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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수련 여정 중의 사소한 일들

글 / 대륙 대법제자 허메이(가명)

[명혜망 2008년 11월 14일] 중국의 옛말에 장사꾼 열에 아홉은 간상배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 나는 올해 40을 벗어난 사람으로서 속인 가운데서는 그래도 세 개 기업의 사장이다. 나와 남편은 세 개의 부동한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비록 별로 크지 않지만 현지에서는 아주 영향력 있다. 나는 대법 수련은 어느 계층에도 다 있으며, 돈이 많다고 해서 수련을 잘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담담히 보고 어떻게 쓰는가에 달렸다고 여긴다. 아울러 자신의 조건, 자원을 이용하여 대법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당당하게 ‘쩐싼런’의 이념에 따라 나의 회사를 천리밖에 소문난 신용도가 아주 튼튼한 기업으로 꾸렸다. 우리의 제품에 대한 각 곳 상인들의 찬양도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누구든 매번 올 때면 여전히 관심조로 물어 보곤 한다. 당신은 아직도 파룬궁 연마를 하나요? 나는 당연히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 준다. 그들은 흔히 진상을 알게 된 후면 말한다. 파룬궁을 위해서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을 지지 하겠다!

ㅡㅡ본문 작자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동수들 안녕 하십니까!

필을 들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흐른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자신의 13년 동안의 수련 여정을 쓰는 것이며, 또 처음으로 긴장해 보는 13년인 것 같다. 법을 얻고 수련하게 된 13년 동안의 기쁨, 13년 동안의 박해로 인한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 , 13년 동안의 갖은 간난신고 속에서 우리는 법에서 초상적인 지혜와 담을 키워 왔다. 쓸 것이 너무도 많아 참으로 책 한 권이라도 쓸 것 같다. 동수들은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방면에서 많은 교류를 하였는데 참으로 감동적이다. 나는 먼저 다른 각도로 내가 체험한 대법의 위엄과 신기함을 써내려 한다.

9년 전, 즉 99년 9월 9일, 나는 우리 현 대법제자와 함께 또 다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천안문 광장에서 잡혀 돌아 온 후 열흘 만에 3년 노동교양 징역을 받고 성(省) 여자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우리 현 동수가 후에 한 말에 따르면, 떠난 그 날 현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녹화한 것을 사흘 동안 방송 하였는데, 전 현 대법제자와 가족들은 모두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마다 관을 넘어야 한다”는 홍색 공포를 버텨냈고, 또한 망망한 중에서 배회 방황 하던 것을 지워 버리고 큰 파도의 모래일기를 통해 더욱 더 이지적이고 견강하게 변하였다.

내가 강제노동수용소에 도착한 그 날의 첫 번째 느낌이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직 일종의 책임감이 있었을 뿐이었다. 여기는 사회의 구석이다. 이곳에도 구도할 사람이 있다. 이곳의 죄수, 이곳의 감옥경찰들을 포함해서이다. 이튿날, 중대에서 회색 노교복을 분배해 주었으나 나는 입지 않았다. 나는 위엄 있게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이지 죄인이 아닐 뿐더러 노동개조 하러 온 것도 아니다. 대법은 꼭 누명을 벗을 날이 있을 것이며, 아울러 아주 빠를 것이다. 생각 밖에도 그녀는 난처한 듯 웃기만 하였다. 열 달이 되어 내가 나가게 될 때까지도 더는 이 일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그녀도 법을 얻게 되었고, 당신은 이 여러 해 동안 유일하게 노교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대법의 위엄을 체험 하였고, 대법제자의 강대한 정념은 사악의 박해를 해체할 수 있고 그것의 나쁜 사상을 억제할 수 있으며, 당신이 바르면 그것은 곧장 물러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 소대장이 50대 대법제자를 ‘순종’시키기 위하여 전기 곤봉으로 그녀를 혹독하게 때렸는데, 첫 매에 전기 곤봉을 손에서 놓치고 소대장은 궁금해 했다. 곤봉에 왜 전기가 없어졌나? 후에 그 동수는 말하였다. 당시 좀 두려워서, 사부님의 《홍음》<위덕>의 한 구절
“세간의 대 나한(大羅漢)
귀신도 굉장히 두려워하네”
를 줄곧 외웠더니 신기한 일이 발생 하였다는 것이다.

