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6년 넘게 단식으로 박해 저지한 저우샹양, 장기 쇠약으로 병원 이송돼

[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허베이 보도) 톈진 파룬궁 수련생 저우샹양(周向陽)은 2016년 12월 불법 판결로 7년형을 선고받고 톈진 빈하이(濱海) 감옥에 감금된 후 줄곧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해왔다. 이 과정에서 우람한 체격은 박해로 인해 앙상한 뼈만 남게 됐다. 최근 함께 감옥에 수감된 친지의 말에 의하면, 저우 씨는 장기가 쇠약해져 얼마 전 감옥병원인 신성(新生)병원에 이송됐다. 그의 모친은 정의로운 인사들에게 이 사건에 관심을 기울여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저우샹양

저우샹양은 베이팡(北方) 교통대학을 졸업한 후 톈진 철도 제3 탐사설계원(勘探設計院) 공경(工經)처에 배치됐다. 직장에서는 업무능력이 뛰어난 그를 톈진대학에 보내 투자경제학 학위도 취득하게 했다. 1998년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건설원가관리사(Cost Engineer) 자격증 시험에 합격해, 당시 60명 밖에 없었던 건설원가 관리사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진선인(真·善·忍) 법리에 따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직장 업무를 했고, 고객이 사사로이 베풀어주는 혜택을 절대 원치 않았으며, 세상의 기풍이 날로 나빠지는 사회 현실에도 초연하게 살아가는 훌륭한 청년이었다.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저우샹양은 2000년 초 중공 경찰에 납치돼 톈진 톄루(鐵路) 간수소, 톈진 칭포와(青泊窪) 노교소, 톈진 솽커우(雙口) 노교소, 톈진 지(薊)현 위산(漁山) 노교소, 톈진 허시(河西) 간수소 등에 불법 감금됐다. 2003년 5월 31일 다시 납치된 후, 2004년 7월 20일 불법 판결로 9년형을 선고받아 2004년 8월 9일 톈진시 강베이(港北) 감옥[현 빈하이(滨海) 감옥]에 구금됐다.

불법 감금 기간,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혹형 고문의 시달림을 받았다.

밤새도록 당한 전기 충격으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고, 연속 30일간 잠을 재우지 않았으며, 수차례 ‘샤오하오(小號-격리 감금하여 암암리에 학대를 가하는 작은 구금실)’에 감금됐다. 또한 야만적인 강제 음식물 주입 고문도 당했다.

2008년 6월 말, 저우샹양은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강베이 감옥에서 1년 남짓 단식을 했다. 나중에는 체중이 겨우 40kg밖에 되지 않았고 신체가 허약해 걸을 수도 없었으며, 대소변도 스스로 가릴 수 없었다. 이리하여 2009년 7월 28일 보석 치료를 받았다. 그러다가 2011년 3월 5일 거주하던 탕산(唐山)의 셋집에서 또다시 납치돼 재수감됐다.

이 기간 저우샹양의 아내 리산산(李珊珊)은 줄곧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그 때문에 감옥의 보복으로 두 차례에 걸쳐 3년 남짓의 불법 노동교양을 받아야만 했다. 2013년 노교소 제도가 폐지됐는데, 리산산은 스자좡 여자 노교소에서 마지막으로 석방된 사람이었다. 일가족이 한자리에 함께 모인 날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2015년 3월 2일 아침 7시 톈진 경찰은 또다시 이들의 집에 난입해 저우샹양과 아내를 체포했다. 남편은 억울하게 징역 7년형을, 아내는 6년형을 선고받았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 정치 깡패집단은 파룬궁에 대해 문화대혁명식의 박해를 시작했다. 저우샹양의 온 가족도 끔찍한 박해를 당했다.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친 왕사오핑(王紹平)은 수차례 체포됐고 어쩔 수 없이 4년간 유랑 생활을 해야 했다. 이어 2005년 9월부터 1년 반 동안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고, 2018년 3월 27일에는 억울하게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부친 저우전차이(周振才)도 2년간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으며, 2018년 3월 27일 억울하게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이 밖에 형 저우샹당(周向黨)은 2001년 억울하게 9년형을 선고받았고, 형수도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저우샹양이 당한 박해와 관련해서는 밍후이왕에 발표된 아랫글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톈진 빈하이 감옥에서 3년 가까이 단식 항의한 저우샹양, 신체가 매우 쇠약’, ‘두 어머니의 눈물’, ‘엔지니어인 저우샹양 생명 위독, 노모가 억울함 호소’(한글), ‘한 쌍의 젊은 부부의 험난한 경력, 7년의 기다림과 9년의 억울한 투옥살이’.

