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시 80대 노인 저우량룽, 또다시 납치돼 감금

[명혜망](충칭 통신원) 충칭(重慶)의 82세 파룬궁수련자 저우량룽(周良榮)은 2026년 6월 13일 난산(南山) 라오창(老廠)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던 중 경찰에게 납치됐으며, 현재 베이베이(北碚) 경찰병원에 감금돼 있다. 경찰은 그녀가 “심부전 진단을 받아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가족은 그녀의 실제 감금 상황을 알 수 없어 매우 걱정하고 있다.

저우량룽은 충칭시 농업국 장베이위쭈이(江北魚嘴) 과수원의 은퇴한 직원이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1945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충칭은 물론 쓰촨(四川)에서도 꽤 영향력 있는 은행가였으며,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역사적 이유로 이 유산은 오랫동안 은행 금고에 보관된 채 회수되지 못했다. 문화대혁명 기간 큰아버지 집에 보관돼 있던 재산 증빙 서류를 충칭시 공안국이 압수해 갔다. 1993년, 저우(周) 씨 가족은 법적 절차를 통해 공안국에 재산 반환을 요구했지만 공안국은 돌려주기를 거부했다. 저우 씨 가족은 계속해서 시정부, 시위(市委), 인민대표대회에 호소했으나, 관련 관리들이 공안국과 결탁해 은행 금고에 보관된 재산(1929년판 미국 달러, 보석 등 포함)을 가로챘다. 이후 저우 씨 가족은 이 사건을 국무원에 고발했다. 이때부터 저우 씨 가족 수십 명(자손 포함)의 기록과 사진은 공안의 중점 감시 대상이 됐다.

1996년, 저우 씨 가문의 여덟 딸 중 7명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했고, 이후 저우 씨 자매들은 다시는 공안국에 재산을 요구하지 않았다.

공안국의 밀령과 장기적인 박해

1999년 ‘7·20’ 이후, 중국공산당(중공)은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공안국은 저우 씨 자매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즉시 그들을 중점 대상으로 삼고 다음과 같은 밀령을 내렸다. “저우 씨 자매가 함께 있는 것을 허락하지 마라. 함께 있기만 하면 잡아라.”

· 저우량주(周良柱)는 여동생 집에 갔다는 이유로 1년여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저우량쥐안(周良娟)은 언니 집에 갔다는 이유로 1개월간 불법 감금됐고, 이후 또 2년간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다.

· 저우량룽은 여동생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납치됐다.

2000년 12월, 저우량룽은 청원하며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충칭시 공안국에 의해 불법적으로 2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저우량룽은 가장 강경하니 검찰 기관에 넘겨 징역형을 받게 할 준비를 해라”라고 호언장담했다. 저우량즈(周良芝) 역시 여동생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납치되고 감금됐다.

노동수용소에서 저우량룽은 수갑이 채워지고 ‘독방’(어두운 방)에 갇히는 등 자주 고문을 당했으며, 여러 차례 단식하며 박해에 저항했다. 2002년 3월, 여자노동수용소는 수련 의지가 확고하고 영향력 있는 파룬궁수련자들을 쓰촨성 여자노동수용소(쯔쭝)로 이감해 강제로 세뇌했는데, 저우량룽도 그중에 있었다.

2004년: 버스에서 진상을 알리다 폭행당해

2004년 3월 19일 오후, 저우량룽과 저우량쥐안은 난안(南岸)구 창성차오(長生橋)의 버스에서 승객들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안내원의 신고로 난안구 창성차오 파출소 경찰에게 불법 납치돼 차에서 강제로 끌려 내려갔다.

3월 20일 파출소 내에서, 한 무리의 경찰이 저우량룽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가해 그녀를 뇌진탕에 이르게 했다. 그녀는 온몸에 상처를 입어 스스로 생활할 수 없게 됐다. 그녀들이 단식으로 항의하자 난안구 구류소로 이송돼 15일간 불법 구류됐다.

만행을 덮기 위해 난안구 공안국과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은 4월 2일 두 사람에게 3년 강제노동 처분을 내리고 충칭 여자노동수용소에 감금했다.

