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국 파룬궁수련자 박해 상황 종합

[명혜망](종합보도)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8월에 최소 391명의 파룬궁수련자가 중국공산당(중공)의 다양한 형태의 박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 14명이 박해로 사망하거나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최소 52명이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됐으며 191명이 납치됐고 130명이 괴롭힘을 당했으며 4명이 ‘학습반 개최’ 등 형태로 강제 세뇌 박해를 받았다.

图1:2026年8月获悉393名法轮功学员遭中共迫害

2026년 8월 파악된 중공의 박해를 받은 393명의 파룬궁수련자

2026년 8월 명혜망에 보도된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자 14명

지역
박해 사망자 수
헤이룽장성
4
랴오닝성
3
톈진시
2
신장
1
닝샤
1
윈난성
1
구이저우성
1
지린성
1
图2:2026年8月获悉中国大陆各地法轮功学员遭非法判刑人数统计

2026년 8월 파악된 중국 각지 파룬궁수련자 불법 선고 인원 통계

图3:2026年8月明慧网报道中国各地321名法轮功学员遭中共绑架、骚扰

2026년 8월 명혜망에 보도된 중국 각지에서 중공에 납치 및 괴롭힘을 당한 파룬궁수련자 321명

그중 5명은 두 차례 괴롭힘을 당했고 10명은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했다.

사례:

1.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파룬궁수련자 야오싱치 박해로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20일 소식에 따르면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푸라얼지구의 79세 파룬궁수련자 야오싱치(姚興啟)는 2026년 5월 12일 베이싱 파출소에 납치돼 5월 29일까지 감금됐으며 6월 24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야오싱치는 원래 치치하얼시 푸라얼지구 중국이중기계그룹회사에서 일했다. 1999년 7월 이후 여러 차례 불법 납치, 괴롭힘, 갈취를 당했다. 2010년 진상을 알리다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불법적으로 감금되고 5천 위안을 갈취당했다. 2010년 4월 2일 오후, 야오싱치는 파룬궁 진상을 알린다는 이유로 우매한 자의 악의적인 신고를 받아 훙안 파출소에 끌려갔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다음날 훙안 파출소 소장 롼스장(欒士江)은 야오싱치에게 5천 위안을 갈취한 후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11년 2월 28일, 야오싱치는 베이싱 파출소에 납치돼 푸구 구치소와 치치하얼 제1구치소에 감금됐다. 베이싱 파출소 부소장 마밍후이(馬明輝)는 “야오싱치는 이미 징역형으로 결정됐다”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모함할 거짓 자료를 수집했다. 결국 야오싱치는 불법적으로 3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타이라이 감옥에 수감됐다.

2020년 4월 이후 베이싱 파출소 관할구역 경찰 루청(陸成)은 세 차례 찾아와 야오싱치에게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네 번째 찾아와 그를 연행하려 하자 야오싱치는 “나는 당신들 관할이 아닙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십니다”라고 정정당당하게 말했다.

2025년 5월 10일 아침, 야오싱치와 수련하지 않는 아내는 다시 베이싱 파출소에 납치됐다. 당일 밤 10시, 2천 위안을 갈취당하고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 처분을 받은 후에야 두 사람은 풀려났다.

2026년 5월 11일, 야오싱치는 베이싱 파출소에 가서 빼앗긴 대법서적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파출소는 돌려주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그를 치치하얼시 제1구치소로 납치했다. 5월 21일 야오싱치는 구치소에서 박해를 받아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소생할 가망이 없었다. 책임을 질까 두려워한 경찰은 5월 29일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6월 24일 야오싱치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 20년 감시, 강제노동, 유랑 끝에 랴오닝성 푸순시 겅샹우 억울한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13일 소식에 따르면 랴오닝성 푸순시 둥저우구 파룬궁수련자 겅샹우(耿向武)는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받았다. 2019년 9월 12일 그는 장기간의 고압적인 감시, 괴롭힘과 심신 훼손 속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였다.

겅샹우

1999년 7월 20일 이후, 겅샹우는 우자푸 노동수용소에 수감돼 3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그 후 이른바 ‘민감한 날’이 될 때마다 파출소, 주민센터 직원들이 찾아와 “밖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 마라. 또 알리면 다시 노동수용소로 보내버리겠다”라고 위협했다.