강제노동수용소에 들어온 처음 열흘 동안은 일을 하지 않고 다만 이른바 사상을 전변하는 학습만 하였다 그동안 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우리에게 신문을 읽어 주었는데, 죄다 대법에 대한 모함이었다. 나는 당시 곧 일어났다. 전 대장, 거기에 쓴 것은 틀린 말이다. 우리 현의 한 대법제자는 연공하기 전에 원래 30년 반신불수였는데, 하루아침에 법을 얻어 나흘 만에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밭에서 농사일 하고 가사일 하고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게 되어 마을에서 영향이 아주 크다. 믿지 못하겠으면 당신이 가서 물어보라, 대법제자는 ‘전싼런’을 믿기 때문에 거짓말 하지 않는다. 나는 그 때 아주 자세히 말하였는데, 그 대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그저 “정말인가?”하는 말만 묻고는 또 말하였다. “우리 계속 학습 합시다.” 하지만 겨우 한 단락을 읽었는데, 또 다른 대법제자가 일어나서 여러 사람에게 그녀들 그곳에서 발생한 신기한 일을 이야기 하였다. 나중에 그 대장은 우리에게 동화되어 더는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또 다른 사람과 몰래 말하였다. “그들 파룬궁은 정말로 무슨 일인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제일 먼저 강제노동수용소로 잡혀 들어간 한 무리로서 대부분이 각지 참장이거나 주요한 사업 일꾼이었다. 감옥경찰의 말대에 따르면, 모두 말을 아주 잘 하며 ‘특별히 완고’하였다. 내가 있던 중대 세 개 반에는 80여명이 있었는데, 그 중 대법제자가 16명이었다. 우리는 재빨리 서로 연계를 맺어 억압된 환경을 가급적 개변시키고 주변의 노교인원, 악경에게 홍법하여 사람을 구하였다. 내가 있던 중대의 중대장은 그 때 난소 낭종으로 월말에 병원에 가 수술을 한다고 하였다. 그녀는 수술이 두려워 나에게 슬그머니 묻는 것이었다. 당신들 파룬궁에 무슨 방법이 없는가? 나는 그녀에게 말하였다. “식은 죽 먹기예요.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현에 식도암에 걸린 두 사람이 있었는데 죄다 나았어요. 당신이 배우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죄다 관할해 주십니다.” 그녀는 동공 세장만 배우고<<전법륜>>한 번을 아직 다 보지 못했는데 월말의 어느 날, 오후 4시 근무 교대를 받은 후 나를 사무실에 불러다 놓고 문을 잠근 후 격동되어 나에게 말하였다. “오늘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수술 예약을 했어요. 그런데 검사해 보니 낭종이 없어졌어요. 나는 파룬궁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라고 여겨요. 당신이 동작 전부를 몽땅 가르쳐 주세요…….” 나는 참으로 사부님께 감사 드렸다. 그렇듯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를 관활해 주셨고, 또한 우리를 위해 상대적으로 비교적 느슨한 환경을 열어 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기상나팔이 울리기 전에 동공을 마치고, 저녁에 전등을 끄면 모두 일어나 가부좌 했다. 그리고 일하고 나머지 시간이면 법공부 하고 홍법 하였다. 전 중대 60여명 노교인원들은 모두 몇 장 동작을 할 줄 알았고, <<홍음>>중의 시 몇 수씩 외울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나간 후 꼭 ‘파룬궁’을 찾아가 배우겠다고 표시 하였다. 대대에서 ‘안전검사’를 내려오면 중대장은 앞당겨 우리에게 알려주어 책을 감추라고 하였다. 대대에서 한 번은 돌연 습격을 하여 허다한 사부님 신경문을 수색해 갔고 철저히 검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녀들의 사부는 미국에 있다. 2일에 경문 한 편이 나왔고 오늘이 겨우 5일이다, 대대에는 세 겹의 문, 층층의 철조망이 있는데, 어떻게 되어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한 사람에게 한 부씩 이나?” 그들은 알지 못한다. 바깥의 대법제자들이 높은 담장 안의 동수들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를! 그들은 면회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각종 도경을 통해 대법의 서적과 경문이 그칠 줄 모르고 ‘날아’들어오게 하였던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 대법의 신기함과 동수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2000년 상반년에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신천지를 개창하게 되었다. 그 해 4월 달에 나는 꿈 하나를 꾸었는데, 하늘에서 누가 나에게 핸드폰을 그려 주었고 나는 가지고 나갔다. 나는 내가 마땅히 나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당시 모든 수련생들도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내가 알기에도 도합 6명의 감옥경찰들이 몰래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었다. 내가 나온 후에는 또 그녀들 집에 찾아가서 그녀들에게 전부의 설법집과 연공 녹음테이프를 주었다. 나는 5월 달에 다시 말해서, 3년 노동교양을 겨우 열 달도 채 안 있고 첫 무리로 나왔던 것이다. 그 중대장은 여전히 그 이 후 매년 내가 있는 곳으로 한 두 번씩 왔다 가곤 했다. 그녀는 말하기를, 이 일이 베이징에 알려져 대대는 비평을 받았고, 수용소 소장도 모두 바뀌었으며, 대대장도 면직 당하고 아주 엄하게 관할하여 몇몇 경찰은 감히 연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 차례 잔혹하고 처참한 학살이…….

