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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차이윈, 항저우 제2감옥서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저장성 보도) 허난(河南)성 위청(虞城)현 파룬궁 수련생 웨차이윈(岳彩雲)이 2021년 2월 24일 저장(浙江) 항저우(杭州) 제2감옥[위항(余杭)구 린핑(臨平)]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웨차이윈은 생전에 허난 노동교양소에서도 각종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웨차이윈(남, 약 54세)은 일터가 있는 항저우에 있었다. 2020년 8월 21일 출근 중 항저우 샤오산(蕭山)구 과리(瓜瀝) 파출소에 의해 납치돼 샤오산구 적십자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납치된 원인은 우편으로 진상 자료 ‘인연(緣)’을 부쳤기 때문이다.

웨차이윈은 구치소에서 4개월간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해 죄수복을 입지도 체조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매일 구치소에서 연공을 견지했다. 웨 씨는 아침마다 강제로 비강을 통해 계란과 우유를 주입 당했고, 매일 의무실에 끌려가 강제 독극물 주입을 당했기 때문에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다.

2020년 12월 말, 웨 씨는 무고하게 1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항저우 제2감옥에 불법 감금됐다. 그는 감옥에서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감옥 측은 국가 법률을 무시하고 전염병을 이유로 가족과 면회를 불허했다.

웨 씨는 박해로 신체가 극도로 쇠약해졌다. 생명이 위급해지자 가족이 보석을 요구했으나 감옥 측은 동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웨 씨가 스스로 몸을 손상시키고 있다고 비방했다.

2021년 2월 24일(정월 초 열흘) 가족은 제2감옥에서 갑작스런 통지를 받았는데, 웨 씨를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를 받게 했으나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오후, 웨 씨의 아들이 병원에 갔을 때 시신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윈 모습이었다. 감옥은 책임을 회피하며 자기들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또한 아들에게 “만약 소란을 피우면 당신들이 파룬궁과 어떠어떠하다고 직장에 말을 넣겠다!”고 공갈 협박했다. 마지막에 보상금 명목으로 3만 위안(약 518만 원)을 주고 끝냈다.

허난 노동교양소에서 각종 잔인무도한 고문을 당하다

웨차이윈은 진선인(真·善·忍)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기에, 20여 년간 중공 사당(邪黨)에 수차례 교란, 박해를 당했다. 예전에 노동교양소에서 ‘쇄골 뚫기(穿鎖骨)’(철사로 쇄골 뚫기), ‘양 통구이’, 칫솔로 항문을 닦기 등 고문 박해를 당했다.

酷刑演示:烤全羊
고문 재연: 양 통구이

허난성 제3노동교양소에서는 2003년 5월에 중공 사당의 ‘춘뢰행동(春雷行動)’ 때 악독한 경찰이 장기간 대법을 굳게 수련해온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여러 조로 나뉘어 노동교양소 2층에 가두고 강제 ‘전향’을 시도했다. 웨차이윈은 ‘전향’을 거부하고 악독한 경찰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잔혹한 학대를 당해 꼬박 7일간 쉬지 못했다. 이들은 경찰 밧줄로 스무 번 묶고 전신을 전기봉으로 쳤다. 게다가 가장 잔혹한 수단 ‘양 통구이’를 사용해 학대를 진행했다. 웨차이윈은 3일간 매달리고, ‘속박 의자’ 고문을 당해 매일 의자 위에 묶여 휴식이 허락되지 않았고 한 번 또 한 번 고문을 당했다. 또한 머리 위에 소위 ‘경청기(聽話器)’를 달고 그들이 제작한 대법을 비방하는 녹음을 듣게 했다. 악독한 경찰은 ‘전향’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절대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큰소리치며 파룬궁 수련생을 사지에 몰아넣었다.

中共酷刑示意图:束缚椅
중공 고문 설명도: 속박 의자

웨차이윈은 고문으로 전신에 상처가 가득했고, 거동이 어려워 장기간 몸져누웠다. 웨차이윈의 가족은 면회 당시 웨 씨가 고문으로 다리를 저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제3노동교양소를 떠났다.

2004년 3월 15일 경 노동교양소는 ‘교육 강화, 통합 심화’를 꾸미기 시작했다. 웨차이윈과 왕톄좡[王鐵莊, 허난 난양(南陽)시 공상국 부국장]은 함께 밤중에 자오즈민(趙志民), 선젠웨이(申建偉) 등에게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줄 고문을 줄 묶기라고도 부르는데, 쉬창(許昌) 노동교양소에서 늘 하는 고문 중 하나로, 불법 감금된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이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줄 고문은 허난 제3노동교양소에서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른 노동교양소도 줄 고문이 사람을 잔혹하게 해친 ‘경험’을 도입했을 정도로 극히 잔혹한 고문이다. 가는 나일론 줄로 사람을 묶은 뒤, 두 손을 꽉 묶어 등 뒤로 돌리고는 위로 들어 올리는데, 극심하게 고통스러워 얼굴까지 변형되며, 비명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한 번에 약 30분간 계속 줄을 조였다 잠깐 느슨히 했다가 조이면서 다시 묶는데, 한 번 묶으면 한 줄을 감고, 몇 차례 묶으면 몇 줄을 감는다.

酷刑演示:上绳
고문 재연: 줄 묶기

웨차이윈이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이유로, 가족마저 참혹한 박해를 당했다. 2005년 8월 초 어느 오전, 웨 씨의 아내는 옥수수밭에서 일하던 중 납치돼 바로 허난 정저우(鄭州) 스바리허(十八里河) 여자 노동교양소에 끌려가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아이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보니 어머니가 없어졌는데도 국가 보안, 파출소는 알려주지 않았는데, 이 일은 웨차이윈이 상처 자국이 가득해 몸을 가누기 어려운 상태로 허난성 제3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직후에 일어났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12/4220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