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좡허(莊河)시 파룬궁수련생 정더차이(鄭德財)는 올해 72세인데, 2000년 파룬궁을 위해 베이징에 갔을 때 경찰에게 구타를 당해 귀머거리가 되었다(다롄 시(市) 장애인증서가 있음). 2010년 음력설 초이튿날 또 납치를 당하고, 7월에 비밀리에 3년 반이라는 불법 판결을 받았다.
1999년 7월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뒤인 2000년, 정더차이는 정부에 대한 믿음을 품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아들 정융이(鄭永義)와 함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그는 그의 온 가족이 파룬궁을 연마해 병이 전부 나았으며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라고 정부에 알려주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두 부자는 다롄경찰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정더차이는 그 자리에서 즉시 구타를 당해 귀머거리가 되었고 그의 아들 정융이는 박해로 정신분열이 되었다. 정융이는 집으로 돌아 온 후, 연속해서 파룬궁을 수련해 정신이 호전 되었다.
2010년 음력설 초이튿날 저녁, 정더차이 노인은 파룬따파(法輪大法) 진상표어를 쓰려고 가던 도중에 잠복 감시를 하던 다정(大鄭)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아들 정융이는 이튿날 도처로 다니면서 실종된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가 납치 당했음을 알게 된 후, 그는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 분열상태가 되었다. 밖에는 등불이 환하고 폭죽소리가 요란하지만 정더차이의 아내는 집에서 애를 태우며 매우 처량했다. 그의 장녀 정융화(鄭永華)는 일자리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구하러 다롄에서 돌아왔다. 정더파출소 소장 리윈푸(李雲福)와 지도원 린쭝장(林宗江)은 상당히 난폭했다. 근본적으로 정융화의 요구를 무시하고 사건을 공안국에 밀어 넣고, 그 후 또 검찰원에 밀어 넣었다. 검찰원에서는 증거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사건을 공안국으로 되돌려 보냈다.
공안국에서 이 사건을 관할하는 천(陳)가라고 하는 경찰은 “이것은 정치사건이다. 자료가 보충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재판한다.”고 말했다. 정융화와 여동생은 차례로 수 차례 파출소, 공안국, 검찰원을 찾아 호소했는데 이 사건을 책임진 천샤오펑(陳曉峰)도 구실을 대며 회피했다.
2010년 7월, 정더차이의 둘째 딸이 법원으로 갔는데 재판장 위챵(于强)은 이번 주일에 재판을 한다고 말했으며 아울러 그녀 집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면서 그녀에게 돌아가 통지를 기다리라고 했다. 또 10여 일이 지나서 정더차이의 둘째 딸은 또 법원에 갔다. 위 재판장은 이미 3년 반이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정의 딸이 왜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냐고 묻자 위는 전화를 걸었는데 집에 받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의 딸은 집에서 작은 가게를 꾸려 집안에는 줄곧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당신들은 이렇게 사람을 만나게 하지도 못하고, 재판을 할 때 또 가족에게 현장에 오라는 통지도 하지 않고, 판결을 내린 후 또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는데 좀 물어보자. 당신들이 이렇게 불법으로 사람을 붙잡고 법을 어기고 재판하는데 우리나라에 법률이 있는가? 당신들은 양심이 있는가? 공정함은 또 어디에 있고 천리(天理)는 어디에 있는가? 이러면 일반 국민이 우리나라 사법기관을 어떻게 보겠는가? 그래 우리 아버지가 파룬궁을 수련했다 해서 당신들이 이렇게 해도 된단 말인가? 혹시 조그마한 물질 이익과 개인의 앞날을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의 생각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할지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예부터 지금까지 좋은 사람을 박해해서 좋은 결과를 본 사람이 없다. ”고 말했다.
2010년 9월 7일, 정더차이의 장녀 저융화는 아버지가 불법 심판을 받은 이 사건을 위해 제소장을 제출하여 아버지를 위해 공정한 평가를 얻기를 바랐다. 그녀는 제소장 편지에서 “나는 전 가족을 대표하여 강력히 시 위원회, 시 정부, 시 인대와 시 정협에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주길 호소한다. 관련 기관에 독촉해 우리 아버지가 결백함을 말해 달라. 시 검찰원, 법원과 공안국에서 즉시 무조건적으로 우리 아버지에 대한 불법 판결을 없애기를 강렬하게 요구하며 우리 아버지의 인신자유를 회복해달라. 게다가 우리 아버지에 대해 불법 판결을 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장발표: 2010년 09년 13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13/2295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