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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神筆)’로 법을 실증

글 /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1일】 제6회 대륙 대법제자 심득교류회가 또 시작되었다. 제5회 법회교류에 참가한 후, 매 번 글쓰기로 자신이 걸어온 십여 년 동안의 길을 회상하노라면 인간에서의 대법제자 법 실증을 기록한 귀중한 기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다. 특히 매번 사이트에 오른 동수의 원고를 읽을 때면 모두 동수의 무사무아, 정념정행과 중생구도의 책임감에 심심히 감동받곤 한다. 해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교류무대는 전체 대법제자의 마음을 한 데 이어놓아 하나의 ‘대맥(大脈)’ 이루었고, 대법 중에 녹아들어 관통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법회의 신성함을 느낀 나는 금년 법회에도 또 필을 들어 대륙법회에 자신의 ‘마음’을 섬기는 것으로써 전체 동수들과 함께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의 단맛을 기꺼이 향수하고자 한다.

2002년은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한 지 네 번째 되는 해로서 나는 아직 고등학교 공부를 할 때였다. 학우들이 사악의 거짓말에 기만당해 무지(無知)속에서 대법을 모독하여 업을 짓는 것을 늘 보아왔다. 두려운 마음 때문에 나는 단지 나와 가까이 지내는 학우에게만 말했을 뿐, 정정당당하게 누구에게나 진상을 알려 주지 못하였다. 어떻게 하겠는가? 마음은 몹시 조급하였다. 어떻게 해야 학우들이 마음속으로부터 진상을 알 수 있게 하겠는가? 한 때는 학교에 진상자료를 배포하기도 하였으나 효과가 별로 없었다. 내가 배포하는 데 제한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학우들이 받은 진상자료를 바쳤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하나! 어쩌면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려는 나의 이 마음을 보시고 나를 점화해 주실 것이다.

하루는 진상편지를 부쳐야겠다는 염두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지. 이건 틀림없이 좋은 방법이야. 일인칭으로 쓰면 사람마음에 가 닿기도 쉬울 것이고, 직접 학우에게 부치면 학우는 꼭 참답게 읽어볼 것이다. 좋아. 이렇게 하자.’ 나의 생각을 동수인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어머니도 찬성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여가시간에 진상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쓸 때, 나는 보통 ‘푸두(普度)’나 ‘귀로에 오르네(登歸途·등귀도)’를 틀어놓았는데, 자신을 상서로운 음악 속에서 조용해지고 가장 순수한 심태로 초고를 쓰게 하였다. 쓸 때는 알고 있는 동수의 현황과 받아들이는 능력에 따라 씀으로써 그들이 내용의 친절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고, 이 편지는 진정 그들에게 좋으라고 쓴 것임을 느끼게 했다. 다 쓰면 어머니께서 다시 베끼고 진상자료 한 부를 넣은 다음에 부쳤다. 기본적으로 학우들이 다 받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끝까지 다 보았다.

그 때, 학교 선생님들은 독해를 아주 깊이 받아 어떤 교사는 교실에서 직접적으로 대법을 비방하였다. 나는 개별적인 선생님들의 사상 매듭에 따라 직접 편지로 진상을 말해 주었으며, 아울러 함부로 대법을 모욕하지 말고 자신의 착오적인 인식으로 학생을 독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면 자신의 앞날에 아무런 좋은 점도 없다고 권고하였다. 어떤 선생님은 편지를 받은 후에 정말로 교실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그 한 단락 시간에 자신의 심태가 특별히 순수함을 느꼈는데, 생각하는 것이란 모두 어떻게 사람을 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과목은 아주 바빴지만 나는 진상을 알리지 않을 그 어떤 이유도 찾지 않고 도리어 각종 기회를 이용하여 방법을 대어 세인을 구도하였다.

