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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성 교사 판쉬쥔이 출소 열흘 전에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장쑤성 보도)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시 페이(沛)현의 선량한 교사이자, 파룬궁수련생 판쉬쥔(潘緒軍)은 2015년 5월 19일에 페이현 공안국 청전(城鎮)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2016년에 페이현 법원에 의해 5년 6개월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뒤이어 장쑤성 훙쩌후(洪澤湖)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는데, 억울한 옥살이가 만기되기 열흘 전, 즉 2020년 11월 8일에 박해로 사망했다. 향년 55세였다.

潘绪军
판쉬쥔(潘緒軍)

2020년 11월 8일은 판쉬쥔의 형기 만기 열흘 전인데, 훙쩌후 감옥 측에서는 판쉬쥔의 가족에게 면회 통지를 내렸다. 그러나 당시 판쉬쥔은 이미 영안실에 누워있었다. 감옥 의사가 판쉬쥔의 장기를 꺼내 그의 가족에게 보여주며 판쉬쥔이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당시 판쉬쥔의 가족은 모두 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판쉬쥔은 생체로 장기를 적출당해 살해당했다고 추측했다. 감옥 측은 판쉬쥔의 가족에게 일부 배상을 해주겠다고 했다. 처음에 가족은 모두 배상 접수에 동의하지 않고 그들을 고소하려 했다. 그 후 감옥 측은 또 판쉬쥔이 소재한 현, 진, 촌의 간부를 거쳐 판쉬쥔의 가족과 소통하고 협상했는데, 사실은 바로 위협하고 이익으로 유인해 판쉬쥔 가족을 핍박한 것이다.

3개월 후 판쉬쥔의 가족은 핍박에 못 이겨 배상금을 받았다. 구체적인 배상금은 가족이 말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런 다음 판쉬쥔의 시신을 화장하고 촌의 묘지에 안장했다.

판쉬쥔(潘緒軍, 潘序軍, 남, 55)은 장쑤성 페이현 페이청진 판거(城鎮)촌 사람으로 대학 본과를 졸업했다. 원래 페이현 초급중학교 영어 교사였는데, 예전에 페이현 장자이(張寨)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맡은 적이 있다. 1996년 8월, 판쉬쥔은 파룬궁[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부름]을 수련하기 시작해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원래의 만성 비염, 중이염, 직장염이 완쾌됐다. 30여 년 전 수술을 받고 오른쪽 고관절이 뻣뻣하고 경직됐었지만, 파룬궁을 수련한 후 1시간 넘게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는데 세계 보건 역사의 기적이라고 말할 만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판 씨의 가정은 행복했고 이웃과 화목했다. 이웃들은 “왜 당신들이 집에서 다투는 것을 한 번도 볼 수 없나요?”라고 말했다. 학교 안에서 판쉬쥔은 늘 일찍 오고 저녁에 늦게 돌아갔으며 모든 학생을 존중하고 선하게 대했으며, 무료로 학생을 위해 특근하며 지도해주고도 전혀 원망이 없었다. 그리고 학생 지도에 사용하는 책을 연계해주고 도서 판매업자가 준 수수료를 전부 학생에게 환산해주어 책을 사용하게 했으며, 학습 향상이 비교적 빠른 학생에게 무료로 제공해줬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이제까지 판쉬쥔은 진선인(真·善·忍)의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함을 견지한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에게 무고한 교란, 납치, 강제 세뇌, 불법 판결 등 박해를 당해 혹독한 구타, 장시간 수면 박탈,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겨울에 냉수를 목과 신발에 주입하기,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입을 막고 코안에 물 주입하기, 추위에 떨게 하기, 뜨거운 물로 발 데이게 하기, 작업실 진열대 위에서 몇 시간 동안 뒷짐 결박 채우기, 공포적인 속박 허리띠(중공이 파룬궁 연마를 금지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제작한, 두 손을 허리 부위에 제한해 놓는 일종의 가죽 허리띠), 목을 조여 6~7차례나 거의 질식시키는 등 10여 가지 고문 학대를 경험했다.

