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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은 중국이 아니다

글/허베이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9일] 중공은 자신의 독재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각종 선전 도구를 이용하여 대폭적으로 ‘중공이 바로 중국이다.’, ‘애당이 바로 애국이다.’, ‘반당은 바로 애국이 아니다.’ 라고 선전하고 있다. 심지어 ‘망당망국’까지 말하고 있다. 중공은 자신과 중국을 하나로 연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음모이다. 그런데 이 음모는 확실히 일부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어 사람들 사상에 일종 혼란을 조성해 주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중국, 중공 두 개의 개념에 대해 똑똑하지 못하고 혼동하고 있다.

중공은 중국이 아니다. 우리는 두 방면으로 보자

1. 중국은 5천년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중공이 정권을 빼앗은지는 겨우 57년이 된다. 중국과 중공이 출현한 역사적 시간을 대비해 보면 중공이 어찌 중국과 비길 수 있는가? 중국의 역사를 펼쳐 보면, (역사기재에 따르면)전후로 21개 조대가 중국에 나타났었다. 이런 조대들은 흥성기로부터 멸망에 이르기 까지 중국역사에서는 모두 한 순간이었다. 어느 한 조대도 자신이 곧 중국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중공 역시 역사상의 한 순간으로서 그가 무슨 이유로 자신을 중국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2. 중공은 반 중화민족이다. 외국의 한 역사학자가 일찌기 말한 적이 있다. “중공은 조상을 반대한다.” 모택동도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사상을 지도하는 이론적 기초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이다.” 이러한 기초를 포함하여 중공의 산생, 발전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중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중공이 산생할 때 몇몇 중국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의 >을 학습한 후, 1921년 7월에 ‘공산주의 소조’를 건립하였다. 당시 이 소조가 바로 공산국제 원동 총부의 한 개 지부였고, 직접적으로 그 지부의 조직적인 지도를 받았다. 중공의 발전 초기에, 다시말해서 중공이 말하는 이른바 ‘국내 대혁명 시기’에 창립한 이른바 ‘홍색 혁명 근거지’때, 자신들이 차지한 ‘지반’을 외국 이름으로는 ‘소비에트 정부’라고 불렀고, 아울러 외국사람을 고문으로 청하여 자신들을 지휘하여 혁명을 하게 하였다. 1949년 정권을 탈취한 후, 중공은 근본상 중화민족의 정신, 민족전통, 민족문화를 계승, 발양, 빛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런 중화문명을 몽땅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습관으로 치부하고 비판을 대대적으로 가하여 극력 파괴하고, 철저히 뿌리뽑아 버렸다. 모택동의 말대로 한다면, “철저하게 낡은 세계를 때려 부셨다.” 특히 문화대혁명은 중화 전통문화에 대한 훼멸을 극도에 달하게 하였다. 결국 중화의 정화는 산산조각이 나고 없어지게 되었다.

지금을 놓고 말해보아도 중공은 중국에 대해서도 존경과 애호를 하지 않고 도리어 마음대로 짓밟고 유린하고 있다. 정치건달 강택민이 정권을 쥐었을 때 중국 동북의 백여 평방 킬로미터에 달하는, 몇십개의 대만과 같은 그런 대면적의 국토를 직접 러시아에 주어 러시아가 몇 년동안 줄곧 중국영토를 차지하려던 야망을 실현하게 하였다. 그와 동시에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에서 중국 병사들이 숫한 사람의 생명으로 되찾아온 영토를 또 친히 베트남에게 주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매국을 영광으로 삼고 있는 망나니의 그 어떤 부분이 중국의 염황자손 같은데가 있는가? 그 무엇으로 자신이 중국이란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그는 완전히 반 중화민족적이며, 반 인민적이다. 그러니 ‘당을 사랑하는 것이 곧 애국이다.’, ‘반당은 곧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는 사설은 당연히 저절로 깨지고 만 것이다. 망당망국이란 황당한 논조는 더구나 발붙일 자리가 없다. 중국의 역사에서 전후로 21개 조대가 연속 멸망하였어도 중국은 그 어느 조대가 멸망됐다 하여 중국이 멸망된 적은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공은 멸망한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중국은 의연히 세계의 동방에 우뚝 서 있을 것이며, 중국 인민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6년 9월9일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9/9/13744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