2001년 5월 현지 파출소는 ‘길거리에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했다’는 구실로 겅샹우를 다시 우자푸 노동수용소로 잡아갔다. 노동수용소의 고문 속에서 겅샹우는 심장 박동 이상, 담결석 급증, 신장결석이 꽉 차는 극심한 통증 등의 증상을 보였다. 노동수용소는 그가 사망할까 두려워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후 현지 공안은 빈번하게 찾아와 괴롭혔고 ‘최저생계비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며 최저생계비 수급자들에게 겅샹우의 출입 시간과 소지품을 감시하게 했다. 경찰은 그의 집 맞은편에 고화질 CCTV를 설치해 그의 집 모든 방을 직접 비추게 했다. 겅샹우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유랑해야 했다.

2016년 4월 22일, 겅샹우는 다시 납치돼 푸순 구치소로 보내졌으나 신체검사 불합격으로 수감이 거부됐다. 경찰은 그의 자녀에게 “당신들 아버지를 잘 지켜보라. 다시는 나와서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해라, 정부는 파룬궁을 연마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위협했다.

장기간의 감시, 괴롭힘, 납치, 혹형, 유랑과 정신적 압박으로 인해 겅샹우의 심신은 큰 타격을 입었다. 2019년 9월 12일 그는 엄청난 압박 속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3. 윈난 여자감옥 약물 박해 의혹, 푸바오위 출소 이틀 앞두고 돌연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16일 소식에 따르면 윈난성 쿤밍시 파룬궁수련자 푸바오위(普寶玉)는 65세의 나이로 2025년 9월 9일 윈난성 제2여자감옥에서 돌연 사망했다. 부당한 징역 생활이 끝나기 불과 이틀 전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감옥에서 출처 불명의 약물을 강제로 주사 맞았다.

푸바오위는 ‘진선인’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공으로부터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았다. 남편은 압박을 견디지 못해 그녀와 이혼했고 그녀는 딸 하나를 데리고 매월 1천여 위안의 퇴직금에 의지해 힘들게 생활했으며 한때 일정한 거처조차 없었다. 그녀는 세 차례 불법 판결을 받았고 누적된 부당한 형기는 12년 4개월에 달했다.

2005년 8월 2일, 푸바오위는 관두 공안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2007년 8월 13일 쿤밍시 중급법원은 그녀에게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해 윈난성 제2여자감옥 제4감구역으로 보내 박해했다.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42일 동안 독방에 갇혔고 그 기간 동안 빗질도, 세수도, 샤워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매일 화장실은 4번만 갈 수 있었고 물 사용이 금지됐으며 하루 종일 고문 도구인 작은 의자에 강제로 앉아 있어야 했다. 이로 인해 그녀의 엉덩이에 종기가 나고 고름이 흘렀다. 푸바오위는 2008년 2월 1일 출소해 집으로 돌아갔다.

2012년 5월 4일 밤 12시, 관두구 국보 대대는 푸바오위를 납치했고 쿤밍시 중급법원은 그녀에게 다시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했다.

2019년 5월 12일, 푸바오위는 관두구 국보 대대[이후 정보(정치안전보위국) 대대로 개명]에 비밀리에 납치됐고 이어 비밀리에 6년 4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가족은 전혀 알지 못했다.

푸바오위는 윈난성 제2여자감옥으로 이송된 후 감옥경찰에게 장기간 엄격한 관리 명목으로 박해를 받았다. 원래 2025년 9월 11일에 부당한 징역 생활이 끝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9월 9일 아침 기상 시 같은 감방의 수감자가 갑자기 그녀의 호흡과 심장 박동이 멈춘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죽음 뒤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흑막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상황을 아는 사람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진상이 세상에 밝혀지기를 바란다.

4. 톈진 지현 쑨수화 두 차례 부당한 판결, 출소 반년 만에 억울한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6일 소식에 따르면 톈진 지현 파룬궁수련자 쑨수화(孫淑華)는 두 차례 억울하게 감옥에 수감돼 심신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2026년 1월 출소 후 혈압이 200 이상으로 지속되다가 7월 6일 뇌출혈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세였다. 그녀의 언니 쑨수전(孫淑貞) 역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두 차례 불법 판결을 받고 2023년 5월 28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2세였다.