中共酷刑示意图:约束带捆绑
중공 고문 설명도: 속박 띠로 묶기

1. 학교와 공안 경찰의 박해

1999년 7월 20일, 중공에서 광적인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후 진심으로 수련해 선(善)을 행하는 판쉬쥔은 늘 현 공안국과 페이청 파출소 경찰 등에게 불법적인 소환, 심문, 교란, 가택수색, 감금 등 괴로움을 당했다. 가족은 늘 판쉬쥔이 갑자기 끌려간 이유로(어떨 때는 저녁 10시가 넘었음) 마음이 안절부절못했다.

학교 안에서 교장 지촨민(季傳民)은 판쉬쥔에게 몇 권의 파룬궁 책을 바치도록 핍박했고, 그에게 연공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핍박했으며, 또 판쉬쥔의 영어 수업을 1년 6개월간 중단했다.(판쉬쥔이 현 구치소 세뇌반으로 납치될 때까지). 그 기간에 판쉬쥔은 정상적으로 출근했으나 오히려 교편을 잡는 업무를 배치하지 않으며 정신적인 학대를 진행했다.

2000년 7월, 여름 방학 사이에 판쉬쥔은 불법적으로 학교 안에 여러 날 동안 연금당했다. 7월 중순 어느 날, 지촨민 교장은 페이청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악의적으로 신고했다. 판쉬쥔은 둥리딩(董立頂) 소장과 경찰 장쭝젠(張宗建)에게 불법적인 호출을 당해 파출소 유치실에 이튿날 점심 10시까지 감금당한 후 석방됐다.

중공 텔레비전방송국 등 대중매체가 하늘 땅을 뒤엎을 듯이 파룬궁을 모독하는 선전과 페이현 초급 중학교, 페이현 공안부서 및 610사무실 등에서의 연속적인 박해는 본인, 가족의 정신과 생활에 극심한 상해를 조성했다. 판쉬쥔은 심각한 박해와 압력 하에 정신이 거의 붕괴됐다.

2. 페이현 구치소, 후툰향 정부 세뇌반의 박해

2001년 2월 초, 바로 파룬궁을 모함한 ‘톈안먼 분신자살’ 가짜 사건이 발생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판쉬쥔은 현 교육국[국장 쓰윈스(司雲詩)], 학교(교장 지촨민)와 페이청 파출소(경찰 장쭝젠)에 의해 학교에서 페이현 구치소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구치소 세뇌반의 벽에는 뜻밖에 ‘법제교육학습반’이라는 간판을 걸었다.(사실은 납치, 불법 구금, 폭력, 거짓말, 강제 세뇌 등 수단을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에게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하는 불법 감옥임)

페이현 구치소에서 판쉬쥔은 불법 장기간 감금, 인신 자유를 박탈당한 지 1년에 가깝다. 약 1만 위안의 월급은 현 ‘610’에 의해 불법적으로 공제당했으나(직장에서는 매달 ‘610’에 1500위안을 갈취당해야 했음) 모두 어떠한 법적인 수속이 없었는데 불법 구금죄, 월급을 침범한 죄, 갈취죄 혐의를 받는다. 판쉬쥔은 법공부와 연공을 금지당하고 강제로 파룬궁을 모독하고 모함하는 악독한 거짓말을 주입당했다. 그리고 가족과 친척, 친구가 동원돼 신앙 자유와 양심을 포기하도록 권하며 정신적인 학대를 진행했다.

반년 후, 국제 언론의 압력 하에 이 세뇌반은 후툰[湖屯, 리지(李集)]향 정부 마당으로 이전했고, 판쉬쥔과 다른 5명 파룬궁수련생은 이곳으로 납치됐다. 그들은 핍박에 못 이겨 파룬궁을 모독하고 비난한 것들을 공부했고, 파룬궁을 비난한 현수막을 걸었으며, 정원 내 화원을 정리해 야채를 심었고, 태극권 등을 배워야 했다.

