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사부님의 광주 강습반에 참가했던 행복한 시간

글/해외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2월 27일】

10여 년 전에 나는 인체과학에 흥미가 있어 몇 가지 가짜기공 등을 배웠다. 그러나 당시 구미에 맞지 않다고 느껴 또 절에 가서 귀의해 승려, 비구니와 교분을 맺었다. 나중에 그들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결코 그리 순정하거나 존경할 만하지 못함을 알았고 절에서 사온 경서를 보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나는 친구들과 한패를 이뤄 장백산 삼림에 가서 스승을 모셨다. 바로 이때 어느 거사가 내게 《파룬궁(수정본)》을 빌려주었다. 당시 책을 펼쳐 사부님의 사진을 보았을 때 마치 어디선가 많이 뵌 것 같았다. 당시 ‘개광’에 관한 내용을 봤을 때 이것은 법력(法力)이 고강하고 대단한 사람임을 인정했다. 절에 있던 50여 명의 승려나 십여 명의 거사들도 대전(大殿)에서 오전 내내 경을 읽어도 개광하지 못하는데 이 사부는 사진만으로 30초면 진정 ‘개광’할 수 있다니 이 어찌 법력이 높지 않겠는가?

나는 단숨에 《파룬궁》을 다 읽은 후 말했다. “나는 앞으로 공전절후(空前絕後)의 이 공을 연마하겠다. 다른 공은 전부 필요없다!” 그 후 여러차례 곡절을 겪어 사부님 광주 5기 강습반에 가는 입석표를 구했다.

94년 12월 20일 광주 정류장에서 나오니 옆 광장에 몇 대의 버스가 서 있었는데 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파룬궁보도처.’ 어느 여자 분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오세요, 이 차에 타세요.” 내가 차에 오르자 나는 광주 사하(沙河)부대 초대소에 숙소를 배치 받았다. 여기에는 미국, 대만, 일본, 북경, 남경 등에서 온 수련생들이 있었다.

이튿날 회의장은 월수(越秀)체육관에 있었는데 나는 육교 아래를 지날 때 놀라서 멍해졌다 수백명은 됨직한 많은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 있었는데 땅에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이 모습에 나는 정말 탄복했다. 체육관 문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고 일하는 사람이 외쳤다. “여기 표가 있으나 자리가 없는 사람은 오세요.” 나는 얼른 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체육관 강단 위에 인산인해인 모습을 보았는데 전부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이 대형 농구장 앞쪽에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마이크가 가득 차 있었고 뒷면 배경에는 황금색 막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강단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배치 받았는데 땅바닥에 앉았고 그중 많은 사람들이 중국 변두리 성에서 왔다. 주위 몇 분은 천 리밖 귀주성에서 왔다. 그들은 눈을 감고 결가부좌하고 땅에 앉아 있었으며 정말 일종 숙연하고 경건한 느낌을 주었다.

강의 시간이 다 되어 가자 주변에서 갑자기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즉시 따라서 박수를 쳤다. 키가 크고 훤칠하시며 비범한 기품의 사부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걸어 들어오셨다. 사부님께서는 걸으시면서 사방을 향해 손을 들어 치사하셨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부님께서 앉으신 후 양복주머니에서 한 장의 작은 쪽지를 꺼내셨는데 바로 원고였다.

나는 네 번째 줄에 앉았는데 사부님과 매우 가까워 사부님의 인자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두 눈은 불처럼 광채가 나고 눈빛이 엄숙해 마음속으로 저절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존경심이 우러났다.

사부님께서는 강단에서 과거에는 신도 알지 못했던 천기(天機)와 법리를 말씀하셨는데 이 십악독세(十惡毒世)의 중생을 고해해서 구도하기 위해 오셨다. 이때 웬일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치지 않고 흘러내렸다. 사부님께서는 매일 한 시간 반 정도 강의를 하셨고 그 후 사부님을 수행하던 수련생이 공법을 가르쳤다. 사부님께서는 옆에서 동작을 시정해주셨다.

다음날 천목을 이야기 할 때 나는 앞이마가 안으로 당기며 살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방에 숙식하던 북경에서 온 한 엔지니어는 내가 앉은 자리 아래에 작은 수풀과 화상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오성이 차해서 그녀가 잘못 보았다고 논쟁하며 그곳에 앉았다. 3일째 되는 날 남경에서 온 여자가 자신은 귀가 어두우니 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나는 그녀의 자리가 매우 먼 것을 보고 사부님께서 법에서 심성을 제고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 기꺼이 표를 바꿔주었다.

4일째 되는 날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셨는데 일어나서 발을 구르게 하셨다. 사부님의 구령을 따라 “쾅”하는 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6일과 7일째 되는 날에는 북경의 몇몇 공우(功友 당시 호칭)들이 자신들 쪽에 빈자리가 있다고 해서 내가 가보니 무대 뒤편이라 강단을 가렸기에 속으로 실망했다. 이때 사부님의 말씀이 들렸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떨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하루는 문제 해답이었다. 당시 광동시에 소위 유엔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는 1척 크기의 사각형 ‘기공기(氣功機)’가 있었다. 이 기계는 조작이 간단하고 효과가 뚜렷하다고 선전해 많은 사람들이 구매했다. 대만 사람이 절에서 이것을 이용해 무료로 여러 신도들에게 병치료를 해준다고 했다.

두 명의 미국 공우가 내게 이 기계를 사달라고 했다. 당시 나도 한 대 샀는데 호주로 가져가서 무료로 병을 고쳐줄 속셈이었다. 그러나 사부님의 ‘부체’ 법리를 들은 후 이것은 옳지 않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쇠로 만든 기계인지라 사람에게 붙는 부체가 아니라서 심히 곤혹스러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쪽지를 써서 사부님께 가르침을 청했다.

마침 사부님께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시기에 얼른 쪽지를 전해드렸다. 사부님께서 보신 후 떠나셨다가 잠시 후 다시 오시더니 그 위에 작은 부체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더러 사지 않았느냐고 물으셨다. 내가 샀다고 하자 사부님께서 알려주셨다. “사진을 들고 대연화수인을 하고 개광하세요!” “예, 사부님.”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서 자비롭고 법력이 고강하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쁜 것을 정말 미국이나 호주로 가져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해칠지 모르는데 이는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느꼈다.

문제 해답이 끝난 후 각지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꽃다발과 깃발을 드렸다. 멀리서 바라보니 정말 화려했다. 가장 주의를 끈 것은 어느 수련생이 두 손으로 사람 키보다 큰 금색의 ‘불(佛)’자 깃발을 들었는데 강당 전체에서 감응한 듯 한바탕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최후에 사부님께서 강단에 가셔서 두 손을 교차해 밀어돌리신 후 장내를 향해 두 손을 뿌리셨다. 우리에게 가장 진귀한 것을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으며 위대하고 자비하신 사존께 존경의 박수와 허스를 했다. 모두들 오래도록 회의장을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빨리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년이 지났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 학습반은 사부님께서 중국 대륙에서 여신 마지막 전수반이 되었고 우주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한 페이지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12월 27일

문장분류 : 중국소식>온고명금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12/27/1923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