폭행 사건이 폭로되자 충칭시 610과 정법위는 두 사람과 가족의 면회를 금지했다. 노동수용소는 저우량룽의 건강 상태가 매우 나쁘다고 통보하며 두 차례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시 노동수용국은 “정법위가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밝혔고, 가족은 끝내 저우량룽을 만날 수 없었다.

2011~2012년: 여러 차례 찾아와 괴롭히고 납치 시도

2011년 7월 초, 위쭝(渝中)구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원들이 저우량룽 딸의 집에 들이닥쳐 “저우량룽이 진상 편지를 보냈으니 그녀를 잡아야 한다”라고 호언장담하며 사진 촬영과 서명을 요구했고, 이미 온라인에 지명수배됐다고 주장했다. 저우량룽이 집에 없어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경찰은 이후 난안구 국보, 퉁위안쥐(銅元局) 파출소와 연합해 딸의 집과 직장을 빈번하게 괴롭혔다.

2012년 3월 29일 밤, 위쭝구 국보 대원들이 저우량룽의 집을 찾아와 “며칠 구류할 뿐이며 사진 촬영과 서명을 해야 한다”라며 그녀를 납치하려 했다. 그녀가 집에 없어서 미수에 그쳤고, 저우량룽은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됐다.

2016년: 주민센터에서 진상을 알리다 세뇌반에 강제 이송

2016년, 경찰이 여러 차례 찾아와 괴롭혔으나 그녀를 만나지 못하자 저우량룽은 자발적으로 주민센터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10월 26일 두 번째로 진상을 알리던 중, 그녀는 주민센터가 부른 6~7명의 경찰에게 들려 난산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2019년: 또다시 가택수색, 비디오 촬영, 채혈 당해

2019년 8월 23일 오전 11시 반경, 난안구 공안분국 국보 대대 쉬(徐) 씨와 다른 한 남성, 황줴야(黃桷埡) 파출소 경찰 선(沈) 씨, 관할 경찰 바오진(包勁), 주민센터 종합치안유지판공실 무쥔(牟軍) 등 5명이 저우량룽의 집에 불법 침입해 즉각적인 녹음, 녹화, 가택수색을 명령했다.

쉬 씨는 휴대폰을 꺼내 녹화된 사진 한 장을 찾아내며, 그녀가 파룬궁수련자 류창슈(劉昌秀)와 함께 ‘전단지를 배포’한 것이라고 지목했다. 이를 구실로 저우량룽의 대법서적 여러 권, 파룬궁 사부님 사진, 지난(濟南) 설법 녹화테이프, ‘정견(正見)’, ‘명혜주간(明慧週刊)’ 등 10여 권의 자료를 압수해 갔다.

쉬 씨는 “우리 일에 협조해야 한다. 집에서 연공하고 나가지 마라. 이번에는 너희 모두 며칠 갇혀야 한다”라고 위협했다. 저우량룽은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법을 어기지도 않았습니다. 파룬궁수련자는 신의 사자로서 대법의 복음을 전하며 중생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이어 장쩌민(江澤民)이 일으킨 박해의 본질을 폭로하고, 중공의 부패, 매국, 국민에 대한 해악을 지적하며 경찰에게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자는 번성하고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라며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해 평안을 지키라고 권했다.

당일 낮, 그녀는 황줴야 파출소로 이송됐고, 오후에는 다시 난핑(南坪) 파출소에서 강제로 지문과 혈액 등을 채취당한 후 오후 4시경에 귀가했다.

2020년: 외출 제한 및 6개월간 거주지 감시당해

2020년 5월 12일 오후, 난산 파출소 관할 경찰이 그녀의 집에 와서 “5월 13일에는 외출을 불허한다”라고 통보했다. 저우량룽은 이것이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5월 13일 아침 7시가 넘자, 난산 파출소와 난핑 파출소의 여러 경찰이 그녀의 집에 난입해 ‘6개월간 거주지 감시’를 선고하고 두 명을 파견해 집 근처에서 감시하게 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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