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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우칭빈

우칭빈(吳慶斌), 남, 36세, 전문대 졸업. 안후이성 화이난(淮南) 화학공업기계공장 본사 기술원. 다퉁(大通) 노동교양소에서 소변을 주입 당하여 사망. 올해 12세인 아들이 있음.

2000년 3월 1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화이난다퉁파출소에 15일 구류되었고 4월 4일 옥외에서 연공하고 다시 잡혀 다충파출소 경찰이 화이난제2수감소로 보냈다. 8월 중순에 강제로 1년 노동교양을 당했다. 화이난 수감소에서 한번은 소장이 우칭빈에게 질문했다. “교도관이 죄수에게 담배를 피우라고 주었는가.” 교도관 우 모(50)가 돈을 받고 죄수에게 담배를 주었다고 우칭빈은 사실대로 말했다. 교도관 우 모는 원한을 품고 죄수를 사주해 우칭빈을 학대하게 했다. 죄수들은 그를 공중으로 던지고 바닥에 떨어지게 했다. 그가 교도관을 부르자 교도관이 와서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고 죄수는 우칭빈이 연공했다고 말했다. 교도관은 연공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다퉁파출소에서 박해를 심하게 받은 우칭빈은 화이난수감소에 들어가자 마자 흉부에 물이 찼다는 검사결과가 나왔다. 노동교양소는 보증서를 조건으로 보석치료를 허락했고, 나온 뒤 건강은 신속히 회복됐다.

우칭빈은 사부의 2000년 미국서부법회설법을 보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노교소에 가서 이전에 강요 받아 쓴 보증서를 폐지한다고 성명했다. 화가 난 화이난노교소 경찰은 그를 다시 불법감금 했다. 경찰은 배신자들을 데려와 우칭빈을 다시 속여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 했으나 소용 없었다. 2001년 7월 우칭빈은 10여 일 단식하여 건강이 악화되었고 노교소는 보석치료로 나가게 했다. 그 후 그는 집에 있지 않고 밖에서 대법을 위해 활동했다.

2001년 7월 19일 정치법률위원회는 강제로 우칭빈을 외지에서 화이난노교소로 데려왔다. 이튿날 우칭빈은 박해받아 사망했다. 폭도들은 하루 만에 정상이었던 사람을 이렇게 살해했다!

갱신일: 2010-6-19 12:03:00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237.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