집에 돌아온 이튿날, 현 공안국에서 나를 찾아와 무슨 수속을 하라면서 날마다 정보과에 가서 회보를 해야 한다고 알려 주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정중하게 알려 주었다. “나는 4류 분자도 아니고 관제대상도 아니다. 나의 공장에 일이 그렇게도 많아 다망해 죽을 지경인데 무엇 때문에 당신들에게 가야 하는가? 당신은 알아둬라. 당신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나를 붙잡아 갔기에 우리 집은 거의 망하고 사업도 파산에 이를 뻔 했다. 일단 시기가 성숙되면 난 당신을 고발하고야 말 것이다.” 그 때로부터 그는 더는 나에게 공안국에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대법의 ‘진선인’을 감수하게 되었다 , 하지만 위엄도 함께 있었다.

대법제자를 구원하는 데서의 배합의 중요성

대략 2003년, 우리 현의 한 자료점이 수색을 당했고 한 동수기 연루되어 린 현의 공안국에 잡혀 갔을 뿐만 아니라, 두 달 넘도록 석방하지 않았다. 그 때는 발정념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는 때라서 모두 그의 중요성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전 현 대법제자 중에서 한 차례 동시 발정념을 조직하여 동수를 구하려 하였다. 그 날 저녁 집에 있는 동수들은 9시에 일치하게 발정념 하기로 하고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였으며, 또 불법 수감된 대법제자의 정념도 가지 해 주었다. 나는 소형 버스 한 대에 13명 대법제자를 싣고 9시에 린현 구치소에 이르렀다. 여러 사람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20분 동안 그가 3일내에 반드시 집에 돌아 와야 한다는 정념을 내 보냈다. 사흘이 지난 오후 그 동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난 이미 나왔습니다” 나는 격동되어 즉시 사부님께 향을 피워 올렸다. 사부님 감사 합니다. 그 대법제자를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전 현 대법제자에게도 고무 격려를 주셨습니다.