3. 유랑생활, 납치 감금, 억울한 9년 형을 선고받다

2001년 12월, 판쉬쥔과 다른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 차오허우춘(曹後存), 왕신춘(王新春)은 후툰(湖屯)향 정부의 세뇌반에서 벗어났다. 페이현 ‘610’은 20만 위안의 상금을 걸고 페이현 공안국[전 국장 뤼웨이(呂偉)], 현 정부 등 각 기관을 조종해 수백 명을 선발해 배치하고 국민을 위협하며, 국민의 세금 수십만 위안을 소모해 현 정부 소재지 각 길목, 버스 정류장, 여관, 베이징(불법적으로 청원을 가로막음) 등을 지키면서 사회에 대해 어떠한 위해도 없는 선량한 국민을 불법적으로 납치했다.

2002년 8월, 이미 외지에서 8개월간 유랑생활을 하던 판쉬쥔은 납치됐고 그 후 벙부시 기차역 호텔로 납치됐다. 그곳에서 한 악인에게 구타당해 얼굴이 부어오르고 변형됐다. 이튿날 또 안후이 구전(固鎮) 기차역 호텔로 납치당해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을 당했다. 그리고 또 장쑤성 펑(豐)현의 모 호텔로 납치돼 수갑을 차고 땅 위에서 불법 심문을 받았다. 며칠 후 판쉬쥔은 펑현 구치소로 납치됐다. 판쉬쥔은 연공을 금지당하고, 노란색 조끼를 입고 노역(일종 과일 광주리 뚜껑을 엮는 일임)을 하도록 핍박당했다. 그 기간에 리촨중(이미 사망했음), 쿵링화(孔令華, 국가보안대대 책임자)는 불법적으로 판쉬쥔을 심문했는데, 약 두 차례다.

2002년 12월, 판쉬쥔은 펑현 구치소에서 페이현 구치소로 납치돼 강제로 몸수색을 당했고 노란 조끼를 입었으며, 감방에서 강제로 감옥 규정을 외우고 연공을 금지당했다. 페이현 구치소로 가서 얼마 되지 않아 곧 페이현 검찰원과 공안국에서는 불법 체포를 진행했다. 2003년 7월, 페이현 법원에서는 현 전신국 2층 회의실에서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검찰관은 판쉬쥔이 파룬궁을 위해 변호함을 허락하지 않으며, 불법적으로 국민의 변호 권리를 박탈했다. 정양(正陽)로 전 법원 내에서 판쉬쥔은 페이현 법원에 의해 무고한 9년 형을 선고받았다. 판쉬쥔은 법에 의거해 항소했다. 쉬저우시 중급인민법원에서 두 사람이 왔는데(남자는 약 50여 세로 키가 컸으며, 여자는 20여 세였음), 불법 심문 후 재판을 열지 않고 원판결을 유지했고 판결문을 주지 않았다.

4. 첫 번째로 장쑤성 후쩌후 감옥에서 8년 넘는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당하다

2003년 9월 말, 판쉬쥔은 페이현 구치소에 의해 강제로 족쇄, 수갑을 차고 첫 번째로 장쑤성 훙쩌후 감옥 소굴로 납치됐다.

훙쩌후 감옥에서 판쉬쥔은 상술한 10가지 고문 박해를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毒打
중공 고문 설명도: 혹독한 구타

2008년, 출생지가 페이현인 죄수 장레이[張磊, 페청 둥관(東關)에서 살고 있음]는 악독한 경찰 야오둥야(姚東亞)의 지시하에, 인원 정렬에 협력하지 않고 인원수 보고를 하지 않은 판쉬쥔에 대해, 오른팔을 그의 목을 끼우고 땅 위에서 10여 미터나 끌었다. 이로 인해 그는 거의 사망할 뻔했다.

