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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十方】정치에서 나와 수련에 입문

【明慧十方】정치에서 나와 수련에 입문


【명혜망 2009년 4월 23일】

‘명혜시방’은 명혜망에서 최근 새로 제작한 TV프로그램이다. 제1집은 전(前) 공안부 고급관리를 지낸 엽호(葉浩)의 이야기이다.


해설사:


정치에서 나와 수련에 입문


우리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입니다

저는 금년에 72세입니다


엽호(葉浩)는 1937년 중국 복주(福州)에서 태어났다

북경 서쪽에 자리 잡은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다년간 중국 공안부에서

중요 직책을 맡았다

그는 1978년부터 비밀리에 기공을

연구하고 배우고 연마했으며

1986년부터 공개적으로 기공을 선전했고

1992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청년시절부터 공산당 정치 간부

교육을 받아 온 지식인으로서

정치생명, 정치영혼을 무엇보다

높게 여기는 공안부 고급관리로서

왜 공산당이 봉건미신이라고 하는

기공연구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는가

그는 적어도 8개의 각기 다른

과학영역을 탐구했고

마르크스주의와 공산당의 역사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으며

중국문화를 깊이 연구했다

그렇다면 엽호는 어떻게

파룬따파 수련자가 되었는가

파룬따파는 도대체 무엇인가

2009년 2월 이른 봄

햇빛이 가득한 오후

명혜시방은 미국 뉴욕에서

엽호선생을 방문했다

아래에서 엽호선생이 말하는

대학시절 자신의 경험을 들어보기로 하자


정치보도원에서 공안 간부로


제가 19세 때

‘반우파(反右派)’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나는 이미 19세부터 세속의 이런 것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내가 지나 온 이 몇 십 년 동안

날마다 이 (정치)운동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당신이 방금 말한 것처럼

틈새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분을 참고 삭이며

구차하게 연명해왔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이렇게 지나왔는데

만약 지금처럼 했다면

살아있기는커녕 벌써 사망했을 겁니다

그렇게 했다면

세 번, 다섯 번도 모자랍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나는 1937년에 태어나

후에 청화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때 나는 전자과를 다녔습니다

내가 19세에 청화대학 3학년이었는데

그때 ‘정풍반우파’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청화대학, 북경대학은 그때 ‘우파’가

제일 밀집된 지역이었습니다

바로 북경대학 물리과를 예로 든다면

한 학급 17명 중에서 11명이 ‘우파’였고

다른 6명은 또 ‘극좌’, ‘중도우파’였는데

좋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청화대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 학부의 당서기와 전체 정치교육팀이 무너졌습니다

그때 내가 소속한 학급을 놓고 말하면

3개 반에 백명이었습니다

그때 학생회장과 학부 공청단 서기가

모두 우리 반에 있었는데

전부 타도되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나이가 제일 어렸습니다

내 앞에는 37년 ‘팔로군’에서 지하공작을 했던

노간부가 있었는데

그때는 ‘조간생(調幹生 학생 신분의 간부)’이라 불렀습니다

또 있다면 바로 아주 정진하는

일부 학생 간부였습니다

내 앞에서 십여 명이나

우파로 타도되었습니다


나는 1957년에 청화대학 ‘정치보도원’이 되어

공산당 간부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정치영혼’이고

무엇이 ‘정치생명’이며

무엇이 ‘산송장’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57년에 나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뒤에서 따라다니며 함께 우파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공격대상은 모두 나의 스승과 동창으로

나를 ‘전진’하도록 이끌어주고

내가 공산당을 알 수 있게 이끌어주고

나를 이끌어 공청단, 공산당에 가입하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매우 늦게 공청단에 가입했습니다

55년에 막 공청단에 가입하고

56년에 바로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57년에 바로 ‘반우파’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나를 도와 ‘진보’하게 했는데

지금은 내가 그들을 ‘반혁명’이라 말하고

그들을 ‘우파’라고 해야 하니

그때 나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한 차례

아주 큰 재난이 닥친 느낌이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북경대학의 대자보를 다 보았고

청화대학의 대자보도 다 보았습니다

나는 대학의 모든 대자보를 연구한 후

사상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의 매 하나의 관점은

모두 나의 관점이었고

매 하나의 관점은 모두

그들이 나에게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들 하나하나가 다 우파이니

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너무나도 놀랍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또 집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나는

그들을 우파라고 비판해야만 했는데

이것은 근본 불합리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나는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24시간 잠을 자지 못했는데

양심의 가책으로 두려웠으며

진리는 까마득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집중적으로 공산당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습니다


대체 누가 누구이고 누가 누구이며

애초 공산주의소조는 누구였으며

나중에 어떤 결말이 있었는가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

‘공산당’이란 무엇인가

공산당의 ‘노선투쟁’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했습니다

어느 노선투쟁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모두 외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영혼에 큰 충격을 가져다준 반우파 운동과

정치에 대한 연구를 거친 후

엽호선생은 어떻게 정치생명을 대하게 되었을까?