쑨수화는 지현 허우자잉진 푸좡쯔촌에 거주했다. 그녀는 다리가 불편해 장애가 있었고 걸을 때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다. 1998년 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그녀는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다스렸고 심성을 닦았으며 어떤 일에 부딪히면 남을 먼저 배려했다. 여러 해 동안 낫지 않던 안질, 심열, 부인과 질환, 경추증, 요통 등 고질병이 모두 사라졌고 마음이 유쾌해졌으며 가정도 더욱 화목해졌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그녀는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괴롭힘, 납치, 불법 구류, 강제노동을 당했고 노동수용소에서 잔혹한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겪었다. 그녀의 연로한 부모도 두려움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2009년 4월 13일, 쑨수화는 싼쯔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다. 경찰은 그녀에게 여러 차례 자백을 강요하고 지장을 억지로 찍게 했으며 “변호사를 선임해봤자 헛수고다, 소용없다”라고 위협했다. 밤 10시 그녀는 지현 구류소로 보내져 40여 일간 불법 감금된 후 1년 2개월의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톈진 여자노동수용소에 도착한 후 노동수용소는 마약사범 양원화(楊文花)와 두 명의 방교(幫教, 파룬궁수련자를 전향시키기 위해 투입된 인원)를 배치해 그녀에게 강제 세뇌를 실시했고 대법 사부님을 모독하는 내용을 틀어놓았으며 3서를 쓰고 감옥 규정을 외우고 사상 보고서와 월간 평가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그녀는 시종일관 3서 쓰기를 거부했다. 대장은 바오자(包夾, 파룬궁수련자를 감시·괴롭히는 수감자) 죄수들에게 “잘해봐, 잘하면 감형해 주겠다”라고 지시하며 박해를 가중했다. 바오자 양원화는 “두 가지 극단적인 방법이 있다. 하나는 서 있는 것에 질리게 하는 것이고 하나는 앉아 있는 것에 질리게 하는 것이다”라고 위협했다. 그녀는 매일 아침 5시가 넘어서부터 벽을 마주하고 직각으로 벌서기를 강요받았으며 아침 식사 때까지 서 있다가 3분 만에 밥을 먹고 다시 점심때까지 서 있고 3분 만에 밥을 먹고 다시 저녁때까지 서 있고 3분 만에 밥을 먹고 모든 감방 인원이 샤워를 마칠 때까지 서 있다가 그녀에게 20분간 샤워할 시간을 준 뒤 계속해서 밤 12시까지 벌서기를 하고 나서야 잠을 자게 했다. 이런 벌서기는 한 달 넘게 계속됐다. 그다음에는 사람을 괴롭히는 각종 서 있는 자세가 이어졌다. 이마를 벽에 대기, 코끝을 벽에 대기, 배를 벽에 대기, 발끝을 벽 모서리에 바짝 붙이기 등을 매일 17~18시간씩 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그녀에게 ‘앉아 있는 것에 질리게’ 만들었다. 작은 의자에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다리를 곧게 펴고 두 손을 무릎에 얹고 눈은 똑바로 앞을 주시하게 했으며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거나 말하거나 사람을 쳐다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를 어기면 머리를 때렸다. 매일 17~18시간씩 앉혀 놓았고 때로는 물도 주지 않았으며 때로는 밥을 아주 조금만 줬다. 그리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다.

쑨수화가 집에 돌아온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톈진 610, 싼쯔 파출소, 허우자잉 파출소 경찰 7~8명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쳤다. 한 여경은 그녀가 명혜망에 투고했는지 캐물었다. 경찰은 방 두 칸을 샅샅이 뒤져 ‘컴퓨터’를 찾았고 그녀에게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고 시어머니는 온몸을 떨며 눈물만 흘릴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여경은 “명혜망에서 당신 이름이 다시 보이면 또 찾아오겠다”라고 위협했다. 다음날 허우자잉 파출소 경찰 두 명이 또 와서 괴롭혔다. 이어서 허우자잉향 정부 직원 남녀 3명이 다시 찾아왔다.

