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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장춘에서 법을 전하시던 모습을 회억하다(1)

글 / 장춘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5월 13일】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 지 14주년 되는 시점에 장춘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서 그 당시 고향에서 법을 전하시던 그 길을 다시 걸어보면서,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던 에피소드를 회억하고는 감개무량해 했다.

사부님의 자택은 건설가와 해방대로의 교차로에서 서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그 집은 이미 낡은 옛날식 주택이었는데 사부님 댁은 4층(사진1)이었다. 남쪽을 향한 두 칸짜리 방으로 겨우 20여평이었다. 안방에는 침대 하나 장농 하나, 거실은 책상 하나, 긴 소파와, 책장이 하나 있었다. 책장 위에는 향로가 있고 향로 안에는 향재가 절반가량 차 있었다. 바로 이 간소한 작은 방안에서 사부님께서는 우주의 정법을 교란하는 마들을 제거하셨고 한 번 앉으시면 바로 십여 일이 지났으며 수염이 길게 자랐지만 면도할 시간조차 없었다.


(사진1)

어느 날 사부님께서 한번 앉으시니 7일 밤낮이 지났다. 식사도 하지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셨다. 따님이 보니 그 모습이 가슴 아파 아버지께 식사하시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한숨을 지으시면서 아버지를 부른 한 마디가 다른 공간에서는 십여 년이 지나갔다고 하셨다! 따님은 더 이상 아버지를 감히 방해하지 않았다. 일찍이 법을 얻은 노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고 계셨는데 마치 사부님께서 >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번에 돌아와서 많은 문제를 처리해야 함을 수련생들이 모두 알고 있다. 때문에 되도록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전화벨이 한 번 울려도 나를 몹시 교란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수련생들은 전화마저 걸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을 알고 있다.”

거실 벽에는 사부님께서 손수 그리신 불상이 걸려있다. 여불 두 존과 아미타불 한 존, 도인 한 분, 손오공 그림 한 장으로 그 모습은 장엄하고 신성했다. 사부님께서는 크레용으로 그리셨는데 아주 세밀했으며 살아있는듯 생생했다. 그 중 아미타불 부처(61쪽), 도인(58쪽), 여불(76쪽)은 > 속의 삽화이다.(사진2)


(사진2)

그 당시 사부님께서 북경의 동방건강박람회에 참석하셨을 때 연립 주택에 불이 붙었다. 사부님께는 당시 어떤 사람이 사부님의 집에 불이 났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오른 손을 고개 뒷쪽으로 빙 돌리시면서 아주 아름다운 동작을 하셨다. 그리고는 “불이 붙으면 붙으라고 하시오!”라고 하시고는 더이상 그 일을 상관하지 않으셨다. 결과 불이 꺼진 후 소방대원이 화재현장을 정리할 때 사부님 댁만 불이 붙지 않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 댁은 부처 수련하는 집이라 집에 불상을 공양하고 있어서 부처님이 보호해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낡은 세력은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는 데 갖가지 번거로움을 만들었지만, 마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투기를 원하지 않고, 내가 그와 다투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가 좋지 않은 것을 보내면 나는 곧 청리(淸理)해 버렸고 청리가 끝나면 나는 나의 법을 전했다.” > 이다.

사부님 댁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문화광장이 있었는데 그곳은 그 당시 지질궁으로 장춘시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광장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법을 전하시기 전부터 이곳에서 연공을 하셨다. 사부님께서 연공복을 입고 찎은 이 사진은 정공을 연마하시는 사진이다(사진3)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문화광장을 새롭게 건설하려고 했을 때 원래 전부 밀어버리기로 했다고 한다. 후에 동남, 서남쪽에다 수림을 남겼는데 그곳이 사부님께서 연공하시던 곳이다. 7.20이전 장춘시민 만여 명이 모여 아침 연공을 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 홍대한 장면과 장엄한 분위기, 상서로운 마당으로 대법을 펼쳐보였으며 또한 아주 많이 인연있는 사람들을 대법에 들어오게 되었다.(사진4)


(사진3)


(사진4)

다시 북쪽으로 더 걸어가면 시 5중으로 사부님께서 제1기, 제2기 전법반을 여신 곳이 5중의 계단교실이다. 1992년 5월 15일 제1기 반을 여실 때는 겨우 180명 이었다. 대법은 이곳에서 시작하여 널리 전해졌고 겨우 7년 사이에 1억인이 법공부를 하면서 연공을 했다. 겨우 14년 만에 이미 80여 국가와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전 세계에서는 거의 파룬궁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부님께서 처음에는 기공의 형식으로 법을 전하셨다. 직접 수련생에게 노궁혈, 천목을 열어주셨고, 파룬을 넣어주시고, 신체를 청리해 주셨다. 전법반을 열던 시기에 16,17살된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부체가 달라붙어 울음을 통제하지 못했다. 다른 공법의 기공사가 그녀의 머리를 향해 어떻게 두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강연대에서 내려 오시더니 그녀의 머리를 향해 세 번 두드리니 즉시 울음을 그쳤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은 놀라서 조용해졌고 잇달아 박수소리가 울려퍼졌으며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또 강연장의 네 모퉁이에 치지(氣機)를 내리셔서 붉은 빛이 사방으로 비춰 마당은 상화로왔다.