그 정풍 반우파운동이 지나간 후

나는 19세부터 나에게 교육한

그때 그 ‘정치적 영혼’, ‘정치적 생명’은

영혼이 없는 ‘산송장’임을 깊이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정치란 가장 고상하며 ‘정치생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기공은 당시 ‘봉건미신’ ‘우매무지’

‘반혁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기공에 들어설 때

나는 절대로 자신의 고귀한 정치생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봉건미신 우매무지한 반혁명을 한다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더는 ‘타도’를 따라 외치지 않다


나는 59년에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청화대학에서 조교로 있었습니다

1960년에 나는 공안부로 갔는데

공안부에서 연구소를 설립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청화에 가려면 청화대학 계열주임을 제거해야 했는데

나는 그들의 희생양으로 공안부로 갔습니다

아무튼 이런 의미였습니다

나중에 소위 ‘팽(彭)라(羅)육(陸)양(楊) 반당음모사건’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우리 부서가 바로 그런 부서여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우리 부서는 바로 해산 되었습니다

그럼 문화대혁명 그때

나는 이미 10년 전에 충격적인 그런 일들을 겪었기에

1966년 문화대혁명에서는 다시는

그들을 따라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류소기를 타도하자고 외쳤지만

나는 한 번도 따라 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일찍이 간파했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다니며

함부로 외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류소기를 타도하자’는

말은 한 마디도 외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도 자신의 역사적인 상황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적인 일을 철저히 연구했습니다


나는 그때 배불리 먹으면서도

출근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종일 북경 도서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 8시에 도서관에 들어가면

저녁 8시 문을 닫을 때에야 나왔습니다

나는 공안부 요원이었기에

어떤 책이든 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해 보십시오

56년에 19세의 어린나이에

그때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니

몸이 일찍 망가진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1963년에 나는 괴상한 질병에 걸렸는데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먹든 다 토하였는데

나중에는 토할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다 토해내면 끝장이기에

반드시 입가까지 토한 것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삼키고는 다시 토하고

삼키고는 다시 토하면서

한 끼에 100번 넘게 토했습니다

한 끼에 100번 넘게 토하다보니

일찍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양의, 한의, 음식, 보약


나중에 ‘문화대혁명’ 때

우리 부서는 혁명의 발단이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흩어졌습니다

후에 우리는 ‘하방노동(下放勞動)’으로

동북 북안(北安) 득도(得都)에 나누어 배치됐는데

구소련과 4, 5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거기에서 십여 차례 이사했는데

마지막에는 감옥 안으로 이사해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는 노동개조범들이 삭발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옆에 거주했습니다

각자 자기 옷을 입었는데

각양각색의 헤진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우리의 구별이라면 삭발머리였습니다

그들이 외출 시에는 총을 든 사람이 압송하였고

우리는 압송할 필요가 없었는데

바로 이런 구별이 있었습니다


후에 소련 국경에서 ‘진보도(珍寶島)사건’이 터지면서

구소련이 쳐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중국은 ‘문을 닫고 개를 잡는다’고 하면서

곧바로 산해관(山海關)을 지키고

‘적을 깊이 유인’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적 후방의 근거지’에 남으라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총을 주어야 한다고 하자

총은 줄 수 없으니 죽음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놀라 재빨리 도망치려 했습니다

방법을 다하여 천방백계로 도망하려면

또한 이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처가가 있는 절강(浙江)으로 갔는데

나중에는 절강에서도 살 수 없었습니다

온갖 모순투쟁은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연명이 말하는 무릉도원이 있어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생명을 부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중국은 이미 희망이 없어졌고

국가는 이미 희망이 없어졌으며

경제도, 과학도 모두 희망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미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고

단지 몸을 숨겨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럼 시골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가? 그것도 안 됐습니다

그럼 북경에 돌아가 목숨이나 건지고 보자고 작심했습니다

나는 병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나보다 병이 더 위중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서양의학을 배웠는데 배워도 치료할 수 없어서

한의를 배웠는데 역시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럼 침구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침구를 배워 스스로 치료했는데

아픈 곳이 있으면 그곳에 침을 놓았습니다


나중에 침구도 안 되었습니다

어째든 목숨을 살리기 위래

우리는 각종 건강방법을 다 해 보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어

식이요법을 연구했습니다

또 약보(藥補)를 연구했습니다

양의가 안 되니 한의을 하고

한의가 안 되니 침구를 하고

침구가 안 되니 건강요법을 하고

그 후에는 약보를 했습니다

 

1959년 청화대학 전자과를 졸업한 엽호(葉浩)는

공안경찰 내부에서는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열심히 과학연구를 하며 밤을 지새운 결과

많은 성과와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기간에 집도 없이

다년간 각지를 떠돈 후

막다른 처지에 도달한 그는

북경 원래 직장에 돌아오고 싶어도

이미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어쩔 수 없이 당시 사회 풍조를 쫓아

손님을 접대하고 선물을 보내며

고급 담배와 술을 바친 끝에

마침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북경에 돌아왔다

건강이 악화되어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수년간 공산당에 의해

주입당한 관념을 고수하면서

감히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기공을 접촉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1978년부터 기공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각 지역을 떠돌다 북경에 돌아왔을 때

