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헤이룽장(黑龍江) 다칭(大慶) 린위안(林源) 지역 파룬궁수련생 류즈융(劉志勇), 황원잉(黃文英)은 2014년 1월 22일에 현지 정기 시장에서 린위안 공안분국 경찰에게 납치당했으며, 아울러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했다. 경찰은 대량의 파룬따파(法輪大法) 서적과 진상자료를 수색해 갔다. 게다가 깡패 수단을 부리며 두 사람에 대해 (수색해 낸 자료의) 숫자를 부풀려서는 더욱 큰 박해를 감행하려 시도했다. 22일 저녁, 두 사람이 이른바 ‘보석’을 받자 경찰은 가족을 강제하여 그가 수련하지 않도록 보증하게 했다. 현재 류즈융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
류즈융은 박해당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2014년 1월 22일 오전 10시 넘어, 나는 동수와 함께 정기 시장에 갔었는데 정기 시장의 변두리에 경찰차가 있었고 또 몇 명의 경찰이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그들의 주위을 지날 때, 그들이 손을 내밀어 황원잉 수련생을 잡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어서 나의 가방도 잡아당겼다. 당시 나는 가방을 몸에 엇메고 있었는데, 그들이 이렇게 잡아당기자 가방끈이 나의 목을 조였고 숨이 막혀 질식할 뻔했다. 이런 것은 단지 영화 속에서 강탈하는 장면을 보았을 뿐, 대낮에 뜻밖에도내 몸에서 진실하게 상연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같지 않은 것은, 이번에 강탈을 한 사람은 바로 마땅히 강탈자를 붙잡아야 할 경찰, 다칭 린위안 공안의 경찰인 것이다.
그들은 나와 수련생을 강제로 경찰차 안으로 납치해 린위안 공안국으로 끌고 가서 가방을 뒤지고 몸을 수색했다. 나의 가방 안에는 고향에 부치려고 준비해 두었던 3,500위안(약 57만 원), 물건 구입 카드 두 장, 새 전화카드 두 개, 휴대폰 한 개, 그리고 진상화폐, CD, 소책자 등이 있었다. 수색을 끝낸 뒤, 그들은 또 나를 끌고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차에 올랐는데 근본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당시 나는 가방끈에 조여져 그때까지도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차는 매우 빨리 가속구(家屬區) 문어 귀에 도착했는데 나는 그제야 그들이 무엇을 하러 하는지 의식했다. 그들은내 가방 안의 집 문 열쇠를 가지고내 집을 수색했다.
그들은 나내 집을 다 뒤져, 벽 위에 걸어놓은 사부님의 법신상, 대법책 속에 사용하는 법신상 19장, 대법책 백 여권, 이동식 하드디스크, 노트북 컴퓨터, 프린터 두 대, 종이 자르는 기계, 호치키스, 공CD 7~8판, 지난 여러 해 동안의 션윈공연 CD, 사부님 설법과 공법을 가르친 CD, ‘9평공산당’ CD와 진상 소책자 몇십 부, 그리고 사부님의 여러 해 동안의 설법 등이 있었다. 경찰은 수색하면서 한편으로는 숫자를 기록했다. 말로는 선전품(홍보자료)은 천 부라며, 한 페이지를 한 부로 치는데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그것은 모두 선전품이 아니라 모두 법공부에 사용하는 자료라고 말하자, 한 경찰은 ‘모두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내 방안에 달력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경찰은 ‘달력 10권’이라고 외쳤다. 이렇게 경찰은내 집에서 한 차례 몽땅 강탈해 갔다.
그들은 나와 남편을 공안국으로 끌고 갔고, 또 나를 심문실로 끌어갔다. 나는 책상 맞은편이 수갑이 달린 의자임을 보고는, 책상 옆의 의자 위에 앉았다. 당시 한 경찰은 큰소리로 ‘안으로 가서 앉으시오. 수갑을 차시오!’라고 외쳤다. 나는 속으로, 나는 죄수가 아니기에 가지 않을 것이고 구두자백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했으나, 입이 말라 혀가 입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심문했으나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몸이 이상하게 괴로워 심문은 잠시 중지되었다. 대략 저녁 무렵 5시가 넘어서 경찰은 “빨리 서명하시오. 서명한 뒤 집으로 가서 설을 쇠어야죠.”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 남편의 여동생을 불러서 보증을 세웠는데, 말로는 병보석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나는 보석 명세서를 보았는데, 윗면에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다.’라는 한 조목이 있었다. 내가 나에게 이것을 묻지도 않고 무엇 때문에 윗면에 썼는지를 말하자, 경찰은 “이것은 절차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나에 대해 죄수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부본을 남기는 과정을 진행해 사진을 찍고 DNA를 녹화했으며, 또 지장을 찍으면서 8시가 넘을 때까지 들볶아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1월 26일 오후 세시가 넘어내 남편은 전화를 받았는데, 나더러 27일 오전 9시에 공안국으로 가서 상황을 확인하도록 했다. 린위안에서 먼젓번에 수련생을 납치할 때, 2명 파룬궁수련생이 마찬가지로 ‘확인’받으러 구치소에 들어갔다가 당했었다. 그 후부터 나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외지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이렇게 나에 대한 박해는 매우 큰 압력을 조성했다. 공산 사당은 연좌 박해를 꾸미는데, 공안국에서는 또 나의 남편의 여동생에게 나를 담보시켜 우리 가족도 연좌박해를 당하게 했다.
문장발표: 2014년 6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6/4/2930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