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년간 반복적으로 납치·감금당하고 9년 반 부당한 형 선고받아
글/ 중국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산둥성 옌타이(煙臺)시 룽커우(龍口)시 파룬궁수련자 왕훙위(王洪玉)는 2026년 7월 14일에 경찰에게 납치돼 지금까지 한 달이 넘었다. 그녀는 현재 옌타이시 구치소에 감금돼 있다. 왕훙위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확고히 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 중국공산당(중공) 법원으로부터 무고하게 판결받아 총 9년 반형을 선고받았다.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입증한 왕훙위의 변화
왕훙위는 1971년 10월 1일생으로 올해 55세이며, 원래 산둥성 룽커우시 베이마(北馬)진 시얼자(西二甲)촌의 농부였다. 왕훙위는 심장병, 허리디스크, 위장병, 류머티즘성 관절염, 만성 인후염, 신장염 등 다양한 만성질환을 앓으며 병마에 시달렸고, 성격도 난폭해졌다.
1997년 7월, 왕훙위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곧 온몸의 질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밭일이 아무리 힘들고 고되더라도 그녀는 모두 해낼 수 있었고, 집안의 고되고 힘든 일도 앞장서서 했다. 이웃들은 시어머니가 복이 많아 파룬궁을 배우는 좋은 며느리를 얻었다고 칭찬했다. 왕훙위는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단속하고,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 찾았다. 매우 화를 잘 내던 사람에서 맞고도 맞서 때리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했다. 시어머니조차 남편이 아무리 욕해도 말대꾸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그러나 중공 장쩌민(江澤民)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1999년 7월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발동했다. 27년간 왕훙위는 중공 인원들로부터 반복적으로 괴롭힘, 가택수색, 납치, 감금을 당했다. 그녀는 여러 차례 불법적으로 구류됐고,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으며, 두 차례 불법적인 판결을 받았다. 또한 그녀는 두 차례 경찰의 납치에 저항하다가 평생 장애를 안게 됐다.
다음은 왕훙위가 중공으로부터 박해받은 사실을 간략히 서술한 것이다.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돼 고문당해
1999년 음력 12월 23일, 왕훙위는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베이징 청원사무실에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녀는 룽커우시로 끌려간 후 룽커우시 베이마진 정부에 5일 밤낮으로 구류됐는데, 한겨울에 솜이불도 없이 매일 추위에 떨었다. 그녀의 남편은 가오진후(高金湖) 진장(鎭長)의 사주를 받고 여러 차례 그녀를 구타하며 신앙 포기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2000년 10월 30일, 왕훙위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가서 평화적으로 청원하다가 경찰에게 납치돼 천안문 광장 파출소로 끌려갔고, 경찰에게 고무봉으로 머리를 맞았다. 이후 그녀는 베이징 시산(西山) 구치소에 감금돼 경찰에게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았다. 이후 룽커우시 베이징 주재 사무소 직원 마옌후이(馬延會)는 왕훙위를 베이징 싼환(三環) 호텔로 끌고 가 괴롭혔다. 그가 등 뒤로 수갑을 30분이나 채우는 바람에 그녀는 아파서 거의 기절할 뻔했다. 수갑을 너무 꽉 조여서 살 속으로 파고들었기에, 나중에 청년 네 명이 엄청난 힘을 들여서야 겨우 풀 수 있었다.
여러 차례 세뇌반과 구류소에 감금되고 이혼 강요당해
2000년 정월 초여드레 오후, 베이마 파출소 경찰들이 왕훙위의 집에 들이닥쳐 두 살도 안 된 아이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가 세뇌반에 감금하고 40여 일간 박해했다. 한겨울에 세뇌반 경찰은 왕훙위를 지면에서 5cm 떨어진 널빤지 위에서 자게 하고 이불도 주지 않았으며, 맨발로 시멘트 바닥에 서 있게 강요했다. 마지막에 경찰은 왕훙위에게서 6100위안을 갈취했다.
2000년 정월 25일, 파룬궁수련자 왕훙위, 가오더메이(高德梅), 왕리쥐안(王麗娟) 세 명은 베이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룽커우시 구류소에 15일간 불법 구류됐다. 구류소에서 베이마 파출소 경찰 뤼취안젠(呂全健)은 왕훙위에게 폭력을 가하며 심문했다. 그녀를 구타하고 머리채를 잡아 바닥을 질질 끌고 다녔으며, 얼굴과 머리에 침을 뱉고, 기마자세를 강요했으며, 옷깃 속으로 찬물을 붓는 등 고문하며 괴롭혔다.
2000년 7월 18일, 왕훙위는 집에 들이닥친 베이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베이마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받았다.
2000년 8월 1일, 왕훙위는 집에 들이닥친 베이마 파출소 경찰 장보화(張泊華) 등에게 납치돼 룽커우시 구류소에서 15일간 불법 행정 구류됐다. 그녀의 남편은 연좌제 피해를 두려워해 구류소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온 후 곧바로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이때부터 왕훙위는 어린 아들과 생이별하게 됐다.
