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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서 강제송환 당한 후 중공에 박해당한 사실

글/ 윤향자(尹香子)

[밍후이왕] 나는 윤향자라고 하며, 2010년 1월 30일 한국에서 중국으로 강제송환 당한 중국 파룬궁수련생이다. 귀국 후 나는 중국공산당 국가안전(國安) 특무(스파이)의 불법 가택수색, 감금, 세뇌 등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중공(중국공산당)은 줄곧 외부에 소식을 감추면서 국제사회에 송환된 파룬궁수련생은 박해를 받지 않는다고 속이려 했다. 나는 지금 우여곡절 끝에 중국을 벗어났고, 여기에서내가겪은사실을 공개해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폭로하려 한다.

나는 1996년 7월 이웃의 소개로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신체 상황이 좋지 않아 난소 종양, 경추염, 류머티스 관절염, 불면증 등 각종 질병을 앓고 있었다. 파룬궁 수련을 한지 한 달 후 건강 상황은 뚜렷하게 개선되어 각종 질병이 전부 사라졌다.

1999년 3월, 나는 상용비자를 받아 한국에 가게 됐고 그 해 7월 20일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나는 중국에 돌아갈 수 없어서 한국에 남기로 하고 이후 한국 정부에 난민인정신청을 했으나 불허되어 불법체류 신분이 됐다. 2010년 1월 30일, 나는 한국 정부에 의해 강제송환 되어 귀국하게 되었다.

중국으로 돌아간 후 나는 감히 집에 가지 못하고 직접 칭다오(靑島)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갔다. 그 때 나는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증명서를 다 잃어버렸으며 한 달 후 나는 반드시 고향 연길로 돌아가 신분증과 여권을 재발급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이는 나에게 부득불 또 다시 마음을 괴롭히는 옛 일과 고통스런 경험에 직면하도록 했다. 그래서 나는 신분증과 여권을 재발급 받는 동시에 이름을 고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이름을 고치고 외지 친척 집에 숨어있는 상황에서도 공안은 기어코 나를 찾아냈다. 2010년 8월 25일, 칭다오 공안에서 갑자기 우리집에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하고 ‘전법륜(轉法輪-파룬궁 수련지침서)’과 MP3, 녹음테이프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심문하겠다면서 나를 끌고 갔다. 이 때 연길 경찰도 나를 붙잡기 위해 특별히 칭다오에 왔고 72시간 밤낮없이 나를 심문했으며 내 신분증을 몰수했다. 연길시 안전국에서는 내가 칭다오에 있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므로 연길로 돌아오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이며, 아울러 일체 문제는 내 태도에 따라 다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후 연길 경찰은 칭다오를 떠났다.

2010년 나는 핍박으로 연길로 돌아왔고 연길에서 또 72시간 심문을 당했다. 동시에 이미 세뇌로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고 오히려 다른 수련생을 세뇌시키는 사오(邪悟)한 사람을 보내 나를 세뇌시켰다. 이 사오한 자는 중공의 악독한 거짓말에 세뇌당한 후 나를 아주 경계하고 냉담하게 대했으며 반복적으로 파룬궁 이론을 왜곡시켜 반복적으로 나에게 주입했다. 나는 72시간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두뇌가 흐리멍덩한 상황에서 파룬궁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고 석방되어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어디로 가든 가기 전에 자신들에게 보고해야 하며 그런 다음에야 떠날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내 전화를 도청했다. 나는 이때 나에 대한 중공의 박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더 더욱 인식하게 됐다.

두 차례 진행된 심문에서 나는 한국 파룬궁수련생 상황에 대해 중공 공안에서 아주 잘 파악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나에게 한국의 여러 협조인과 여전히 한국에 있는 몇몇 연길 출신 파룬궁 수련생의 이름을 물으면서 내가 그들을 아느냐고 물었고 또 한국 천국악단이 퍼레이드에 참가한 사진을 보여 주었는데 그 때 나는 사진에 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나에게 내가 알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을 가리키라고 했고, 또 난민 소송에 참가한 파룬궁 수련생 명단을 보여주었으며 우리 법공부팀에도 그들의 특무가 갔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에는 또 나에게 파룬궁 수련생 허원종이 신분 문제로 붙잡힌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왜냐하면 허원종 씨는 내가 송환된 후 붙잡혔기 때문이다.

막 석방되어 집에 돌아온 날에 몸은 자유를 얻었지만 내 마음을 극히 고통스러웠다. 파룬궁은 내 몸을 건강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건전한 정신을 주었지만 나는 오히려 양심을 어기고 파룬궁을 배반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속으로 절망과 굴욕,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 달 후 나는 계속해서 파룬궁 수련을 하기로 결심했다. 파룬궁은 이미 내 생명의 한 부분이 되었으므로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법을 찾아 한 파룬궁수련생의 먼 친척과 연락을 취했고 그녀에게서 파룬궁 서적을 받았다. 또 밍후이망에 내 실명으로 엄정성명을 발표해 이전에 당국에게 쓴 수련포기 보증서를 폐기하고 새롭게 수련을 시작하겠다고 성명했다. 뿐만 아니라 친척 집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다. 그러나 몇 주 후 의심스러운 인물이 빈번히 친척집을 감시하기에 우리는 단체 법공부 팀을 해산했고 나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연마했다. 그들이 내내 감시하고 있었기에 두렵고 걱정스러워 과감히 나가서 파룬궁 진상을 알릴 수도 없었다.

2011년 3월 중순, 연길 ‘610’(중공이 파룬궁 탄압을 전담하기 위해 만든 비법조직) 사람에게서 면담을 하자는 전화가 왔다. 그들은 한 찻집에서 나와 만나자고 했다. 반시간 정도 말하고 나서 그들은 내가 여전히 한국에 돌아갈 수 있지만 한 가지 필수 조건이 있는데 자신들을 도와 한국 파룬궁수련생 상황을 수집하라는 것이었다. 즉 나에게 특무가 되라는 것이었는데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으로 파룬궁 정보를 수집해 그들에게 발송하라고 했다. 나는 즉시 거절했다. 그들은 협력하지 않으면 중국을 떠날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으며 내가 이미 해관(한국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해당)의 출국제한 명단에 있다고 했다. 이후 몇 달이 지났으나 아무 소식도 없자 나는 알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나는 몇 차례 이사를 했지만 이런 공포감을 없애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국을 벗어날 결심을 하게 됐다.

이상은 내가 한국에서 강제송환을 당한 후의 진실한 경험인데 여기로부터 중공 특무는 해외 파룬궁수련생 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송환당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상황 역시 엄밀히 차단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한국 정부와 기타 국가 정부에 더는 중공의 속임수를 당해 파룬궁 수련생을 강제송환 하는 비인도적인 행위를 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싶다.

문장발표: 2013년 2월 11일
문장분류: 대륙소식>더욱 많은 박해사실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2/11/2697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