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라이저우(萊州)시의 79세 파룬궁수련자 텅춘샹(滕春香)과 76세 파룬궁수련자 왕산화(王善華)는 2026년 10월 18일 다시 납치돼, 10월 20일 각각 징역 3년 6개월과 1년 3개월을 부당하게 선고받았으며, 현재 그녀들은 산둥성 여자감옥에 불법적으로 감금돼 있다.
2025년 11월 18일, 라이저우시 공안은 텅춘샹의 집에 들이닥쳐 텅춘샹과 그녀의 집에 있던 왕산화를 강제로 끌고 갔으며, 그녀들의 모든 대법서적과 탁상달력 등 물품을 빼앗았다. 그녀들은 비록 집으로 돌아왔지만 경찰은 빈번하게 찾아와 괴롭혔고, 그녀들을 공안, 검찰원, 법원 등 부서로 끌고 가 심문했으며, 박해로 인해 그녀들은 모습이 늙어버렸고 행동이 느려졌다.
2026년 10월 18일, 가족이 모두 모르는 상황에서 라이저우시 공안은 다시 그녀들을 납치했다. 이어서 10월 20일, 법원은 텅춘샹에게 징역 3년 6개월과 벌금 1만 위안을, 왕산화에게 징역 1년 3개월과 벌금 4천 위안을 부당하게 선고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건강을 얻다
텅춘샹은 1947년 2월에 태어났으며, 라이저우시 진청(金城)진 청허우왕자(城後王家)촌에 산다. 그녀는 예전에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는데 손 관절, 발 관절 등 모든 관절이 아팠고, 좌골신경통은 뼈주사를 아무리 맞아도 소용이 없었으며, 경추, 흉추, 요추에 모두 증식이 생겼다. 밤에 잘 때 혼자서 몸을 뒤집을 수도 없었고, 목을 들어 머리를 가누는 것조차 남편의 도움이 필요해 늘 이불에 기대어 잤다.
병원에 가보니 의사는 식물인간이 될까 두려워 수술을 감히 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만 들으면 어이든 데리고 가서 치료받게 했지만, 어떻게 치료해도 소용이 없었다. 내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신경쇠약, 심장병이 모두 심각했고, 폐결핵으로 3cm 크기의 덩어리가 있어 병원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으며, 만성 담낭염이 7cm 정도라 매일 신청(新城) 금광에 가서 소염 주사를 맞아야 했다[의사 성은 런(任) 씨]. 위궤양에 혈변이 있었고, 나중에 옌타이(煙台) 위황딩(毓璜頂)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을 했는데 심각한 위동염이었으며, 만성 위염이 쓰리 플러스(+++)였고 혈뇨도 있었다. 이런 병들로 인해 나는 돈을 적지 않게 썼고, 많은 고통을 겪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2003년 남편이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고 라이저우 종양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을 때, 그녀는 몸이 몹시 불편함을 느꼈고 검사 결과 요독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그녀의 병이 남편보다 더 심각하니 빨리 입원하라고 했다.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텅춘샹 노인은 살고 싶지 않았다. 2005년 9월,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길을 깨달았고, 자신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도덕 이념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고, 이타적이고 사심 없이 남을 배려하게 됐으며, 이웃 간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도 변해 어디도 아프지 않게 됐고 모두 나았다.
왕산화는 1950년 7월에 태어났으며, 산둥성 라이저우시 진청진 청허우왕자촌에 산다. 그녀는 예전에 골결핵, 현기증, 부인과 질환 등 몸에 여러 가지 병이 있었다.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마치 누군가 창자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1996년 그녀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한동안의 법공부와 연공을 거친 후 모든 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고, 몸은 병 없이 가벼운 상태에 도달했다.
텅춘샹이 예전에 겪은 박해
2009년 7월 31일, 텅춘샹은 신청 시장에서 라이저우시 진청 분국에 납치됐다. 파출소의 중웨이칭(仲衛靑)은 많은 경찰을 이끌고 불법적으로 텅춘샹의 문을 부수고 집안에 들이닥쳐 그녀의 집을 난장판으로 뒤졌다. 그날 밤 그녀를 강제로 차에 끌고 가 라이저우 구치소로 보냈으나, 신체검사 불합격으로 구치소에서 받지 않으려 했지만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은 억지로 그녀를 감금했다. 구치소에서는 사진을 찍고, 지장을 찍게 했으며, 죄수복을 입혔고, 여러 차례 불법 심문할 때마다 그녀에게 수갑을 채우고 검은 두건을 씌운 채 쇠의자에 묶어 놓고 자백을 강요했다. 구치소에서 먹는 밥은 아침에는 부서진 밀가루 덩어리를 끓인 멀건 국수탕 한 그릇을 주었고, 점심에는 배춧잎 몇 조각이 들어있는 국물 채소를 주었는데 기름기라곤 전혀 없이 맹물로 끓인 것 같았다. 그리고 약 100g짜리 작은 찐빵을 주어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구치소에서 정신이 긴장돼 심장병이 재발했고 매일 침대에 누워 죽어갔지만 내보내주지 않았다. 이렇게 한 달을 버티고 나서야 돌아왔다.