내 몸은 이미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1978년에 목숨을 건지기 위해

나는 북경에 돌아왔습니다

내 목숨은 이미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습니다


그때 기공을 배우는 것에 대해

나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공산당 교육에서는

‘사회주의의 잡초’가 될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이 될 순 없었고

차라리 죽을지언정 봉건미신을 하는

‘낙후하고 우매한 민중’이 되거나 ‘반혁명’을

할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체가 좋지 못해 죽었다면

나 한 사람이 죽은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수한 직원’으로

어쨌든 그때는 장려금이 있으니

이것은 절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죽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약 봉건미신을 하다 죽으면

‘만년의 치욕을 남기는 것’이기에

절대 기공을 배울 수 없었습니다


‘재앙 속에 복이 있어(禍兮福所奇)’


하지만 이미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몸은 날이 갈수록 망가졌고

더는 감당할 수 없었으며

사람도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정치 간부 출신이므로

기공은 배울 수 없고

그럼 마르크스레닌주의부터 배워보자

변증법에는 이런 조목이 없지만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럼 유령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 아닌가

영혼도 존재할 것이다

영혼이 존재한다면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먼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틀어쥐고

기공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재미 있었습니다

중국에 기공학회가 있는데

전학삼(錢學森)은 ‘10대 과학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1986년에 이런 체계를

만들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유물변증법의 지도’하에

인류과학의 체계를 새로 분류했는데

‘인체과학’은 10대 과학의 하나였습니다

‘미래 과학은 동방문화의 부흥’이고

‘동방과학의 부흥’은 과학 중의 과학이며

첨단 중의 첨단이라고 했습니다

전학삼은 아주 대단했고

가장 멋진 말로

가장 위대한 과학의 새로운 전선

가장 광명한 전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때 모두 전학삼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 후 예호는 날마다 북경 도서관에 파묻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으며

책 속에 파묻혀 부지런히 연구하면서

기공과 인류과학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다


그러므로 나는 정치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철저히 연구한 후

모든 과학체계가 기공을 지지하는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몇 년간 사업에서 줄곧

과학탐구에 몰입했습니다

나의 사업 영역은

내 자신이 임의로 개척한 것으로

나는 졸업한 후 이미 여덟 번이나 전공을 바꿨습니다


나는 매일 영어로 된 책을 보았으며

거기에서 과학의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므로 나는 기공을 연구할 때

우주론, 천문학, 시스템이론, 제어학, 정보이론,

천문, 지리, 지질 중에서 나는 과학체계 내부에서부터

인류과학 생명과학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수수께끼는

과학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길이 없단 말인가?

내 연구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인류에게는 길이 없는가?

몇 천 년의 인류에게 길이 없단 말인가?


나는 기독교, 불교 ,도교를 포함해

기공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곳은 모두 가봤습니다

그때 중국에는 2천4백여 종의 기공이 있었는데

몇 개의 큰 문파가 있었습니다

내가 2천4백여 종류를 모두 배울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서 ‘도장(道藏)’,

‘대장경(大藏經)’을 봤는데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남들이 볼 수 없는 각종 금서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배운 후

중국에는 정말 수련(修煉)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근거가 아주 많았으며

누가 어찌된 일인지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난 후 아주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몇 천, 몇 백에 달하는 것을 어떻게 수련한단 말인가

수련을 안다 해도 실제로 수련하기란 매우 힘들었습니다

가장 좋은 기공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도가에서 말하는 것과 불가에서 말하는 것이 다르고

각 문파마다 다 달랐습니다


가령 ‘맥(脈)’만 놓고 말한다 해도

이 맥은 이렇게 가고

이 맥은 저렇게 간다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맥이 없지만

장밀(藏蜜)에서는 또 중맥(中脈)을 말합니다

그럼 우주에 정말로 인체의 맥이 존재한다면

어찌하여 각 가(家)에서 하는 말이 다른가


나는 이러면 안 된다고 여겨

이 모든 구별 중에서

한 가지 정확한 것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면 아주 많은 시간을 들여

무엇이 옳은 것인지 연구해야 했습니다

 


이때 엽호는 이미 정치생명, 과학,

종교의 장애와 의혹을 해결했고

생명의 비밀을 실천하는데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런 탐구와 실천은

당시 현지에서 오직 비밀리에 진행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 공안 간부로서

투옥될 위험이 수시로 닥쳐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과학에 이르고 과학에서

또 기공에 이르기까지

기공의 각종 문파에서

나는 또 옳은 것을 찾아야 했으므로

모든 중국의 고대문화와

모든 계층의 것을 다 배웠습니다

주역, 명리, 풍수, 팔괘 등

무엇이든 다 배웠습니다


그때 내게는 이런 조건이 있었는데

내가 필요한 책은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나의 이런 신분으로 주역과 같은 것을 연구하면