2000년 11월 초, 왕훙위가 두 번째로 베이징에 갔을 때 경찰에게 가로막혀 룽커우시로 끌려온 후, 룽커우시 구치소로 이송돼 30일간 불법 형사 구류됐다. 이 기간에 그녀는 산둥성 룽커우시 공안국 경찰 위제쥔(于界軍)에게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았다.
30일간의 불법 형사 구류가 끝날 무렵인 2000년 12월 초, 왕훙위는 베이마 파출소 경찰에 의해 구치소에서 곧바로 베이마 세뇌반으로 이송돼 박해받았다. 이 기간에 법원은 세뇌반 안에서 재판을 열고 왕훙위에게 이혼 수속을 밟도록 강요했다. 이후 왕훙위는 당직 직원이 방심한 틈을 타 세뇌반을 탈출했고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두 차례 납치 피해 탈출하다가 장애 입어
2001년 4월 28일, 왕훙위 등 파룬궁수련자들은 셋집에서 룽커우시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 경찰들에게 포위됐다. 경찰이 앞 창문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을 본 왕훙위는 호랑이 아가리를 벗어나기 위해 4층 발코니에서 뛰어내렸고, 유리 기와가 덮인 단층집 지붕 위로 떨어지면서 기와를 박살 내고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왕훙위의 얼굴은 유리 기와에 베였고 병원으로 이송돼 검사를 받은 후 얼굴을 3바늘 꿰맸다. 다른 부위에도 모두 심한 상처가 있어서 룽커우 중심병원 의사는 입원 관찰을 요구했다. 베이마 파출소 경찰과 정부 인원들이 24시간 교대로 그녀를 감시했다.
이튿날 그녀를 구치소에 감금하겠다는 경찰의 말을 들은 왕훙위는 그날 밤 남자 경찰 한 명이 깊이 잠들고 여자 간수가 방심한 틈을 타 탈출했다. 그녀는 3층 화장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요추 분쇄 골절을 입었다. 그녀는 원덩(文登) 정형외과 병원으로 옮겨져 뼈를 맞추는 수술을 받았는데 입원, 수술 등 모든 비용이 총 1만 6천여 위안에 달했고 모두 친척에게 빌린 돈이었다. 수술 후 왕훙위는 오른쪽 다리에 장애가 생겨 노동 능력을 잃었다.
왕훙위는 퇴원해 집에 돌아온 후 줄곧 누워지냈는데 룽커우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 베이마진 정부 인원, 베이마 파출소 경찰이 허구한 날 찾아와 그녀를 괴롭히고 위협하며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가족들도 함께 걱정하고 두려워한 탓에 그녀의 아버지는 2001년 말 일찍 세상을 떠났다.
노동수용소에서 고문당해 생명이 위독해져
2002년 3월, 중공의 양회 개최로 인해 왕훙위의 집은 베이마 파출소 경찰에게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고 그녀는 또다시 어쩔 수 없이 피신해야 했다.
2002년 말 중공 16차 당대회 기간에 왕훙위는 친척 집에서 룽커우시 국보 대대 경찰 왕치(王琪) 등에게 납치됐고, 경찰은 그녀를 룽커우시 세뇌반에 감금하려 했다. 당시 설 연휴가 시작돼 세뇌반에서 받기를 거부했고 세뇌반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기에 다음 날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3년 2월 27일, 왕훙위는 또다시 베이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룽커우시 장자거우(張家溝) 구치소로 끌려갔다. 이튿날 경찰 두쥔(杜軍), 왕잉첸(王應乾), 취허우민(曲後民) 등은 왕훙위, 리추메이(李秋梅), 왕잉우(王英武) 등 파룬궁수련자들을 산둥성 쯔보(淄博) 왕춘(王村) 노동수용소로 끌고 가 불법 강제노동을 시키려 했다. 하지만 몇몇 파룬궁수련자들의 신체검사 결과가 모두 불합격이어서 노동수용소 측은 받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여경 두쥔이 모종의 수작을 부린 끝에 노동수용소는 규정을 어기고 모든 파룬궁수련자를 수감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경찰이 1인당 1000위안씩 노동수용소 계좌로 돈을 이체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경찰들은 돌아서서 이 파룬궁수련자들의 가족에게 각각 1000위안씩 갈취했다.
왕훙위는 3년의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노동수용소는 왕훙위에게 대법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밤낮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벌 세우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는데, 그녀가 서 있지 못해 축축한 흙바닥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앉으면 40여 일 밤낮을 이어갔기에 엉덩이가 다 짓물러 욕창이 생겼고, 썩어서 커다란 구멍이 났다. 한겨울에 두꺼운 털바지를 입고도 고름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나중에 감옥경찰이 상황이 좋지 않음을 보고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의사는 이 욕창은 치유하기 매우 어려우며 뼈까지 썩어 들어가면 사람이 끝장난다고 말했다. 노동수용소는 그제야 그녀에게 병보석 수속을 밟아주었다.
왕훙위가 집에 돌아온 후,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2개월 만에 욕창 상처가 아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노동수용소에서 겪은 정신적 고문으로 후유증이 남아, 오랫동안 개 짖는 소리나 사이렌 소리,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겁에 질렸다.