2024년 7월 19일, 쑨수화는 다시 납치돼 불법적으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고 벌금 1만 위안을 갈취당했다. 장기간의 박해로 인해 그녀의 심신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2026년 1월 출소 후 그녀의 혈압은 줄곧 200 이상이었고 7월 6일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5. 약물 박해로 식물인간 된 후에도 엄격한 감시, 랴오닝성 가오위민 억울하게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 푸신시 파룬궁수련자 가오위민(高雨民)은 시민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전했다는 이유로 2014년 중공 법원으로부터 불법적으로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선양 제1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혹형, 전기충격, 강제 음식물 주입,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독주사 등 고문을 당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건강했지만 출소할 때는 이미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선양 의대 제1병원에서 가오위민을 대상으로 독성 검사를 한 결과 중독 대사성 뇌병증으로 진단됐고 바르비투르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후 수년간 그는 유동식을 주입해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2026년 7월 19일 가오위민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였다.

속아서 박해에 가담했다가 진상을 알고 대법 수련

가오위민은 원래 푸신시 공안국 형사경찰대 경찰로, 살인범을 체포해 2등 공을 세운 적이 있었다. 초기에 그는 중공의 파룬궁을 모독하는 선전을 믿고 박해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룬궁수련자들을 접하는 과정에서 그는 파룬궁수련자들의 선량함과 굳은 의지가 공식 선전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았고 이로 인해 반성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집 문 앞에서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주웠고 파룬따파가 진정한 불법(佛法)이며 박해는 장쩌민이 질투심에서 일으킨 것임을 알게 됐다. 이로 인해 그는 파룬궁수련자들의 용기를 존경하게 됐고 마침내 자신도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수련 후 그는 진선인을 기준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고 먹고 마시고 노름하는 등 나쁜 습관을 끊었으며 10여 년간 정신병을 앓은 아내를 원망이나 후회 없이 돌보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해 이웃들 모두 그를 진정한 좋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진상 자료 배포 중 납치돼 구치소에서 혹형 고문

2013년 11월 6일, 가오위민은 장우현 장구타이진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국보 대장 추이하이펑(崔海峰) 등에게 납치돼 장우현 헤이퉈쯔 구치소로 끌려갔다.

그는 하루 종일 수갑과 족쇄를 차고 매일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며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구치소 경찰은 그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으며 야만적으로 코를 통해 음식물을 주입하고 식염수를 주사하는 등 그를 괴롭혔다. 그래도 그는 동료 경찰들에게 나쁜 짓을 돕지 말라고 일깨워주기 위해 권선징악 편지를 고집스럽게 썼다.

두 달 후 그는 극도로 허약해지도록 박해를 받았고 가족의 등에 업혀 구치소를 나와 병보석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해 한 달 만에 정상으로 회복됐다. 가족은 놀라면서도 걱정하며 박해를 피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80대 노모를 걱정했고 정신이 이상한 아내를 돌봐야 했으며 자신의 보증을 서준 형에게 연루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시 잠복 경찰에게 납치돼 3년 6개월 불법 형 선고

2014년 2월 21일, 장우현 법원 경찰은 그의 집 아래에서 잠복하다가 그를 다시 납치했다. 3월 14일 장우현 법원은 그에게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했다. 가오위민이 항소한 후 푸신시 중급법원은 형기를 3년 6개월로 줄였다.

같은 해 11월 7일 그는 선양 제1감옥으로 보내졌다. 당시 그는 20여 일간 단식해 피를 토하고 혈변을 봤으며 몸이 극도로 허약했다. 감옥 병원 검사 결과 15개 지표가 불합격이었고 신부전, 간·신장 손상에다 이미 심장까지 손상돼 시력이 흐려지고 의식이 불분명하며 자주 혼수상태에 빠져 이미 병위 통지(위독 통지)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푸신시 정법위의 지시에 따라 선양 제1감옥은 여전히 강제 수감을 강행했다.