2010년 5월 8일, 텅춘샹이 신청 시장을 걷고 있을 때 진청진 분국 파출소의 중웨이칭이 갑자기 뛰쳐나와 그녀를 끌고 갔고, 또 다른 경찰 여러 명이 와서 텅춘샹을 차에 납치했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경찰은 밤에 그녀의 아들까지 진청 분국 파출소로 잡아와 돈을 갈취하려 했다. 경찰은 텅춘샹의 집을 가택수색했고 아들의 집도 샅샅이 뒤져 가족들을 놀라 병이 날 지경으로 만들었다. 그날 밤 경찰은 또 610과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 경찰과 협력해 텅춘샹 모자를 구류소에 감금했다. 역시 불법 심문과 자백을 강요했으며, 며느리를 속여 식비 7백 위안을 가져오게 했고, 그녀 아들의 10무(畝)짜리 사과밭도 관리할 사람이 없어졌다. 당시는 꽃과 열매를 솎아내고 봉지를 씌워야 할 시기로 수입에 결정적인 시기였으며, 그녀 아들의 생활은 이 10무 사과밭의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70일간의 불법 감금으로 그녀 아들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15일 후 610은 또 텅춘샹 모자를 세뇌반으로 보냈다. 매일 강제 세뇌를 하고 회개서를 쓰도록 강요했으며, 610과 국보가 함께 있었고 류징빙(劉景兵), 스빈타오(史彬濤), 위안수썬(原樹森), 위즈빈(于智斌) 등 많은 경찰이 감시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그들이 결정했는데 가라고 해야 갈 수 있었고, 허락하지 않으면 바지에 대변을 싸도 못 가게 했다. 텅춘샹이 쓰지 않자 3일 동안 굶겼고, 610 직원 한 명이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또한 그녀를 사무실에 혼자 가두고 잠을 자지 못하게 서 있게 했으며, 전기몽둥이를 그녀 눈앞에서 책상 위로 찰싹찰싹 이리저리 휘두르며 위협했다. 텅춘샹은 3일 밤낮으로 강제로 서 있어야 했고 다리도 부어올랐다. 텅춘샹은 세뇌반에서 25일 동안 잔혹한 박해를 받았고, 또 구치소로 옮겨져 1개월간 계속 박해받았다.
2011년 5월, 진청진 변방 파출소가 텅춘샹의 집에 불법적으로 들이닥쳐 그녀를 들어서 차에 싣고 변방 파출소로 끌고 갔다.
2012년 3월 7일 저녁 7시경, 610은 또 텅춘샹을 잡으러 그녀의 집에 갔으나 당시 그녀는 집에 없었다. 그들은 매일 찾아와 여러 차례 괴롭혔지만 잡지 못하자 사람을 고용해 텅춘샹의 집에 잠복하게 했고, 텅춘샹은 집을 떠날 수밖에 없어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했다.
왕산화가 예전에 겪은 박해
1999년 7월 20일부터 지금까지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에 대해 덮어놓고 탄압을 일으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크고 작은 박해를 받았다. 왕산화의 집 앞과 좌우에는 모두 감시카메라가 설치됐고, 24시간 사람을 파견해 찾아와 괴롭히며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1999년 7월 21일, 왕산화와 몇몇 수련자는 베이징으로 가는 대형 버스에 탔다가 도중에 경찰에게 납치돼 라이저우 진청진 파출소로 끌려갔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사부님을 모독하고 대법을 비방하는 영상을 보도록 강요했으며, 인신 자유를 제한하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12월 20일 공안국과 진(鎭)의 3~4명이 개인 주택에 무단 침입해 왕산화의 집을 불법적으로 가택수색했으며, 그녀를 위협하고 인민폐 3천 위안을 갈취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2월 28일 밤, 그들은 왕산화와 남편을 함께 진 정부로 납치해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섣달그믐날 밤, 대대(大隊)에서 사람을 보내 왕산화의 집에 찾아와 괴롭혔고, 매일 그녀의 집에 와서 감시하며 공민의 인신 자유권을 침해했다.
2000년, 구역 경찰은 또 왕산화를 감독관리소로 납치했고, 4~5명의 경찰이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하고 더러운 말로 모욕해 그녀의 정신에 큰 타격을 주었다. 2001년 5월 13일 아침, 또 왕산화를 다위안(大原) 세뇌반으로 납치했고, 그곳에서 심각한 박해를 받았다. 동시에 왕산화의 가족도 심각한 박해를 받아 80대 노모가 놀라 두려움에 떨었고, 딸도 여러 차례 놀라 정신적,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 남편은 박해를 받아 연공 환경을 잃으면서 옛 병이 재발해 세상을 떠났다. 원래 온전하고 행복했던 한 가정이 이렇게 장쩌민이 주도한 박해하에 풍비박산 났다.
산둥성 여자감옥 문의 전화: 0531-85838066
원문발표: 2026년 10월 3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31/5160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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