아래는 저우샹양 모친의 최근 호소 글이다.

저의 아들은 저우샹양입니다.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톈진 빈하이 감옥에 불법 감금당했습니다. 저우샹양은 감옥 안에서 강압적으로 가해진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6년 넘게 단식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전염병을 핑계로 감옥 대장은 10개월 동안이나 제 아들의 어떤 소식도 전해주지 않았습니다. 최근 아들과 함께 감옥에 감금된 사람이 전한 소식에 의하면, 저의 아들은 얼마 전 감옥병원(신성병원)에 이송됐는데, 여러 장기가 쇠약해져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합니다.

저와 남편 및 큰아들은 차를 몰고 톈진 빈하이 감옥에 확인하러 갔는데, 아주 힘들게 샹양이 구금돼 있는 감옥 대장을 불러낼 수 있었습니다. 큰아들이 감옥 대장에게 “내 동생 샹양이 신성병원에 이송된 지 몇 개월이 됐는가? 왜 우리를 면회하지 못하게 하는가? 감옥에 있는 다른 죄수들도 내 동생처럼 면회하지 못하게 하는가? 집에 전화를 걸지 못하게 하는가? 가족에게 편지를 쓸 권리마저 없는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대장은 “당신이 이런 걸 물어서 뭘 하느냐?”라고 하더니, 이어 바로 말을 바꾸기를 “샹양이 스스로 전화하기를 원치 않는 거다. 내가 돌아가서 그에게 강제로 전화하라고 할 거다. 그에게 집에 전화하라고 권할 거다”라고 했다가도 “병원에서는 편지를 쓸 수 없다”고 또 말을 바꾸었습니다.

위의 말을 들으며 저는 ‘대학을 마친 사람이 편지 쓸 힘도 없으니, 그의 몸은 얼마나 허약하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옥 대장의 얼렁뚱땅 넘기는 말은 우리를 속이려는 것임이 틀림없었습니다. 후에 그 대장은 또 우리에게 1월(2021년 1월을 지칭)에 아마 한 차례 면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아들의 상황을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 대장은 우리를 무시한 채 감옥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뭐라고 말하든 감옥 문을 지키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들어가 그를 찾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들은 감옥에 있지 않았고, 감옥 경찰들의 냉담함에 부딪혀 아들도 볼 수 없었던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온 후 생각해보니 십여 년 전 샹양은 역시 그들의 박해를 당하며 빈하이 감옥에 감금돼 있었습니다. 지난번 면회에서 아들 샹양이 내게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바오자들이 나를 데리고 가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몸이 허약해서 똑바로 걸을 수 없어요. 이전에는 두 사람이 내 팔을 잡고 걸어갔지만, 이번에는 한쪽에서 한 명씩 내 팔을 끌었는데 내 얼굴을 뒤로 한 채 발뒤꿈치가 땅을 스치도록 끌고 갔습니다. 길이 멀어서 발뒤꿈치가 땅바닥에 스쳐 찢어졌고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을 느꼈어요. 내가 지나간 길에 두 갈래 긴 핏자국이 묻어 있는 것을 보았어요.”

이 밖에 아들과 함께 감옥에 수감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샹양이 신성병원에 간 후 몇 개월이 지났으나 소식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샹양이 처한 처지에 우리는 깊은 우려를 표합니다!

샹양을 위하여, 그리고 수천수만의 샹양과 같은 대법제자를 위하여, 저는 국내외 정의로운 언론과 정의 인사들에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오!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는 선량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실천하는 것에는 죄가 없습니다. 하물며 ‘진선인’은 인간 세상의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능력이 되는 정의 인사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보내 제 아들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제 아들과 같이 선량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 박해가 더 이상 지속하지 않도록 해서, 이들이 하루빨리 집에 돌아올 수 있게끔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6/421745.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3/9/1913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