그들도 나를 보배로 여겼으므로

나는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나는 또한 공안부의 주요 인물이었으므로

그들은 학회의 안전을 위해 나와 접촉하고자 했습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하다 자칫 재수가 없으면

다음날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절대 공개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또 배워야 했으므로

비밀리에 광범위하게 배웠으며

남들이 모르게 했습니다

공안부 사람들도 모르게 했는데

알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명한 점쟁이나 유명한 기공사들이

모두 나를 찾아와 일처리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좋은 것을

내게 가르쳐주곤 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된 일입니다


나중에 나는 중국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고급생명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상황 하에서 비밀리에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마지막에 두 사람을 선정해 배웠고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가의 스승님은 일화, 전고(典故), 역사, 현재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도가의 것을 배웠는데

그는 단을 연마했습니다

도가에서는 세 개의 층차를 이야기하는데

하나는 바로 천선(天仙)입니다

도가서적을 보면 승천하는데 이를 천파(天派)라 부릅니다

또 한 가지는 인파(人派)인데

인파에서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금단(金丹)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또 지파(地派)가 있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이치는 바로 승천인데

모두 내가 믿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연공을 하려면 재주가 있어야 하는데

당신이 책을 보고 몇 마디 좋은 말을 하고는

당신이 진리를 얻어 승천한다고 하면

우리는 알지도 못하거니와 믿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연단(煉丹)을 배운다고 하면 이는 진짜입니다

 

처음 천기를 얻고 구도의 마음 더욱 절실


나는 1978년부터 연단(煉丹)하기까지

8~10년이란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도가 스승을) 찾았습니다

이 사람 자신도 아주 대단하다고 여기면서

그들 이 패에 세 사람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두 사람은 무당산(武當山)의 노도사인데

이미 100세가 넘었기에

제자를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1937년에 북경대학 역사과를 졸업하고

노구교(盧溝橋)사건에 참가해

현장에서 시체를 수습하고 현장을 정리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나에게 전수할 때 이미 80여 세였습니다

그는 책을 아주 많이 써냈다고 했는데

사람의 생명철학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라면 내가 앞선 셈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기초를 닦았고

그렇게 많은 기공을 연구했기 때문에

이 기초는 누구도 비할 바 못됐습니다

내가 그의 공을 4일간 연마했는데

그들은 당신은 다른 사람이 40년간 연마해도

얻지 못하는 것들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모두 연마해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매우 많은 기공의 것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식인이기 때문에

무슨 문제든 늘 다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에게

700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몇 천개 문제

몇 만개 문제


어쨌든 그때는 기공열조가 일어

기공방면의 책이 아주 많이 나왔습니다

어떤 기공책에서 제기한 문제든

나는 해답을 얻지 못한 것이 없었으며

스스로 생각하기만 하면 분명 답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의 책을 보았는데

별로 그리 대단한 것을 보아 내지 못했고

얼마 보아내지 못했으나

그래도 아주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해답할 수 없을 때는 그에게 물어봤는데

그는 당신이 그렇게 많은 것을 알면서

아직도 무엇을 더 알려하는가 라고 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그는 가부좌 하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가부좌하면 저쪽의 신선이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황제내경에는 내경도가 있는데

나는 수련하면서 그것을 모두 겪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정말이었습니다

바로 수련이지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의 천목(天目)이 열렸는데 두 눈 사이에서

황금색의 강렬한 빛이 ‘쏴’하고 나갔습니다

아무튼 바로 이러했습니다

바로 자연적인 능력에 도달한 것인데

연공만 하면 곧 그런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것마저 다 잊었는데

잠을 자지 않았지만

정신 상태는 얼마나 왕성했는지 모릅니다


바로 그런 수련이었는데 지금 말한 이런 현상들이

모두 나타났습니다

바로 4일간에 그들이 말하는 몇 십 년에도

얻지 못하는 것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공안부에 입장을 밝히다


나는 이젠 됐다 공안부에 기공을 연마한다는 입장을 밝혀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무슨 능력이든

모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으로부터

모든 과학의 문류(門類)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에서 기공의 몇 천개 문류까지

지금 나의 능력까지 말한다면

누구도 나를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공안부 국장회의나 무슨 회의든

도처에서 기공을 선전했습니다


제가 ‘첫 인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누구도 비판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마르크스레닌주의부터 시작하여 말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비판하겠습니까

모든 과학과 어느 문류의 것이든 모두 말할 수 있고

모든 기공과 기공내부의 어느 문파도 나를 당할 수 없었으며

더구나 나 스스로 4일간 연마해

다른 사람들이 40년에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었는데

어느 기공사가 감히 나와 변론하겠습니까

공안부에서 나의 지위는 아주 초탈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그들과 ‘언쟁’했지만

그들은 하루도 나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공안부에서도 내가 기공을 연마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았습니다


