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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공을 전하시고 설법하시던 나날을 회억하다.

글 / 창춘(長春)대법제자 파라이(法来)

[명혜망 2004년 5월1일] 1992년 5월에 法輪大法 (파룬따파)는 창춘(長春)에서 전해지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부터 우주의 법리는 인간세상으로 왔다. 그리하여 우리 이 보통 속인들이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그 당시 창춘에서 공을 전하시고 설법하시던 나날을 회억하는 것은 나의 이 일생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즐거운 시기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수하고 설법을 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말한다면 정말로… … 장래에 당신은 알 수 있지만, 당신은 이 한 단락 시간이 몹시 보람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이런 경력을 써내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 천리 밖에서 사부님을 찾았으나 사부님께서는 고향에 계시다

92년 황금빛 나는 가을에 나는 사부님을 만나 뵈었고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에 진정으로 올랐다.

인생의 경력은 나로 하여금 감개가 아주 많게 하였다. 나는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 3반과 5반, 공사합영, 대약진, 반우, 4청, 문화대혁명 등을 겪어 심신이 피곤하였으며 사람이 사는 것이 아주 고달픔을 느꼈다. 이 대고해(大苦海)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나는 수련을 선택하였고 늘 절에 가서 불경을 청해 보았다.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기 위하여 또한 각종 기공 학습반에 참가하였다. 그 당시 나는 마땅히 유명한 사부님을 모시고 수련해야 비로소 성사된다고 생각하여 사부님을 찾는 길에 나섰다. 몇 년 동안 나는 연달아 보타사, 소림사, 백마사, 영은사, 법문사 등을 갔었고 또 아미산, 낙산, 청성산 등에 갔지만 내가 찾고자 하는 사부님을 찾지 못했다.

92년 가을, 이웃 동수가 나에게 파룬궁(法輪功)을 가르쳐 주었으며, 또한 내가 찾고자 하는 사부님이 가능하게 이(李)선생님일 수 있는데 이선생님께서 창춘으로 돌아오시면 우리 가서 만나보자고 하였다. 어느 날 우리 일행 네 명은 사부님 댁에 갔다. 사부님 댁은 길가에 있는 층집이고 실외는 층계였다. 그 당시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두 서 있었고 사부님도 서 계셨다. 그러나 나는 한 눈에 사부님을 알아보고서 두 손을 합장하였다. 공손하게 사부님께 심심한 예의를 올렸다. 입으로는 “이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사부님! 나는 사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고 하였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나와 악수를 하셨다. 그 당시 나의 격동된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즉,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집을 찾은 느낌이었다. 이때 함께 간 사람이 나의 정황을 사부님께 소개하였고 사부님께서는 아주 기뻐하시었다. 나는 사부님과 함께 베이징에 가서 설법반에 참가할 것을 청하였지만 사부님께서는 나더러 창춘의 설법반에 참석하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실 때 나는 비로소 방안의 정황을 볼 수 있었다. 방은 두 칸이었으며, 안 쪽의 침실에는 더블사이즈 침대 하나가 있었고 바깥의 방이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 방이었다. 방은 비교적 컸는데 긴 소파 하나, 책상 하나와 의자 두 개가 있었다. 그 당시 매 번 사부님 댁에 가면 방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벽에는 사부님께서 손수 그리신 몇 폭의 불상이 걸려있었으며 그림 속의 부처님들은 모두 한 층 한 층의 작은 탑처럼 된 연꽃석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직접 만드신 작은 진흙부처가 있었다. 후에 사부님의 설법비디오의 첫 부분에 멀리에서 가까이로 오는 사부님의 법상이 나오는데 멀리의 것이 바로 사부님 댁의 그 불상이었다.

몇 년 동안 나는 기차 타고, 배 타고, 비행기를 타고 사부님을 찾아 다녔지만 오늘날에야 비로소 사부님을 만나게 될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오히려 걸어서 갔으며 나의 집에서 사부님의 집은 단지 버스 한 정거장 거리였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수련계에는 이러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줄곧 고층차에로 수련하려고 생각한다. 곳곳에 다니며 법을 구하고자 돈도 적지 않게 썼으며 동남서북으로 한 바퀴 돌아 유명한 사부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다. 유명하다는 명(名)은 진정하게 명백하다는 명(明)이 아닐 수도 있다. 결국은 헛수고로 왕복하며 돈을 팔고 사람이 고달팠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우리는 오늘날 당신에게 내놓았고 나는 이미 당신에게 받쳐 주었고 당신의 집문 앞까지 가져다 주었다.”(2)오늘 나는 마치 꿈을 꾸듯이 정말로 사부님을 만났다. 그 당시 나는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 원만하여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결심하였다.

