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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내가 본 파룬궁 제자 34명

【밍후이왕 2010년 4월 14일】나는 법률 의식이 박약했던 탓으로 불법구금죄를 범하여 8개월 형을 판결 받고 각기 선양(瀋陽)시 구치소와 랴오닝(遼寧)성 감옥 관리국이 감독관리(監管 : 감관)하는 병원에서 징역살이를 하였다.

나는 2001년 4월 22일에 선양시 구치소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나는 직접 내 눈으로 4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보았다. 그중 세 사람은 왕야핑(王亞萍), 오위화(吳玉花), 왕쥐안(王娟)이었는데, 이는 내가 처음으로 접촉한 파룬궁수련생이었다.

이 파룬궁 제자 4명이 나에게 준 인상은 아주 좋았다. 그들이 고생과 더러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쩐(眞), 싼(善), 런(忍)’을 해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그들을 존경하였다.

2001년 4월 28일과 29일 이틀 사이에 왕야핑 등 세 사람은 룽산(龍山) 교양원으로 보내졌다. 그 때 304 감방에는 왕쥐안 한 사람만 남았다. 5월 7일, 톄시(鐵西)구 치셴(齊賢)파출소에서 또 한 사람을 보내 왔는데, 바이슈쥐안(白秀娟)이라는 파룬궁수련생이었다. 그녀는 들어오자 몸수색을 당했는데 상처투성이였다.

저녁에 잘 시간이 되었을 때,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서야 그녀가 톄시 치셴 파출소에 4일 갇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찰은 브래지어와 삼각팬티만 남기고 그녀의 옷을 죄다 벗기고는 6대의 전기 곤봉으로 동시에 그녀에게 충격을 가하였고, 수갑으로 그녀를 매달아놓고 전기 곤봉으로 흉부, 유방, 흉부 앞뒤, 아래 허벅지 안쪽, 음부 등을 감전시켰다.

나는 그녀의 눈, 얼굴이 모두 청자색을 띤 것을 보았다. 경찰은 고무관으로 그녀의 엉덩이, 허벅지를 때려 청자색이 되게 했으며, 온 몸에는 성한 곳이 없었다. 치셴 파출소는 그녀에게 모든 형구를 다 사용했던 것이다. 나는 진실한 일면을 듣고 보고 하였는바, 그야말로 나를 불가사의하게 하였다.

치셴 파출소의 경찰은 한 쪽으로 때리면서 한 쪽으로는 상스러운 말을 하였는데, 사회의 건달보다 더 상스러웠다. 국가에서 경찰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도덕을 지키며 법률을 준수하는 사람으로 배양하였을 것인데, 정작 일을 할 때는 비단 사상이 제고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그렇듯 상스럽고, 아울러 법을 알면서 법을 범하고 있다. 나는 중국을 위해 그런 경찰들 때문에 비애를 느꼈다.

나는 파룬궁수련생이 한 말에 대해 100%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진실한 일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파룬궁수련생을 존경하고 탄복한다. 오늘과 같은 이런 사회에서 감히 진실한 말을 하고, 자신의 신앙을 위해 일체를 지불하고 있는 그들의 몸에서 나는 파룬궁의 고상함을 보아냈다. 그들은 ‘쩐(眞), 싼(善), 런(忍)’을 해냈던 것이다. 바이슈쥐안은 내가 구치소에서 접촉한 다섯 번째 파룬궁수련생이었다.

2001년 5월 17일, 나는 랴오닝성 감옥 관리국 감관병원 2호실에 보내졌다. 5월 27일, 선양교양원에서 파룬궁수련생 3명을 보내왔다. 그들로는 인리핑(尹麗平), 쩌우구이룽(鄒貴榮), 저우옌보(周豔波)였는데, 감금기간 초과에 대해 단식으로 10일간 항의를 했기 때문에 보내온 것이다.

당시 감관병원은 지하실에 있었으므로 밤과 낮이 없었으며 컴컴하고 습기가 찼다. 경찰은 그들에게 침대 하나와 더럽고 낡은 솜이불을 복도에 던져놓고 갔다. 모두 한 침대에서 자야 했고, 세수와 양치질을 할 용품도 없었으며 여성이 써야할 화장지도 없었다.

