하여 장가구 교서 악당(惡黨)의 검찰원은 불법으로 푸구이쥐와 친외링 청슈에(程秀娥) 등 3명에게 체포령을 내려 박해를 가중하였다.

2007년 6월18일 푸구이쥐는 13리 간수소에서 박해성 음식물 주입으로 산채로 시달림을 받아 치사했다.

중공은 전면적으로 공개적으로 전세계인의 도덕과 양지에 도전하고 있다. 적나라하고 사악한 도전에 직면하여 어떠한 원인이든 어떠한 이유이든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나쁜 일을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모두 선과 악의 천평에 자신의 양심의 위치를 배치하는 것이 될 것이다.

문장완성 : 2007年 8月10日
문장발표 :2007年 8月11日
문장수정 : 2007年 8月10日 22:35:57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8/11/16063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