그때 내가 공안부장에게 어떤 일을 이야기했는가 하면

기공에는 특이공능(초능력)이 있어

어떤 물건이든 운반할 수 있으니

금고 안의 국가기밀도 지킬 수 없습니다

빨리 기공보위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라고 하자

부장은 좋은 의견이지만 이미 안전부에서 하고 있기에

우리가 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기공보위국을 설립하는 것이 틀렸다거나

나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에서 나는 어느 부장이든

모두 나와 친숙했기 때문에

기공사들을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기공협회에서는 나더러

빨리 부장님을 모셔서

우리 기공협회의 부회장직을 맡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러면 기공협회는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공안국과 기공협회가 서로 익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리훙쯔 대사의 대수인 장면)


속담에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이 있다고

꾸준한 구도지심(求道之心)에 연분이 더해져

엽호 선생이 마음속으로 줄곧 해답을 얻지 못했던

그런 중대한 문제들이

마침내 만족할만한 답안을 얻게 되었다


1992년 사부님께서 나오셨습니다

나는 78년부터 시작하여 이미 14년이 됐습니다

나는 수련이 끝난 이 상태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한 무더기나 되는 문제와

우주의 진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기공사들이 제출한 그런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나 스스로 모두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것은 나의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사부님께서

모두 해답해주셨습니다

나는 아! 이것이 진짜구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것이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들 파룬궁은

왜 이렇게 ‘광(狂)’적인가

다른 사람은 하지 않는데

당신 혼자만 하는가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모두 없는 것이고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엽호 선생이 기공을 연구하고

기공연마를 배우던 데로부터

파룬따파 수련을 하기까지

오직 신체건강만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더욱 깊은 원인이 있을까요

 

이는 마땅히 아주 명확해야 합니다

앞에서 육체적인 압박이 있었는데

육체적인 압박이 없었더라면 죽어도

기공을 접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줄곧 이런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절대 정치적인 잘못을 범할 순 없었습니다

어떤 시기든 정치적인 잘못을 범할 순 없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기공을 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부터 기공을 인정하고

그런 다음 과학으로 기공을 인정했고

모든 중국문화로 기공을 인정했으며

세계의 모든 종교로 기공을 인정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2천4백 가지 기공 중에서

몇 가지를 골라 배울만한 기공으로 인정했습니다


나는 모든 기공에 나타나는 과학실질의 모순을

통일하고 해결한 후에야 기공을 연마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연마한 공은 정확하게 모든 공이

통일된 것으로 그들 문파에 속하는

지리멸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왜 가공을 틀렸다고 하는지

진정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나는 또 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오직 파룬따파만이

나에게 해답을 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아주 확고했습니다

나는 파룬따파와 그것들과의 차이가 천양지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표면에 불과했고

파룬따파야말로 진정한 우주의 본질이며

우주의 진리였습니다


그 후 나는 대법을 따르게 되었고

아무 조건 없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얻게 했습니다

 

파룬따파협회 성원인 엽호 선생이 보는

파룬따파는 대체 무엇일까?


파룬따파는 바로 수련입니다

무엇을 ‘수련’이라 하는가?

‘수련’이란 생명이 보다 높은 곳으로 승화할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수련 자체는 세간에서 수련해 세간을 벗어나는

이런 하나의 과정입니다

석가모니의 말에 따른다면

‘열반의 피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파룬따파는 성명쌍수(性命雙修)에 속하며

불가의 일종 상승(上乘) 수련방법입니다


석가모니의 수련을 귀납하면

사실상 세 개 글자

바로 ‘계(戒)·정(定)·혜(慧)’입니다

파룬따파는 바로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이치

‘진(眞)·선(善)·인(忍)’을 수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戒)·정(定)·혜(慧)’를 수련하는 것과

매우 큰 차별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마다 모두 생각이 있습니다

일생동안 살면서 도대체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명확한 답안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애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고

재산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추구하는

과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인류를 위해 행복을 만들고

인류 사회의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입각해

많은 것들을 연구하고 탐구하고

노력하고 분투하면서

그들 자신도 최대의 노력을 다 했고

자신의 행복을 얻얻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사람은 어떻게 왔는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문제는 인류의 매우 높은

비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밀은 얻기 어렵습니다

사실 불가도 인류의 진리를 말하고

도가 역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진리는

왜 그 진리와 다릅니까

그것은 부동한 층차의 진리로서

부동한 각도의 진리입니다

그는 또한 더욱 높은 진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석가모니는 열반에 직면해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뜻인즉 나는 우주의 진정한 최고의 진리를

당신들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파룬따파는 바로 우주는 도대체

어찌 된 것인가를 추구하는 것으로

우주는 어떻게 온 것이고

우주는 어떻게 발전한 것이며

사람은 어디에서 왔고

신은 인류를 어떻게 배치했는가 하는

그는 이런 더욱 깊은 것들을

가장 완벽하고 가장 계통적이며

가장 철저하게 사람들에게 펼쳐줍니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근본 진리이며


모든 사람들이 아주 흥취를 갖고

추구하기를 열망하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연분이 있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연분이 없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 최고의 진리는 마치 우리의 현실생활과도