이때야 나는 그들이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는 것을 실증하고, 그녀들의 사부님이 결백하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하여 랴오닝성의 교양원 6곳에서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리핑, 쩌우구이룽은 마싼자(馬三家), 장스(張士)교양원에서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받을 대로 받았다. 국가 교양원이라는 게 놀랍게도 파룬궁을 확고히 믿는 수련생을 남녀가 혼잡한 초대소에 보내 남자 수감자를 이용하여 그녀들에게 정신적인 시달림을 당하게 하였으니, 인성이 없기로 이미 절정에 달했다.

이때야 나는 알게 되었다. 그녀들은 우리와 달라 가족과의 면화가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생활용품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녀들이 생명으로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믿고 있었으며, 선혈로 진리를 수호하는 정신은 감관병원의 일부 선량한 죄인들을 감동시켰다. 나를 위주로 그들에게 생활용품을 공급해 주었다.

2001년 6월 4일, 선양 다둥(大東)분국에서 마(馬) 씨 할머니 한 분을 보내왔는데, 이 할머니는 저금이 좀 있는 것을 그녀들더러 쓰게 하였다. 나는 파룬궁수련생들은 알던 모르던 모두 한 집 식구처럼 화목한 것을 보았다. 이번에 그녀들 네 사람은 열흘 남짓 있다가 갔고, 마 씨 할머니는 듣자하니 후에 많은 돈을 들이고서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인리핑, 쩌우구이룽, 저우옌보는 6월 5일에 선신(瀋新)교양원에서 데려갔다.

2001년 6월 14일, 선신교양원은 또 다시 인리핑, 쩌우구이룽을 보내왔다. 이번에 돌아온 그녀들을 보니 온 몸은 맞아서 상처뿐이었다. 인리핑은 선신대대장 궈융(郭勇)에게 허리를 맞아서 소변을 가리지 못하였다. 쩌우구이룽도 온 몸에 상처였는데, 듣자하니 선신교양원 대대장이 전기 곤봉으로 충격을 가했고, 기타 인성이 없는 여자 악경들이 남겨놓은 상처라고 했다. 나는 그녀들과의 대화를 통해 초과 감금과 노동교양복을 입는 것에 대해 항의하였기 때문에 감금을 당하고 맞아서 다쳤다는 것을 알았다. 인리핑이 시달림을 받아 먹지를 못하게 되자 선신교양원은 음식물 주입을 강행하였다. 노동교양복 입기를 거절하였다 하여 그녀 두 사람의 옷을 벗겨 버리고 억지로 노동교양복을 입혔다. 이번에 감관병원에 보낸 이유는 그들이 선신교양원에서 죽을까봐 겁나서였다(인리핑은 요실금으로 이미 생명위험이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경찰의 박해를 보았다.

며칠이 안 되어 저우옌보와 자오수환(趙淑環)이 각기 선신교양원에서 감관병원으로 옮겨졌고, 선양시 제5구치소에서 또 리쑤전(李素珍), 선양시 간수소에서 왕제(王傑), 신청쯔(新城子) 공안국에서 뤼궈친(呂國芹)을 보내왔다. 이때에는 이곳에 이미 파룬궁수련생 7명이 갇혀 있었다.

2001년 6월 22일, 감옥경찰은 우리를 모아 놓고 회의를 했는데, 우리에게 파룬궁수련생이 연공을 하지 못하도록 지키라고 하면서 만약 발견만 하면 경찰에 알려 그녀들에게 수갑을 채우라고 하였다. 인리핑에게 연공에 대한 일을 말했더니 그녀는 “나는 불법 감금된 지 일 년이 넘었고, 수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그래도 확고히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어요. 우리가 당신들 하고 다른 점은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당신도 이미 보았겠지만 나는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 대 맞지 않고서도 연공만으로 손상된 신체를 조정하였는데, 우리가 수련하지 않고 연공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들의 몸에서 확실히 기적과 초상적인 것을 보아냈다. 사실 병원의 의사들도 파룬따파가 초상적이며 의학상에서도 기적이라는 것을 보아냈다. 그래서 나는 감방에서 그녀들이 연공하는 것을 묵인했던 것이다.

