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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작] 과학은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없다

글/ 장밍즈(章明之)

[밍후이왕] 신불(神佛)이 도대체 존재하는가? 실케 와그너(Silke Wagner)와 사무엘 알바라도(Samuel Alvarado) 두 서양인의 해답은 긍정적이다. 왜 그럴까?

밍후이왕(明慧網)은 지난 1월 7일 ‘중공 바이러스로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독일 여성이 ‘9자진언(九字真言)’을 염하고 회복되다’란 제목의 글에서 독일 뮌헨 공항의 여성 보안원 실케 바그너가 2021년 11월, 중공 바이러스에 감염되서 열이 41도까지 오르고 심한 기침으로 ‘상상할 수 없는 허약함’을 느꼈다며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는 남편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라고 했다. 실케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끊임없이 염했다. 그렇게 약도 안 먹고 주사도 맞지 않았는데 바이러스는 사라졌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그녀는 공항으로 복귀했다.

​같은 날 따지웬(大紀元)에도 한때 생명이 위독했던 멕시코시티의 자동차 상인 사무엘 알바라도 씨가 병원에 실려 가 숨을 쉴 수 없게 되자 수련했던 파룬궁(法輪功)을 떠올리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9자진언을 떠올리며 되뇌었다. 18일 만에 호흡기도 사용치 않고 그는 완치되어 퇴원했다는 보도가 실렸다.

이런 사례는 중공 바이러스가 발생한 지난 2년간 중국과 외국에서 적지 않게 나타났다. ‘9자진언’만 염하고 주사와 약을 맞지도 먹지도 않고 바이러스를 이겨낸 사실을 과학을 미신하고 무신론을 믿는 많은 사람은 믿을 수 없거니와 믿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실제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거나 그들 자신의 면역력이 작용했다는 등 과학의 관점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의 상태를 잘 알고, 더욱이 생명 전환을 가져온 것은 신적(神跡)이 인간에게 펼쳐 보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경험자 앞에서는 설득력이 없는 말이다. 무신론자였던 실케는 이 때문에 수련에 들어갔고, 같은 기적을 목격한 사무엘은 “파룬따파는 좋다고 진심으로 믿으면 당신은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진짜 진기(真機)를 세인에게 알려줬다.

​실케는 신이 없다고 믿던 것에서 신의 존재를 믿게 됐고, 무신론자의 “신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보이지 않으니 신이 없다.”라는 구실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신적을 절실히 느낄 때, 그의 영혼은 당연히 근본적으로 감동하여 인식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이 세상에는 신을 보고 신적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도 중외 고서에 적지 않다. 현시대에도 여러 매체에서 수없이 많은 이런 사례와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여 년간 파룬궁을 수련하는 수많은 중국인이 질병이 사라지고 건강한 몸을 회복했으며, 십수 년간 ‘9자진언’을 염해온 수많은 중국인도 마찬가지로 재난이 복으로 바뀌어 전화위복의 기회를 얻었다. 과학은 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최근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예수, 성모 마리아 조각상들이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피를 흘리는 신적까지 발견된 것을 과학자, 유명 인사들마저 목격했다. 피와 눈물의 분자 성분이 인간의 피와 눈물 성분과 같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과학자들은 이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신은 인간을 위해 죄를 감당하면서 인간에게 경고하는 것이라고 보는 종교계 인사도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중국 전통 새해 기간에 선양(瀋陽) 완신(萬鑫) 빌딩에서 큰불이 나 건물 두 채가 거의 타버렸으나 빌딩 안에 있던 목조 불상만은 온전했다. 그해 3월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미야기현 나토리시에 쓰나미로 파괴된 폐허 위에 지장보살상이 우뚝 서 있었다. 지난 11월, 허리케인이 뉴욕을 휩쓸었을 때 성단(聖龕) 속 선량한 성모 마리아 조각상이 무너진 담장 속에 그대로 서 있었다. 2005년, 2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동남아시아의 큰 쓰나미 속에서 무너진 담벼락 위에 우뚝 선 채 거센 물결에도 쓰러지지 않는 불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신불상은 재앙 속에서도 완전하고 손상이 없이 우뚝 솟아 있었는바 무신론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신을 믿는 이들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스리랑카의 수마나(Sumana) 승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부처님의 지도를 따르지 않아 자연계는 이들을 벌했다. 사람들은 반드시 이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하샤(Harsha)라는 스리랑카인도 “민중은 이를 대재앙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그들의 행동을 개선해야 할 때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며…. 스리랑카인들은 쓰나미가 지나간 뒤 더 좋아졌다.”라고 공감했다.