아주 멀리 떨어진 것 같은데

그것은 당신이 결혼하여 애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만 생각하고

당신의 사업, 당신의 돈 버는 것과

부자 되는 것만 생각하다 보니

어디 가서 찾겠습니까

당신이 온 천지를 찾아다닌다 해도

쉽게 찾지 못합니다

당신이 사찰이나 도관을 다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으며

당신이 그 수련승지(勝地)에 간다 해도

수련승지에서 진정하게 우주의 진리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일반인은 자신의 사업이나

오늘 얼마를 벌었고 내 아내는 어떻게 예쁘며

내 아이는 얼마나 귀엽다고 말하는데

이런 일이 아닙니다


이때 물론 나는 아직도 많은 우주의 진리를 몰랐지만

나는 이런 것에 대해 흥취가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풀어야 할 몇 만개의 문제가 있었는데

연구끝에 기공을 연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공 연마로 비록 얻은 것이 매우 많았고

아주 많은 변화가 생겼으며

몇십년의 성취를 거뒀다고 느꼈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한 무더기였습니다

그러나 파룬따파는 나에게

모든 문제의 해답을 주었습니다


그 관건적인 해답은 도대체 신은 존재하는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돌아갈 수 있는가?

도가에서는 당신이 오직 그 책을 보기만 하면

당신은 곧 천선(天仙)이므로

그 무슨 금단(金丹)이 불필요하다기에

나는 믿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고 사상적인 것인데

어찌 읽기만 하면 신선이 된단 말인가

나는 믿지 않았습니다


파룬따파는 왜 사람의 심성이 승화되면

이 공이 나오는지 명백히 말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본질적인 것으로

파룬궁은 당신에게 어떻게 수련하며

진정한 승화는 무엇이고

당신에게 진정한 진리는 무엇이고

진정하게 사람이 신으로 되돌아가는 한 갈래 길을 주었습니다

또한 당신이 확실히 실행할 수 있고

이론적으로 믿을 만하며

실천적으로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떠한 의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의문이 없다는 것은

내가 많은 일에서 모두 명백히

해답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나는 그런 의문에 대하여

추호의 흥취도 없어졌습니다


앞의 문제에서

내가 모르는 것이 오직 하나만 있었어도

나는 수련하지 않았을 것이며

연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나는 무슨 문제든 다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모르는 것이 많지만

알고 싶지 않고 알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


나는 파룬궁을 연마한 후

지금 머리가 아주 명석하고

근심 걱정이 없기에 아주 홀가분합니다

 

19세 때 철저한 불면증에서

70대의 명석한 두뇌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단지 표면적인 변화만은 아니었습니다

신체가 건강을 회복한 것은

생명의 경지가 승화한 후의 일종 체현입니다

그 중의 확고한 믿음과 기쁨, 급작스런 변화는

당시 사람들도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몸부림치면서 진리를 찾고

법을 얻어 구사일생으로 되돌아온 노정이었습니다

엽호 선생이 반복적으로 제출한 수련이란 이 개념은

5천년 중국문명 중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서방사회에도 수련에 대한 근거와 실증이 있을까요


사실 지금 아주 많은 실증 방법이 있습니다

이전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한 것이지만

사실상 서방에서는

생명의 윤회와 영혼의 전생을

이미 매우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사람의 생명은

이 일생만이 아님을 증명했는데

어떤 사람은 그의 80생(生)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회억했습니다

내가 본 연구 보고에서 어떤 사람은

91생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았습니다

그는 이미 몇 천 년이란 과정을 회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람의 일생은 윤회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이 생명은 하나의 아주 긴 과정으로서

이 일생의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토론하는 문제에

바로 공동의 기초가 있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사람은 이 일생뿐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 일생만 잘 살면 된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이 등불이 꺼지듯이

사람이 죽으면 곧 무엇이든 다 끝난다면

그럼 수련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오직 윤회가 있다면

당신의 다음 윤회가 더 좋아질지 나빠질지는

바로 당신의 이 일생 혹은 전생에

당신이 좋은 일을 한 결과이든가 아니면 나쁜 일을 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윤회가 어떤 윤회 원칙에 따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불가에서는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한 보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한평생에 좋은 일을 해야만

당신의 이후 생명이 더욱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련의 길을 걷는 것과

관련됩니다

 

수련은 사람들로 하여금 장래에 이익을 얻고

복을 얻으며 영원을 얻게 합니다

그럼 압력과 각종 유혹으로 충만한

현대 생활 속에서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것은 인생에 대해

어떤 현실적인 의의가 있을까요


당신이 현실 사회에서

얼마나 높이 수련하고 원만하든지

당신은 이 일생에 반드시 가장 좋은 사람

가장 도덕 수양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를 즐기는 사람

성실하고 참말을 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선의로 대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무시해도 당신은 화내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이 당신을 무시할 때