나는 2호실에 있고, 쩌우구이룽, 저우옌보, 뤼궈친은 1호실에 있었다. 왕제, 자오수환은 복도에서 살았다. 여러 죄수들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녀들을 연공하지 못하게 하였고 밤중이면 늘 그녀들을 때리고 욕하였다. 쩌우구이룽은 연공할 때, 죄수 양수(楊恕)에게 맞아 넘어지면서 머리를 철관에 부딪쳐 5분 넘게 쇼크 상태에 처했다. 그들은 경찰을 불러다 쩌우구이룽에게 수갑을 채웠다. 후에 그녀를 복도에서 살게 하고 왕제를 1호실에 들어가게 하였다.

쩌우구이룽이 다친 후에 감관병원 지도부는 책임을 질까 두려워 선신교양원더러 와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였다(쩌우구이룽은 연공 때 뒷골을 맞은 후에 늘 혼미해졌고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며칠 후에 선신에서 경찰 넷이 와서 먼저 인리핑을 찾아 담화하였고, 다음에 쩌우구이룽을 불러다 ‘죽어도 파룬궁을 연마하겠다’라고 쓴 기만서[誘騙書]에 강제로 손도장을 찍으라고 하였으나 그녀는 거절하였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선신노동수용소의 여경 3명과 남자 경찰 한 명은 도리어 쩌우구이룽의 머리를 때려 목과 얼굴, 상반신에 숫한 상처를 남겼다. 이 때, 인리핑은 감관병원 의사에게 쩌우구이룽의 머리 상처를 검사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감관병원은 무성의한 태도로 거절했다. 이 때, 감관병원에서 파룬궁수련생 7명은 무너뜨릴 수 없는 응집력으로 단체 단식을 하여 이 불법행위에 항의하였다.

21일이 지난 후, 감관병원은 음식물 주입, 점적주사 등을 강행하기 시작하였고, 강제적 수단으로 그녀들을 탄압하였지만 파룬궁수련생들은 그들에 협력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또다시 목숨으로 그들에 대한 박해를 제압하였고, 나도 다시 한 번 파룬따파와 그의 제자들의 견정함을 보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그녀들의 사부님과 이런 수련생들에게 탄복하였다. 바로 이렇게 그녀들 7명은 각기 8월 10일 경에 생명과 선혈로써 마땅히 그녀들에게 속해야할 그녀들의 자유를 바꾸어 왔다.

우리도 이 때문에 지하로부터 위로 올라오게 되었고 햇빛을 보게 되었다. 8월 24일, 선양시 제5구치소에서 또 파룬궁수련생 6명, 저우위메이(周玉梅), 쑤위(蘇宇), 황신(黃新) 등이 왔고, 다둥구 타오창(桃昌) 파출소에서 리위안(李元)이 왔다. 우리 감방은 압력이 아주 컸는바, 음식물 주입, 점적주사는 모두 강제로 하였고 이 수련생 7명의 몸에는 모두 상처뿐이었다. 특히 리위안의 상처가 제일 심했다. 그들은 숫한 고생을 하면서도 언제나 우리에게 진상을 말해 주었고 사람이 되는 도리를 말해 주었으며, 내가 인생에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던 많은 문제를 대답해 주었다. 이는 내가 감관병원에서 두 번째로 만나게 된 파룬궁수련생이었다. 단식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은 여전히 “삿된 것은 바른 것을 억누르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파룬궁수련생들도 단식한 지 20일도 되기 전에 하나하나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접촉한 제3무리의 파룬궁수련생들로는 런쑤제(任素傑), 우옌핑(吳豔萍), 마롄샤오(馬連曉)였는데, 그녀들은 선양시 구치소에서 왔다. 그녀들도 파출소, 구치소에서 갖은 시달림을 다 받아 모두 몸에는 여러 곳에 상처가 있었다. 이 세 사람은 2001년 11월 14일에 감관병원에 왔는데, 이미 단식한 지 8일이었고 12월 23일에 모두 집에 돌아갔다. 이 세 사람이 사람을 제일 감동케 한 것은 밥 한술 먹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아도 옷을 빨고 세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뭘 좀 도와주려고 해도 그러지 못하게 하였다. 이와 동시에 선양 제5구치소에서 진첸(金謙), 장야핑(張亞萍)을 보냈는데, 쑤자툰(蘇家屯)분국에서 보내온 이런 사람들이 함께 단식 20여 일을 한 것은 나로 하여금 파룬따파는 확실히 초상적이고, ‘쩐(眞), 싼(善), 런(忍)’으로 심성을 닦는 것은 확실히 좋은 것임을 보게 했다. 또한 나로 하여금 속인에서 걸어 나와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하였다.

