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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장전중

장전중

장전중(張震中), 남, 22세. 산둥성 랴오청(聊城)시 신(莘)현 사람. 산둥공업대학 경영관리학 본과대학생.

1995년에 수련을 시작하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는 이유로 학교측에 감금당했다. 수련과 학업 문제에 있어서, 그는 우선 교문을 나서 대법을 수호하는 대열에 참여했다. 파룬궁 탄압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리고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절대로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며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 10월 1일 그는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2001년 1월 1일, 장전중은 다른 수련생 한 명과 베이징 천안문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이 구절을 소리 높여 외쳤으며, 잡혀 들어간 경찰차 안에서 ‘진선인(眞善忍)’ 현수막을 펼쳤다. 파출소에서 다시 현수막을 펼쳐 흉악한 경찰이 전기곤봉 8개로 동시에 그를 12시간이나 충격하며, 주소와 이름을 말하라고 했으나 그는 협조하지 않았다. 4일만에 파출소 4곳으로 끌려 다녀, 몸에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입었으나 끝까지 사악(邪惡)한 자들에게 협조하지 않고 정념으로 마굴에서 탈출해 나왔다.

얼마 후 그는 다시 다른 한 수련생과 일주일 동안 베이징 중남해, 천안문, 대회당, 왕푸징(王府井)거리, 지하철입구, 공중전화부스, 주요 길목에 ‘진선인(眞善忍)’ ‘파룬따파는 억울하다’ ‘파룬따파는 결백하다’ ‘대법사부님은 결백하다’는 표어를 적었다.

설 명절 때 장전중은 다시 베이징으로 갔다가 갖은 고초를 겪고 또 한번 견고한 정념으로 마굴에서 벗어났다.

이 기간에 비용을 절약해 법을 수호하는데 쓰기 위해 그는 매일 한끼 식사만 하며 저녁에는 길거리에서 노숙했다.

5월 17일 수련생 3명과 탕인(湯陰)에 가서 진상을 알리며 악비묘에 ‘진선인(眞善忍)’을 적고 길목을 누비며 천안문분신자살 조작사건에 대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그 후 악비 고향 청강(程崗)촌에서 벽에 ‘진선인’을 적는데 경찰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체포해 탕인(湯陰)현 공안국으로 보냈다.

수련생 4명은 단식하기 시작했고 장전중은 단식 6일째 음식물 강제주입을 당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나중에 장전중의 한 친척이 베이징신문에서 ‘한 여객이 허난 탕인에서 강물에 빠져 사망했다’는 문장을 보았다. 사진을 보니 장전중이었다. 악경이 진상을 은폐하려고 한 짓이었다. 장전중의 부친이 탕인에 가서 고소하려 하자 법관은 “파룬궁은 억울한 안건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정쩌민이 명을 내렸는데 누가 감히 수리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부친은 1만여 위안(한화 약 160만원)을 써서 박해로 사망할 당시의 사진을 구하고, 증인 왕펑웨이를 찾아냈다. 탕인수감소와 공안국은 그제서야 인정했다.

갱신일: 2007-12-59:21:00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258.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