윤회전생에서 당신은 볼 수 있는데

당신이 다른 사람을 업신여겼기 때문에

이번 생에 그가 당신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빚을 갚는 것이므로

당신은 난관에 부딪쳐 화내지 말아야 하는데

화를 내려면 당연히 당신이 전생에

잘못한 일에 대해 화를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당신을 무시했다고 하여

당신의 감정이 격동되어 내가 보복하려 하고

빚을 받아야겠다는 이런 일이 아닙니다

인간세상에서 말하면

아주 수양이 있는 사람이고

아주 도덕이 있고 아주 인자하고

아주 고상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수련은 이미 사회에 대해

아주 좋은 작용을 일으켰으며

아주 현실적인 작용이 있습니다

이 사람 자신이 늘 이런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자신은 늘 행복하다고 느끼며

적이 없고 복수할 일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 그를 무시한다고 하여

그가 속상해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는 자살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을 텐데 여기에 어디

나쁜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말이 나온 김에 대체 어떤 사람들이 수련을 선택하는가 하는

이런 문제를 알아보자

 

우리 석가모니의 예를 들어 말해봅시다

석가모니가 성불한 후

동생인 아난을 제도하려 했습니다

아난을 천상에 데려가

부귀영화를 누리게 했습니다

천상의 의자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아난이 누구의 것인지 묻자

석가모니는 네 것이라고 하면서

여기에 앉아 영화를 누리라고 했습니다


석가모니는 또 아난을 지옥에 데려갔는데

아난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너는 천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지옥에 내려 올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난더러 천당을 보게 하고

복을 누리는 것을 보게 했고

또 그더러 지옥을 보게 했습니다

아난은 이를 보고 깨달아

반드시 수련의 길을 걷겠다고 했습니다

후에 아난은 석가모니의

가장 중요한 제자가 됐습니다

아난은 많은 불경을 보고 기억했으며

훗날의 불경은 그의 암송에 의해 전해져 나와

비로소 후세에 남게 됐습니다

석가모니가 왕위를 계승해 왕이 되었다면

아난 역시 마땅히 왕족이 되어

온갖 부귀와 향락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를 오늘날의 관직으로 말하자면 장관이나

총리보다 더 높습니다

그들은 모두 수련을 접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것입니다


여동빈에게는 황량몽(黃粱夢)의 전설이 있는데

애초 종리권이 그를 구도하러 왔을 때

그는 말을 듣지 않고 왜 가겠느냐고 했습니다

종리권은 그에게 익힌 누런 쌀을 주었습니다

이 때 여동빈이 꿈을 꿨는데

그는 자신이 부귀영화를 누리다

최후 결말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 이것이 정말이구나”

하여 수련을 시작합니다


[자막: 술에 취한 팔선(八仙)]


‘중국상고신화연의’라는 책이 있는데

지금 아주 인기가 많아

중국신화의 성경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중국 고대의 몇몇 황제들이

어떻게 수련하여 원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신선전’이나 ‘도장’에서 찾아보면

중국에는 수련 원만한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또 한 권이 있는데 그 책에서는 노자가

중국 상고사회에 어떻게 나타났고

이름은 무엇이었으며 어느 지방에서

당시 황제에게 무슨 경을 전했다는 것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 역사에서 몇천 명이 이에 따라 수련했고

몇천 명이 원만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 숫자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도장’ ‘혼원성경(渾元聖經)’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도가에서 수련하여 원만한 이야기는

중국에 더욱 많습니다

‘수신기(搜神記)’라든가 ‘신선기(神仙記)’라든가

매우 많습니다

수련은 중국역사에서 매우 유구하며

아주 유명했습니다

진실한 기재가 있으며 사람들이 아주 존경하고

숭배하던 개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덕 표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실천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당신이 보다시피 서왕모가

한무제를 구도하러 갈 때

“당신은 전혀 수련 성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근기가 아주 좋고 내력이 있다면서

그를 제도하기 위해

수련하는 천서(天書)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무제는 여전히 수련하지 못했으며

결국 이 천서는 자동적으로 훼손되었습니다

모두 실천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하지 못한다고 하여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나레이션:

1999년 7월부터 파룬궁은 중국에서 수많은

흑색선전과 정치적 탄압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파룬궁 수련생들은 문을 닫고

집에 숨어 수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중국정부와 맞서 정치를 하는 것일까요?

 


파룬궁 수련생들이 왜 이런 탄압을 받고

정부의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까?

