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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 진귀한 기억

―사부님께서 치치하얼에 오셔서 법을 전하신 15주년을 기념

글/ 학상(鶴翔)

【명혜망 2008년 7월 4일】

1993년 7월 16일 나는 사부님께서 치치하얼 시에 친히 왕림하셔서 대법 학습반을 열었다. 나는 운좋게 이 학습반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날부터 나는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회귀의 길을 걸었다. 지난 15년 이래 법공부와 심성수련이 끊임없이 깊어짐에 따라 크고 작은 마난과 뼈를 깎는 연마는 나로 하여금 갈수록 대법의 신기를 느낄 수 있게 했고 갈수록 대법의 고심함과 자신의 행운과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1. 법을 얻다

그날은 1993년 7월 13일이었다. 우리 한 무리 연공인들이 치치하얼 시 기공협회에 찾아가 어떤 기공사가 우리 시에 와서 기공을 전하는 지 알아보았다. 우리를 맞이한 책임자가 말하기를 이틀 후에 우리 시에 중국기공과학연구회의 비서장 이지남(李之楠)과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대사가 함께 우리 시에 강의하러 오니 배워보라고 하면서 파룬궁 공법을 소개한 《중국체육보(中國體育報)》 한 부를 보라고 주었다. 동시에 우리에게 몇 장의 보고회 표를 나눠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집으로 돌아간 후 신문의 소개를 읽었고 당시 공법 소개에 나오는 ‘파룬’에 이끌렸다.

이틀 후 우리 일행 여섯 명은 함께 치치하얼 전기문화센터에서 거행된 기공보고회에 참가했다. 먼저 이지남의 보고를 들었는데 그는 보고를 마친 후 또 모두에게 파룬궁을 추천하며 파룬궁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리 대사를 치치하얼에 청한 것은 몇 년 전 치치하얼 기공 애호자들의 많은 청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이지남은 여러 차례 이 도시에 와서 보고를 했는데 시에서 가장 좋은 기공사를 추천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그의 보고를 듣고 그는 책임이 있고 견식이 있는 국가기공학회 비서장인데 말이 매우 절실한 것을 보고 그가 추천한 파룬궁은 분명 괜찮을 거라고 느꼈다. 그는 보고회가 끝날 때 리 대사를 현장에 초청해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들의 신체청리를 부탁했으며 리 대사가 보고회를 하도록 했다.

사부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나는 사부님의 자비롭고 비범하며 상냥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감복하고 말았다. 사부님께서 신체를 조정해주셨을 때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으며 여러 해 동안 고통스럽던 신체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리 대사가 보고하는 내용을 들었을 때 나는 불가(佛家)의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해 수련하는 성명쌍수의 공리와 공법에 매료되었다. 다음날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학습반에 참가했다.

당시 나는 이미 불교에 귀의한지 2년이 넘었고 많은 기공을 배웠으나 아무런 실적이 없었고 몸에는 담낭염, 신경쇠양, 류마티스 등이 그대로였다. 나중에 주로 불교 경전을 공부했으며 부처님께 구하는 방식으로 업력의 속박을 벗어나려 했다. 나는 주로 선종 법문을 깊이 파고 들었는데 나는 당시 ‘자아(自我)’를 찾고 명심견성(明心見性) 하기 위해 밤낮 구분 없이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했다. 때문에 늘 두통과 메스꺼움이 있었다.

