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린성 위수시 덩위리, 4년 부당한 징역형 박해 경험 자술

[명혜망](지린성 통신원) 지린성 위수(榆樹)시 파룬궁 수련자 덩위리(鄧玉麗)는 마을 주민들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진상 자료를 나눠줬다는 이유로 2020년 12월 경찰에 납치돼 감금됐다. 그녀는 2021년 12월 말 더후이(德惠) 법원에서 4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고, 2022년 1월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받았다. 덩위리는 2024년 12월경 부당한 징역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덩위리가 악당(중국공산당)에게 박해받은 경험에 대한 자술서입니다.

제 이름은 덩위리이고, 1973년 2월 28일생이며, 위수시 신리(新立)진 바오안(保安)촌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2012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 전에는 몸이 좋지 않아 유선증식증, 무릎 물참, 심부전, 뇌혈류 부족 등의 질병을 앓았습니다. 파룬따파를 배우고 연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병들이 모두 나았습니다. 원래 있던 몇 가지 나쁜 습관도 대법(大法)을 배우면서 고쳐졌고, 진정으로 건강한 좋은 사람이 됐습니다.

2020년 4월 22일, 저는 위수시 칭딩(靑頂)향 양무(楊木)촌에 가서 마을 주민들에게 진상 자료를 배포했는데, 진상을 모르는 주민의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습니다. 경찰은 CCTV 녹화 영상을 조회해 저를 의심했습니다. 4월 23일, 위수시 신리진 파출소 경찰은 위수시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과 결탁해 7~8명이 우리집에 난입했고, 저를 신리진 파출소로 납치했습니다. 저는 하룻밤 동안 불법적으로 감금돼 불법 심문을 받았습니다.

4월 24일, 위수시 신리진 파출소 경찰은 또 저를 위수시 공안국으로 이송해 방에 5일 밤낮으로 가뒀습니다. 방 안에는 의자 하나와 긴 의자 하나뿐이었고, 경찰은 2인 1조로 교대하며 감시했습니다. 그 기간 경찰은 여러 차례 저를 불법적으로 심문했습니다.

이후 위수시 국보는 저를 창춘(長春)시 구치소로 끌고 가 전신 신체검사를 했지만, 코로나19 기간이라며 구치소에서 수감을 거부했습니다. 경찰은 또 저를 더후이시 검찰원으로 끌고 가 어떤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창춘시 구치소로 끌고 갔고 저는 또 한 번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구치소 측은 여전히 코로나19 기간을 이유로 수감을 거부했습니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저를 위수시로 데리고 돌아왔고, 제 딸에게 서명하게 해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을 처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부르면 언제든 오라고 한 뒤에야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2020년 11월 3일 아침 7시경, 위수시 신리진 파출소 경찰 4명이 우리집에 난입했고, 저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이웃집에 숨었습니다. 경찰은 발자국을 따라 이웃집까지 쫓아와 저를 강제로 차에 태워 더후이시 법원으로 끌고 갔고, ‘취보후심’ 후속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를 위수시로 다시 데려와 당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2020년 12월 29일 오후 3시쯤, 저는 더후이시에서 온 경찰에게 다시 납치됐습니다. 현지 파출소와 국보 경찰이 협조해 총 5~6명이 저를 더후이로 데려갔고, 이후 창춘시 제4구치소에 불법 감금했습니다.

2021년 12월 말, 저는 더후이 법원에서 4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습니다.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비인간적인 ‘전향’ 박해를 겪다

제가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된 후 겪은 첫 번째 박해는 작은 의자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으면 작은 의자에 앉아야 했고, 온종일 감시원(包夾, 파룬궁 수련자를 감시하는 죄수)에게 철저히 감시당했습니다. 매일 새벽 3시경 기상한 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밤 8~9시까지 계속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일어나서 잠시 쉬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고, 엉덩이가 다 짓물렀습니다.

저를 감시한 죄수는 가오윈샤(高雲俠), 뤄신(羅鑫)이었고, 또 사오(邪悟, 삿된 길로 빠짐)한 자인 자오링(焦玲), 위샤오웨이(于小薇) 등 2명도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제가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고, 때로는 정말 참지 못해 바지에 오줌을 싸야 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감히 물을 마실 수 없었고 밥도 많이 먹을 수 없었는데, 감시원은 오히려 밥을 많이 퍼주고 남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남기면 매를 맞고 욕을 먹어야 했으며, 어쨌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감옥경찰에게 말해도 그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는데, 감옥경찰이 죄수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사주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들어간 후 씻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양치질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잇몸이 다 붓고 입과 혀에 궤양이 생겼으며 스스로 악취를 맡을 정도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밤에 이불을 덮고 몰래 입을 헹구어야 했고 그 물을 배 속으로 삼켜야 했습니다. 만약 감시원이 듣거나 보게 되면 매를 맞고 욕을 먹어야 했습니다.

평소에 감시원은 제게 말을 하지 못하게 했지만 때로는 일부러 말을 걸었고,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매를 맞고 욕을 먹어야 했습니다. 감시원이 폭행할 때 때로는 신발 밑창으로 제 뺨을 때렸고 때로는 주먹으로 저를 때렸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 감시원은 제가 배불리 먹지 못하게 했고 배식할 때 아주 조금만 줘서 저는 뼈만 남을 정도로 야위어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 감시원과 감옥경찰의 심각한 박해 속에서 저는 대법에 죄송한 일을 했고 본심과 다르게 이른바 ‘5서(五書, 다섯 가지 수련 포기 각서)’에 서명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2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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