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의 우두머리 장쩌민을 고소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닝성(遼寧省) 푸순시(撫順市) 칭위안현(清原縣) 난커우첸진(南口前鎮)의 가이춘린(蓋春林), 황수친(黃素芹) 부부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뒤 질병이 전부 없어지고 심신이 건강해져 가정생활이 아늑하게 되었다. 장쩌민이 발동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 중에 황수친은 핍박에 못 이겨 수년간 유랑생활을 했고, 가이춘린은 악도에 의해 뜨거운 물에 데어 무참하게 사망했다.
최근 황수친은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에 사악의 우두머리 장쩌민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우편으로 부쳤다. 황수친은 그들 부부가 당한 박해에 대해 고소장에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전 가족이 이로움을 얻다
1997년,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뒤 몹시 급한 성질을 고쳤고, 각종 질병, 편두통, 견주염 등이 매우 빨리 모두 사라져 진정으로 병 없이 온몸이 가벼움을 느꼈다.
늘 병이 있던 남편은 나의 심신의 변화를 보고 1997년 12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남편은 약간만 차가운 것을 먹어도 배가 부풀어 오르고 입으로 거품을 토했으며, 겨울(엄동설한)에는 솜옷을 3벌이나 입어야 했고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수련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질병이 전부 사라졌고 화도 내지 않았으며 사람도 차분하게 변했다. 이로 인해 우리 가정도 화목해져 일가족은 행복하게 생활했다. 우리 전 가족은 모두 파룬따파의 이로움을 얻었다.
1999년 7·20에 장쩌민은 파룬궁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발동했다. 1999년 7월 22일, 우리 부부는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갔다가 칭위안현으로 납치돼 돌아와 난커우첸진(南口前鎮) 세뇌반에 감금당했다. 난커우첸진 정부에서는 500위안의 ‘보증금’을 갈취했다.
1999년 10월, 난커우첸진 정부는 강제로 나를 세뇌반으로 납치해 11일 동안 박해했다.
2001년 10월 29일, 나는 칭위안현 아오자바오향(傲家堡鄉)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됐다. 그날 저녁 벗어났고, 이로부터 4년 동안 유랑생활을 했다. 칭위안현 난커우첸진 인원은 난커우첸진 파출소와 결탁해 늘 우리 집으로 와서 소란을 피웠다. 미성년인 두 딸은 충격을 받아 경찰을 보기만 하면 곧 몹시 공포를 느꼈으며, 온종일 눈물로 보냈다.
남편 가이춘린이 악도에 의해 무참하게 뜨거운 물에 데어 사망하다
가이춘린(蓋春林)
2005년 4월 17일, 푸순시(撫順市) 공안1처, 칭위안현 공안국, 난커우첸진 파출소 등에서는 50대의 경찰차, 수십 명의 경찰을 출동시켜 이른 새벽 4시가 넘어서 난커우첸진 바왕거우촌(霸王溝村), 겅자바오촌(耿家堡村), 썬파이디(什排地) 등 촌으로 직접 달려갔다. 한 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들은 대법제자의 집을 겹겹이 포위했다. 불법으로 집에 침입해 가택 수색을 진행하고 납치를 감행해 현지 민중이 모두 매우 질겁했다.
경찰 10여 명은 강제로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남편 가이춘린은 난커우첸 파출소로 납치됐는데, 그 후 또 푸순(撫順)공안 1처(이를테면 지금의 국가보안지대임)로 옮겨졌다. 납치당한 대법제자는 돌아가며 단독으로 재판을 받았다. 박해 인원은 다짜고짜 한바탕 혹독한 구타를 진행했는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매번 대법제자를 구타해 혼절시키고 다시 냉수를 머리에 끼얹었다. 어떤 여성 파룬궁수련생은 현장에서 구타로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해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5일 후, 남편은 푸순 뤄타이산장(羅台山莊)세뇌반으로 납치당했다. 5월 6일, 우리 아이는 부친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건강하던 사람이 겨우 19일 만에 박해로 사망했다. 그 후 알게 되었는데, 파룬궁수련생 자창링(賈長玲)이 생활용수 공급실에서 가이춘린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그 후 법의의 부검에 따르면 뜨거운 물에 데어 사망했다고 했다.
가족이 푸순시의 현장으로 다그쳐 가서 시신을 보았을 때는 이미 옷을 다 입혀놓았다. 가이춘린의 남동생은 “내 형님은 심장병이 없는데 어떻게 갑자기 심장병이 도져 사망했다고 합니까?”라고 했다. 가이춘린의 얼굴 위에는 탕상이 있고 또 비틀려 변형되었으며, 오른쪽 가슴 부위에도 탕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가족의 강력한 요구로 검시했는데, 결과 식도마저 탕상을 입어 손으로 데면 살가죽이 떨어졌고 심장꼭대기는 흰색으로 변했는데 호스를 꽂아 뜨거운 물을 주입해 데었다. 가족은 이것은 바로 박해로 사망한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내 딸은 화장을 거부하고 검시하도록 요구했다. 검시할 때, 가이춘린의 남동생 가이추린(蓋秋林)은 식도마저 데어 익은 것을 보았는데, 푸순의 이른바 ‘법의’는 자연적인 사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이춘린의 몸 위 상처에 대해서는 오히려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당시 위장에는 단지 짠지 두 개 밖에 없었다. 가족은 가이춘린의 유물을 수습할 때 도시락 그릇에 먼지가 매우 두꺼운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으로 보면 남편은 이미 여러 날 동안 밥을 먹지 않은 것이다.
내 딸은 화장을 거부하고 푸순 공안국에 부친 가이춘린의 진정한 사망 원인을 설명하도록 요구했다. 이 때문에 남편의 시신은 푸순 장의사에 59일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딸은 푸순 변호사 빌딩으로 가서 변호사를 선임하려 했으나 변호사는 감히 사건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푸순시 공안국에서는 칭위안현 난커우첸진에서 나서서 처리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강제로 가이춘린의 시신을 화장하도록 요구했다. 칭위안현 난커우첸진 정부는 푸순 공안국의 지령을 받고 난커우첸진 정부 왕쑹(王松)을 배치해 취급하고 처리시켰는데, 가족에게 만5천 위안의 돈을 주었다. 게다가 가족에게 돈을 가지지 않아도 화장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리제리(李接力)도 참여해 이 일을 처리했는데, 강제로 가이춘린의 남동생 가이추린에게 화장표 위에 서명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허둥지둥 일을 끝냈다.
이 때문에 나는 나에게 입힌 심각한 상해와 남편 가이춘린을 박해해 사망케 한 원흉 장쩌민에 대해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이 공정하게 국가법률에 따라 공소할 것을 청구한다. 그리고 고소당한 사람 장쩌민을 법에따라 징벌하고 내가 박해당하고 남편이 박해로 사망한 죄책을 감당한 것과 경제적 손실을 배상하도록 요구한다.
문장발표: 2015년 7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30/3133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