단식으로 납치에 저항하다가 잔혹한 음식물 주입 당해
2003년 12월 초, 베이마 파출소 경찰 여러 명이 왕훙위 집에 들이닥쳐 강제로 집에서 끌고 당기며 그녀를 베이마 파출소로 납치했는데 그녀의 바지가 경찰에 끌려가면서 다 찢어졌다. 오후에 그녀는 룽커우시 구치소로 이송됐다.
왕훙위는 단식하며 박해에 항의했다. 7일 후 베이마 파출소 소장 츠룽순(遲榮順) 등은 그녀를 룽커우시 베이하이(北海) 병원으로 끌고 가 강제로 코에 호스를 꽂아 음식물을 주입했다. 호스 때문에 위장에 출혈이 생기자 나중에는 박해 방식을 바꿔 강제로 링거를 맞혔다. 그들이 무슨 약을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주사를 맞은 후 두 눈에 계속 눈곱이 끼었고, 나중에 그녀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26일 후 왕훙위가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자 구치소 소장 왕커구이(王克貴)는 베이마 파출소에 통보했고, 베이마 파출소 경찰 왕청이(王成以)는 그녀에게 이른바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을 처리해 주었다.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고문과 노역에 시달려
2006년 10월 13일, 왕훙위는 베이마 장터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누군가의 악의적인 신고로 경찰 장(張) 씨에게 베이마 파출소로 납치됐고, 즉시 룽커우시 국보 경찰에게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국보 대대 경찰 왕치 등은 뜻밖에도 왕훙위와 같은 감방에 있던 범죄 용의자 쑨리리(孫麗麗)를 속여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위증하도록 했다. 이후 왕훙위는 룽커우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이 내려온 후 쑨리리는 판결문에 이른바 ‘증인’이 자신으로 돼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자신의 이름을 파내버렸다.
2007년 4월 12일, 왕훙위는 지난(濟南) 여자감옥으로 이송됐다. 감옥 집중 훈련대에서 왕훙위는 각종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당했다. 죄수 추슈신(丘秀欣), 차오루이메이(喬瑞梅), 자오윈(趙雲), 가오펀(高芬), 자후이(賈慧), 장리룽(張麗榮) 등은 감옥경찰 쉐옌친(薛彥勤)의 사주를 받아 여러 차례 왕훙위를 심하게 구타했고 장시간 벌을 서게 했다. 한 번 서면 십여 시간씩 서 있었고, 잠도 자지 못하게 했으며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다. 왕훙위는 한겨울에 바지에 소변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죄수들은 갈아입지 못하게 하고 소변에 젖은 바지와 신발을 신은 채 계속 벌을 서게 했다.
2007년 12월, 집중 훈련대에서 반년 정도 박해받은 후 왕훙위는 제6 감구로 옮겨졌다. 감구장 덩지샤(鄧濟霞)는 죄수 장리룽을 시켜 왕훙위를 심하게 구타했다. 그녀는 매일 13시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독성 접착제(포화알칼리)로 진뎬(金典) 우유 종이봉투를 붙이거나 수출용 꽃꽂이 공예품을 만들기도 했다.
꾸준히 진상을 알리다가 여러 차례 납치돼 4년 반형을 무고하게 선고받아
2013년 6월 21일, 왕훙위는 개발구 장터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악의적인 신고로 룽커우시 개발구 파출소에 납치됐다. 이후 국보 대대 경찰 궈푸두이(郭福兌)에게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고, 장자거우 구류소로 이송돼 15일간 불법 구류됐다.
2016년 1월 13일, 왕훙위와 한 파룬궁수련자가 루터우(蘆頭)진 큰 장터에서 진상을 알릴 때 루터우 파출소 경찰에게 가로막혔다. 왕훙위가 주소를 말하기를 거부하자 한 경찰이 직접 왕훙위의 눈에 고추 스프레이를 뿌렸고, 다른 한 경찰은 왕훙위의 뺨을 때렸다. 이후 왕훙위는 루터우 파출소에 납치돼 몸에 지니고 있던 진상 지폐 180위안을 압수당했고 당일 풀려났다.
2019년 4월 18일, 왕훙위, 저우춘화(周春華), 인수윈(殷淑雲) 등 파룬궁수련자들은 장터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됐고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세 사람은 옌타이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왕훙위는 5월 18일에 불법 기소 승인을 받았다. 다른 두 명의 파룬궁수련자도 불법 구류됐다.
2019년 9월 초, 왕훙위는 룽커우시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4년 반형을 선고받았다. 그녀가 항소한 후 옌타이시 중급법원에서 무리하게 기각됐다. (이후 왕훙위의 투옥 상황은 조사 중임)
최근 박해받은 상황
2025년 7월 17일, 룽커우시 공안국 정보(정치안전보위국,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 경찰은 갑자기 이 도시의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을 납치했다. 왕훙위는 베이마 파출소 경찰에게 옌타이시 구치소로 납치돼 15일간 불법 구류됐다.
2026년 7월 14일, 왕훙위는 다시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녀는 현재 옌타이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있다. 현재 상황은 불명확하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6/5139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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