* 사부님의 전공(傳功) 설법하는 반에서

93년 7월 사부님께서는 비로소 창춘으로 돌아오셨고 성위(省委) 대강당에서 제5기 전공설법반을 여셨다. 그 당시 법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관계로 또 연속하여 지린대학(吉林大學)의 대강당에서 제6기 전공설법반을 여셨다. 94년 5월 사부님께서는 지린대학 대강당에서 제7기 전공설법반을 여셨다. 이 4차례 설법반을 나는 모두 참석하였고 후에 또 하얼빈에서 여신 정공설법반에 참가하였다. 수 천명 되는 설법마당은 모두 조용하였고 잡음 하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실 때 일꾼들 마저 모든 일을 멈추고 조용히 설법을 들을 것을 요구하셨다.

내가 참가한 이 50절(節)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모두 먼저 도착하시고 강연대에 서서 수련생들이 입석하는 것을 보셨다. 이 기회를 빌어 사부님과 함께 우리 온 가족은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에서 사부님께서는 손에 한 장의 작은 쪽지 하나를 쥐고 계시는데 위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몇 줄의 글자가 쓰여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지니신 유일한 물건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하실 때 원고도 없고 교안도 없이 파룬따파를 손수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전수하셨다. 매 번마다 나는 불광이 누리 비추고 예의가 원명한 전공 설법마당 속에서 두 다리를 온가부좌하고 손은 결인하고서 눈으로는 사부님의 휘황한 형상을 보며 귀로는 사부님이 우렁찬 목소리로 우주의 법리를 설법하시는 것을 들었다. 우리에게 우주의 특성인 真善忍(진선인)이 바로 불법이라고 알려주셨고, 우리 인생의 참뜻은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真)이며 우리더러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사람이 되라고 알려주셨다.

제6기 전공설법반에서 사부님께서는 비교적 높게 법을 말씀하셨다. 천목을 말씀하실 때 사부님께서는 다른 공간에 관한 문제와 동시에 같은 곳에 존재하고 있는 다른 공간을 말씀하시며 어떠한 물체든지 다른 공간에서 모두 그의 존재형식이 있다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책상 위의 물컵을 들어 오른쪽 손 위에 올리셨다. 그리고 모두들 주의하여 보라고 하셨다. 천목이 열렸든지 열리지 않았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이때 사부님께서 왼쪽 손의 중지와 엄지손가락으로 물컵 속에서 천천히 작은 물컵 하나를 꺼내셨다. 원래의 물컵과 똑같게 생겼지만 원래 물컵의 4분의 1의 크기였다. 사부님께서는 여러분들 잘 보았는가 하고 물으셨고 모두들 격동하여 잘 보았습니다 고 답했다. 그 다음 사부님께서는 또 천천히 작은 물컵을 원래 물컵 속에 넣으셨고 이때 작은 물컵이 차츰차츰 원래 물컵과 함께 합쳐지는 것을 잘 볼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공간의 물건을 확실하게 보게 하셨다. 이는 현대과학으로 돌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은 우주가 얼마나 큰가 라고 묻는데,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우주, 그는 변두리가 있다. 그러나 여래 이런 하나의 층차에서는 그를 모두 변두리가 없이 무한히 큰 것으로 보게 된다. 사람 신체의 내부는 분자로부터 미시적 아래에서의 미립자에 이르기까지 이 우주와 마찬가지로 큰데, 듣기에는 아주 허황하다. 일개 사람, 일개 생명을 육성함에 있어서 극히 미시적 아래에서 이미 그의 특정된 생명성분과 그의 본질이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현대의 과학이 이것을 연구함에 있어서는 아직 차이가 너무나도 멀며 전체 우주 중에 존재하고 있는 고급 지혜인 별나라ㅡ 그런 생명들과 비교하여 볼 때, 우리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은 상당히 낮다. 바로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도 우리는 돌파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별나라에서 날아온 비행접시(飛碟)는 직접 다른 공간 속에서 가기 때문에 그 시종적 개념도 모두 변화를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오려고 하면 오고 가려고 하면 곧 가며, 어찌나 빠른지 인간의 관념으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3)

* 사부님께서 나의 집착을 제거해 주시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또 당신에게 알려줄 것은, 나의 이 책의 내용은 몇 개 수련반에서 이야기한 법을 한데로 합친 것이다. 모두 내가 이야기한 것이며 구절마다 모두 내가 이야기한 것이고, 모두 녹음테이프에서 한 글자, 한 글자씩 뽑아낸 것이며 한 글자, 한 글자씩 베껴 쓴 것으로, 모두 나의 제자, 수련생이 나를 도와 녹음에서 기록하여 베낀 다음, 내가 다시 한 차례, 한 차례씩 수정하였다. 모두 나의 법으로서, 내가 이야기한 것은 곧바로 이 하나의 법이다.”(4)