예를 들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을 자초하려 해도 역병은 분명 그런 사람들을 피해 갔다. 비행기 사고, 지진, 산사태, 허리케인 등 수많은 재난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누가 구해낸 것인가? 과학도 무신론자도 합리적인 해석을 내놓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공전 속도, 태양의 평온한 수소 핵융합 등 우주의 많은 신비에 대해 누가 정확하게 계산하고 배치했는가? 누가 그들을 추진하고 있는가? 우주의 블랙홀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신론은 어떻게 해도 설명할 수 없으나 진정한 과학자는 유일한 해답은 오직 ‘신’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어디에나 나타난 신적에는 신의 자비가 깃들어 있고, 신도 이를 통해 세인에게 신은 참된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사람은 신불을 우러러보고 신뢰하며 신불의 인도에 따라 선량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신불의 인도에서 벗어나 무도하게 나쁜 짓을 하면 천벌을 받게 된다.

과학과 무신론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면 유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700여 년 전 신적을 경험한 이탈리아 최고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St.Thomas Aquinas)는 ‘신학대전’에서 ‘신적 존재’라는 명제를 다섯 가지로 논증했다. 그의 결론은 “인간이 진리를 깨닫게 하는 어떤 지혜도 하나님이 먼저 주신 것”이라고 했다.

아퀴나스가 볼 때 인간 존재의 목표는 신과 결합하여 영원한 연결을 맺는 것이며, 이것의 최종 목표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의 행적과 관련이 있다. 아퀴나스는 개인의 의지가 자선, 평화, 신성 등 올바른 방향으로 지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하며, 그것이 행복을 이루는 길이라고 여겼다. ​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 논증 방법 중 첫 번째 방법은 사물의 운동, 즉 변화 측면에서의 논증이다. 그는 하나의 사물이 만약 현실이라면 그는 운동한다고 지적했다. 무릇 사물 운동은 항상 다른 사물에 의해 추진된다. 한 사물의 운동은 다른 사물에 의해 추진되고, 이로써 유추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무한으로 추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다른 것에 의해 추진되지 않는 제1의 추진자가 있기 마련인바 그것이 바로 신이다.

훗날 대과학자 아인슈타인과 뉴턴도 같은 견해를 보였다. 상대성 이론을 발명한 아인슈타인은 “모든 것은 다 설계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우주는 얼마나 많은 별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별은 어떤 궤도를 따라 틈이 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이런 운행을 배치한 그 힘은 바로 신이다!” “장차 과학을 대표할 수 있는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불법일 것이다. 왜냐하면 불법이 너무 완벽해 자선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과학자’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은 자신의 과학적 성취에 대해 “신의 사상을 따르는 것” “신의 사상대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신론에 코웃음을 치며 “세상이 이렇게 화려하고 질서 정연하며 각종 운동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은 만물을 지도하고 지배하는 신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질이 없는 곳에 뭐가 있을까? 태양과 행성의 중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주 만물은 왜 질서정연할까? 행성의 역할은 무엇일까? 동물의 눈은 광학 원리에 근거해 설계되었을까? 우주에 신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과학은 만물의 기원을 즉각 깨닫게 해 주지는 못하지만 모두 우리를 만유의 신 앞에 기울이게 인도한다.”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과 뉴턴은 우주 사이에 신의 존재가 있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대천 문학자 코페르니쿠스, 근대역학의 아버지와 현대과학의 아버지 갈릴레오, 전보의 아버지 모스, 로켓의 아버지 반 브론, 물리학자 퀴리 부인, 노벨상 설립자 노벨,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뢴트겐, 무선통신을 발명한 마르코니, 우두를 발명한 제너,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 현대항공의 아버지와 로켓의 아버지 폰 브라우언, 현대 실험과학 창시자 베이컨, 양자론 창시자 플랑크, 곤충학계 태두 파브르, 생물학계 태두 파블로프…. 많은 거대 과학자들도 믿었다.

분명히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이 신께서 창조하고 배치한 것이고 신께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이 미지의 세계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되고,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선과 악엔 응보가 따른다는 말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을 믿어 무신론의 영향으로 자신을 무도하게 방임하고 신과 점점 멀어져 신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동을 바로잡고 신의 인도에 따를 것이다.

원문발표: 2022년 4월 1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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