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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에 남긴 청백 (1)

―내가 알고 있는 파룬궁 진상

글/동북 대법제자 연로(緣路) 동수 정리

【명혜망 2004년 8월 3일】

1992년 봄, 중국 북방에 사람들의 눈을 뜨이게 하는 신기한 공법인 파룬궁(法輪功)이 출현했다. 파룬궁은 마치 찬란한 진주처럼 그 밝은 빛으로 연공인 마음속의 먼지를 쓸어내고 마치 등대처럼 수련의 길을 밝혀주었다. 파룬궁을 널리 전하고 널리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창시인인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은 고향을 멀리 떠나 북경(北京), 산동(山東), 태원(太原) 등 각지에 이르러 학습반을 열고 공법을 전수하셨다.

배우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으나 당시에는 아직 정식으로 출판한 책이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원고를 작성하셨지만 판권번호를 살 돈이 없으셨다. 그리하여 8천원을 빌려 판권번호를 사신 다음 『중국파룬궁』을 출판하여 처음으로 각지 서점에서 발행하셨다. 연분이 있는 사람이 돈이 없어 사지 못하면 사부님께서는 무료로 증정하셨다. 이렇게 책을 팔고 증정하고 나니 책을 다 판 후에 판권번호를 산 돈도 회수하지 못했다.

법을 전하는 초기에는 아주 간고하여 가장 낮은 비용을 표준으로 학비를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소를 빌리는데 돈이 들었고 주체 기관에서 수속비를 받았으며 각종 비용과 지출을 제외하고 나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돈이나마 사부님께서는 한 푼도 갖지 않으셨고 전부 각 보도소 전문인원에게 보관하도록 하셨다.

이 돈의 용도에 대해 사부님께서 명확히 밝히신 적이 있는데 이것은 파룬궁 수련생들의 공헌이고 파룬궁에 대한 지지로서 오직 파룬궁 건설에만 쓸 수 있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사부님 따님이 학교를 다닐 때 돈이 급히 필요했는데, 마침 월말이라 집에 돈이 없었다. 사모님이 사부님께 5원을 빌리셨는데 사부님께서는 사모님이 월급을 타신 후 그 5원마저도 돌려받으셨다. 아울러 “대법의 돈은 오로지 대법에만 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생활은 아주 검소하셨는데 집은 아주 간소한 건물이었고 겨울에 스팀도 없었다. 집안에는 단지 텔레비전 한대가 있었고 가구는 모두 80년대 스타일이었다. 사부님은 따님에 대한 요구가 아주 엄했는데 매월 100원의 생활비를 주셨다. 여기에는 학교에 다니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한 여름방학에 사모님이 따님을 데리고 북경으로 가서 사부님을 만나신 적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따님에게 한 켤레에 2원짜리 신발을 사주셨다. 사부님의 생활수준은 장춘에서도 가장 낮은 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어디를 가시든 말씀으로 전하고 몸으로 가르치시면서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셨다. 94년 말, 국내에서 학습반 꾸리는 것을 끝내신 후 95년 초부터는 외국에서 법과 공을 전하시며 중생을 구도하셨다. 대법의 홍대한 전파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미 80여 개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이 법을 얻어 수익을 보게 하였다.

1995년 초여름, 사부님께서는 국내에서 학습반을 꾸리실 때 남은 돈을 전부 꺼내 설법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해 전국 각지의 보도소에 기증하셨다. 한 세트에 다섯 개의 테이프로 모두 900분이었다. 당시 전국에는 보도소가 몇 천 개 있었는데 바로 이 비디오 테이프로 파룬궁을 전파했다. 몇 년 후 1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법을 얻고 수익을 보았으며 신심이 건강해지고 도덕이 승화되었다. 정신문명과 사상소질이 신속하게 제고되었는데 이것은 사람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부님께서는 나라와 인민, 인류를 위하여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무량한 공덕을 쌓으셨으며 공덕이 무량하시다.

문장발표 : 2004년 8월 3일
문장분류 :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8/3/8091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