전기충격, 독주사, 독방 감금: 박해로 식물인간

선양 제1감옥 엄격관리대(엄관대)는 그에게 전향을 강요하며 그를 야만적으로 구타했고 죄수들에게 그의 뺨을 때리게 한 후 ‘숫자를 세게’ 해 32번까지 센 다음 신발 밑창으로 그의 얼굴이 변형될 때까지 때렸다……. 가오위민은 이에 동요하지 않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공을 견지하자 경찰은 그가 몸을 지탱할 수 없을 때까지 전기봉으로 하반신을 때렸다.

그는 박해에 저항했을 뿐만 아니라 학대받는 다른 수련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며 여러 차례 단식으로 성원하다가 강제로 관을 삽입당해 위출혈이 발생했다. 한번은 제9감구역에서 그가 더 이상 설 수 없어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죄수들은 감옥에서 그를 선양 739 병원으로 보냈고 검사 결과 위장이 심각하게 유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가장 기이한 것은 그의 형기가 만료되기 두 달 전 푸신시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시스템 내부에 그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이다. 이때 감옥은 그에게 독수를 쓰고 있었다.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바르비투르를 대량으로 주사한 후 독방에 가두고 무자비하게 때려 독성이 퍼지게 했다.

7일째가 되어서야 그는 숨이 넘어갈 듯했고 감옥 측은 비로소 가족에게 통보했다. 가족이 도착했을 때 크게 놀랐다. 그의 눈빛은 멍하고 몸은 뻣뻣해져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옥 측은 단식으로 인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가족은 소변 검사를 의뢰했고 랴오닝성 약물감독검사센터는 약물을 주사한 지 9일이 지난 후에도 가오위민의 체내에 강한 양성 반응이 나타나 심각한 중독 상태라고 감정했다.

감옥 측은 당황해 사적으로 합의하려 했고 가족에게 사람을 데려가라고 했다. 가족은 “우리는 걸어서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데려갈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했다. 당시 가오위민은 여러 혈관에서 피가 스며 나오고 대변이 검붉었으며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정신이 혼미했으며 사지가 구부러져 있었다. 감옥 측은 입원해 수혈 치료를 받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가족은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했다.

가족이 약물 박해의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옥 측은 배상에 동의했지만 랴오닝성 정법위와 610은 승인을 거부했고 푸신시 정법위 책임자 위양(於洋)과 왕추보(王秋博)는 “배상할 수 없다, 배상한다고 하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감옥 측과 푸신시 정법위는 차량 6대를 동원해 가오위민을 푸신시 중심병원으로 옮겼고 세 걸음마다 초소를 세우고 경찰을 배치해 다른 사람의 접근을 엄격히 통제했다. 보름이 지나서야 가오위민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유동식으로 연명하며 장기간 엄격한 감시

가오위민은 감옥 병원에서 응급 치료 상태로 1년여 동안 있었고 생명이 언제든 끝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생활을 전혀 스스로 할 수 없었고 가족은 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며 병원 근처에 방을 얻어 교대로 그를 돌봤다.

가오위민은 집에 돌아온 지 반년이 넘도록 여전히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고 때때로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이 불분명했으며 지능은 3~4세 아이와 같았다. 그럼에도 푸신시 정법위와 610은 여전히 그와 가족을 엄밀히 감시하고 회유와 협박을 일삼으며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을 엄격히 막았다.

여러 해 동안 치료받는 중 그는 매일 유동식 주입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했다. 불법적으로 공직에서 파면된 후 아무런 생계 수단이 없었고 가족은 돈을 들여 사람을 고용해 24시간 간병을 해야 했으며 그중 생활비, 의료비, 간병비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2026년 7월 19일 가오위민은 장기간의 고문과 중독 끝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였다.

6. 랴오닝성 신빈현 경찰 누차 박해받다 억울한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24일 소식에 따르면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현 공안분국 경찰 왕샤오밍(王曉明)은 30년간 공안 관련 업무에 종사했다.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거듭 악당(邪黨, 공산당)의 박해를 받았고 2026년 6월 15일 왕샤오밍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세였다.

왕샤오밍

6월 15일 왕샤오밍이 세상을 떠난 날부터 6월 17일 발인할 때까지 하늘은 계속 흐리고 비가 내렸다. 이슬비, 중간 비에서 큰비까지 내리다가 6월 17일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신빈 융링 묘지 근처의 일부 지역에서는 새벽 2~3시에 눈보라가 날려 달리는 차의 앞유리를 때리기도 했다.

