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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 학대를 심하게 받고 진저우 이현 장옌링,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진저우(錦州)시 이(義)현 청관(城關)향 장옌링(姜豔玲)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믿은 이유로, 장기간 중공(중국공산당) 인원에 의해 교란, 납치, 불법 가택 수색을 당했고, 2010년 5월에 13년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장옌링은 진저우시 구치소와 랴오닝(遼寧)성 여자 감옥에서 박해당해 심신 학대를 심하게 받고, 2012년 2월 12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63세이다.

1999년 봄, 장옌링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해, 심령이 정화되고 몸이 건강해졌으며 이후 병이 없고 온몸이 가벼운 미묘함과 기쁨을 직접 체험했다. 하지만 1999년 ‘7.20’에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 박해하면서 장옌링은 줄곧 중공의 박해를 당했다. 동시에 그의 가족은 심신과 경제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감당했다.

2001년 3월 20일, 장옌링은 다른 사람의 집으로 놀러 갔는데, 이현 정보과 과장 장옌푸(張諺復), 경찰 왕찬린(王佔林), 저우화라이(周化來) 등이 갑자기 들이닥쳐 다짜고짜 장옌링을 이현 공안국 정보과로 납치해 장시간 불법 심문을 진행했다. 이튿날, 장옌링이 소재한 향, 촌 간부가 현 정보과에 3천 위안의 차용증을 써주고 보석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후부터 현 공안국과 향 파출소의 경찰은 빈번히 그녀의 집으로 와서 교란했다.

2004년 7월의 어느 날 밤, 촌 치보 주임은 청관향 파출소 경찰 천푸즈(陳福志), 천나이롄(陳乃蓮) 등을 거느리고 갑자기 그녀의 집안에 들이닥쳤다. 장옌링은 이지적으로 그곳을 탈출했고, 경찰들은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을 진행하여 방안을 함부로 뒤져 컴퓨터, 프린터를 강탈했다. 장옌링의 여성용 생활 일용품마저도 놓치지 않고 조사했다.

현 공안국과 청관향 파출소의 경찰들은 장옌링을 붙잡지 않고 더욱 빈번하게 그녀 집으로 와서 교란했다. 장옌링은 그들의 핍박과 불법 납치를 피하고자 감당하기 어려운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유랑생활하는 기간에 경찰은 빈번히 그녀의 집으로 와서 그녀의 가족을 교란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편안히 있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또 그의 가족에 대해 공갈 협박을 진행해 그의 가족에게 장옌링을 찾아와 넘겨주기를 협박했다.

이와 동시에 현 공안국에서는 또 장옌링을 감시 대상 명단에 올려 곳곳에서 불법 수사하여 체포하려 했다. 장옌링은 이런 소식을 듣고 더욱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일 년 내내 밖에서 유랑했다. 그 후 파룬궁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비로소 잠시 머물 곳이 있었다.

2009년 12월 22일, 이미 외지에서 5년 5개월 동안 머물던 장옌링은 또 이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대장 장청(姜成)이 이현 이저우(義州)진 파출소의 20여 명 경찰을 거느리고 주택지 도로를 포위하고 납치당했다. 동시에 또 그녀의 노트북 컴퓨터, 프린터와 시디 등 개인 물품을 강탈당하고, 그녀는 진저우시 구치소에서 불법 감금당했다.

2010년 3월 23일 오후, 랴오닝 이현 사당 법원에서는 진저우 제4 구치소에서 3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한 장옌링을 비밀리에 진저우에서 이현 법원으로 납치해, 어떠한 법률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가족에게도 통지하지 않은 상황에 그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2010년 5월, 이현 법원에서는 진저우시 ‘610’과 시 중급인민법원의 주제 아래에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장옌링에 대해 억울하게 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장옌링은 법정에서 자기를 위해 무죄 변호를 진행했고, 아울러 상소를 제기했다.

장옌링은 진저우(錦州)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약 10개월 동안 박해를 당했는데, 심각한 병 상태가 나타났다. 그러나 진저우시 구치소에서는 여전히 2010년 9월 11일쯤 세 번째로 비밀리에 장옌링을 랴오닝성 여자 감옥으로 납치했다.

랴오닝성 여자 감옥에서 장옌링은 지속적인 박해로 몸에 또 자궁 근종, 심장병, 혈관 종양, 각혈, 고열이 내리지 않는 등 심각한 병 증상이 나타나 감옥 병원으로 보냈다. 며칠 후, 감옥에서는 장옌링이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를 보고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급히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도록 했다.

2011년 4월 30일, 장옌링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이 기간에 진저우시 구치소에서는 또 장옌링의 가족에게 재물을 갈취했다. 장옌링과 가족이 돈이 없어 두 차례에 걸쳐 2천 위안(한화 약 35만 원)을 갈취했다.

2011년 11월 3일, 장옌링의 몸이 조금 회복되었을 때 악인은 그에게 건강 검진을 해준다는 이유로 그녀를 속여 랴오닝성 여자 감옥으로 납치했다.

2013년 7월 10일, 장옌링은 몸이 박해당해 극도로 허약해지자 다시 ‘보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장옌링은 몸조리를 잘할 수 없었다. 이현 공안국 청관향 파출소에서는 또 집으로 와서 교란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녀는 집을 팔고 외지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2021년 2월 12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원문발표: 2021년 6월 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9/4267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