1년여가 지나도 내가 누구인지 찾지 못했다. 그때 나는 육조 혜능의 돈오 능력을 매우 부러워했으며 자기가 그릇이 되지 않음을 한스러워했고 늘 자신을 비하하며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불법을 배우지 못함을 한탄했다. 파룬궁이 불가의 공법임을 알았을 때 나는 매우 기뻤고 여러 가의 장점을 취하려는 생각을 품고 학습반에 참가했다. 파룬궁이 불교를 초월하는 공법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학습반에 참가하자 사부님의 설법은 내가 이해하는 불교경전의 내용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불교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이론과 제기방식에 나는 매우 곤혹스러웠다. 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니 때로는 직접 석가모니라고 부르며 뒤에 ‘불(佛)’자를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법리는 선을 중시하고 심성을 중시하며 공이 자라는 것과 심성제고의 관계를 매우 투철하게 밝혀 사람을 감탄하게 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의문이 솟아났다. ‘파룬궁 대사(大師)인 이 분은 누구인가? 그는 불조(佛祖)보다 높은가, 아니면 낮은가?’ 바로 제4강을 듣던 그날 나는 참지 못하고 사부님을 따라다니는 제자에게 직접 물었다. “리 선생님이 석가모니부처보다 높은가요?” 그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잘 배워보세요, 리 선생님이 석가모니부처보다 얼마나 높으신데요!”

그의 한마디를 듣고 나는 믿는 둥 마는 둥 계속 공부했는데 내심 정말 그렇다면 나는 너무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사부님께서 나의 의심을 아셨는지 나중 며칠 강의에서는 석가모니, 예수, 노자 등이 강당 주변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다고 명확히 말씀하셨다. 또한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많은 것을 자신이 감당하셨다고 했다. 당시 이런 말을 들을 때 알듯 말듯 했는데 여러 해가 지난 오늘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사존께서 우리를 구도하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마난을 겪으셨는지 알게 되었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대법과 인연을 맺은 후 나는 예전에 선종을 배운 영향으로 인해 여전히 법리를 비교하고 있었다. 한손에는 《6조 단경》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파룬궁》을 들고 늘 비교했다. 그러나 사고를 거친 후 파룬궁 법리가 확실히 보통이 아님을 느꼈고 나는 계속 대법을 따라 배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마음 먹은 대로 성사된다고 했던가, 사부님의 안배 하에 나는 1994년 앞뒤로 세 차례의 공무출장 기회를 이용해 대련, 하얼빈과 광주 대법 학습반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처럼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외출하여 학습반에 참가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광주에서 사부님께 불교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사부님의 대답을 듣고 사부님의 ‘수준’에 철저히 신복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질문한 문제는 “당신께서 이전 강의 중에 제기한 법륜성왕과 석가모니의 《묘법연화경》에서 제기한 법륜성왕이 같은 사람입니까?” 였다. 사부님의 해답은 “역사상 석가모니 부처님은 확실히 법륜성왕을 제기했다. 과거에 석가모니부처님은 여러 번 파룬(法輪)과 법륜성왕의 일을 이야기했다. 후세 사람들이 석가모니부처님이 이야기한 이런 일을 회억할 때 이미 그것을 전면적으로 반영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 역시 석가모니부처님이 이야기한 원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고 왜곡된 풀이가 발생했다. 후에 또 무슨 은륜(銀輪), 철륜(鐵輪), 동륜(銅輪) 등의 이야기가 생겼는데 모두 후세 사람들이 꾸며낸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법륜(法輪)을 어떻게 돌렸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일은 석가모니부처님 자신이 법륜을 돌렸다고 이야기한 것이 전혀 아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장래를 예견했고, 이런 일이 미래에 발생할 것임을 보고 알았다.” (《전법륜법해》〈광주설법 문답〉)

그 외에 나는 불교의 많은 스님이 《묘법연화경》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한번 항주 영은사에 갔을 때 그곳 승려에게 《묘법연화경》에 관한 문제를 물어보았는데 그들은 누구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 기억난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어째서 《묘법연화경》에 있는 일을 아실 뿐만 아니라 4대 윤왕에 대한 법을 아실까? 그 《묘법연화경》은 매우 두꺼운 책으로 “4대 윤왕”이 있는 단락을 찾으려면 적어도 반시간은 걸려야 하는데 사부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말씀하셨다.