그 당시 나는 행운스럽게도 그 베끼는 일에 참가하였다. 제7기 전공설법반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아주 높았다. 설법반이 결속된 후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이번 설법녹음테이프를 베끼라고 하셨다. 요구는 특별히 엄격하셨는 바, 반드시 한 글자도 빠짐없이 베끼라고 하셨으며 시간 또한 특히 짧았다. 나는 녹음테이프를 받았을 때 심정이 아주 격동되었는데 사부님께서 나를 신임한다고 여겼다. 또한 이번 일이 어렵지 않고 단지 베끼는 일꾼(抄錄員)의 일이 아닌가 고 생각했다. 아주 간단하고 쉽다고 여김으로써 환희심이 일어났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의 기타 면과 과정 중에서도 환희심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이런 마음은 마에게 이용당하기가 아주 쉽다.”(5)고 말씀하셨다. 이리하여 나는 베낄 때 생각과 달리 능력이 안되며,기억력이 차하고 쓰는 속도도 느려 거의 매 한 마디를 모두 카세트를 한 두 번씩 멈춰야만 쓸 수 있었다. 바로 이렇게 멈추고 뒤로 돌리며 하였는데 아주 느리게 여겨졌으며 또한 마음 속으로 조급해 졌다. 이때 또 두려운 마음이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질 까봐 두려웠고 제 시간에 완성하지 못하여 체면을 잃을 까봐 두려웠다. 후에 카세트가 고장나 시간을 다그치기 위하여 새 카세트로 바꿨지만 나중에 그래도 나는 뒤쳐졌다. 동수의 도움 하에 나중에 제 시간 내에 베끼는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는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법을 책으로 써내어 우리에게 법공부에 쓰도록 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보귀한 책의 이름이 <<전법륜>>임을 몰랐다.

94년 9월 사부님께서는 작은 법회를 한차례 열어 수련생들에게 수련 중의 일부 문제를 해답해 주셨다. 수련생들이 제기한 문제가 비교적 많았으며 사부님께서는 매 문제마다 모두 상세한 해답을 하셨기 때문에 법회가 결속될 때 이미 점심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사부님과 함께 작은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이때 나의 집착심이 또 일어났다. 다급히 집에 달려가서 카메라를 가져왔고 새 필름을 넣은 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해외에 나가서 전공설법하시기에 사부님과 만날 기회가 적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사부님과 함께 있은 사진을 더 많이 남기고 싶었다. 하여 나는 바삐 돌아다니면서 왼쪽에서 한 장, 오른 쪽에서 한 장 찍었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사부님을 한 장 찍었다. 여전히 모자란다고 여기고 계속 찍어댔다. 이때 사부님 곁에 앉은 남편이 나에게 눈치를 주며 그만하라고 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계속 나를 보고 웃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남편을 상관하지 않고 찰칵 찰칵 하고 모두 찍어버렸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필름을 현상하였다. 이튿날 가서 필름을 보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였다. 필름이 전부 시커멓고 그림이 없었다. 나는 즉시 깨달았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집착심을 제거해 주신 것이며 직접 나를 점오해 주시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없이 넓은 부처님의 은혜(佛恩浩蕩)로 하여 나는 사부님에 대한 감격과 경양(敬仰)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까지 매 번마다 자신한테서 집착심을 발견할 때면 그 당시 사부님의 그 미소 짓는 얼굴과 나를 바라보던 정경이 눈 앞에 떠오른다. 하여 나로 하여금 몸둘바를 모르게 하며 사부님께 죄송하게 느껴져 노력하여 집착을 제거한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하에 나는 오늘날까지 겨우 걸어올 수 있었다. 나는 오로지 사부님을 단호히 믿고 대법을 단호히 믿으며, 에누리 없이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안을 향하여 찾아 집착을 제거하고 동요하지 않으며,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가서 행하면서 극단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최대의 노력으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나는 이것이 바로 종횡우주(縱橫宇宙)의 대법제자라고 생각한다.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고향의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을 떠맡아 세가지 일을 잘 하여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뒤따를 것입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떳떳하게 행할 것입니다.

사부님, 고향의 대법제자들은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사부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1)《전법륜》 中國廣播電視出版社出版發行 p2(1994년12월)
(2)《전법륜》 中國廣播電視出版社出版發行 p277(1994년12월)
(3)《전법륜》 中國廣播電視出版社出版發行 p53(1994년12월)
(4)《전법륜》 中國廣播電視出版社出版發行 P228(1994년12월)
(5)《전법륜》 中國廣播電視出版社出版發行 P292(1994년12월)

문장완성: 2004년 4월 30일
문장발표: 2004년 5월 1일
문장갱신: 2004년 5월 1일 2:25:38 AM
문장분류: 제자절차[弟子切磋]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5/1/73587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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