왕샤오밍은 사건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처리해 관련 당사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 사건 당사자는 사건 처리가 불공정해 소장을 찾아가 따지며 “당신들이 모두 왕샤오밍처럼 일하고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한다면 내가 당신들을 찾아와 따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왕샤오밍의 연말 고과 성적은 오랫동안 상위권에 머물렀다. 그는 융링 파출소에서 수행한 컴퓨터 작업으로 성, 시 검사에서 여러 차례 호평을 받았다. 1999년 봄 그는 신빈현 공안국을 대표해 시 공안국 경연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푸순시 공안국 전체 자질 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덕과 재능을 겸비한 이런 좋은 경찰관이 오히려 신빈현 공안분국 간부들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져 ‘부적격 공무원’이라는 명목으로 해고당하는 터무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2001년 9월 왕샤오밍은 불법 구류된 후 푸순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는 단식하며 박해에 저항했다. 단식 9일째 되는 날 오후 음식물을 강제 주입당한 왕샤오밍은 침대에 누워 극심한 전신 경련을 일으켰다. 우웨이(吳偉)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뺨을 때리며 “내가 바로 지옥의 귀신이다, 내가 널 제압하겠다!”라고 소리쳤다. 욕설을 끊임없이 퍼부으며 구두를 벗어 왕샤오밍의 얼굴을 때리고 찻물을 왕샤오밍의 머리에 부었다. 그날 밤 왕샤오밍은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치료를 받았다. 2002년 5월 13일 푸순시 공안국 경찰은 왕샤오밍에게 맹타를 가한 후 그를 납치했다. 그는 우자푸쯔 노동수용소에 수감돼 2년의 강제노동을 당했다.

2021년 7월 31일, 왕샤오밍은 신빈현 공안국에서 불법적으로 해고됐다. 그는 각급 부서에 실명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고소하며 파룬궁 수련이 합법적임을 지적했다. 청원 관련 부서에는 현, 시, 성, 심지어 중앙의 여러 기관이 포함됐다. 2026년 6월 15일 왕샤오밍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7. 안후이성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탕즈페이 8년 부당한 판결, 감옥에서 잔혹한 박해

명혜망 2026년 8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안후이성 허페이시 44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탕즈페이(唐志飛)는 2023년 8월 3일 자택에서 경찰에 납치됐다. 경찰은 그가 인터넷 검열을 피해 ‘담을 넘고(인터넷 우회 접속)’ 해외 플랫폼에 파룬궁 관련 영상을 올려 조회수 6천 회를 넘겼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는 8년형을 억울하게 선고받았고 2024년 쑤저우 감옥에 수감돼 구타, 고춧물 분사, 철장 고문 등 잔혹한 학대를 받으며 심신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2025년 가족이 면회했을 때 그는 뜻밖에도 쓰레기를 담는 작은 철제 수레에 실려 죄수들에 의해 접견실(면회실)로 끌려왔다.

탕즈페이는 허페이시 수산구 진서츠탕 단지에 거주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명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으며 기술 능력이 뛰어나 허페이에 정착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은퇴한 의사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2023년 8월 3일, 탕즈페이는 집에서 징강 파출소 경찰에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자물쇠를 교체당했다. 모든 전자기기와 신분증을 빼앗겼다.

2024년 탕즈페이는 쑤저우 감옥 융차오 감구역으로 납치됐다. 박해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는 구타, 고춧물 분사 등 고문을 당했다. 그 후 그는 단식으로 항쟁하다가 또 철장에 갇혀 고문을 당해 심신이 이중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2025년 가족이 면회하러 갔을 때 감옥경찰은 뜻밖에도 죄수들에게 지시해 쓰레기를 담는 작은 철제 수레로 그를 접견실(면회실)로 끌고 오게 해 그 장면은 충격을 주었다.