당시 나의 인식은 사부님의 능력은 석가모니부처님 이상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는 확실히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회고해보니 이는 여전히 사람에서, 입문할 때 뵌 사부님의 수준과 능력에 불과했으며 법리상 대법에 대한 진정한 승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내가 대법에 흡인되어 착실히 수련하고 이 한부의 법을 깨닫도록 하는데 충분했다.

법리를 깨닫는 것을 말하게 되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파룬따파 수련 중에 나는 온갖 병이 다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하는 것을 깨달았고 내 경지에서 대법의 이치를 깨달았다. 나는 자신이 반본귀진하는 길을 바로 걷고 있음을 축하한다. 이는 불교 중에서 다년간 찾아도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선종의 ‘돈오’를 회상해보면 바로 집착심을 빨리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자기의 불성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진아(眞我)’이다. 그러나 현대의 업력이 큰 사람들은 설사 “내가 누구인가”를 아무리 염송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업력이 크고 관념이 너무나 큰데 어떻게 업을 빨리 소멸하고 ‘진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대법대도에서 수련하면 나처럼 업력이 큰 사람도 행운이 있어 이처럼 성취할 수 있다.

2. “이를 뽑는” 법에 대한 깨달음

사부님께서 치치하얼에 오셔서 설법하신 것 중 가장 중요하고 잊을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이 다 아는 “이를 뽑는” 그 단락 강의이다. 왜냐하면 《전법륜》 제7장에 “병원치료와 기공치료” 중에서 장래 영원히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이를 뽑는” 이야기를 해보자. 당시 치치하얼에 많은 세상 사람들은 다 보았으며 나 역시 여러 차례 용사(龍沙)공원 2번 출입구에서 그 남방에서 온 이를 뽑고 약을 파는 사람을 만났다. 그가 약을 펼쳐놓은 곳에는 이빨이 한 무더기 쌓여 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평범한 이를 뽑는 일이 우주대법을 조성하는 일부분이 되었으며 또 고심한 대법의 이치를 내포하고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공원 2호문에서 매우 가까운 여관에 투숙하셨는데 때때로 새벽에 공원에 나가 산보하시는 것을 많은 사람이 보았다. 어느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공원에서 어느 농촌에서 온 불구 어린이의 병을 고쳐주시는 것을 보았다. 그 어린이는 처음에는 스스로 걸을 수 없었는데 사부님께서 보신 후 그의 부모의 손을 놓고 스스로 걸으라고 하셨다. 후에 어린이는 사부님의 인도 하에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이의 부모가 너무나 기뻐 아이를 안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리려고 할 때 이미 은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늘 묵묵히 이런 좋은 일을 하실 때 이름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제자를 가르치셨다.

사부님께서 공원 길에서 왕래하시다 우연히 본 “이를 뽑는”일을 대법에서 말씀하셨는데 이 일을 이용해 고층의 법리를 수련자에게 나타내주셨다. 표면적으로 이 일은 고대 한약이 현대 의료수단보다 낫다는 법리를 설명한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無)’가 ‘유(有)’를 이긴다는 법리이다. 왜냐하면 무형의 누런 약물의 기가 능히 뺨을 사이에 두고 뿌리 깊은 이를 꺾어지고 부러지게 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다른 공간의 길을 가는 방법이었다. 유형적인 현대의 정밀 기기는 이 공간에서 매우 가까이 있어도 사람이 큰 고통을 겪은 후에야 겨우 이를 뽑을 수 있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이를 뽑는 사람과 뽑히는 사람의 번거롭고 매우 우둔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단락의 법은 우리 현대과학의 관념을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무’의 높고 깊은 법리를 말한 것이다. 우리가 오늘 정념으로 악을 제거하는 관과 관련해 나는 대법제자의 발정념이 악을 제거하는 것이 “이를 뽑는” 중에 누런 약물의 기가 이를 부러뜨릴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그 누런 약물의 기는 사람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오히려 뺨을 지나 이빨을 부러뜨렸으며 우리 대법제자가 내보낸 정념 역시 사람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산과 강을 건너 담과 철망을 넘어 유형적인 일체를 지나 사악을 소멸하고 제거하며 정념은 짙은 약물의 기처럼 강대할수록 위력이 크다. 우리가 악을 제거하는 것은 호랑이 입에서 이빨을 뽑는 것처럼 보기에는 매우 어렵지만 우리는 무형의 정념으로 흑수, 악당사령, 난귀 등을 철저히 소멸시킬 수 있다. 이 위력은 현대 전쟁의 비행기, 유도탄도 비할 수 없는 것이며 바로 “나아가면 만만물을 이룰 터이고 물러서면 전부 없나니 영원한 수수께끼로다”(《홍음 2 무》)에서 말씀하신 높은 경지의 나타남이다.