후에 대입시험이 끝난 후, 집착심으로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나는 집을 떠나 외지로 가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곁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외지 생활에 적응하기가 아주 힘들었다. 청빈한 물질생활은 나를 그다지 어렵게 하지 않았지만 심리적인 고독은 도리어 나를 그야말로 절실하게 억압하였고 울적하게 하였다, 나의 성격은 본래부터 그다지 명랑한 축이 아니고 교제를 좋아하는 편도 아닌지라 외지에 있는 첫 한 달 동안 감수한 것이란 바로 고독이었다. 다행히도 신변의 동수가 나에게 아주 관심을 가졌고, 그들의 관심은 나로 하여금 조금씩 고독을 잊게 하였으며, 점차 여러 사람과 용합할 수 있었고 심태도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때, 그곳의 동수들이 박해를 받는다는 소식을 가끔 듣게 되었고, 동수들은 아주 조급해 하면서 구출할 방법을 생각하였다. 예전에 편지를 쓴 기초가 있던 나는 선을 권하는 편지를 써서 구출 일에 협력하겠다고 주동적으로 제의하였다. 동수도 찬성하여 한 편 또 한 편의 진상편지가 나의 손에서 탄생하였다. 다 쓰면 부당한 곳이 있는지 동수가 검사하고 수정한 후에 박해 책임자에게 부쳤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고독이란 검은 그림자에서 해탈되어 더는 개인감수에 빠져 있지 않게 되었고, 새롭게 정체적인 법 실증의 홍류 속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바로 사부님께서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왜 고독을 느끼는가? 가서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면, 절대 이런 느낌이 없다. 법공부 중에서, 정진하는 중에서 어찌 이런 느낌이 있단 말인가?”

법 실증의 수요로 나는 얼마 후에 또 다른 곳에 가서 자료점 일에 전면적으로 참여하였다. 여기에서 나는 컴퓨터 기술을 배웠고 다른 한 동수와 함께 자료점 전면 운행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 때, 박해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였는데, 소식을 제때 문자로 정리하여 밍후이왕에 전송해야 했다. 그래서 신문보도를 써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어 나는 진상편지를 쓰던 데로부터 신문보도를 쓰게 되었고, 후에는 현지의 통지, 법리교류, 박해폭로, 시사평론 등 부동한 문체의 문장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는 과정은 실제로는 역시 심성이 승화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법리교류 문장을 쓰다가 중도에 써내려 갈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에 자신을 찾아보면 대부분은 자신에게 집착심이 있거나 혹은 자신을 실증하거나 혹은 동수에 대해 불만이 있는데, 총괄하면 사람의 정이 우세를 차지한 것이다. 자신의 심태를 조절한 후에야 비로소 거침없이 써내려 갈 수 있다. 참으로 동수에 책임지고 정체에 책임지는 마음을 품고 쓸 때면 문장은 기본상 발표될 수 있고, 따라서 정말로 동수가 촉동을 받는다(사이트에 동수가 연이어 독후감을 발표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럴 때면 공동으로 교류하고 서로 제고하는 이것이 바로 정체구나 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끼곤 한다.

박해폭로 문장을 쓸 때, 처음에는 언어가 아주 격렬하고 분개하며 쟁투하는 등 불순물이 섞여 있었고, 당문화의 것들이 모두 나타났다. 후에 《9평》, 《해체 당문화》를 읽는 가운데서 더욱 경지가 제고되었고 내심은 갈수록 평온해졌다. 이럴 때 쓰는 문장은 쓸수록 평화로웠고, 도리를 말하며 선을 권하여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문장의 구성, 어휘, 어구의 유창함은 문자 기초에서 오는 것이고, 문장 사상내포의 체현은 작자의 심태로 결정된다. 이를테면, 지금의 션윈 만회가 왜 그렇게도 사람을 감동시키고, 각계 유명 인사들의 높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가.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 무용 배우들의 영혼의 심층에서 발출되는 순선(純善), 순미(純美), 자비(慈悲)의 정보에 있다. 그렇다면 문장도 역시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의 수련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는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근본이다.