쑤저우 감옥(원래 안후이성 제3감옥)은 안후이성에서 남성 파룬궁수련자를 전문적으로 수감하는 감옥이자 중형 감옥이다. 1950년대에 세워졌으며 정치범을 수감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약 2500명이 수감되어 있다. 파룬궁수련자가 감옥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입감대에 투입돼 고문을 받으며 파룬따파를 모독하는 5서(五書, 다섯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도록 강요받는다. 흔히 사용하는 수단으로는 죄수들에게 구타 지시, 장시간 벽을 마주 보게 강요, 화장실 사용 금지, 언어적 모욕, 야간 수면 방해, 고춧물 분사, 체벌 및 정신적 고문이 포함된다.

감옥은 외부에 ‘안후이 화텅 염직 제의 유한 책임 회사’라는 간판을 달고 주로 의류 및 가방 가공을 한다. 노동 시간이 하루 10시간 이상이고 노동량이 엄청나며 이른바 노동 보수는 극히 적어 고급 숙련공의 월수입이 100여 위안에 불과하다. 반면 사회 공장의 동등한 노동은 만 위안 이상을 받을 수 있다.

탕즈페이 사건은 쑤저우 감옥에서 장기간 존재해 온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체계적인 학대 문제를 다시 한번 폭로했다. 더 많은 선량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불법적으로 수감된 사람들의 생명 안전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8. 박해로 요독증 초래, 쉬창 랴오닝 여자감옥에서 여전히 고강도 노역

명혜망 2026년 8월 6일 소식에 따르면 랴오닝성 다롄시 푸란뎬구의 66세 파룬궁수련자 쉬창(徐强)은 진상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푸란뎬구 법원에서 9년 10개월형을 불법적으로 선고받고 2022년 3월 3일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보내졌다. 쉬창은 감옥에서 장기간 학대를 받아 요독증에 걸렸다. 2026년 3월 쉬창은 11감구역 노약자 병동으로 옮겨져 매일 고강도 노역을 강요받고 있다.

처음에 감옥 측은 쉬창에게 그녀의 병을 계속 숨겼다. 쉬창은 11감구역에서 약을 먹을 때가 되어서야 자신이 먹은 것이 혈압약이 아니라 요독증 치료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족은 감옥에 병력을 요구했으나 감옥 측은 무리하게 거절했다. 현재 쉬창의 몸은 극도로 허약한 상태지만 여전히 종이상자 접기 등 노역에 강제로 투입되고 있다. 가족은 소대 감옥경찰에게 상황을 물었으나 감옥경찰은 쉬창에게 수량 임무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최근 파악된 바에 따르면 쉬창은 11감구역에서 줄곧 죄수들로부터 감시, 강압, 욕설을 받았으며 장시간 서서 일해야 했고 잠시 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쉬창이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에 대해 가족이 질문하자 해당 감옥경찰은 모른다, 쉬창이 보고하지 않았다, 24시간 감시 카메라를 볼 수 없다며 회피했다.

죄수에게 감시 권한을 맡기는 것은 ‘감옥법’에서 명확히 금지하고 있으며 죄수가 수감자를 학대하도록 방조하는 것은 더 큰 범죄다! ‘쉬창이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에 대해 주관 감옥경찰이 모른다고 주장했고 가족이 이미 상황을 반영한 이상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감옥 측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우리는 계속해서 주시할 것이다.

9. 누차 박해받은 우한시 쉬리화, 세뇌반으로 납치돼

명혜망 2026년 8월 26일 소식에 따르면 2026년 8월 24일 후베이성 우한시 파룬궁수련자 쉬리화(許利華)의 15일 불법 구류가 만료됐다. 당일 아침 8시 반, 가족이 우한시 제1여자구류소에 가서 인계 수속을 밟았으나 가족에게는 인계할 수 없고 사건을 담당한 파출소만 인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는 공공연하게 법률을 위반하는 것으로 가족은 제1여자구류소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구류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가족은 쉬리화가 우한시 차이뎬구 위쑨산 세뇌반으로 바로 보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세뇌반의 전신은 한커우의 얼다오펑 세뇌반으로 일찍이 많은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해 죽였고 많은 파룬궁수련자를 미치게 하거나 불구가 되게 했다.