2009년 2월부터 5월까지 판쉬쥔은 백일 동안 단식해 박해를 반대했으며, 감옥 측에 무죄 석방을 요구했다. 감옥 측은 석방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9개월 동안 공격 박해를 시작했다. 그들은 판쉬쥔을 이렇게 핍박해 진선인(真·善·忍) 좋은 사람으로 되는 원칙을 포기시키려고 했으나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 기간에 실시한 고문 학대는 다음의 것을 포함한다.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혹독한 구타로 얼굴이 붓고 입이 터져 피가 흘렀고, 여러 차례 연속 며칠 동안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죄수를 불러서 판쉬쥔의 팔을 걸고 땅 위에서 둘레를 돌면서 끌었고 냉수를 몸에 끼얹었다. 심지어 인성을 잃고 판쉬쥔을 땅 위에 눌러 놓고 입을 막은 채 코안으로 물을 주입했다!

中共酷刑示意图:浇冰水
중공 고문 설명도: 얼음냉수 끼얹기

그러나 이때 판쉬쥔은 장기간 단식을 진행한 이유로 이미 여위고 허약해져 생명이 위독했다. 저녁에 윤번으로 당직을 서는 죄수는 생명이 위급한 판쉬쥔의 사지를 침대 위에 여러 날 동안 묶어놓았다. 동시에 그의 수면 권리를 박탈하기 위해, 라면 조미료를 그의 입에 발랐으며, 주사관으로 그의 콧구멍, 눈 안에 물을 주입했고, 테이프로 눈까풀을 벌렸으며 돗자리 위에서 뽑아낸 풀 방망이로 그의 콧구멍을 찔렀다. 그리고 손으로 판쉬쥔의 머리를 누르고 이리저리 돌려놓아 그에게 경추에 부상을 입혀 불구가 되게 했다.

9개월 동안 매일 24시간 지옥 같은 공포적인 학대를 진선인(真·善·忍)을 믿는 선량한 교사 몸 위에 가했다. 장기간 끊임없는 정신과 육체적인 학대로 판쉬쥔은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생명이 위독했다. 온몸에 기운이 없었고 혈압이 43까지 내려갔다. 한동안 기억상실로 그는 그날 일마저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심장 박동이 극히 약해 손으로 가슴을 짚어보아도 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한 번은 풀을 뽑을 때 허리를 조금 굽혔는데 눈앞이 아찔하면서 정신을 잃었고 한참 지나서야 회복됐다.

판쉬쥔은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는데 생명이 위독한 기간에 병원 감구 간(甘) 원장은 두 차례나 판쉬쥔에게 심전도를 측량하고도 검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간호사는 몇 차례 피를 뽑아 검사했는데, 혈액량이 적거나 피를 뽑을 수 없었다. 쑤첸(宿遷)시 병원에서 수갑을 찬 판쉬쥔에게 강제로 어떤 기기를 사용해 신체검사를 했으나 검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병원 감구 앞마당에서 많은 죄수와 판쉬쥔은 강제로 피를 뽑혔다. 경찰은 손에 전기봉을 들고 옆에 서 있었는데 분위기가 긴장하고 공포적이었다. 이 빈번한 검사는 전부 판쉬쥔이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을 때 발생했다. 악독한 경찰은 그에 대해 고문으로 세뇌 박해를 진행했고 생명이 위독해져도 그가 연공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고 잠을 자며,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권리마저 고문으로 박탈했다.

감옥 측은 일체 사악한 수단을 전부 써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심지어 박해로 불구로 되고 미쳤으며 정신병에 걸리고 사망했다. 다른 한 방면에서는 오히려 또 파룬궁수련생의 건강 정보를 극히 관심했는데 아주 모순되는 것 같다. 그러나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비밀명령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 ‘때려죽여도 상관없다’, ‘신원 확인을 하지 않고 직접 화장하라’는 신삼광(新三光) 정책 및 이 몇 해간 바로 국제사회에 의해 지속적으로 폭로된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해 이익을 도모한 천인공노의 죄악을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연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파룬궁수련생의 몸, 장기 방면의 정보를 수집해 장기를 적출해 매매하기 위한 것이다.