이 일의 계발로 우리는 이어서 또 두 차례 대면적인 배합으로 발정념을 조직 하였다. 이틀 전에 두 동수가 대낮에 전단지 배포를 하다가 잡혔고, 또 한 동수는 직접 집에서 잡혔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3일 내에 반드시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정념을 내보냈는데, 결과적으로 이튿날 오후에 한 동수가 나오고 3일 후에 또 한 동수가 나왔다. 또 한 동수는 얼마 안 되어 노동교양 일년 징역을 받았다. 나는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마침 나온 한 동수가 나에게 말하였다. 그가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은 그가 들어가자마자 곧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연마하지 않겠다. 나는 연마하지 않겠다. 연공을 하면 또 이런 곳에 잡혀 오게 된다. 나더러 무슨 보증을 쓰라 해도 다 쓸 것이니 나를 빨리 돌려보내 달라” 우리는 안에서 마찬가지로 연공하고 진상을 알려 주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감히 하지 못하였고 그는 노동교양 당했다. 이로 인해 동수들은 마난 중에서 자기 자체의 정념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고, 그 후에 전 현 대법제자들은 교류 토론을 진행하여 매일 저녁 9시에 발정념 하기로 결정 했다. 본 현의 대법을 파괴하는 일체 난법난귀, 사악한 생명, 공산사령을 제거한다. 본 현 정부, 공안국, 그리고 각 파출소의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해체한다. 우리 현 대법자료 유통계통의 일체 사악한 생명을 제거한다. 이는 상당히 큰 작용을 일으켜, 몇 년 동안 대법제자를 노동교양 시키는 악행이 더는 발생하지 않게 하였다.

기업을 하는 사람도 여전히 수련을 잘 할 수 있다.

중국의 옛말에 장사꾼 열에 아홉은 간상배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 나는 올해 40을 벗어난 사람으로서 속인 가운데서는 그래도 세 개 기업의 사장이다. 나와 남편은 세 개의 부동한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비록 별로 크진 않지만 현지에서는 아주 영향력 있다. 나는 대법 수련은 어느 계층에도 다 있으며, 돈이 많다고 해서 수련을 잘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담담히 보고 어떻게 쓰는가에 달렸다고 여긴다. 아울러 자신의 조건, 자원을 이용하여 대법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매 사람마다 하나의 수련의 길이 있다. 나는 마땅히 이렇게 가야 한다. 낡은 관념을 버리고, 나는 당당하게 ‘쩐싼런’의 이념에 따라 나의 회사를 천리밖에 소문난 신용도가 아주 튼튼한 기업으로 꾸렸다. 우리의 제품에 대한 각 곳 상인들의 찬양도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누구나 번마다 올 때면 여전히 관심조로 물어 보곤 한다. 당신은 아직도 파룬궁 연마를 하나요? 나는 당연히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 준다. 그들은 흔히 진상을 알게 된 후이면 말한다. 파룬궁을 위해서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을 지지 하겠다!

쓰고 싶은 것은 매우 많지만 너무 길면 여러분의 시간을 지체할 것이다. 하지만 또 허다한 것을 쓰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 후에 한 편 한 편씩 여러분에게 회보할 것이다. 나에게도 많은 부족한 곳이 있고, 관을 잘 넘지 못했는데 심지어 대관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두 사존의 자비로운 점오 하에 한걸음씩 걸어 나올 수 있었고, 또 한 걸음씩 현재까지 걸어 왔다. 나는 내가 대법수련을 선택한 것이 나의 행운이라고 느낀다. 대법이 나를 선택하였고, 또한 나의 한 몫의 책임이다. 이 책임을 위해, 나의 맹세를 위해, 나는 백배의 노력을 할 것이다. 오직 정진해야만 사부님 은혜를 갚을 수 있다. 사부님 시름 놓으십시오.

어느 곳을 잘 쓰지 못했다면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길 부탁드린다. 허스

(명혜망 제 5회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완성 : 2008년 10월 14일
문장발표 : 2008년 11월 14일
문장갱신 : 2008년 11월 17일 00:09:11
문장분류 : 대륙법회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11/14/1893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