10. 선양 퇴직 교사 리룽신 불법 재판, 판사 빈번히 자기 변호 끊

명혜망 2026년 8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선양시의 71세 파룬궁수련자 리룽신(李榮新)은 감금된 지 6개월이 넘었다. 2026년 8월 6일 그는 다둥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재판 전 판사는 무리하게 가족 변호인 자격을 취소하고 다른 가족을 강제로 ‘증인’으로 분류해 가족이 재판을 방청하지 못하게 했다. 재판 과정에서 재판장은 빈번히 리룽신의 자기 변호를 끊었고 결국 50분 만에 서둘러 끝냈다.

리룽신은 현재 선양시에 거주하며 은퇴한 초등학교 교사다.

2026년 2월 4일 낮 12시에서 오후 3시 사이, 선양시 황구구 황허 파출소와 황구구 국보 대대 소속 경찰 총 7명이 집 문을 강제로 뜯고 들어가 그와 아내를 납치했으며 3시간 동안 그의 집을 수색했다. 집 안에 글자가 있는 물건은 거의 모두 압수당했다.

이후 리룽신은 황구구 구치소에 감금됐으며 지금까지 반년이 넘었다.

사건이 법원 단계로 들어간 후 가족은 법에 따라 가족 변호인 신청, 사건 기록 열람, 당사자 면회 등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가족이 법원에 관련 절차를 제출했지만 법원은 장기간 승인을 미뤘다. 가족이 사법 서비스 핫라인 12368에 전화해 이의를 제기한 후에야 절차가 신속하게 처리됐다.

그러나 재판 전 판사 량모(梁沫)는 갑자기 무리하게 가족 변호인 자격을 취소했다. 취소한 당일 오후 량모는 서기 저우쯔허(周子赫), 경찰 한 명, 법원 경찰 한 명과 함께 기록 장비를 들고 리룽신의 집에 들이닥쳐 녹화하면서 가족에게 그녀의 업무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며 컴퓨터와 휴대폰에 있는 사건 기록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다.

량모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이랬다저랬다 하며 반복해서 요구를 변경하고 직권을 남용해 법원은 그녀의 재판장 자격을 취소하고 임시로 천좡웨이(陳壯威)를 재판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량모는 여전히 집행 판사로서 사건에 참여했다.

8월 6일 재판 당일 시간이 촉박해 가족은 적당한 변호사를 찾지 못했다. 법원은 또 가족을 강제로 ‘증인’으로 분류해 리룽신의 딸과 아내는 모두 법정에 들어가지 못했고 사위 한 명만 방청할 수 있었다. 사위가 변호인을 신청했지만 이 역시 거절당했다.

재판 중 공소인 장구이셴(張貴賢)은 먼저 리룽신에게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받겠냐고 물었지만 리룽신은 협조를 거부했다. 장구이셴은 오만한 태도로 법정에서 ‘가중 처벌’을 제안했다.

리룽신이 자신을 위해 무죄를 변호하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재판장 천좡웨이는 즉각 말을 끊었다. 그가 파룬궁수련자들의 장기적출 불법 행위를 언급하자 다시 말이 끊겼다. 그가 두 마디를 할 때마다 재판장에게 말이 끊겼다. 50분 후 재판은 서둘러 끝났다.

현재 가족은 리룽신을 위해 권리 보호 활동을 시작했으며 관련 부서에 계속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호소해 위법한 인원의 책임을 추궁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맺음말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지 27년이 지났고 수많은 범죄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얼룩진 피눈물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선과 악을 가려내는 과정도 그 안에 있다. 이곳에는 구경꾼이 없으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있다. 전 세계가 중공 악당의 조종 소리를 들었지만 눈앞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중공 악당의 총알받이가 되기를 자처하며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하늘이 지켜보고 있고 사람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어 청산할 때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 하늘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지만 그 기회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부록:
2026년 중국 파룬궁수련자 불법 선고 상황 통계표 (78KB .xlsx)
2026년 중국 파룬궁수련자 납치 상황 통계표 (160KB .xlsx)
2026년 중국 파룬궁수련자 세뇌 상황 통계표 (17KB .xlsx)
2026년 중국 파룬궁수련자 괴롭힘 상황 통계표 (157KB .xlsx)
2026년 중국 파룬궁수련자 박해 사망 상황 통계표 (416KB .xlsx)

 

원문발표: 2026년 9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12/51414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9/12/5141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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