제2기 전수반이 결속된 후 사부님께서는 옛날식의 아주 낡아빠진 자전거를 타시고는 장춘시를 한 바퀴 돌며 장춘시 전반의 공간마당을 청리해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에게 연공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승리공원도 일찍이 사부님께서 연공하시던 곳이다. 사부님께서는 겨울에 참장을 연마하셨는데 동북의 겨울은 얼마나 추운가! 사부님께서는 겉옷을 벗고 장갑을 벗은 후 한 번 참장을 연마하시면 몇 시간을 연마하셨다. 여름에 큰 비가 억수로 쏟아질 때 기타 기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를 피했지만 사부님만 비를 무릅쓰고 연공을 하셨다. 이를 본 사람들은 전부 감탄하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연공이라고 했다. 또 일부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밤에 포룬을 연마하시면 이튿날 아침까지 여전히 그곳에 서 계시는 것을 보았는데 한 번 연공하시면 온 밤을 연마하셨다.

사부님의 연공은 승리공원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기에는 기공의 형식으로 전했으며 사람들에게 대법을 인식하게 하려고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 주시고, 부체를 청리해 주시고, 등이 휜 사람의 등을 펴 주셨다. 그 당시 원숭이 산에서 연공하는 사람이 층층이 가득하여 후에 넘쳐났으며 또 정문과 후문에도 연공장을 열었다. 바로 이 후문에서 사부님께서는 > “육식문제”를 말씀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느 날 아침, 내가 장춘(長春) 승리공원 후문을 지나고 있었다. 세 사람이 큰 소리로 떠들며 후문으로 나오면서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 무슨 공을 연마[練]하기에 고기도 먹을 수 없는가, 십 년을 적게 산다고 해도 나는 먹어야겠다! 그처럼 강렬한 일종 욕망이다.” 사부님의 법을 읽을 때 마치 그 당시의 사부님을 모습을 뵙는 것 같았다.

승리공원에서 멀지 않은 동북쪽 방향으로 사부님께서 그 당시에 일하시던 곳인 시양유공급회사가 있다. 무릇 사부님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선량하시고, 소박하시고, 진실하시며, 평소에 말씀이 적으시고, 항상 웃으시며, 사람 연분이 아주 좋았음을 모두 알고 있다. 누가 어느 곳이 불편하여 사부님을 찾으면 사부님께서는 모두 도와주셨고 모두 호전되었다고 말했다. 명절에 활동이 있었을 때 사부님께서는 부대 문공단의 전우들을 불러다 프로그램에 출연하셨다. 사부님께서는 트렘펫을 불렀다. 사부님께서는 사업, 생활에서 행동으로 우리에게 최대한도로 속인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하라고 알려주셨다. 또한 이곳에서 사부님께서는 자신의 조기 수련 중의 일을 말씀하셨다. “내가 직장에 출근할 때에 직장의 식당은 늘 손해를 보다가 나중에는 문을 닫게 되었다. 문을 닫자 여러 사람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아침에 요리를 좀 해서 급하게 출근하려니 매우 힘들었다. 어떤 때는 찐빵 두 개를 사고 두부 한 모를 사서 간장을 쳤다. 이치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담백[淸淡]한 것이므로 괜찮지 않은가. 늘 먹어도 안 되는바 이 마음 역시 제거해야 한다. 당신이 두부를 막 보기만 해도 당신으로 하여금 신물이 돌게 하고 다시 먹으려 해도 먹지 못하는데, 당신에게 집착심이 생길까 봐 염려되어서이다.”>

장춘시에는 예전에 사부님과 같이 일하던 사람, 동창생, 전우, 이웃, 친한 친구들이 아주 많았고 모두 사부님께서 그들을 구도하시기 위해 맺으신 인연들이다. 그들 모두 대법이 좋음을 알기를 바라며 사부님의 고심을 져버리지 않기 바란다! “대법은 널리 전해지고 있고 일체 중생을 구도(救度)하고 있다.”《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사부님께서는 모든 생명에게 한 번 또 한 번의 구도될 기회를 주시면서 자신이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만 보신다.