그는 나와서 ‘파룬따파가 좋다’는

이 한마디 말을 꼭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직접 이득을 본 사람입니다

나는 원래 병이 아주 심했지만

파룬궁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말하지 말고

나 자신을 놓고 말해 봅시다

그때 나는 전염성 간염 B형 간염을 앓았습니다

당시 일이 매우 바빴는데

그날은 내가 청도에 가서

전국규모의 회의를 주재해야 했습니다

내가 소집한 회의였는데

병원에서 통지가 왔습니다

내가 심각한 전염성 간염을 앓고 있으니 빨리

격리시키라는 통지였습니다

내가 다른 병이라면 사적인 것을 버리고

공적인 것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고려하지 않고

사업을 위해 희생하겠지만

전염성이 있어 내가 일을 하려 해도

다른 사람들이 못하게 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면

완전히 끝장이기에

나는 모두 중지하고 즉시 내 차안의

물건들을 다 가져다 소독해야 했습니다

그때 나의 간 기능 수치는

사망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때 나보다 가벼운 사람들도

모두 며칠 버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룬따파가

우리에게 두 번째 생명을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이유와 원인도 없이

파룬궁이 탄압받을 때 양심에 따라

“파룬따파가 좋다”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내 생명도 파룬따파가 준 것으로

그렇지 않으면 나는 벌써 죽었을 텐데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말할 기회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것으로

그렇게 많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정치와 관계가 없습니다

당신이 가지 않으면 양심이 없고

사람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을 강박하여 가라는 사람도 없지만

그 자신이 가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는 이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양심마저 없으며 사람도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인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이 말해 보십시오

이 한마디 말을 했다고 맞아 죽었습니다

이것은 사회가 매우 불공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양심에 어긋난다고 여깁니다

양심적인 일을 하면 곧 몇십 년 감금되고 구타당하는데

이런 사회현실을 보고 여러분이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하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레이션:


그럼 파룬궁 수련생들이

『9평』을 말하는 현상에 대해

엽호선생님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9평』을 반나절이나 이야기해도

여러분이 사상방면에서 인식하고

사상방면에서 새로운 승화를 줍니다

때문에 지금 어떤 사람들은 『9평』에는 아무런

행동강령도 없다고 하는데, 맞습니다

당신이 만약 『9평』의 관점을 접수한다면

당신은 이런 잔혹한 인생 앞에서 용기를 갖게 되며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접수할 수 없다면

당신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생명을 부지할 순 있지만

사람이 아닌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애석합니까

나는 사상, 영혼, 정신상의 거인이 될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한 마디를 더 알려 준다면

우주와 신은 공산당이 계속 업을 짓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려’ 합니다

파룬궁이 중공을 어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파룬궁이 중공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반드시 중공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귀주에서 발견된 2억7천만 년 전의 돌인데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금 관광지 입장권에도

‘중국공산당망’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나레이션:


어떤 사람은 공산당이 과거에 어쨌든지

지금은 변했다고 말합니다

몇 년간 중국 경제는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공산당 간부 출신으로 공산당의 역사를 깊이 연구한

엽호선생은 아래와 같이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럼 공산당이 좋게 변할 수 있는가

공산당은 이 몇 십 년간에

중국 사람을 8천만이나 죽였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연구 통계해낸 사실입니다

잔혹한 사실이지만

중국 사람들은 모르는 사실입니다


공산당이 매번 변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매번 변했습니다

그것이 어찌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전의 것은 그만두고

49년 ‘건국’ 이후부터 말해봅시다


‘토지개혁’의 형식은

‘반혁명 진압’의 형식과 달랐고

‘3반’ ‘5반’의 것과도 달랐으며

‘정풍’ ‘반우파’ 형식과도 달랐습니다

‘반우경’의 형식과도 같지 않았습니다

중공은 매번 새로운 구호

새로운 운동형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변하지 않았습니까?

파룬궁 탄압을 10년 했습니다

당신(중공)이 명예를 회복하고

탄압을 중지하며

수감된 우리 많은 사람들을 석방하는

이런 것은 본질적인 것입니다

‘6.4’를 감히 바로잡지 못하고

파룬궁의 명예를 감히 회복하지 못하며

진정으로 그 8천만에 달하는

원혼들의 억울함을 씻을 수 없습니다


당신(중공)이 무엇을 개진했는가?

경제가 호전되고 전체 사회가 발전하고 있고

공산당은 소수사람이 먼저 부유해지게 했는데

이는 그것이 포승을 느슨히 한 것으로

모든 사람을 죽일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모두 발전한 것이지 중공의 공로가 아닙니다

그것이 상관하지 않았기에

백성들이 발전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공이 상관하지 않았기에

사실 경제적으로 매우 큰 재난을 조성했습니다

제대론 된 관리와 지도가 없어 온갖 사심(私心)이 범람했고

경제, 생활은 물론 인류사회에 새로운

큰 재난을 조성했습니다

 

수련은 탄압할 수 없다


우리는 수련을 생명의 승화라고 말합니다

수련 자체는 이 사회에서 수련해

생명의 다른 층차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대해

그 어떤 과욕도 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권력이란 수련에 대해

좋지 않으며 아주 엉망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석가모니 당시에도 그의 신도들이 나중에 일부

사교의 박해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신도들에게 석가모니의 법을 수련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수련 하겠다”고 대답하면 목을 잘랐는데

이렇게 5백 개의 목을 잘랐습니다

마지막 5백 번째 신도에게

여전히 석가모니의 법을 수련할 것인지 묻자

그 역시 “수련 하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