판쉬쥔은 박해를 당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경추, 요추, 심장은 다쳐 불구가 됐다. 그는 2010년 11월에 집으로 돌아왔다.

5.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함을 견지해 거듭 억울하게 5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박해로 사망하다

2014년 가을 어느 날 오후, 판쉬쥔은 자전거를 타고 큰길 옆에 누워있는 남자 신변을 지났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길옆에 넘어뜨려져 있었다. 오토바이 광주리 안에는 장례식 흰 모자가 하나 있었다. 운전자는 술에 취했고 머리 아래에는 또 핏자국이 있었는데, 보아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술에 취해서 길옆으로 쓰러진 것 같았다. 판쉬쥔이 외쳐도 그는 깨어나지 않았고, 그 후 역시 길을 지나던 40여 세 여성의 건의 하에 그 사람의 호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찾아 그의 동료와 연락해 구급차를 불러왔다. 그 사람이 구급차에 실려 가서야 판쉬쥔은 집으로 돌아갔다. 길 가던 그 마음씨 좋은 여성은 다른 행인에게 “제가 가지 않은 것은 그에게 증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도 길을 가던 사람입니다. 생각지 못한 것은 지금에도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4월, 페이청 파출소에서 최소 6명 경찰이 몇 차례나 판쉬쥔의 집으로 와서 소란을 피웠다. 그리고 또 판쉬쥔의 아내가 출근하는 곳으로 가서도 소란을 피웠다. 4월 13일 저녁 8~9시경, 둥관 지역사회 경찰 장찬(張燦, 여, 20여 세) 등 5명 경찰이 왔는데, 그중 두 명은 20여 세이고 두 명은 30~40세였으며, 나이가 비교적 많은 사람은 량(梁) 소장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복도 입구에서 판쉬쥔을 가로막고 자신을 찍도록 요구했고 핸드폰 번호를 요구했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보겠다는 등 무리한 요구를 제기했다가 판쉬쥔에게 거부를 당했다. 게다가 그들에게 “당신들이 오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고, 이웃들의 정상적인 생활에 소란과 걱정을 가져다 줍니다”라고 알려줬다. 약 1시간 동안 양보 없이 맞서다가 그들은 떠났다.

2015년 5월 4일 오후 2시가 넘어서, 페이현 페이청 파출소의 장찬 등 2~3명 경찰은 거듭 판쉬쥔과 이웃에게 소란을 피웠다. 그들은 경찰복을 입고 큰소리로 문을 두드려 방문이라는 명목으로 주민의 집에 들어와서 사진 찍고, 호구부를 요구했으며, 이웃집의 개인 정보를 알아내 주민들에게 불안을 가져다줬고 질겁시켰다.

2015년 5월 19일 저녁, 판쉬쥔은 집으로 돌아가다가 잠복 감시를 진행하는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페이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판쉬쥔은 페이현 구치소에 감금당한 기간에, 감방에서 연공을 견지한 이유로 여러 명의 구치소 경찰에게 고무몽둥이 구타를 당했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들려서 나와야 했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재연: 혹독한 구타

판쉬쥔은 2016년에 페이현 법원에 의해 5년 6개월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거듭 장쑤성 훙쩌후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판쉬쥔은 믿음을 견지하고 ‘전향’을 거부했다. 결국 2020년 11월 8일에 판쉬쥔은 박해로 사망했다.

판쉬쥔이 박해를 당한 더욱 많은 상황은 밍후이왕 문장 ‘장쑤성 페이현 선량한 교사 판쉬쥔이 박해를 당한 기록’, ‘장쑤 훙쩌후 감옥에서 파룬궁수련생 판쉬쥔을 잔혹하게 박해하다’, ‘장쑤성 페이현 경찰이 거듭 선량한 교사를 교란하다’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6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6/18/4271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