승리공원의 서쪽은 항공부대 클럽인데 그곳에서 사부님께서는 제3기 반을 여셨다. 그 당시 어떤 사람이 회사에 출근하여 쌀포대를 들다가 다쳤다. 침대에 오랫동안 드러누워 온갖 치료를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가족들은 그녀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와 들것에 실어 강연대로 왔으며 병원에 있던 다른 몇 명의 환자도 그녀와 함께 따라왔다. 사부님께서는 강의하시기 전에 직접 그녀의 몸을 청리해 주셨고 앞몸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또 그녀에게 몸을 돌리게 하고 뒷몸도 두드렸다. 그 후 그녀에게 앉게 했더니 그녀는 앉았다. 사부님께서는 그녀에게 일어서라고 하셨고 그녀는 일어섰다. 사부님께서는 또 그녀에게 한바퀴 걸어보라고 하셨고 그녀는 정말로 강연대에서 내려와 한바퀴 걸었다. 가족과 같이 온 환자들은 격동을 금할 수 없었고 그 후 온 가족이 대법으로 들어와 수련을 시작했다.

3기 전법반의 어느날 사부님께서는 낡은 자전거에 따님을 태우고 오셨다. 문 앞에 도착하셔서 수련생들이 세워둔 자전거 한 줄이 모두 넘어진 것을 보시더니 그 자전거를 한 대 한 대 일으켜 세우시는 것이었다. 그 당시 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부님이시여, 매 한가지 아주 작은 일에서도 수련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셨으며 사부님께서는 자신의 행동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큰 뜻을 품고서도 사소한 일에 소홀히 하지 않노라” 인지를 알려주셨다. 그 당시 한 수련생이 문 앞에서 가족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정경을 보고 감동, 경탄하며 내심으로 자책을 했다. 사부님께서는 남을 위해 생각하시는데 내가 어찌 나의 가족의 병치료를 위해 모두가 강의를 듣는 시간을 지체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조용히 강연장으로 돌아와 사부님의 설법을 기다렸다. 사부님의 자비하시고 순선한 거동은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녹였고 또한 사람마음을 바로 잡으셨다.

승리공원은 성위 강연당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사부님께서는 이곳에서 제4기, 제5기반을 여셨다. 4시반경 사부님께서는 몇 명의 수련생더러 강연대 위에 올라서게 하셨는데 한 사람의 배 속에는 큰 종기가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그녀의 몸을 청리해 주셨는데 그 당시 농혈이 피와 함께 바지를 따라 아래로 흘렀으며 종기는 사라졌다. 배가 줄어들자 바지가 단번에 흘러내렸다. 많은 수련생들이 사부님의 신적을 목격했고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5기반 이후 사부님께서는 더 이상 수련생에게 한 명 한 명씩 손을 움직여 병을 치료하지 않으시고 정체적으로 수련생의 신체를 조정해 주셨다. 이 5기반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승리공원, 길림대학, 아동공원, 동식물원, 조양공원 5개 연공장에 깃발을 주셨다. 이 연공장들은 전부 사부님께서 직접 보시고 선택한 곳으로 청리한 뒤 갓을 씌운 곳이다. 사부님께서는 동식물원에 그렇게 큰 면적을 그어주셨지만 그 당시 겨우 몇 사람만 연공을 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그들에게 조급해 할 것 없으며 아주 빨리 수련생들이 넘쳐날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정말로 6기, 7기반이 끝난 후 사람이 많아졌고 95년 이후에는 더는 함께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동식물원 외에도 다른 몇 개의 문 앞에 연공장을 만들었다.


(사진5)

사부님의 나중의 2차례 전법반은 길림대학의 강연당 명방궁에서 열렸다. 14년이 되어 아주 많은 곳들은 갈아 엎고 새로 만들었는데 유독 이곳만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낡은 일본식 신사풍격의 건축물은 역사를 견증하며 기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전반 우주가 최후로 나아갈 때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오셔서 이곳에서 전법하시고 중생을 구도하셨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강연당에서는 아직도 사부님의 우렁한 목소리가 울렸으며 문 앞에는 사부님과 수련생의 많은 사진들이 남겨져 있으며 전법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일부 수련생들은 사부님의 아주 크고 아주 큰 빛테두리를 보았다. 금빛찬란하며 8명의 호법신이 갑옷을 입고 손에 각종 법기를 들고 좌우에 4명씩 사부님의 양측에 서서 사부님을 위해 호법하였는데 위엄있고 신성했다.

한 노인은 뇌혈전에 걸려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 앉아 사부님과 사진을 찍었다. 사부님께서는 노인에게 “지팡이를 버리고 의자를 치우세요”라고 하셨다. 노인은 천천히 일어났고 지팡이를 버리고 왼쪽 발을 시험 삼아 내딛더니 또 오른쪽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문 앞 광장에서 한 바퀴 또 한 바퀴를 돌았다.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고 격동하였으며 감탄했다. “신기하다!” 그 후 노인의 할머니는 사부님께 파룬궁을 반드시 잘 연마하여 사부님의 은덕에 보답하겠다는 편지를 썼다.

(계속)

문장완성:2006년 05월12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5/13/12761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