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후베이성 영어교사, 파룬궁을 믿은 이유로 출국금지 당해

[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후베이성 보도) 후베이성(湖北省) 톈먼시(天門市) 짜오시(皂市) 고등학교 영어교사 허메이룽(何梅容)은 올해 여름방학에 관련 당국으로 가서 외국 여행수속을 밟으려 했다. 사무원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다음 그녀의 출국을 금지했다. 사무원은 구체적 원인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파룬궁수련을 했다는 이유로 중공에서 박해 정책을 집행한 것임을 사람들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파룬궁은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해 좋은 사람으로 되도록 가르친다. 현재 전세계 1백여 개 국가와 지역에서 모두 연마하고 있는데, 결코 법을 위반하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이나 어떤 국가에 대해 전부 이롭고 해로운 점이 하나도 없다.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기 시작해서부터 금방 서른 살이 조금 넘은 허메이룽은 파룬궁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이미 세 번 불법 노교를 받고, 두 번 세뇌반으로 보내 세뇌를 당했으며, 현지 파출소, 간수소, 시 중공 간부 학교세뇌반, 후베이성세뇌반, 사양(沙洋)노동수용소 제9대대, 사양노동수용소 제2대대, 우창(武昌) 마후성(馬湖省) 여자노동수용소 등 곳에 감금된 적이 있다.

처음에 사양노동수용소에 감금된 기간, 노동수용소에서는 허메이룽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 고강도 학대를 한 동시에 그녀의 모든 가족과 가족 정을 이용해 그녀를 고립시키고 전향시키려 했다. 그녀가 대법에 대한 신앙이 굳건하자 노동수용소에서는 고의적으로 그녀의 남편과 그녀와 가장 가까운 여동료를 서로 친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혹형을 당하고 있는 기간, 한 장의 제멋대로 꾸민 이혼장(離婚狀)이 사양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녀가 만기가 돼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남편은 그녀와 정식 이혼했다.

매 번 허메이룽이 박해를 당한 다음 집으로 돌아갔을 때마다 학교에서는 그녀를 출근시키지 못했다. 직장에 출근할 때 그녀를 그녀 남편의 새 아내와 함께 같은 사무실에 있게 했다. 이런 정황은 보통사람으로 놓고 말하면 분명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은 수련인이며, ‘쩐싼런(眞善忍)’을 수련함을 생각했다. 만약 이번 사악한 공산당의 박해가 없었다면 일이 꼭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도 역시 사악한 공산당의 속임을 당해 무지하게 죄를 짓고 있으니 가련하게 생각해야 하며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줄곧 말없이 이런 난처한 국면을 견뎌 왔지만 불평이 없었으며 시댁과의 관계는 여전히 좋았다.

매 차례 허메이룽이 박해를 당할 때마다 언제나 월급을 조정하고 직명을 평가하는 일을 만나는데, 그녀에게 월급을 올려 주거나 진급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로 인해 그녀와 동급 교사들에 비해 매달 몇 백위안의 월급이 적었다. 20여 년간 교편을 잡았던 그녀로서 매달 월급은 겨우 천 위안밖에 되지 않았다. 같은 학교의 복리마저도 막 내려 온 교사보다 적었다. 주택기금과 의료보험금도 빼앗았다.

그녀에게 매번 배치된 반급은 언제나 전교에서 가장 수준이 낮은 학급이었으며 학생들도 다스리기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원망도 없었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지 못하게 했을 때 그녀를 수발실 인원, 인쇄공, 물공급실 직원 등 어려운 일을 시켰다. 그녀는 역시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매우 책임지고 열심히 했다.

이것이 바로 수없이 많은 중공이 ‘명예상에서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파산시키하며 육체적으로 소멸’해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한 하나의 축소판이다.

문장발표: 2010년 07월 1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7/18/22715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