간혹 어떤 땐 한 가지 생각이 나의 마음을 감돌 때가 있다. 나는 문화지식이 높지 못한데 왜 뭘 좀 쓰려고 하면 조금도 힘들지 않을까? 신변에 있는 어떤 동수들은 나보다 더 높은 교육을 받았는데도 글을 쓸라치면 머리를 짜야 하고 시간과 힘을 들여야 한다.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글도 더 잘 써야 할 것이다. 마음을 쓰지 않아서인가. 아니다. 어떤 동수는 아주 열심히 한다. 후에 내가 진상문장을 쓸 때면 늘 일종의 감각이 나타나곤 하는데, 내가 이쪽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저쪽에서 늘 조화로운 목소리로 한 구절 한 구절씩 다채롭게 읽어주고, 나는 그 목소리를 글로 변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동수가 내가 문장을 아주 잘 쓴다고 칭찬할 때면 나는 절대 나 본인이 어떠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결과로 여긴다. 내가 지불해야 할 것은 사람을 구하려는 하나의 순정한 마음일 뿐이다.

정견망에 있는 윤회실화 문장 한편이 기억에 떠오른다. 당초에 일부 대법제자들이 막 하세하려 할 때, 사존께서 그들에게 수많은 신필을 주시면서 장래 인간에서 필로써 법을 실증하라고 개시하셨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사명이다. 신필은 바로 이런 제자들의 법기이다. 읽은 후에 모진 촉동을 받았고 속으로 남몰래 자신에게 경고 하였다. 가령 당초에 나도 이런 사명을 받았다면 오늘 내가 무슨 이유로 잘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건 서약이다! 동수가 늘 나보고 문장정리를 하라거나 뭘 좀 쓰라고 할 때면, 어떤 땐 아주 힘들어 쓰고 싶지 않다가도 자신의 사명을 생각하기만 하면 곧바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해야 할 일을 잘 하곤 하였다.

바로 이렇게 몇 년을 오래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가운데서 글 쓰는 나의 수준은 끊임없이 제고되었다. 어쩌다 밍후이왕에 어떻게 각종 유형의 글을 잘 쓸 것인가 하는 문장이 오르면 나는 진지하게 읽으면서 글 쓰는 가운데서 존재하는 자신의 부족과 개진해야 할 곳을 찾아보곤 한다. 내가 쓴 문장은 될수록 가독성이 증가되고 밍후이 편집 동수의 수정 작업량을 감소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로 너무도 바쁘고 너무도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대륙에서 투고한 매 한 부의 원고마다 모두 가장 기본적인 문자요구에 도달할 수 있다면, 밍후이 동수는 혼란한 어구들을 수정하는 등 기본적인 글쓰기 요구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더욱 많은 시간을 문장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사용하여 여러 부류의 독자들이 읽는 데 더 적절하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므로 건의하는 바, 평소에 늘 투고하는 동수들은 밍후이왕에 발표된 글쓰기 요구에 관련된 문장을 주의하여 읽어보고 우리의 가장 훌륭한 수준을 발휘하여 밍후왕을 완미하게 꾸리자.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 매 사람에게는 모두 신성한 사명이 부여되었고,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우리의 신변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계시며 우리의 미래를 성취시켜 주신다. 그저 우리가 속인 중에서 어떻게 자신의 특기를 잘 운용하여 더 훌륭히 법을 실증하는가만 보실 뿐이다. 이는 우리의 책임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특기를 매몰시키거나 속인 중의 명리를 도모하는 데 쓴다면, 그건 우리에 대한 사부님의 기대, 중생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일체는 모두 법이 준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속인 중에서 배운 것을 잘 이용하고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할 작용을 발휘하게 하여 대법에 보답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비로소 생명의 가장 훌륭한 선택이며, 비로소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하는 것이다.

(밍후이왕 제6회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09년 11월 1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1/2114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