2001년 12월 23일, 선양시 구치소에서 류샹당(劉向黨)이라는 파룬궁수련생이 오게 되었는데, 접촉한 8일 동안에 그와의 대화를 통해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내가 모르는 것과 내가 알지 못하는 법리를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감옥에서 7개월을 있으면서 파룬궁수련생 31명을 접촉하여 알게 되었으며 무엇이나 다 알게 되었다. 나에게 참으로 화가 복이 된 이 7개월은 그야말로 값어치 있는 날들이었다. 나는 가장 크고 가장 큰 복을 얻었다. 나는 진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운 좋게도 파룬따파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감관병원에서 구치소로 돌아왔다. 구치소로 돌아오는 길에 감옥경찰은 우리에게 돌아가서 아무 말이나 하지 말라고 하였다. 즉 우리더러 진실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를 15호실에 가두었는데, 이곳에는 원쥔(文軍), 왕시빈(王希斌), 쉬민(徐敏) 등 파룬궁수련생 3명이 있었다. 나는 이 세 수련생에 대해 알아갔다.

나는 대화를 통해 원쥔이 선허(瀋河)분국에 잡힌 지 1년이 다 되어 가나 아무런 결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월에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주 심하게 맞았는데, 나는 그의 붉은 조끼가 찢어진 것을 보았다.

나는 구치소에서 발생한 일체를 보았다. 파룬궁수련생은 그저 대법이 좋다는 것만 실증했을 뿐인데, 당신들 악경은 왜 이렇게 그들을 미워하는가? 내가 보기에 파룬궁은 사회에 백 가지 이롭기만 할 뿐,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며, 시시각각 ‘쩐(眞), 싼(善), 런(忍)’의 법리로 자신을 요구한다. 내가 보건대,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만약 대법을 배운다면 당신들 공안, 검찰, 법원은 모두 실업을 해야 할 것인데, 사람마다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고, 어디에서 잘못하였는지 스스로 원인을 찾아보고, 다음번에는 잘하면서 사람에게 착하게 대하고 곳곳에서 남을 배려할 것이다. 당신처럼 강제로 한다면 어찌 잘할 수 있겠는가? 당신들 자신을 다시 돌이켜 보라. 남을 상관할 자격이 있는가? 물어보자. 파룬따파의 어디가 반동이고 어디가 나쁜지, 경찰복을 입은 어느 누가 나에게 대답해 줄 수 있는가?

바로 이렇게 8개월 징역을 사는 동안에 나는 파룬궁수련생 34명을 알게 되었고 진상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생생세세에 찾아 헤매던 우주의 진리를 찾게 되었고,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본 파룬궁의 책과 녹화에는 반당, 반사회, 반인민이라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

한 동안의 법공부, 연공을 통해 나는 몸소 혜택을 받았다. 그러므로 누가 뭐라고 말해도 나는 믿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직접 체험하고 실제로 수련해야만 진정으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쁘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며, 누가 바르고 누가 삿된가를 알 수 있다. 나는 갈수록 파룬따파를 더 확고히 수련할 것이다.

문장발표 : 2010년 4월 14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14/2215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