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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자오둥

자오둥 사진 (27세)

 

자오둥과 아내의 결혼사진

자오둥(趙東) , 남, 38세, 헤이룽장(黑龍江)성 지시(鷄西)시 리수(梨樹)구 궁눙위(工農委) 4조 대법제자, 당시 개인 봉고차 운전사

1999년 9월말,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리수구 경찰에게 불법으로 납치당해 기차에서 구타당하고 위협받았다.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기차에서 뛰어 내려 사망했다.

1999년 7월 22일 오후, 텔레비전에서 파룬궁을 모함하는 것을 보고 하얼빈에 청원하러 가서 경찰에 체포 되었다가 탈출했다.

같은 해 7월 28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는데 신혼인 자오둥의 아내(23세, 수련하지 않음)가 베이징에 찾아와 집에 가자고 했다. 자오둥이 베이징에서 대법을 실증하기로 하자 아내는 자오둥과 동료들이 바쁜 것은 보고 베이징에 남아서 그들을 도왔다.

자오둥은 아내가 베이징에 있을 때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이혼하자고 협박한 심정을 이해했다. 그러나 자오둥은 동의하지 않고 아내에게 쪽지 한 장을 남겼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대법만 원한다.”

양가 친지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사람을 체포하는 것을 보고 손에 땀을 쥐었고 장인은 갑작스레 병이 났다. 9월 8일 자오둥의 아내는 전화를 받고 급히 돌아갔는데 노인은 이튿날 그녀와 영원히 이별했다.

매년 ‘10월 1’일은 악당이 인민을 두려워하는 ‘민감일’이다. 그 전부터 악당은 외지인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자오둥은 산둥 수련생과 철길을 따라 걸었다. 그들은 허베이성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잡혀서 창저우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구치소에서는 지시시에 사람을 데려가라고 요청했다. 1999년 9월 21일 지시시 리수구 위원회 홍보부 장관 류정카이는 선전 간부와 리수구 경찰서의 610 악경 장인춘 외 다른 한 경찰을 데리고 자오둥의 집에 가서 여비 5천 위안을 내놓으라고 했다. 자오둥 가족이 주지 않자 그들은 강제로 텔레비전을 가져가려 했다. 자오씨네가 텔레비전을 가져가지 못하게 항의했다. 당시 집에서 포커를 치던 사람들의 400여 위안이 강탈당했고 아무런 절차도 남기지 않았다.

1999년 9월 23일, 리수구 구위원회 서기 양훙위는 리수구 공안분국 인민경찰 저우하이쥔, 사회 치안을 책임지는 부주임 류정칭과 창저우에 자오둥을 압송하러 갔다. 저우하이쥔은 ‘10.1’ 전에 원래 지시로 가는 기차표를 사지 못했는데 사람을 압송하기 때문에 간신히 식당차에서 3개 좌석을 샀다. 9월 29일 4시 5분 자오둥은 식당차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를 잡으려 했지만 뿌리치고 창밖으로 나갔다. 긴급 정차를 요구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당직 열차 철도경찰 왕자리는 9월 29일 8시, 구방자에서 다후산 구간 152킬로미터 부분에서 자오둥을 찾아냈을 때 철길 옆에서 이미 사망했다고 말했다. 부친 자오훙차이는 죽은 아들의 양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고 했다.

원문위치: http://library.minghui.org/victim/i3.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