오늘 여기에서 사부님께서 치치하얼에서 말씀하신 “이를 뽑는” 법리에 대한 깨달음을 써내어 많은 동수들이 사악을 작디작은 이빨 몇 개로 보고 어떤 것은 비록 강경하지만 우리가 강대한 정념으로 다른 공간에서 사악의 뿌리를 꺾고 소멸시키는 동시에 ‘삼퇴’의 방식을 사용하면 그것을 빼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3. 법을 전하는 어려움을 느낌

사부님께서 치치하얼에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실 때도 마찬가지로 많은 교란을 만났다. 기억하기에 3일째 학습반을 진행할 때 장외에 보기 드문 폭우가 내려 사부님과 많은 수련생들에게 큰 불편을 가져다주었다. 장내에서는 또 소란이 있었다. 어느 날 내가 강당의 뒤편 바닥에 앉았는데 어떤 사람이 제멋대로 지껄이며 사부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 그는 곧 다른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았고 나중에 그 사람은 설법장의 제약 하에 조용히 사라졌다.

사부님께서는 대법 수련생들의 학비를 줄이고 가급적 감당을 줄이시기 위해 받는 수강료가 매우 낮았다. 처음 학습반에 참가한 수련생은 42원을 받았으며 며칠 후는 단지 반값만 받으셨다. 이렇게 하자 처음 학습반을 열 때는 약 300명으로 시작했는데 끝날 때는 400여 명이 되었다. 전반적으로 받은 비용이 매우 적었고 또 규정대로 그곳 기공협회와 나누어야 했다.

기공협회는 단지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므로 얻은 것이 비교적 적어 그들은 사부님의 비용이 매우 낮은 것에 불만을 품고 학습반이 끝날 때 차를 보내주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비용을 절약시키기 위해 속인 중의 많은 존엄과 편리를 희생하셨다. 학습반이 끝나는 당일 저녁 사부님 일행은 북경으로 가야했기에 곧장 야간열차를 타시기 위해 휴식도 없이 밤 11시가 넘어 뛰어가셨다.

학습반을 끝낼 때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이 기차역까지 모셔다드리겠다는 것을 거절하셨다. 우리 몇 사람은 문화센터 밖에서 사부님께서 지나가시기를 기다리며 고별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마다 모두 눈물을 머금고 사부님 일행 몇 명이 멀리 밤중에 안보일 때까지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부님이 치치하얼에서 법을 전하시던 광경을 회상하고 그 행복한 시간과 진귀한 기억을 터놓고 이야기하니 천 가지 만 가지 말로도 사부님 은혜의 호탕함을 다 말할 수 없다. 또한 대법의 신기를 다 말할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금생에 대법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삼생의 행복이다! 대법은 우리의 천만년 방황과 기다림을 끝냈고 법을 얻은 이런 희열은 꿀처럼 달콤하며 인간세상의 그 어떤 행복과도 비할 수 없는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와 지혜, 그림자와 미소, 관심과 노고는 영원히 치치하얼의 대지 위에 남아 있을 것이며 대법제자의 심령 에 남아있을 것이다.

나 개인 역시 아무리 큰 마난을 당하더라도 사부님께서 인도하신 길을 공성원만할 때까지 확고하게 걸어갈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4일

문장분류 : 중국소식>온고명금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7/4/1814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